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03화
그러나 그런 사정을 모르는 장샨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쪼잔한 쑤닝(사실 이건 길드 동맹이 워낙 거대한 데다가 최근에 이런저런 일이 많이 일어나서였다)이나 쪼잔한 길드 동맹 간부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인(大人)!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급격하게 차오르는 감동!
“제가 그런 걸 써서 올렸는데….”
“?”
듣고 있던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써서 올린 거지?
그러나 태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보나 마나 욕이나 썼겠지!
“내가 여기 온 건 부탁할 게 있어서야.”
“뭡니까? 뭐든 하겠습니다!”
“길드 동맹에 내가 하려는 계획을 좀 흘려줬으면 좋겠는데. 이걸 하면 골드랑….”
“하겠습니다!”
“응? 아직 조건은 말도 안 했는데?”
조건도 말 안 했는데 냉큼 넘어오는 스파이도 있나?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이 자리만 안 뺏어가시면 됩니다! 충성충성충성!”
“뭐 네가 좋다면야 상관은 없지만… 진짜 괜찮나?”
“네!”
장샨은 눈치껏 굴었다.
조직 생활하면서 늘어난 건 눈치뿐!
스파이짓 한 게 들켰는데 여기서 염치없게 ‘헤헤 그럼 보상도 주세요’란 소리를 했다가는 정말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태현이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해도, 보복은 철저하고 화끈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게 달라지진 않았으니까.
‘특이한 녀석이군.’
‘이 자리 안 뺏기려면 뭐라도 해야지!’
그렇게 장샨은 태현의 충실한 이중첩자가 되었다.
* * *
“이야, 이 녀석 일 잘하네요.”
“누구?”
“장샨이라는 녀석인데, 아주 적성에 맞나 봅니다. 기껏 보낸 다른 놈들은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못 쓰고 빌빌거리는데, 이 녀석은 보고서가 좋아요.”
“아. 걔? 보고서 잘 읽었지.”
장샨의 보고서는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고 구성도 탄탄했다.
거기에 막장드라마 같은 재미까지!
-이야, 김태현 이런 놈이었어?
-세상에 이런 음탕한 놈이…!
길드 간부들이 몰려와서 다 같이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보고서!
덕분에 길드 동맹 내에는 새로운 방침이 세워졌다.
-김태현의 약점은 화염 관련 스킬이다! 김태현 척살대는 불화살 관련 스킬을 익힌다!
-김태현은 여자 엄청 밝힌단다! 미인계 준비해라!
-케인 놈의 취향을 알았다! 길드원 중에 제일 잘생긴 놈들 데려와라!
“게다가 얘는 혼자서 수도 내 자리 하나 받았나 봐요. 승진시켜서 간부 삼고 싶을 정도네요.”
“무슨 소리. 그렇게 스파이짓을 잘하는데 계속 스파이를 시켜야지.”
장샨이 들었다면 울컥했을 소리를 하는 간부들!
자기가 하는 거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장샨 이야기는 왜 해? 뭐 새로 보고서라도 올라왔어?”
“네. 아주 중요하고 긴급한 보고서라고, 김태현 일행이 회의하는 걸 몰래 엿들었다는데….”
간부들은 보고서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김… 김태현이 화신 소환 의식 준비를 하고 있다고?!”
화신 소환 의식!
얼핏 들으면 무슨 의식인지 감이 안 올 수도 있었지만, 길드 동맹 간부들에게는 온몸이 오싹한 소리였다.
‘사디크의 화신!’
판온에서 그들만큼 화신 관련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말… 말도 안 돼. 화신이 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플레이어가 화신을 소환해… 차라리 드래곤을 길들여서 타고 다닌다고 하는 걸 믿겠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김태현이잖아.”
“…….”
김태현이라면 진짜 할지도 모른다!
“사디크의 화신도 수상했어! 그놈이 한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내가 사제라서 아는 건데 화신 소환 의식이 절대 만만한 게 아니야! 진짜 제물부터 시작해서 엄청 많이 들어간다고! 플레이어가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김태현은 길드도 없잖아. 사디크의 화신이 놈이 한 거라면 분명 우리 귀에 들어왔을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디크의 화신을 기껏 잡았더니 새 화신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다!”
꿀꺽-
불완전하고 이성을 잃은 사디크의 화신도 재앙 그 자체였다.
이 사디크의 화신을 잡느라 길드 동맹은 오스턴 왕국의 1/3을 불태워야 했고 지금도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화신만 아니었다면?
깔끔하게 통일하고 쑤닝이 국왕을 선포하고 피해 없는 강력한 힘으로 대륙통일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데 태현이 새 화신을 소환하려고 준비 중이라니. 만약 제대로 소환되면, 그게 태현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도 안 갔다.
무조건 막아야 했다!
“간부진 전원 소집해!”
“쑤닝 님 불러!”
순식간에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 * *
“그러니까… 화신을 소환하려고 하고 있다?”
쑤닝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김태현하고 휴전을 한 상태 아닙니까? 먼저 공격하는 건….”
“지금 여론 신경 쓸 땝니까! 저러다가 김태현이 정말 소환에 성공해 버리면 그때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길드 동맹도 의외로 여론을 신경 쓰긴 했다.
판온은 전 세계인들이 하는 게임.
길드 동맹이 단일 길드로서는 압도적인 숫자였지만 다른 국가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많지는 않았다.
나중 일을 생각하면 여론을 아예 무시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먼저 약속해놓고 치사하게 뒤통수를 쳤다는 욕을 먹더라도 막아야 한다!
쑤닝은 결론을 내렸다.
“김태현을 친다! 각 간부들은 길드원들을 선별해 몰래 수도로 잠입시킨다. 장샨의 보고서에 따르면 김태현 놈의 의식을 막기 위해서는 한둘로는 절대 모자란다고 하니, 가능한 인원은 모두 동원해라. 용병 NPC, 병사 NPC들도 위장해서 데리고 가는 걸 허락한다!”
“예!”
“즉위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즉위식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설마 김태현 때문에 즉위식 일정을 바꾸라는 거냐?”
“아, 아닙니다.”
쑤닝이 노려보자 말을 꺼냈던 간부는 입을 다물었다.
명령은 내려졌다.
휴전을 깨고 김태현을 공격하라는 명령!
쑤닝이나 간부들도 각오를 하고 내린 명령이었으니, 밑의 길드원들은 더 충격이 컸다.
-정말 치는 건가?
-그냥 정면에서 치면 안 돼? 이렇게 몰래 들어가면….
원래 남의 영역에서 싸우는 건 불리한 짓이었다.
안 그래도 김태현 공포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길드원들인데, 태현의 영지 안에서 몰래 위장하고 있다가 싸워야 한다니.
보통 긴장되는 게 아닌 것!
숨기려고 해도 불만과 걱정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뭐, 장샨 하나로는 부족하겠지.”
태현은 장샨을 크게 믿지 않았다.
일단 장샨이 제대로 일을 했을지도 의문이었고, 장샨이 제대로 보고했어도 길드 동맹에서 믿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다른 첩자 몇 명 더 찾아서 가짜 정보를 뿌려야겠다.’
이런 건 원래 느긋하고 뚝심 있게 진행해야 효과를 볼 수 있….
“앗. 길드 동맹에서 공격 준비한다는데요?”
“…진짜?”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놈의 길드가 떡밥 하나 던졌다고 덥석 무냐?
이놈들은 의심도 안 하나??
‘장샨이 생각보다 길드 동맹 안에서 신뢰받고 있었나 본데? 예상 밖이군.’
태현은 알지 못했다. 장샨의 가짜 보고서가 길드 동맹 간부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을!
“길드 동맹 쪽은 인원을 대규모로 몰래 잠입시켜서 기습을 시도하려나 봐요.”
“정석이군, 정석이야.”
남의 영지에서 일어나는 퀘스트를 방해하려는 방법으로는 정석적이었다.
태현도 방해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
‘천 명은 무조건 넘게 오겠지? 여기 도시 인원이 얼마인데 합쳐서 그 정도는 보내겠지.’
“일단 가짜 의식을 준비해야겠다. 음. 근데 누구 의식으로 할까.”
태현이 권능으로 <사디크의 불완전한 화신 소환>이 있긴 했지만, 이걸 쓸 수는 없었다.
일단 불완전한 화신을 소환하는 것 자체가 할 이유가 없는 미친 짓!
자기 수도 불태우고 게임 접을 게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할 짓이었다.
게다가 가짜로 하는 척만 한다 하더라도 사디크와 엮이면 좋을 이유가 없었다.
괜히 이상한 소문이라도 돌면….
‘그러면 역시 아키서스가 무난한가? 아키서스 화신 소환 의식은 하나도 모르는데. 갈락파드가 알려나… 음. 다른 화신 의식 뭐 정보 나와 있는 거 없나?’
[저요! 저요!]
“…….”
[…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래, 뭐… 네가 좋다면야….’
가짜 의식 준비하는 건데 카르바노그든 아키서스든 상관없었다.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면 됐다.
* * *
“축복받은 신성한 강철로 만든 대형 토끼 조각상이라. 이걸 왜 만드는 걸까?”
“글쎄. 토끼가 귀여워서?”
플레이어들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움직였다.
태현이 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공적치 포인트를 많이 쌓으면 나도 자리 하나쯤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모험가 여러분! 이 <아키서스의 행운이 담겨 있는 완장>을 받아 가십시오!”
아키서스 사제 NPC가 크게 외치고 있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고민했다.
“저거 살까?”
“효과가 좋긴 한데 일회용이라… 너 돈 있어?”
사냥 전에 아키서스 사제한테 각종 축복을 받고 소모성 아이템을 사는 건 이미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효과가 입증된 방법이었다.
아이템 드랍율과 각종 보너스!
문제는 수도에서는 이게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크헬헬. 세상엔 공짜가 없어! 교단에 들어오거나 돈을 내라!
펠마스의 정책!
아키서스 교단의 본거지면 모를까 새로 얻게 된 수도에서는 이런 식으로 공격적인 정책을 펼쳐줘야 했다.
“음. 포인트가 남았으려나….”
“포인트?”
“어. 저기 포인트도 받잖아.”
“??”
돈이 없으면 아이템도 받는다.
각종 아이템을 내면 값을 매겨 포인트로 받는 펠마스!
정말 한결같이 철저한 펠마스였다.
“공짜입니다!”
“?”
“네? 공짜라고요? 말도 안 돼! 이거 사기죠? 무슨 흑심이 있는 거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벌써 아키서스 교단 사제들이 파악이 된 플레이어들!
그러나 사제들은 진지했다.
“정말입니다. 자. 이 완장을 받고 차고 다니세요. 아, 그리고 이 완장은 효과가 다 떨어져도 차고 다니시면 좋습니다.”
“왜요?”
“…그냥 좋아요. 교단 포인트도 더 적립해드립니다.”
“앗. 그러면 차고 다니겠습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펠마스는 눈물을 훔쳤다.
‘저게 다 얼마인데….’
태현한테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좀 있으면 외부인이 대량으로 들어올 텐데, 그 전에 식별 가능한 아이템 최대한으로 뿌려라.
-하지만 그런 게 없습니다.
-만들면 다 나오는 법이지. 아, 맞다. 저번에 가다 보니까 사제들이 완장 나눠주던데, 그거 공짜로 나눠주면 되겠네.
-히이익!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길가를 보니 대부분이 선명한 아키서스 교단의 완장을 팔에 차고 다니고 있을 정도였다.
‘깔끔하군. 좋아.’
이러가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판매를 멈출 생각이었다.
물론 길드 동맹에서도 저 완장을 구할 수 있겠지만, 그래봤자 몇 명 안 될 것이다.
‘내가 준비하는 의식에나 신경이 쏠려 있겠지. 저런 완장 하나하나에 신경 쓸 여유가 있겠어?’
이제 곧 수도에서 의식이 열릴 것이다.
그 의식은 물론 화신 소환 의식이 아닌 악마 공작 소환 의식!
그리고 태현은 악마 공작이 소환되면 이게 다 길드 동맹이 한 짓이라고 떠넘길 생각이었다.
‘화살이나 만들어놔야지.’
길드 동맹을 환영할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는 악마 공작 모스락을 환영할 차례.
모스락은 아주 뜨겁고 화끈한 환영을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