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05화
저번의 원한.
태현이 에랑스 왕국 마탑 흑마법사들의 힘을 빌려 언데드 군세를 이끌고 길드 동맹의 영지를 휩쓸 때의 이야기!
그때 태현과 케인은 성 하나를 점령하고 길드 동맹 측에게 ‘니가 와’ 전법을 사용했었다.
아쉬운 놈들한테는 잘 먹히는, 네가 와라 전법!
길드 동맹은 공성을 시도했고, 그 와중에 마이크는 1:1로 케인과 붙었었다.
케인을 만만하게 보고 덤빈 마이크였지만, 도중에 실수로 인해 케인한테 지기 직전까지 몰렸고 추하게 도망쳐야 했던 것이다.
그런 망신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이번 습격에 참가한 것도 명예 회복을 위해서!
“케인, 모르는 척하지 마라! 날 모를 리가 없다!”
“아, 아니. 진짜 기억이….”
기억할 가치가 없는 놈이면 기억 안 하는 태현과 달리, 케인은 정말로 기억 못 하는 이유가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태현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목숨 하나 건지느라 정신없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마이크 얼굴까지 기억할 리 없었다.
“공성전!!”
“공성전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라서….”
“일대일!”
“일대일도 한두 번 한 게 아닌데….”
“…….”
이쯤 되자 마이크가 먼저 질렸다.
이 자식 뭐 이렇게 경험이 풍부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전부 다 경험한 것 같은 케인!
“속박의 쇠사슬! 이래도 기억 안 나냐!”
“아, 그거! 가짜로 스킬명 외쳤는데 속은 놈이구나!”
“이 개XX야! 죽어라!”
“기억해 내줬는데 왜 화내는 거냐 이 자식아!”
케인도 벌컥 받아치며 무기를 휘둘렀다. 생각해 보니 그가 마이크한테 미안할 것도 꿀릴 것도 없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
화르륵-
“?!”
[힘 스탯이 차이가 납니다. 밀립니다!]
‘내가 밀린다고!?’
마이크는 경악했다. 이런 메시지창이 뜬다는 건 차이가 심해야 가능했다.
대체 어떻게!?
-악마의 피 폭발!
[악마의 피 폭발을 사용했습니다. 스탯이…]
케인이 스킬을 사용하자 순간적으로 스탯이 뻥튀기됐다.
악마처럼 바뀌는 외모는 덤!
“너, 너!”
“후후. 멋있냐?”
“엄, 엄청 징그럽잖아!”
“…이 자식이 어디서 질투를!”
“아니 정말 징그럽, 컥!”
[강렬한 충격에 의해 튕겨 나갑니다!]
쿵!
마이크는 아차 싶었다.
저렇게 무식하게 밀어붙이면 거리를 두고 치고 빠지듯이 싸워야 했는데, 무심코 정면승부를 해버린 것이다.
이상하게 케인하고 상대할 때는 방심하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크윽! 안 돼!’
여기서는 일단 후퇴!
마이크는 재빨리 갖고 있던 스킬들을 퍼부어 케인을 물러나게 만든 다음 벽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앗! 마이크 님?!”
“마이크 님!!”
같이 있던 길드원들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마이크는 못 들은 척했다.
‘미안하다!’
“이 자식이 어딜! 속박의 쇠사슬!”
‘피해야… 아니, 잠깐.’
마이크는 순간 깨달았다. <노예의 쇠사슬>이 아니라 속박의 쇠사슬!
저번처럼 케인이 그한테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케인이 노리는 건 마이크가 도망치는 걸 멈추는 잠깐의 틈!
‘이 개자식이 날 대체 뭐로 보고…!’
마이크는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그 순간….
휘리릭!
“!?”
몸에 쇠사슬이 감기고 끌려가자 마이크는 기겁했다. 뭐야?!
“어… 어떻게?!”
“멍청한 놈! 내가 김태현하고 구른 짬밥이 얼만데!”
마이크는 경악했다. 케인 옆에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 한 명이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즉, 속박의 쇠사슬을 외친 건 파워 워리어 길드원이고 케인은 그사이 진짜 <노예의 쇠사슬>을 쓴 것!
“이, 이….”
“저번에는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도망 못 친다!”
* * *
“저기 길드 동맹이다! 공격해라!”
함정에 빠져 후퇴하는 길드 동맹한테는 가차 없이 공격이 날아왔다.
상황을 파악한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정면 승부에서는 밀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이 선택한 건 원거리 공격이었다.
건물이나 벽 위에 올라가서 화살을 쏘고 돌멩이를 던지는 플레이어들!
‘크윽…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
길드 동맹은 싸우고 싶어도 뒤에서 쫓아오는 악마 병사들 때문에 두들겨 맞으며 참아야 했다.
“너희 다 얼굴 기억하고 있다!”
“끝나고 나서 길드 동맹에게 보복당하고 싶냐!”
도망치면서 엄포를 놓는 길드원도 몇몇 있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코웃음 치는 플레이어들!
여긴 아탈리 왕국이었고, 이렇게 숫자가 많은데 어떻게 일일이 보복을 하겠는가?
“야! 저기 공적치 포인트가 걸어 다닌다! 잡아라!”
“저거 잡으면 나도 감투 하나 얻는다!”
콰아앙!
“?!”
“뭐야 미친?!”
“폭, 폭탄을 갖고 오다니!”
심지어 폭탄을 사서 갖고 온 플레이어들까지 나올 정도!
다른 플레이어들도 폭탄을 갖고 온 플레이어를 비난했다.
“넌 상도덕도 없냐?!”
“맞아! 매너합시다!”
“폭탄을 던지다니 반칙이다!”
오작동이 겁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적치 포인트를 싹 뺏길 것 같은 두려움이 컸다.
폭탄은 다른 무기들과 달리 한 번 제대로 터지면 정말 싹 쓸어버리는 무기였으니까.
물론 그런 고민은 폭탄을 맞고 있는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배부른 고민이었다.
[가시덤불폭탄이 폭발합니다!]
[강력한 폭발에 휘말려 장비의 내구도가 크게 하락합니다!]
[가시가 몸에 박힙니다.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박힌 가시가 계속해서 데미지를…]
몇몇 길드원들은 파티에서 벗어나 도주를 시도했다.
같이 뭉쳐 다니면 ‘나 길드 동맹 소속이야!’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시도를 해서 성공한 건 정말 극소수였다.
벗어나서 도망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앗! 저기 저놈 변장한다! 여러분! 여기에요 여기!”
“빨간 망토 두른 놈이 길드 동맹 놈이다!”
“이이익!”
그 소리를 들은 길드원이 빨간 망토를 벗으면?
“뿔 두 개 달린 헬멧 쓴 놈이 길드 동맹 놈이다!”
“이익!”
뭘 해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외치는 플레이어들!
오스턴 왕국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길드 동맹을 두려워하고 상대하길 꺼렸다.
한 번 찍히면 여러모로 피곤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 플레이어들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
덕분에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예상치 못한 적들까지 추가로 상대해야 했다.
“빠져나왔다! 빠져나왔어!”
간신히 골목길을 지나 빠져나온 길드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3조도 빠져나왔답니다! 합류해서 같이 성문을 돌파합시다!”
-남은 파티들은 전부 다 빠져나와서 합류해라! 뭉쳐야 한다!
일은 이미 틀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다 싸우는 건 자살행위.
나눠서 격파당하기 싫으면 뭉쳐야 했다. 그래야 성문을 뚫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의식은요?!
-지금 의식 신경 쓸 때냐!
의식이고 뭐고 살아나가야 한다!
곳곳에서 두들겨 맞았는데도 아직 남은 길드원들의 숫자는 꽤 됐다. 그런 길드원들이 중앙 광장으로 전부 모이자 거대한 파티가 하나 만들어졌다.
“날 따라와라!”
전투 주술사 카와하라가 지휘를 맡았다.
‘마이크 이 자식은 왜 안 와?!’
설마 오다가 당했을 리는 없을 테고….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싸울 뿐.
카와하라는 해골 지팡이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스킬을 사용했다.
-주술사의 함성! 전쟁을 부르는 북소리! 조상의 진혼가!
전투 주술사는 파티와 본인에게 공격적인 버프를 걸어주며 싸우는 데에 특화된 직업.
카와하라가 여기 뽑힌 이유가 있었다.
“랭커들과 고렙 놈들, 조장은 다 이리로 와라! 선봉으로 뚫는다. 나머지는 떨어지지 말고 따라와! 흩어지면 죽는다!”
“카, 카와하라 님.”
“왜!”
“지금… 여기 뭔가 이상한데요.”
“?”
그러고 보니 중앙 광장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마치 폭풍 전야 같은 고요함!
원래 있어야 할 다른 플레이어들도 보이지 않았다.
“잠….”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 *
사실 태현의 기계공학 스킬은 길드 동맹 쪽에서도 미리 고민한 스킬이었다.
-김태현의 기계공학 스킬은 피해가 너무 커. 게다가 거기는 김태현의 홈그라운드다. 얼마든지 아이템을 보충할 수 있잖아.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의식을 진행하려면 김태현이 거기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거기는 김태현 영지 아닙니까. 자기네 영지에서 폭탄을 함부로 쓸 수는 없을 겁니다.
길드 동맹이 믿고 들어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깔끔하게 중앙 광장을 포기했다.
‘어차피 악마하고 싸우게 되면 부서질 텐데 뭐 내가 먼저 부순다고 달라지겠어?’
부수고 다시 지으면 되지!
콰콰콰콰콰콰콰콰쾅!
태현과 가브리엘,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합심해서 만든 중앙 광장 대폭발!
[악명이 크게…]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
[건물이 파괴되었습니다.]
[건물이 파괴되었…]
[……]
[모스락 소환 의식에 필요한 피의 제물들이 모두 바쳐졌습니다.]
[모스락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데르벤이 준 악마의 징표를 불태우십시오.]
“이… 이런 미친….”
“진짜 폭탄을 쓰다니, 제정신이냐! 여기 네 땅이잖아!!”
남은 길드원들이 절규하는 건 귓등으로 무시하고, 태현은 악마의 징표를 꺼내 태웠다.
“김태현! 우리는 절대 그냥 죽지 않는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
꿀꺽꿀꺽-
포션과 스크롤을 꺼내 바로 회복에 들어가는 길드원들!
카와하라를 필두로 한 남은 길드원들은 전부 다 랭커나 고렙이었다. 그렇지 않은 놈들은 방금 폭발에서 전부 로그아웃 당한 것이다.
그런 길드원들이 우르르 뭉쳐 싸울 각오를 하니, 다른 플레이어들은 긴장했다.
나뉘어서 도망치던 놈들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던 싸움과는 차원이 다른 싸움이 될 것!
“왜 안 들어오냐, 김태현! 겁먹은 거냐!”
“…….”
“야!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냐?!”
태현이 아무 말 없자 오히려 더 무서웠다. 길드원들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태현을 불러댔다.
“만약 우리를 내버려 둔다면 우리도 그냥 나가줄 수 있다! 우리를 건드리면 너희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우리에게는 비장의 수단이 있다!”
그런 건 딱히 없었지만 분위기에 취해 질러보는 길드원들!
“비장의 수단?”
“그래! 비장의 수단!”
“저런 거 말이냐?”
태현은 뒤를 가리켰다.
허공에서 거대한 마계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마계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피의 제물을 받은 모스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같잖은 수작을… 헉. 저게 뭐야.”
“저, 저거 뭐냐?”
“몰라 뭐야. 무서워….”
길드원들도 깜짝 놀란 마계의 문!
그러나 자리에 모인 다른 플레이어들은 야유를 날렸다.
“우우! 지들이 해놓고 모르는 척이라니!”
“뻔뻔하다! 최소한 양심은 있어라!”
“아니 이 새끼들아 진짜 모르는 일인데!”
마계의 문이라니 왜 갑자기 이런 게 튀어나오지?
쿠르릉, 쿠릉, 쿠릉!!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지옥의 색을 닮은 벼락이 연속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악마 공작 모스락이 소환됩니다!]
[모든 존재들은 두려워하십시오!]
파아아앗-
어딘가 염소를 닮은, 교활하게 생긴 악마가 검게 타오르는 채찍을 들고 나타났다.
에다오르나 갈그랄처럼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네가 김태현이냐?
“예. 공작님.”
-기특하다. 이리 가까이 와라.
태현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 쏠까?’
오리하르콘 화살은 한 발.
모스락 정도 되는 공작이라면 맞는다고 바로 죽는다고 볼 수는 없었다.
무조건 맞추고 시작해야 했다.
‘놈의 방어는? 마법은 하나도 없을까? 방심하고 있나?’
태현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한 손이 은근슬쩍 석궁을 향해 내려갔다.
기회가 되는 순간 쏜다!
모스락이 칭찬하듯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태현의 직감이 비명을 질렀다.
쉬이이이익!
모스락의 손에서 물컹거리는 검은 마력이 안개처럼 쏟아져나와 태현을 후려쳤다.
-반격의 원!
그러나 태현도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튕겨낸 저주가 모스락에게 날아갔다.
[모스락의 원혼 저주를 튕겨냈습니다!]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묘기입니다.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모스락이 경악합니다!]
“공작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주인님! 어째서!?
태현과 데르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놈은 안 그래도 아키서스의 화신. 혹시 했는데 역시 너무 위험하다. 프이드도 잡았으니 이제 놈의 쓸모는 다했다! 처리해야겠다!
모스락은 태현을 정확하게 본 셈이었다.
‘살려두고 이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놈!’
그러나 조심성 많은 모스락도 한 가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태현은 애초에 그를 사냥하려고 소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