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10화
‘일… 일단 옆에 놓아보자.’
[<파이토스를 굴복시킨 아키서스 상>을 완성시키겠습니까?]
“앗. 요하스. 날 위해서….”
“아닙니다! 폐하!”
“아니야?”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요하스는 태현의 시선을 피해 호다닥 움직였다.
‘바로 옆은 안 되겠어! 뒤에!’
[<어리석은 파이토스를 가르쳐 데리고 다니는 아키서스 상>을 완성시키겠습니까?]
‘…….’
요하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점점 수위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밑에!’
[<어리석고 불쌍한 파이토스를 다리 사이로 기게 만드는 아키서스 상>을…]
‘크아아아악!’
요하스는 설치를 포기할까 고민했다.
[이미 놓은 파이토스 상을 철거하시겠습니까? 설치한 동상을 치우면 파이토스가 분노할 수 있습니다.]
‘…….’
외통수!
요하스는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중앙 광장 가장 끝자락의 화단 위에 파이토스 동상을 놓았다.
그리고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파이토스 동상 위에 수풀을 덮었다.
[<파이토스는 안중에도 없는 아키서스 상>…]
여전히 이름은 흉흉했지만, 요하스는 그의 선에서 최대한 노력한 셈이었다.
물론 파이토스나 파이토스 교단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 * *
‘중앙 광장은 대충 수리가 끝나가는군.’
태현은 안심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숫자의 힘을 느꼈다.
짧은 사이 엄청나게 늘어난 플레이어들의 숫자!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는 태현의 골수 팬들과 행운에 미친 플레이어들만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플레이어층 자체가 확 커진 상태였다.
확실히 힘을 빌릴 사람들이 많으니 엄청나게 편해졌다.
판온 1 때와는 정반대!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군.’
그때 태현이 지금 태현을 봤다면 황당해했을 것 같았다. 태현이 생각해도 정반대의 플레이를 하고 있었으니까.
‘아이템 확인하고 빨리 에슬라한테 가봐야지.’
태현은 이번 레이드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하도 많은 적을 상대하다 보니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것도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확인.
아키서스의 찬란한 목걸이:
내구력 100/100.
스킬 ‘아키서스의 원거리 보호’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선량한 믿음’ 사용 가능.
행운의 신 아키서스가 만든 목걸이다.
여기까지는 의외로 멀쩡한 아이템 설명창!
그러나 그 밑에는 추가 설명창이 있었다.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아키서스의 찬란한 목걸이>의 숨겨진 설명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의 찬란한 목걸이:
내구력 100/100.
스킬 ‘아키서스의 원거리 보호’ 사용 가능. 스킬 ‘아키서스의 선량한 믿음’ 사용 가능.
착용 시 ‘아키서스의 착용 해제 불가 저주’(아키서스의 화신만 확인 가능함).
물리 방어력 –100, 마법 방어력 –100(아키서스의 화신만 확인 가능함)
행운의 신 아키서스가 그의 정적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목걸이다. 악마 공작 모스락은 아키서스가 만든 이 목걸이를 받고 아키서스를 믿었지만, 결국에는 아키서스에게 배신당하고 속게 되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목걸이를 주는 게 좋을 것이다.
“…….”
모스락이 차고 있던 <아키서스의 찬란한 목걸이>. 가장 신경 쓰였고 의아했던 아이템이었기에 그것부터 확인한 태현이었다.
그런데 이 속성은…?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 둘 다 –100에, 착용 해제 불가에… 이게 뭔….’
판온에서도 이런 아이템은 희귀했다.
착용하는 순간 플레이어한테 엿을 먹이는 저주 아이템!
이 아이템이 특히 악질적인 건 태현이 아니라면 아이템 성능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모스락이 악마이고, 아키서스한테 당한 게 많은데도 목걸이를 차고 있었던 이유가 있는 것!
[카르바노그가 모스락을 동정합니다.]
카르바노그마저 모스락을 불쌍하게 생각할 정도!
[<아키서스의 찬란한 목걸이>를 손에 얻었습니다.]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 <아키서스의 선물>의 흔적을 손에 넣었습니다. 교단 권능 퀘스트를 더 진행하십시오.]
“!”
악마 사냥을 위해 잠시 미뤄뒀던 교단 권능 퀘스트.
그 퀘스트가 다른 방향으로 다시 눈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아키서스의 선물>이 뭔 스킬인지는 느낌이 확 오는데….’
딱 봐도 <아키서스의 찬란한 목걸이> 같은 저주 아이템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스킬!
판온에서 아직 이런 걸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뿌리는 대장장이들은 없었다.
태현은 직감했다.
판온 1 때처럼, 한 번 더 대장장이 업계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올 때라는 것을!
* * *
한편, 다른 곳에서도 혁신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시 말해봐라. 다니엘!”
웅성웅성-
수도의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경악한 얼굴로 웅성거렸다.
젊고 재능 넘치는 기계공학 대장장이 다니엘이 가브리엘 앞에서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스승님! 저는 폭탄만이 기계공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걸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어, 어떻게 그런 소리를…!”
“쟤가 미쳤나 봐!”
“커, 커헉. 심장이….”
대장장이 몇 명은 그 충격에 가슴을 부여잡을 정도!
그러나 가브리엘은 침착하게 말했다.
“폭탄은 기계공학의 꽃, 기계공학의 정수다.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지금 기계공학 아이템 중 유일하게 시장에서 잘 팔리는 아이템이 뭐지?”
“…폭탄입니다.”
“대회에서 쓰이는 아이템은?”
“폭탄이요….”
“남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뭐지?”
“그것도 폭탄입니다.”
“그래! 기계공학의 정수는 폭탄이다! 물론 다른 아이템도 있지. 그렇지만 그런 쓸데없는 잡스러운 아이템에 쏟을 시간은 없어!”
“하, 하지만 김태현 선수는 다른 아이템도 잘 만들지 않습니까.”
그 말에 다른 대장장이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그 사람은 종이 다르잖아!”
“맞아.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너 인마 펠프스가 수영 잘한다고 너도 연습하면 똑같이 수영 잘할 것 같냐?? 정신 차려!”
“그만, 그만. 다니엘. 이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 김태현 님은 다른 아이템도 만들지. 하지만 우리는 김태현 님 같은 초인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모든 걸 다 익힐 수는 없어!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가브리엘은 바닥을 쾅 치며 외쳤다.
“대장장이 랭커들을 봐라. 다 전문 분야가 있다. 무기에서도 검, 창, 활… 장비에서는 갑옷, 부츠, 건틀렛… 왜 그놈들은 다 하지 않고 하나만 파는 걸까? 그래야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넌 최고가 되고 싶은 것 아니었느냐!”
“스승님. 저는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하지만 그게 폭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저만의 길로 기계공학의 최고가 되겠습니다!”
“!”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다니엘의 모습에, 가브리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파문이다!”
재능 넘치는 다니엘을 제자처럼 챙겨준 가브리엘이었다. 냉정한 그 모습에 다른 대장장이들도 술렁거렸다.
“!”
“나가라, 다니엘!”
“…이제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흥. 이걸 갖고 가라. 네가 만든 조잡한 아이템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휙-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다니엘은 가브리엘이 던진 아이템을 얼떨결에 받았다.
다니엘이 만든, <폭탄 함정이 설치된 작은 상자>였다.
그리고 상자 안에는 열쇠가 들어 있었다.
악마의 대장간 열쇠:
이 열쇠를 갖고 있는 대장장이들은 악마의 대장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가브리엘은 고개를 돌리고 다니엘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격한 감동으로 울먹였다.
“스승님…!”
“흥. 뭘 망설이는 거냐! 나가라!”
“맞아! 나가라! 이 아이템도 가지고 가버려! 우린 이런 거 필요 없어!”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다니엘이 만들었던 아이템들을 던지는 대장장이들!
<제9 폭탄 창고 열쇠>, <지하에 몰래 만들어 놓은 화약 창고 열쇠> 같은 아이템들을 보고 다니엘은 울먹였다.
떠나는 그에게도 계속해서 대장간을 쓸 권한과 재료를 챙겨주는 대장장이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꼭…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크흑!”
* * *
“태현 님. 길드원한테 보고가 올라왔는데, 대장장이 애들이 또 몰래 지하 폭탄 창고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아니 이런 미친놈들이… 폭탄 좀 그만 만들라 그래!”
태현은 이다비의 말을 듣고 황당해했다.
다람쥐가 땅을 파고 도토리를 묻어놓는 것처럼, 틈만 나면 몰래 폭탄을 보관할 장소를 만드는 대장장이들!
물론 태현도 대량의 폭탄이 필요하면 이들의 폭탄을 빌리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좀 다른 걸 만들면 안 되나?”
“다른 걸 만들라고 해봤자 스킬이 부족해서….”
“스킬이 부족하면 올려야지.”
태현은 혀를 찼다. 폭탄만 팠다고 해서 계속 폭탄만 파라는 법은 없었다.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다다다다-
“?”
수도를 떠나 오스턴 왕국으로 향하는 태현 일행 앞에, 웬 추레한 사람 한 명이 달려왔다.
아니, 추레한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다. 프이드였다.
“헉, 헉헉….”
“앗. 프이드잖아? 무슨 일이지?”
프이드의 은신처를 불태워버린 태현이었지만,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거짓말의 1법칙.
들키기 전까지는 절대 거짓말한 걸 인정하지 마라!
“도와다오!”
“뭐? 뭘? 무슨 일이라도 있어?”
“모스락 그 개자식이… 내 은신처를 전부 다 태워버렸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태현은 경악했다. 아니, 경악한 척을 했다.
“모스락이 아무리 악마라도 그렇지 숲을 전부 불태워버릴 생각을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
“그렇지! 모스락 이 개자식. 이 원한은 절대 잊지 않겠다!”
프이드는 이를 갈았다. 태현은 은근슬쩍 물었다.
“그래도 보물은 다 챙겨 나온 거지?”
“아니… 그럴 여유 따위는 없었다.”
태현의 표정이 대번에 차가워졌다. 케인은 그걸 보고 움찔했다.
‘저건 내가 사고 쳤을 때 보여주던 표정인데?’
“뭐? 보물을 다 두고 나왔다고? 이런 멍청한 놈! 죽더라도 보물은 다 챙기고 나왔어야지!”
자기가 불을 질러놓고 화를 내는 태현! 그 뻔뻔함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아… 아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프이드는 태현이 화를 내자 당황해서 변명했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숨겨놓긴 했는데 그걸 찾으러 갔다가 모스락이 보낸 암살자라도 만났다면 위험하단 말이다.”
“에잉. 겁만 많아가지고.”
“…….”
프이드는 울컥했지만 참았다. 지금은 그가 아쉬운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근데 여기는 왜 왔냐?”
“왜 왔냐니. 우리는 모스락을 상대하기 위해 손을 잡은 동지잖나. 은신처가 날아가서 너한테 도움을 받으러 왔다.”
“하하. 동지‘였’었지. 보물 잃기 전에.”
“이… 이런 사악한 놈 같으니. 내가 너한테 보물을 주지 않았냐!”
“그건 내가 너한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토끼 요리를 먹여줘서 그런 거고.”
[카르바노그가 우쭐합니다.]
“보물 없는 넌 든 거 없는 찐빵이자 교단 없는 사디크 같은 처지지. 가진 거 없으면 저리 가라. 쉭쉭.”
[카르바노그가 굳이 사디크 비유를 해야 하냐고 의문을 품습니다.]
“너 정말 파이토스 교단 출신 맞냐?”
“아. 미안. 난 아키서스의 화신이야. 파이토스의 선택을 받긴 했는데 거기 출신은 아니야.”
“!!!!!”
프이드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방금 뭐라고?
“뭐… 뭐라고? 하. 하하하. 농담이지? 농담이지?”
“농담 아닌데?”
“…생각해 보니 저런 놈이 파이토스 교단 밑에서 나왔을 리가 없지!”
1초 만에 납득하는 프이드!
태현의 저 사악함도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 바로 납득이 갔다.
털썩-
프이드는 무릎을 꿇었다.
“아… 아키서스의 화신과 손을 잡다니. 내가 무슨 짓을!? 내가 무슨 짓을?!?!”
“…모스락보다 더 무서워하는 거 같은데요?”
이다비가 프이드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심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