§ 나는 될놈이다 714화
파즈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까 뭔가 되게 중요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파즈 님 같은 인재를 구하게 되다니. 정말 기쁘군요. 저희 영지에는 파즈 님 같은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아, 저기, 김태현 선수, 그게 있잖습니까, 제가 해야 할 퀘스트도 있고….”
“퀘스트도 있는데 제 영지에 와서 일해주신다니!”
능숙하게 도망칠 곳을 막는 태현!
파즈는 태현 일행한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태현 일행은 도와주지 않았다.
“앗. 이게 파즈가 하는 방송인가봐.”
“와, 요리 잘하네요.”
“맛있어 보입니다. 이거 저희도 먹어볼 수 있는 거죠?”
“실제로 레스토랑 운영한다는데 이거 구경갈 수 있나?”
“…….”
파즈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도시에서 기껏 일군 기반이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새 도시에서 새 NPC들과 친해지고 할 일이 까마득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하. 잘 부탁드려요.”
* * *
-그 요리는 네가 한 거였나?
태현이 들어서자 에슬라는 놀란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래.”
-대단하군. 그런 능력에 요리까지 잘하다니. 정말 대단한 토끼 요리였어. 대륙 제일의 토끼 요리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런 요리는 카르바노그만이 만들 수 있지.
뜨끔.
에슬라가 카르바노그의 이야기를 꺼내자 태현은 움찔했다.
“카르바노그를 아나?”
-카르바노그? 모를 리가 있나.
[카르바노그가 우쭐합니다.]
“그렇게 유명한 신이었나?”
-인간들 사이에서는 유명하지 않을 수 있겠군. 악마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한 신이었다.
“뭐로 유명한 거지? 토끼 요리?”
-아니. 신과 악마들이 싸울 때 혼자 도망친 거로.
“…….”
[카르바노그가 당황해합니다.]
[오해가 있다고 말합…]
-혼자 대륙으로 내려가 숨었으니, 다른 신들이 다 대륙을 떠날 때도 남아 있을 수 있었겠지.
‘카르바노그….’
남들 다 싸울 때 혼자 쪼르르 내려와 숨어 있었다니.
[…….]
“거 참 황당한 신이군.”
-뭐, 싸움 붙인 아키서스보단 낫지 않나? 악마들이나 신들도 아키서스는 증오하지만 카르바노그는 증오하지 않는다.
[카르바노그가 그것 보라며 우쭐해합니다.]
‘시꺼.’
-그래서 아키서스의 전승자. 여기는 무슨 일로 왔나? 요리를 맛보여주러 온 건가? 아니면 역병 폭탄을 다시 받아가러 왔나? 뭐든 좋지만 내 봉인을 빨리 풀어줬으면 좋겠군.
타타탁-
태현은 말 대신 갖고 온 장비들을 꺼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걸 본 에슬라가 경악했다.
-설마!
“그 설마다.”
[에슬라가 고위 악마의 무구를 가지고 온 당신의 업적에 경악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어서… 어서 풀어다오!
“잠깐.”
-…?
“일단 계산부터 하자고. 이거 모으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아?”
에슬라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역시 아키서스의….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아키서스의 전승자… 그래, 뭘 원하나?
“넌 뭘 줄 수 있지?”
-힘!
에슬라는 짧고 강하게 말했다.
-무엇을 원하나, 아키서스의 전승자? 악마들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길 원하나? 내가 풀려나면 널 보호해 줄 수 있다. 어떤 악마도 나와 척을 지고 싶지 않다면 너한테 쉽게 덤비지 못할 거다. 아니면 무구는 어떠냐? 내 보고에는 뛰어난 악마 대장장이들이 만들어낸 걸작들이 쌓여 있다.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을 보았겠지? 나는 악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다. 무구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줄 수 있다.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에슬라!
[에슬라가 대가를 제안합니다.]
[스킬 <에슬라의 가호>]
[에슬라의 보고에 있는 악마 대장장이들의 무구]
[스킬 <악마의 대장장이 기술 비전>]
[……]
우르르 보상들을 나열하는 에슬라!
퀘스트의 난이도가 난이도라 그런지 하나하나가 정말 대단했다.
“군대는 없나?”
-뭐라?
“그, 악마 군대….”
에슬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악마 군대를 달라고 하다니, 너 화신 맞냐?
-신의 계승자가 악마 군대를 부린… 아, 넌 아키서스의 화신이었지.
바로 납득이 끝난 에슬라!
‘군대가 더 필요해.’
모스락 퀘스트를 깨면서 모스락에게서 악마 전사들을 정말 많이 뜯어낸 태현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현재 수도에 있는 건 <악마 근위대 1군단>, <악마 근위대 2군단>이 전부!
<왕국 수도 경비대>도 있긴 했지만 이건 말 그대로 수도를 관리할 정도였다.
다행히 수도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고 충성도도 높아 만약의 상황에는 공성전에 참가시킬 수 있겠지만….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워낙 잘 만들어진 데다가 뚫기 힘든 곳에 있어서 괜찮을 거고….’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요새 중의 요새로 바뀐 데다가, 거기 대기하고 있는 전력을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은 걱정이 가지 않았다.
지금 가장 걱정이 가는 건 수도!
길드 동맹이 즉위식 끝나면 뭘 할지는 짐작이 갔다.
‘나 같아도 군대 일으켜서 수도 치러 들어온다.’
다른 곳에 비해 점령할 만하고, 만약 점령을 하게 될 경우에는 대박. 게다가 아탈리 왕국은 현재 분열된 상태였다.
태현의 수도가 공격당한다고 하더라도 지방의 귀족들이 기사단을 이끌고 달려올지는 의문이었다.
쑤닝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에슬라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 군세를 불러줄 수는 있지만, 아예 줄 수는 없다. 내 군세들은 일이 끝나면 돌아가야 한다.
“어디로?”
-마계로! 봉인이 풀린 내가 뭘 할 것 같으냐. 마계로 가서 빼앗긴 내 위치를 되찾을 것이다.
에슬라를 봉인한 건 다른 악마들.
그 때문에 에슬라는 이를 갈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마계에 가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에슬라의 군세는 영원히 부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대륙을 떠나 돌아갈 것입니다.]
[주의해서 그들을 부리십시오.]
[에슬라의 군세를 이끄는 악마 지휘관은 자긍심 높은 악마 전사 알렉세오입니다.]
‘으으음….’
태현은 고민했다.
에슬라의 군세는 일단 기본으로 고르고, 다른 보상들 중 뭘 골라야 할까?
‘일단 <에슬라의 가호> 고르고, <악마의 대장장이 기술 비전>도….’
<에슬라의 가호>는 아주 쓸 만한 패시브 스킬이었다.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 악마 상대 보너스는 기본에, 악마들한테 ‘날 건드리면 에슬라가 이놈 한다!’라고 협박도 할 수 있었다.
<악마의 대장장이 기술 비전>은 각종 아이템 제작법 모음집이었다.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
오랜 시간 동안 악마 대장장이들한테서 내려온, 각종 아이템 제작법을 모은 비전 스킬이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다양한 제작법들이 해금된다.
요리사들이 요리 레시피 하나에 목숨을 걸듯이, 대장장이들은 제작법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남들이 모르는 제작법 하나만 잘 독점해도 판온에서는 평생 먹고 살 수 있었던 것!
악마 대장장이나 천사 대장장이의 제작법은 판온에 거의 풀리지 않은 상황.
그런 면에서 저런 제작법 모음은 꼭 필요했다.
“좋아. 에슬라. 풀어주도록 하지!”
-고맙다, 아키서스의 화신이여!
[봉인된 악마, 에슬라의 봉인을 풀어주었습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에슬라의 가호>를…]
[<에다오르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홍빛 대검>이 녹아 사라집니다.]
[<갈그랄의 저주가 서린…]
‘으. 더럽게 아깝군.’
하나하나가 경매장에 올라오면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 아이템인데 봉인을 푸느라 써야 한다니.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제작법은 <악마의 영혼이 갇혀 있는 사슬갑옷>입니다.]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 추가 제작법을 얻습니다.]
악마의 영혼이 갇혀 있는 사슬갑옷:
내구력 1/1, 물리 방어력 0, 마법 방어력 0.
레벨 1만 착용 가능.
착용 시 레벨 업 불가.
착용 시 ‘영혼 공양’ 스킬 사용 가능.
악마의 영혼이 갇혀 있는 사슬갑옷이다. 이 갑옷을 착용하면 갇혀 있는 악마에게 영혼을 바쳐 커다란 힘을 얻을 수 있다.
‘????’
이건 뭔 쓰레기 아이템?
태현은 당황하지 않고 <영혼 공양>이 어떤 스킬인지 확인했다.
<영혼 공양>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가 됩니다. 이동 속도, 공격 속도가 매우 크게 증가합니다. 스킬이 끝나면 사망합니다.
“…….”
태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필 나와도 뭐 이런 게 나오냐??
* * *
에슬라를 풀어준 태현은 에슬라의 힘을 빌려 바로 전쟁을 일으키…
지 않았다. 왜냐하면 길드 동맹이 바쁜 것처럼 태현도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미뤄뒀던 권능 퀘스트도 다시 시작해야 했고, 무엇보다 던전 공략 대회의 다음 경기가 잡혀 있었다.
-팀 KL! 압도적인 경기력입니다! 상대 팀이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요!
-아, 저렇게 하면 안 되죠! 급할수록 침착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잔실수가 너무 많아요!
-차이가 벌써 절반 넘게 벌어졌습니다. 이건 역전이 힘들다고 봐야지요!
물론 그렇다고 태현이 대회에 시간을 많이 쏟지는 않았다.
대회가 가장 쉬웠어요!
태현은 평소에 팀원들에게 언제나 강조했다.
-애들아. 벼락치기는 평소에 공부 안 한 애들이 하는 거야. 난 너희들을 믿는다. 미리미리 준비해놔. 나중에 이상한 짓 하지 말고.
-…….
미리 말해놓은 결과가 아주 잘 나오고 있었다.
“뛰어! 뛰라고! 케인! 너 이 자식 제대로 안 맞추냐? 방금 공격 한 대 빗나간 거 봤다! 너 그걸 검이라고 휘두르는 거냐!?”
‘그만 갈궈 자식아…!’
던전 공략의 핵심은 태현이었고, 그만큼 맡은 역할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케인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는 능력!
계속해서 쏟아지는 잔소리에 팀원들은 절대 방심하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서로 얼마나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태현은 확실하게 팀원들의 멘탈을 유지시키는 리더였다.
그에 비해 상대 팀은 팀 KL의 명성에 짓눌려 무리수를 두다가 스스로 자멸했다.
싱거울 정도의 압승!
-팀 KL! 2연승, 2연승입니다! 사실 경기 전부터 팀 KL의 승리는 많은 분이 예상했었죠. 예선 성적부터 너무 압도적이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팀 KL의 약점으로 꼽히던 것들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코치가 없고 감독도 없는, 선수들로만 구성된 게임단이라고 해서 다들 걱정을 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역할 분담이 되는 게임단하고 안 되는 게임단은 차이가 있죠. 다른 게임단들이 괜히 코치 두고 감독 두는 게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주 감독님께서 팀 KL을 혹평하셨었죠?
-하하. 혹평까지는 아니었죠. 걱정 정도?
해설자들은 팀 KL의 승리를 축하하며 떠들어댔다.
선수들로만 구성된 소규모 게임단의 선전!
원래 태현의 인기도 인기인 데다가, 계속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팀 KL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팀 KL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팀 KL을 질투하는 팀, 팀 KL을 저격하는 팀 등등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게임 외적의 언론 플레이도 프로 세계의 일부!
-‘팀 KL은 모래알 같은 팀… 이런 팀은 오래갈 수 없다’고 혹평. LK 라이온즈의 주 감독 발언 파문….
-‘팀 KL 상대할 비책 있다’, ‘다음 경기 기대해도 좋다’ 주 감독 자신감의 비결은?
기사를 본 태현 일행은 숙소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양반 누구더라?”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