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09화
태현은 공짜 인력을 더 데리고 온다는데 말릴 생각이 없었다.
“흠흠. 뭐 데리고 와도 괜찮아. 악마 하나 데리고 있나 둘 데리고 있나 큰 차이가 있겠어? 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지.”
“…?”
요하스는 순간 의심쩍은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요하스? 설마 날 의심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결국 태현은 요하스가 보는 앞에서 악마를 유입했다.
[아탈리 왕국에 악마들이 대거 유입됩니다.]
[왕국 주민 NPC 종족에 악마가 추가됩니다.]
[악마 종족을 가진 주민 NPC들은 평균적으로 더 높은 능력치와 스킬들을 가지고 있지만, 치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왕국의 군사도가 올라갑니다.]
[왕국의 신성도가 내려갑니다.]
[왕국의 민심이 내려갑니다.]
[왕국의 치안이 내려갑니다.]
[……]
[현재 왕국의 신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현재 왕국의 민심이 매우 높습…]
[현재 왕국의 치안이 매우 높습…]
이제까지 하도 쌓아놓은 게 많아서 악마 대량 유입으로 인한 페널티 따위는 씹어버리는 아탈리 왕국!
길드 동맹이 이끄는 오스턴 왕국이 거대한 덩치, 거대한 인원, 거대한 군사력을 가진 대신 높은 세금과 강압적인 통치 방식 때문에 민심, 신성도, 치안이 낮았다면.
태현이 이끄는 아탈리 왕국은 정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태현은 그걸 보며 견적을 냈다.
‘흠. 이 정도면 악마 군단 두셋 정도는 더 받아도 괜찮겠는걸?’
지금 항복한 악마들을 챙긴 거로도 모자라서 더 챙기려는 태현!
태현에게 마계는 공짜 군대를 제공해 주는 곳이었고 악마는 무급으로 일해줄 NPC들이었다.
뭐하러 선정을 베풀어서 주민 숫자를 늘려야 하나! 그냥 악마를 고용하면 되는데!
‘아주 좋아!’
“저, 폐하.”
“?”
요하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뭔가 부탁할 게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왜 그러지 요하스?”
“제가 이번에 공을 세웠다면,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인지 들어보고.”
“이 중앙 광장을 수리하게 될 텐데….”
중앙 광장은 처참했다.
원래 판온에서 도시의 중앙 광장은 온갖 제작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좌판을 깔고, 심심한 플레이어들은 와서 떠들며, 길드를 광고하고 싶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아 진짜 우리 길드 답이 없네~’, ‘뭐? 답이 없어? 왜지?’, ‘그건 바로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 하나 없는 완벽한 길드, 파워 워리어 길드로 오세요!’ 같은 대화를 떠들어대던 곳!
그만큼 온갖 시설들과 잡다한 것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이번 레이드로 인해 다 날아간 것이다.
‘이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태현은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피해가 적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리하르콘 화살까지 아끼고 악마 공작을 잡다니.
예상 밖의 쾌거였다.
‘녀석….’
태현은 흐뭇한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케인은 아직도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뻗어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구에엑. 구에엑. 멀, 멀미가….”
“너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쯤 악마로 종족이 바뀐 덕분에 색이 이상하게 변했던 케인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종족은 아예 키메라로 바뀌었지만….
뭐 일단 겉보기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헉. 진짜?!”
“어.”
“예전보다 잘생겨졌냐?”
“아니… 그건 아니고. 은근슬쩍 양심 없는 소리 하지 마.”
“…….”
괜히 농담 한 번 했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은 케인은 시무룩해졌다.
태현은 그래도 이번에는 잘했다 싶어서 케인을 격려해 줬다.
“그래도 이번엔 아주 좋았어. 네가 다 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야.”
“진, 진짜?”
“그렇다니까. 어때. 약물도 나쁜 게 아니지? 더 먹고 싶지?”
“아니. 그건 좀… 정말 맛도 역겨웠던 데다가 부작용도 심하잖아.”
게다가 운이 좋아서 종족: 키메라로 변한 거지, 만약 재수가 없었다면 무슨 부작용이 났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종족: 여덟다리괴수 같은 게 걸리기라도 했으면…!
그러나 태현은 포기하지 않고 케인을 설득했다.
“세상에 좋은 것만 있는 게 어디 있겠니.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중요한 건 그 장점이 어떠냐야! 위력을 생각해 보라고!”
“위력은… 좋았지.”
“좋았어. 앞으로 정수를 더 만들어줄게.”
“…….”
케인은 뭔가 일이 꼬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폐하?”
“아. 미안. 케인이 워낙 기특해서.”
말하다가 무시당한 요하스는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했다.
“이번에 중앙 광장 재건을 하게 되면, 파이토스 님의 작은 동상이라도 하나 놓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
뜻밖의 제안에 태현은 의아해했다.
물론 중앙 광장에 파이토스의 작은 동상 하나 놓는 건 별로 문제가 안 됐다.
온갖 잡상인들이 다 물건들을 늘어놓는데 거기에 동상 하나 추가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문제는 그 의도!
“파이토스 님의 교단이 이 도시에서 사라진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작은 동상이라도 하나 놔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뭐 마음대로 해. 동상은 네가 만들 거지?”
“예. 감사합니다!”
요하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카르바노그가 걱정합니다.]
‘왜?’
[파이토스는 작은 동상을 만들어 줘봤자 만족할 줄 모르는 속 좁은 놈이라고 합니다. 요하스가 괜히 해주고 욕먹을 것 같다고 걱정합니다.]
“에이, 설마. 공짜로 지 동상 만들어주는데 감사합니다는 못할망정….”
말하던 태현은 멈칫했다.
“근데 요하스가 욕먹으면 나한텐 좋은 거 아니냐?”
[……]
* * *
중앙 광장 수리를 위해, 도시 관리 권한을 맡은 12명의 플레이어, 혹은 대리인들이(에반젤린과 최상윤은 아직도 살라비안 교단을 쫓고 있었다) 모였다.
그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걸 중앙 광장에 크게 놓기 위해 치열하게 다퉜다.
“지금 성기사들이 이 도시를 위해 얼마나 일하는지 아십니까? 중앙 광장에 큼지막하게 성기사 동상 하나 놓읍시다! 성기사 동상 버프는 성기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좋아요!”
“우우. 길드 이름이나 바꾸고 와라.”
“너 죽을래?!”
“저는 중앙 광장 가운데에 <검과 방패> 조각상을 놓고 싶습니다. 이게 어떤 효과가 있냐면….”
그러나 이런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태현은 이미 과반수를 확보한 상태였으니까!
“잠깐만요. 김태현 씨.”
“?”
“혹시 이거 다수결로 하실 겁니까?”
한 명이 묻자 다른 사람들도 걱정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김태현이 숫자로 다 해먹어버리면 우리는 이 감투를 기껏 얻은 이유가 없잖아!
태현은 그 낌새를 예민하게 눈치챘다.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당근을 줘야 하는 법!
이번 악마 공작 레이드 때도 그렇고, 이 12명의 사람은 자기 골드와 자기 길드원들을 동원해서 수도를 성장시켜주는 호구… 아니, 성실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니만큼 잘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
‘사실 중앙 광장 수리 총책임 맡는 건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수리의 총책임을 맡는다는 건, 이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도 어느 정도 맡아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태현은 그냥 중앙 광장이 멀쩡하게 지어져서 치안, 민심 정도만 회복되면 그만!
이런 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었다.
“하하. 다수결로 하면 저한테 너무 유리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제비뽑기합시다. 뽑은 사람이 총책임자로 해서 원하시는 대로 하는 거예요.”
“오오!”
“정말요?!”
태현이 양보하자 다들 기뻐했다.
‘내가 뽑으면…!’
‘내가 뽑으면 <성기사이즈킹>이라고 아주 크게 동상 밑에 새길 거야!’
10분 후.
태현은 가장 처음으로 제비를 뽑았고 바로 당첨되었다.
“…….”
“…….”
* * *
“에잉. 귀찮은데.”
빨리 에슬라를 만나러 가고 싶은데 이런 일을 떠맡게 되다니.
태현은 귀찮았지만 일단 맡은 일은 처리하고 가기로 했다.
언제나 귀찮은 일이 생기면….
“펠마스! 갈락파드!”
밑의 사람을 시키면 되는 것!
“중앙 광장 수리 좀 맡아서 잘 해봐.”
“예!”
“네!”
둘은 고개를 냉큼 숙였다. 그리고 태현이 사라지자 바로 멱살을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중앙 광장 가운데에는 가장 크게 아키서스의 동상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시민이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동상이 밥 먹여 주냐! 골드 벌게 중앙 광장 설치를 놓고 장사를 해야지!
격렬하게 대립하는 둘!
1시간 넘게 싸우고 나서야 둘은 타협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서로 신경 끄고 각자 할 일 하자!
갈락파드는 중앙 광장 가운데의 동상을, 펠마스는 나머지 주변을 맡기로 한 것!
갈락파드는 즉시 나가 사람들을 모았다.
-신성한 동상 건설에 참여할 신도들을 모은다.
-…….
-선착순으로 모라 시 공적치 포인트, 아키서스 교단 공적치 포인트를….
-저요! 저요!
펠마스도 지지 않았다. 펠마스는 도시 내 고렙 플레이어들과 길드를 찾아갔다.
-자네들, 혹시… 길드 이름을 자랑하거나, 자기 이름을 광고하고 싶지 않나?
-?
-골드를 기부하면 중앙 광장에 자네들 이름을 새겨주지. 후후후….
-?!
중앙 광장 길, 벽, 동상 밑 등등 나오는 공간을 팔려는 펠마스!
처음에는 펠마스를 미친놈 보듯이 보던 플레이어들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남는 장사였다.
골드 몇 푼 바치고 자기 이름이나 길드 이름을 계속 남길 수 있지 않은가.
-저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이 벽은 <성기사이즈킹> 벽이 될 거야. 밑의 이름을 새겨주지.
한 명이 시작하자 고민하던 다른 사람들도 손을 하나둘씩 들기 시작했다.
-저, 저도 하겠습니다! 지금 중앙 광장 중에 어디가 남죠?
-저는 동상 밑에 명판을 박고 싶은데….
-그러면 추가 비용이 좀 더 들지.
-좀 더 내더라도 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했잖아 이 자식아! 왜 끼어들어!
중앙 광장의 명당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까지!
펠마스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골드가 굴러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께서 내가 이렇게 재정을 모으는 걸 보셔야 하는데….’
갈락파드가 미쳐서 교단의 이름으로 과소비를 하는 동안, 펠마스는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으고 있었다.
-여기 벽은 못 새겨요?
-아. 이 벽은 광고용일세. 주기적으로 골드 받고 달아줄 거야.
-…….
이 와중에 여러 가지로 수입을 늘리는 펠마스였다.
* * *
“크고 아름답군….”
갈락파드는 벅차오르는 눈빛으로 아키서스의 동상을 쳐다보았다. 태현과 똑같이 생겼지만 일단은 아키서스였다.
마음 같아서는 축복받은 순금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펠마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경련을 일으켰다.
결국 축복받은 청동을 주재료로 사용해서 만든 동상!
그러나 고렙 조각사 플레이어들과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 모두 뛰어들어 만든 덕분에 위엄은 대단했다.
오만하게 세상을 굽어보는 아키서스의 동상!
“잘 되어가고 있냐? 갈락파드?”
“예! 폐하!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완성입니다.”
“그래. 내 얼굴이 달린 동상을 세우는 게 기분 좀 묘하긴 한데….”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 얼굴 새긴 동상을 만드는 걸 엄청 기뻐했겠지만, 태현은 그런 취향이 없었다.
‘그나저나 자세 한 번 엄청 건방지네.’
태현, 아니 아키서스가 세상을 굽어보는 눈빛이 어찌나 오만한지, 다른 교단 사람들이 보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았다.
다행인 점은 다른 교단 놈들을 미리 다 쫓아냈다는 점!
“폐하. 파이토스 님의 동상을 다 만들었습니다!”
“아, 요하스. 그래. 놓고 싶은 곳에 놓으면 되겠네.”
“폐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어디에 놓….”
말하던 요하스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중앙 광장에 들고 온 파이토스의 동상을 놓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원인은 아키서스의 동상 때문!
저렇게 커다랗고 위엄 찬란한 동상이 중앙에 딱 박혀 있는데, 그 근처에 이런 작은 동상을 놔봤자….
게다가 아키서스의 자세가 자세라, 근처에 파이토스를 놓으면 뭔가 좀 오해를 살 법한 구도가 완성될 것 같았다.
<파이토스를 깔보는 아키서스 상> 같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 상황!
요하스는 당황했다.
‘어, 어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