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11화
그러나 프이드는 패닉 상태에 빠져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내가 아키서스의 화신과 손을 잡다니… 난 죽을 거야! 난 죽을 거라고!”
“저기….”
“차라리 다시 마계로 돌아가는 게… 모스락의 영역에는 못 가고, 다른 악마 공작 중에 내 항복을 받아줄 만한… 으아악! 보물도 없잖아! 나는 어떡하란 말인가!”
“에잇. 아키서스 빔!”
“으아악! 아키서스 빔이다! 으아아아악!”
프이드는 바닥에 엎드려 데굴데굴 굴렀다. 태현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프이드를 내려다보았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프이드를 위협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수많은 가짜 위협으로 적을 위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킬 <가짜 스킬 이름 외치기>를 얻습니다.]
<스킬 크게 외치기>에 이은 새로운 스킬.
<가짜 스킬 이름 외치기>!
<가짜 스킬 이름 외치기>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스킬 이름을 실감 나게 외칩니다. 화려한 가짜 효과가 상대의 눈을 속일 것입니다.
*쓰는 스킬은 한 번 이상 본 적이 있는 스킬이어야 합니다.
‘재밌는 스킬인데?’
다른 사람들이라면 ‘와 이 쓰레기 스킬은 뭐냐?’ 했을 테지만, 태현은 이 스킬이 대번에 마음에 들었다.
딱 봐도 변수를 만들기 좋은 스킬!
이런 스킬은 언제나 쓸 곳이 나오게 마련!
‘최고급 화술 스킬을 찍으니 이런 스킬들이 나와서 좋군….’
프이드는 제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아키서스의 화신… 대체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거냐??”
“악감정은 무슨. 모스락을 상대하기 위해 손을 잡은 건 진짜였거든?”
“아… 확실히. 아키서스가 모스락을 그렇게 속였으니, 확실히!”
프이드는 납득했다. 아키서스가 그렇게 모스락을 속이고 굴욕을 줬으니 당연히 둘은 원수 관계일 것이다.
“다… 다행이야. 나는 또… 내가 아키서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줄 알았군. 휴.”
사실 거기에 가깝긴 했다. 태현은 프이드의 정신 건강을 위해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우리 동맹은 여전한 건가?”
“아니라니까?”
“?!”
“넌 인마 아무것도 없잖아! 뭘 내놓아야지 동맹이지!”
“아키서스의 화신답군…! 어쩌면 이렇게 사악할 수가!”
“당연한 걸 사악하다고 하지 말아줄래?”
프이드는 태현의 말에 고민에 잠겼다.
은신처를 잃어버린 지금, 모스락의 위협에 맞서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건 태현밖에 없었다.
대륙에 있는 다른 악마들? 그들이 도와줄 확률은 태현이 도와줄 확률보다 더 낮았다.
오히려 모스락에게 고발할 수도 있었다. 원래 악마들은 서로 돕는 것과는 거리가 먼 종족!
그에 비해 태현은 그런 면에서는 믿을 수 있었다. 일단 아키서스의 화신이니 모스락의 원수일 테고, 모스락에게 고발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야. 근데 모스락은 이미 잡았잖아?
-쉿. 조용히 해.
케인의 질문에 태현은 재빨리 조용히 하라고 구박했다.
프이드가 모스락이 격퇴당한 걸 모르는 지금이 바로 써먹기 좋은 상황!
정보는 곧 힘이었다. 프이드가 늦게 온 기회를 태현은 놓칠 생각이 없었다.
‘가진 밑천을 탈탈 털어놔라!’
“내… 내가 가진 게 지금 없긴 하지만, 난 능력이 있다. 내가 널 도와주면 너한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오호. 뭔 능력이 있는데?”
“일단 난 미식가이자 요리사다.”
태현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미식가, 요리사 등등 NPC들과 엮여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던 태현!
종족 최고 요리사(고블린) 스타우를 떠올리니 아직도 속이 쓰렸다.
그러나 그걸 눈치 못 챈 프이드는 신나서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즉 내가 대륙과 마계의 온갖 진미를 맛보고 그걸 재현할 수 있다는 뜻이지. 너도 지위가 지위인 만큼 온갖 쾌락을 원하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미식의 극치를….”
“네. 잘 들었고요. 탈락입니다.”
“어째서?!?!?”
프이드는 당황했다.
수많은 귀족과 왕족들은 이런 제안만 들으면 귀가 솔깃하던데?!
“도움이 되는 걸 갖고 와야지 어디서 사치스러운 걸… 넌 탈락이야 인마.”
“안, 안 돼! 잠깐만! 다른 것도 있어!”
“그래. 다음 기회에. 우리는 좀 바빠서.”
“나는 연금술에도 조예가 있다! 악마의 연금술에 관심 없나!”
“오호. 더 말해봐.”
프이드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어필했다.
“내가 한동안 요리에만 집중했지만 원래 나는 연금술사였다. 알겠나? 악마의 연금술은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의 포션보다 더 강력한 포션을 만들 수 있다!”
“부작용도 있겠지?”
뜨끔!
프이드는 움찔했다. 악마의 연금술은 확실히 더 성능이 좋은 대신, 온갖 부작용을 하나씩 달고 있는 페널티가 있었다.
그렇기에 악마의 연금술!
“그… 그렇지만 그건 통제 가능하고… 나 정도면 부작용도 적은 편이고… 그건 운으로 커버 가능하고… 솔직히 그것도 극복 못 하면 노력이 부족한 거 아닌가? 행운으로 극복할 노력을….”
“아주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걸? 좋아. 기회를 주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가라. 거기 네 자리를 만들어주마.”
[프이드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합류합니다.]
[명성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악명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치안이…]
[……]
페널티 경고가 떴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저런 페널티 수십 개 받아도 태현의 영지는 끄떡없을 것이다.
[<악마의 연금술 연구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영지에 악마의 연금술을 사용한 아이템이 유통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 좀 있다지만 플레이어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효과!
프이드는 태현의 말을 듣고 기뻐하다가 멈칫했다.
“잠깐만…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키서스 교단의 본거지지.”
“!!!!!!”
프이드는 기겁했다. 이름부터 수상하다 싶었는데!
“미, 미친! 악마인 나를 거기로 보내다니! 날 죽이려는 속셈이냐?!”
“아니야. 거기 다른 악마도 있으니까 친하게 지내봐. 거기 <악마의 대장간>도 있어.”
“?!?!?!”
프이드는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안 돌아다니는 사이에 대륙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 * *
“우리 천사를 볼 수 있는 건가?”
“그렇다니까! 교단 퀘스트를 열심히 깨길 잘 했어!”
한 플레이어 파티가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아탈리 왕국의 수도, 모라 시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 앞에는 파이토스 교단의 고위 성기사, 고위 사제 NPC들이 있었다.
<교단의 이름으로 천사를 만나라-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교단의 이름으로 신탁이 내려왔다. 대륙에 나타난 파이토스의 천사를 찾아 만나, 파이토스의 전언을 전하라는 신탁이.
그대들은 명예로운 파이토스의 추종자들이다. 성기사와 사제들을 따라 그들의 임무를 도우라!
보상: ?, ???, ????
판온에서 보기 드문 종족인 천사와 악마!
그들 중 하나를 직접 만나게 되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걸 판온 게시판에 공개한다면 며칠간 뜨겁게 조회수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방송 준비 했지? 잘 찍어야 한다?”
“물론이지!”
“그런데 퀘스트 등급이 꽤 높았잖아. 별로 안 어려워 보이는데?”
교단에서 공적치 포인트가 일정 수준 이상 높아야만 받을 수 있었던 이번 퀘스트!
그런 것치고는 난이도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아탈리 왕국이라 그런 거 아닐까? 거기 교단 건물들 다 날아갔다며?”
“아. 그거 들었어. 설마 공격당하진 않겠지?”
“에이, 설마….”
아탈리 왕국에서 플레이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이라, 아탈리 왕국의 분위기를 잘 모르고 있었다.
동영상으로 확인한 정도!
“김태현이 영주인 곳인데 그러겠어?”
“맞아. 김태현은 랭커들 중에서 그나마 착한 편이잖아.”
“그런데 들어보니까 거기 수도는 김태현 혼자 관리하는 게 아니라는데? 참가한 플레이어들한테 권한을 나눠줬대.”
“진짜? 와. 완전 부럽다. 에스파 왕국은 뭐 해주는 거 하나 없으면서 보상은 되게 짜다니까. 나도 플레이어가 영주인 곳으로 옮겨가 볼까?”
그렇게 떠드는 사이 일행은 어느새 모라 시 앞에 도착해 있었다.
긴장했지만 성문 앞에서 딱히 출입금지를 당하지도 않았다.
중앙 광장에 도착한 그들!
고위 사제가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파이토스의 천사가 있다. 그를 찾아라.”
“네!”
-천사 추적의 주문!
플레이어는 아낌없이 스크롤을 찢었다. 비싸게 산 스크롤이지만 이럴 때 쓰지 않으면 언제 쓰겠는가?
이런 건 쓸 일도 별로 없었다.
파아앗!
“??”
요하스는 갑자기 나타난 교단 일행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이 에슬라를 만나러 가기 전에 수도에 두고 간 요하스였다.
-요하스. 지금 수도는 악마의 습격으로 인해 혼란스럽다. 너처럼 믿음직스러운 호ㄱ… 아니, 천사가 지켜줘야 해!
-폐하! 맡겨만 주십시오!
악마를 만나서 ‘헤헤 제가 봉인을 풀어드렸습니다’라고 협상을 해야 하는데 천사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 덕분에 요하스한테는 재앙이 닥쳐왔다.
“저 사람, 아니 저 천사입니다!”
“맞군. 파이토스를 모시는 천사, 요하스가 맞나?”
“맞다. 너희들은 누구지?”
“무례하다! 나는 파이토스 님을 모시는 고위 사제, 후젤반이다.”
“파이토스 님을 모시는 고위 사제라고 해도 나한테 무례하게 굴 수는 없음이다. 어디서 인간 따위가 나한테!”
요하스는 화를 냈다.
같은 신을 모시고 있는 대륙의 교단과 천사였지만, 그렇다고 다 같은 급은 아니었다.
천사들은 나름 다른 종족보다 더 신에 가깝다는 자존심이 있는 것!
그러나 후젤반은 요하스를 보며 싸늘한 비웃음을 흘렸다.
“흥. 그건 어디까지나 파이토스 님에게 인정받은 천사일 때 이야기다.”
“?”
“들어라! 요하스!”
-파이토스의 신탁!
파이토스 고위 사제가 갖고 온 신탁을 펼치자 눈 부신 빛과 함께 망치의 환영이 떠올랐다.
-너는 파이토스의 이름을 걸고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했다! 어리석은 나의 자식이여. 부끄러운 줄 알아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
요하스는 기겁했다. 그가 뭘 잘못했다고 파이토스가 신탁까지 내린단 말인가?
“저… 저는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변명하지 마라! 너는 내가 시킨 것을 해내지 못했다.
신탁이 말하는 사이 고위 성기사 하나가 광장 구석에 박힌 동상을 찾아냈다.
파이토스의 아주 작은 동상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감히 파이토스 님의 동상을 이런 곳에 숨겨놓다니. 조롱의 뜻을 가진 게 분명합니다.”
“잘 찾았다! 역시 파이토스 님께서 신탁을 내려 벌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 아니! 거기에는 사정이!”
요하스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이 고위 성기사들과 사제들한테는 더욱 수상하게 보였다.
-널 추방한다. 요하스! 이제부터 파이토스의 천사란 이름을 쓰는 것을 금한다.
신탁이 끝나자 고위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무기를 뽑았다.
“감히 파이토스 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조롱한 천사 요하스. 너를 교단의 이름으로 처형하겠다.”
“이건 누명이다!”
“누명이라니. 이 동상은 뭐냐! 심지어 아키서스 동상 앞에다 숨겨놓다니. 이게 파이토스 님을 조롱하는 의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
요하스는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할 말이 없는 상황!
“모험가들이여! 무기를 뽑아 저 반역자를 쳐라!”
고위 사제가 위엄 넘치게 말했다.
갑자기 벌어진 싸움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지만 무기를 뽑았다.
그 순간 누군가 고위 사제의 어깨를 뒤에서 톡톡 건드렸다.
“?”
갈락파드가 지팡이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 저주받아 썩어 문드러질 사악한 놈들이…!! 감히 아키서스 님의 동상 앞에서 다른 신의 신탁을 읊어?!”
분노로 눈이 돌아간 갈락파드!
그는 당장에라도 사람 하나 죽일 기세로 외쳤다.
“여기 있는 모험가들은 전부 모여라! 저 흉악하고 사악한 놈들의 모가지 하나에 공적치 포인트 천씩 걸겠다.”
“!!!!!”
그 순간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눈도 같이 돌아갔다.
“잠, 잠깐…!”
스르릉-
착착착-
사방에서 무기 뽑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