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13화
그런다고 플레이어들이 쫓아가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미 떨어진 플레이어들이 눈에 밟혔던 것이다.
결국 태현은 유유히 도주!
그사이 다른 일행도 무난하게 영지를 빠져나왔다.
워낙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대충 섞여서 도망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쫓아! 쫓으라고!
길드원들이 죽지도 않았고, 잃은 것도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체면이었다.
이제 곧 즉위식 이벤트를 거창하게 할 예정인데, 그 체면을 태현이 제대로 먹칠을 해준 것!
‘김태현…! 용서하지 않겠다!’
쑤닝은 이를 갈았다. 길드 간부들은 그 살벌한 분위기에 입도 열지 못했다.
* * *
“아. 속이 좀 풀리는군.”
“그런데 김태현. 지금 이게 그렇게 큰 효과가 있냐?”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까지 태현이 했던 것과는 다르게, 좀 소소했던 것이다.
물론 태현이 했던 일과 비교해서 소소한 거지, 보통 플레이어들은 저런 짓도 못 했다.
아무리 소소하더라도 수많은 적들 앞에서 단독으로 뛰어들어서 휘젓고 나와야 하는데, 목숨 걸지 않고서는 못하는 짓!
“응? 뭔 효과?”
“어… 뭘 노리고 한 거 아니었어?”
케인은 당황했다. 이제까지 태현이 했던 일들은 다 무모해 보여도 무언가 깊은 계획과 계략이 숨어 있을 때가 많았다.
이번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데? 그냥 엿 먹이려고 한 건데?”
계획이고 뭐고 생각한 게 아닌, 가는 길에 들러서 받은 만큼 복수해 주려고 했던 것!
다른 건 몰라도 받은 건 잘 기억해뒀다가 꼭 챙겨주는 게 태현의 마음 씀씀이였다.
“…….”
케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이 자식 안 되겠어….’
“뭐야. 눈빛이 기분 나쁜데?”
“아, 아니야. 와! 저기 입구네!”
케인은 재빨리 말을 돌리고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한 파티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조리도구까지 꺼내놓고 야영지를 만들어 놓은 모습이, 이 주변에서 꽤 오랫동안 있었던 모양이었다.
“못 보던 플레이어들인데.”
“적 아닐까요?”
“일단 적이라고 봐야….”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의심만 잔뜩 늘어난 태현 일행!
그러나 케인은 아니었다.
“야. 여기는 에스파 왕국이라구. 오스턴 왕국이랑 달리, 우리한테 호의적인 애들이 많다니까?”
“과연 그럴까요?”
“별로….”
“아닐 것 같은데….”
“나 참. 보라니까.”
케인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최근 많은 인기를 실감하고 나니, 이런 행동에 자신감이 붙었던 것이다.
“으아악! 케인이다!”
“케인이 여기 어떻게?!”
“오, 오지 마라!”
식칼과 프라이팬을 들고 케인에게 겨누는 플레이어들!
그걸 본 일행들은 수군거렸다.
“케인 씨가 강도처럼 보였나 봐요.”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아, 아니야! 난 강도 아니야!”
부정하던 케인은 뭔가를 깨달았다.
“그보다 저놈들 내 이름 알잖아! 저놈들이 이상한 거라고!”
“아. 쟤네 레스토랑 길드네요.”
이다비는 바로 알아보았다. 요리사로 구성된 길드, 레스토랑 길드!
길드 동맹에 소속된 길드로, 길드 동맹에게 지원을 받고 각종 질 좋은 요리를 제공해 주는 길드였다.
길마 차오도 뛰어난 요리사였고 길드원들도 다들 실력이 좋았지만, 수법이 비열하고 치사한 부분이 많았다.
덕분에 경쟁 퀘스트에서 당한 요리사들의 글들이 주기적으로 올라오곤 했다.
-너희들이 그러고도 요리사냐!
-남의 요리 재료를 망치다니!
-요리 재료 독점 반대!
물론 그런 레스토랑 길드도 태현한테는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적이 있었지만….
“레스토랑? 아. 걔네? 요리에 독 타던 놈들이군.”
“김… 김태현까지!”
-길마님! 길마님!
-…?
파즈와 격렬한 요리 대결을 벌이고 있던 차오는 귓속말에 의아해했다.
-왜 부르냐?
-김태현이!
-김태현이? 어. 봤어. 수도에 불 지르고 튀었다면서. 이야. 김태현 성질 많이 죽었네~ 쑤닝 분해서 어떡하냐? 낄낄.
길드 동맹과 손을 잡은 건 손을 잡은 거고, 피해는 별개였다.
‘나만 아니면 돼!’
게다가 이번 즉위식 준비하느라 레스토랑 길드는 정말 밤을 새워서 요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거 하나 때문에 동맹 관계를 끊진 않겠지만 악감정이 안 쌓일 수는 없었다.
-아뇨, 김태현이 여기 와있는데.
-왜!?!?!?!?
차오는 기겁했다.
아니 진짜 왜?!
물론 길드 동맹이 태현의 영지에 가서 악마를 소환하는 못된 짓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길드 동맹한테, 쑤닝한테 직접 따져야 하지 않는가!
왜 그 같은 조무래기한테 와서 화를 낸단 말인가!
‘나는 그냥 요리사일 뿐인데!’
“왜 그러나?”
차오 옆에 있던 파즈가 의아해했다.
갑자기 차오가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만들고 있던 요리에 무지막지하게 소금을 붓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니….”
‘뭐지? 저 요리법은? 새로운 요리법인가?’
둘 다 에슬라한테 까였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둘은 아니었다.
무릇 랭커는 기본적으로 끈기가 있어야 하는 법. 제작 직업 랭커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다시 에슬라한테 도전하기 위해, 에슬라가 봉인된 문 앞에서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에슬라의 마음을 돌려라-요리사 비전 스킬 퀘스트>
여러분의 조악한 요리로 에슬라는 마음을 돌렸다. 오래된 봉인으로 지루해진 에슬라는 한동안 요리를 먹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에슬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아주 강렬한 요리가 필요하다.
요리를 만들고 에슬라의 마음을 돌려라!
보상: ???
‘답은 향기에 있다.’
파즈는 이 퀘스트의 답이 냄새에 있다고 생각했다.
<냄새 강화>, <식욕의 냄새> 같은 스킬들을 사용한다면, 에슬라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차오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소금을 다 붓더니 갑자기 요리를 하다 말고 그냥 뚜껑을 닫아버리는 것 아닌가.
‘대, 대체? 진짜 새로운 요리법인가?’
파즈도 소문은 들었다.
저 멀리 아탈리 왕국 쪽 요리사들한테서 <괴식 요리>라는 새로운 요리 스킬 붐이 일어났다는 걸.
하지만 파즈는 그 요리는 인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솔깃했지만 너무 단점이 컸던 것이다.
맛이 없다!
아무리 요리의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긍지 높은 요리사인 파즈에게 그런 요리는 모욕이었다.
‘차오. 설마 이기기 위해서 괴식 요리까지…! 헉. 설마 악마라서 괴식 요리를 좋아하나?’
악마들이 들으면 화낼 소리!
악마도 괴식 요리는 걸렀다.
그러는 사이 차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호다닥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나?!”
“나 없다고 해!”
“그래. 너 없다.”
“??!?!”
이미 태현 일행은 레스토랑 길드원들을 데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던 것이다.
-너희 안 막고 뭐 하냐!
-저희가 어떻게 김태현을 막습니까!?
레스토랑 길드원들도 할 말이 있었다.
막았다가는 한칼에 슥삭일 텐데!
태현은 웃으면서 차오를 불렀다.
“어디 가. 이리 와.”
“그, 그게 말입니다. 제가 지금….”
“야. 오라고.”
“…네.”
차오는 쪼르르 돌아왔다. 태현은 파즈를 보고 인사했다.
파즈도 얼떨떨한 얼굴로 인사했다. 그 유명한 태현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또 뵙게 되네요.”
“…?”
파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태현 선수와… 만난 적이 있었습니까?”
‘아차.’
태현이 예전에 귀족 심사위원으로 변장해서 파즈와 차오를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파즈를 본 기억이 있었던 건데, 생각해 보니 파즈는 그게 태현이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하. 파즈 님이 유명해서 제가 착각했네요. 요리사로 활동하시는 거 잘 보고 있습니다.”
“…!”
파즈는 순간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파즈도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랭커였지만 태현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판온 플레이어 중 하나인 태현이 아는 척을 해주자, 파즈는 감격했다.
“정말입니까!”
“물론이죠. 저도 요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뒤에 있던 일행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케인이.
‘넌 인마… 괴식 요리사잖아….’
그 요리의 가장 큰 희생자가 케인!
태현이 요리를 못하는 거라면 이해나 갔다. 사실 태현은 요리를 꽤 잘했다.
숙소에서 다른 놈들을 깨워서 밥 차리고 먹으라고 구박하는 건 보통 태현!
이다비 동생도 ‘오빠가 언니보다 요리 더 잘하는 거 같아요. 앗. 이건 언니한테 말하지 마세요. 신경 많이 쓰는 거 같더라고요. 저번에는 연습을….’이라고 말할 정도!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아. 무슨 일이냐면은….”
파즈는 설명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차오가 기겁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 마 자식아! 하지 마!
김태현이 그들이 뭘 하는지 알았다가는 대번에 깽판을 놓을 것이다.
“뭐냐? 왜 고개를 흔들어?”
“?”
물론 파즈가 그걸 알아들을 정도의 눈치가 있지는 않았다. 태현은 돌아서서 입을 열었다.
“우리 차오. 비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라고 했니? 나 방해하라고 했지?”
“그… 그게 아니라….”
“저기 가서 너희 길드원하고 손 들고 있어.”
“…….”
레스토랑 길드원들과 차오는 얌전히 손을 들고 구석에 서있었다.
딱히 잘못한 건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길드 동맹은 멀고 태현은 가까운데.
파즈는 무슨 퀘스트를 깨고 있었는지 말했다. 그걸 들은 태현은 의아해했다.
“요리로 악마 만족시키는 게 어렵나요?”
“네.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종족 중 가장 까다로운… 아, 천사도 있긴 한데 아직 천사는 못 봤으니.”
사실 태현은 천사도 봤지만 못 들은 척 넘어갔다.
“파즈 님.”
“?”
“제가 악마를 만족시키게 해드릴까요?”
“…!”
파즈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김태현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고 있지만 이건 요리사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저도 자존심이 있지, 남이 해준 요리로 퀘스트를 깰 수는 없습니다.”
멀리서 듣고 있던 차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 놈의 자존심!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요리를 해준다는 게 아니라 에슬라한테 잘 말해준다는 뜻이었는데….’
이제 곧 에슬라를 풀어주는데, 에슬라가 그런 부탁 하나 안 들어주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김태현 선수라도!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꿈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 꿈틀거리는 게 태현의 성격!
“만약 하면요?”
“하! 만약 하시면, 김태현 선수 밑에서 일하겠습니다!”
“…!”
“!!!”
“!!!!!!!!”
태현 일행은 ‘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인마 큰일 났어’란 표정으로 파즈를 쳐다보았다.
태현 앞에서 저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입 다물고 있던 차오도 놀라서 외쳤다.
“너 미쳤냐!?”
“어허. 저놈 조용히 시켜라.”
“읍! 읍읍읍!(야! 내가 너희들 길마잖아)!”
태현은 웃으면서 말했다.
“케인.”
“?”
“나가서 토끼 하나 잡아 와라.”
* * *
30분 후.
파즈는 하늘이 무너진 얼굴로 앉아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천재 요리사로 칭송받으며 승승장구해 왔던 파즈!
판온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태현한테 깨지다니.
“내 인생은… 헛된 인생이었단 말인가! 크흐흑!”
‘살짝 미안해지는데.’
카르바노그의 힘으로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태현은 파즈를 위로하기 위해 어깨를 두드렸다.
“기운 내시죠. 저는 토끼만 요리해서 토끼 관련 요리 스킬에 어마어마한 버프가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요리인데….”
“여기는 요리이기 전에 게임이잖습니까. 전 게임을 잘해요.”
“크흑. 감사합니다. 패자한테 이런 위로까지….”
태현의 상냥한 말이 가슴에 와닿아 울렸다.
“근데 언제부터 나와서 일하실 거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