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98화
‘시간이 꽤 많이 걸리겠지만 난 기다릴 수 있으니….’
악마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기다리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맛이 어떻습니까! 에슬라 님!”
파즈는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정말 어렵고 어렵게 구한 희귀 재료들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차오는 할 수 없는 이 과감함!
요리에 목숨을 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요리!
이게 실패할 리가….
“짜군.”
“…네?”
“짜다고.”
“으하핫! 으하하핫! 짜대! 짜대!”
차오는 박장대소했다.
파즈가 정말 희귀한 재료들을 꺼내서 긴장했는데, 대실패한 것이다.
경쟁자가 망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었다.
“크하핫! 크하하핫! 크핫! 커헉!”
사레까지 들리는 차오! 그걸 본 에슬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만 처웃고 요리나 내놓게.”
“아, 예.”
차오가 요리를 갖고 오자 파즈는 옆에서 노려보았다. 자존심이 매우 상한 것이다.
“내가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네가 성공한 건 아닐 텐데.”
“후후, 멍청하기는. 다 생각해 놓은 게 있지.”
“…??”
파즈는 살짝 놀랐다.
차오가 성격이 더럽고 음험하고 뒤에서 온갖 수작을 부리는 쓰레기 같은 놈이긴 했지만….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아, 미안. 실수로 입 밖에 냈군.”
…아무 근거 없이 떠들 놈은 아니었다. 분명 실력은 있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차오는 요리를 내밀고 웃었다. 분명 대단한 요리긴 했지만, 파즈는 그 요리가 자신의 요리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뭐지? 저 악마에게 맞춘 요리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요리는… 내 요리를 뛰어넘을 수 없어!’
“파즈. 난 한 가지 깨달았다.”
“?”
“요리 영화, 드라마, 소설 등등에서 일어나는 대결에서 이기는 건 언제나 늦게 내는 놈이라는 걸!”
“…….”
파즈는 귀를 의심했다. 저놈이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자! 봐라!”
“맛없군. 돌아가게 이제.”
퉷-
에슬라는 파즈의 음식을 먹었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차오는 울컥해서 외쳤다.
“…너 맛알못이지!? 너 뭐하는 악마야!”
혀가 있다면 자신의 요리를 맛없다고 할 리가 없는 것!
“인간의 부정이란 참 추하군.”
“닥쳐! 맛있다고 말해! 맛있다고 말하란 말이야!”
* * *
다른 곳에서는 악마가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하하.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자. 가자.”
“어디를?”
“보물 받으러.”
“!!”
프이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걸 본 일행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악마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깎… 깎아줘!”
“뭘? 네 생명을? 저런, 난 그러고 싶지 않지만 네가 꼭 그러고 싶다면야….”
“보… 보물은 안 돼! 내가 어떻게 갖고 나온 건데!”
“그래. 그래.”
태현의 말에 프이드는 살짝 희망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쓸 때마다 네 노력을 생각하면서 쓸게.”
“…….”
태현은 발버둥 치는 프이드를 질질 끌고 보물이 숨겨진 곳으로 향했다.
‘나중에 에드안한테 위치를 말해서 추가로 털 수 있으면 좋겠군.’
[숲의 지하창고에 들어왔습니다.]
[이 지역은 매우 많은 함정과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메세지창으로 경고까지 뜰 정도의 위험성.
실제로 태현이 시선만 던져도 메시지창이 떴다.
[<화염 룬 함정>을 발견했…]
[<연속 석궁 함정>을 발견했…]
프이드가 얼마나 공을 들여서 지키고 있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에드안을 들여보내기에는 좀 걱정될 정도!
‘뭐 에드안이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카르바노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
[카르바노그가 악마의 기운 때문에 제대로 말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뭐? 잠깐….’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말을 듣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신의 예지!
[이 자리에 서린 강력한 악마의 기운 때문에…]
‘젠장!’
<신의 예지> 스킬로 보물을 날로 먹으려고 했는데, 그 방법이 막힌 것이다. 태현은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다.
‘뭐 상관없지. 다른 방식으로 찾으면 되니까.’
프이드는 그사이 정신을 차리고 이성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냉정한 얼굴로 태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흥. 어서 골라서 갖고 나오라고.”
“흠….”
숲의 지하창고에는 온갖 잡다한 아이템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라면 이런 광경을 보면 기가 죽었을 것이다.
수백, 수천 개가 넘는 아이템 중에서 어떻게 옥석을 가려내겠는가!
그러나 태현은 아니었다.
‘몇 가지 요령만 있으면 순식간에 시간을 줄일 수 있지.’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낮아서 아이템의 성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마법 스킬이 낮아서…]
아이템을 하나씩 집었다 들 때마다 뜨는 메시지창들.
일단 이런 메시지창이 뜨는 게 더 좋은 아이템이었다.
판온 1 때 하던 방법으로 아이템을 측정하던 태현은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의 예지는 막혀도 태현에게는 최고급을 찍은 화술 스킬이 있었다.
[프이드가 경악합니다.]
[프이드가 안심합니다.]
[프이드가 매우 경악합니다!]
‘이게 좋은 것 같군.’
들었다 놨다 할 때마다 변하는 프이드의 감정을 즐기며 태현은 흡족해했다.
악마 공작의 음험한 목걸이:
내구력 10/20, 마법 방어력 150.
공격당할 때마다 일정 확률로 적에게 <악마의 피> 시전. 스킬 <맹세의 악마 군대 소환> 사용 가능. 스킬 ???? 사용 가능. 스킬 ??? 사용 가능.
신성 공격에 매우 취약.
악마 공작이 계략과 음모를 꾸밀 때 차고 있던 목걸이다. 목걸이를 파괴하고 스킬을 사용하면 맹세의 악마 군대를 소환할 수 있다.
(마법 스킬이 낮아서 설명을 전부 볼 수 없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내구력이 낮고 신성 공격 페널티가 있는 게 흠이었지만 마법 방어력이 어마어마했다.
어지간한 갑옷 뺨치는 마법 방어력!
태현이 착용하고 있는, 오스턴 왕가의 보물인 <왕자의 목걸이>도 아직 플레이어들이 구하기 힘든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이 목걸이는 더 훌륭했다.
‘하지만 스킬이 일회용인 게 아쉽군.’
악마 군대를 소환하려면 장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아직 나오지 않은 스킬들까지 있지 않은가.
태현이 다음으로 고른 건 <악마의 금속으로 짠 은빛 셔츠>.
악마의 금속으로 짠 은빛 셔츠:
내구력 150/150, 물리 방어력 100, 마법 방어력 50.
사망 시 <악마의 힘으로> 사용 가능.
오래된 악마의 피로 절여져 있는 셔츠다. 셔츠를 파괴하면 <악마의 힘으로>를 사용할 수 있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진홍의 배신 셔츠>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악마의 힘으로>가 너무 좋았다.
무려 부활 스킬!
태현이 무조건으로 챙기는 스킬이 바로 부활 스킬이었다.
‘다른 게 아쉽지만 부활은 챙겨놔야지.’
현재 챙겨놓은 부활수단만 해도 몇 개인가.
태현을 노리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걸 안다면 질려서 도망칠 수준이었다.
‘마지막은… 역시 징표가 좋을 텐데. 징표가 있으려나?’
태현은 힐끗 프이드를 쳐다보았다. 아끼고 아끼던 아이템들을 쏙쏙 빼앗긴 탓에 프이드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혹시 모스락한테서 도망칠 때 징표 갖고 나온 거 없나?”
“뭐? 그런 걸 내가 갖고 나왔을 리가 없잖아. 악마에게 자기를 상징하는 징표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나? 당연히 모스락이 들고 있겠지.”
‘쯧.’
<악마의 봉인을 풀어라-에슬라 퀘스트>
고대 드워프의 미궁에 봉인된 에슬라는 강력한 악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봉인에서 풀려날 수 없다.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강력한 악마의 징표 세 개가 필요하다.
그는 당신에게 봉인을 풀어주는 대가로 힘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에슬라를 봉인에서 풀어낼 수 있다면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태현이 맡은 퀘스트 중 아직도 이렇게 못 깬 퀘스트는 드물었다.
그만큼 진행이 느리고 모으기 힘든 퀘스트!
어떻게 날로 먹을 수 없나 했더니….
“그러면 이걸로 하지.”
“그… 그건…!”
태현이 마지막으로 고른 아이템은 <악마가 봉인된 6연발 머스킷>이었다.
‘이건 이다비 줘야지.’
공격할 때마다 랜덤으로 데미지 버프를 결정하는 특이한 아이템!
태현보다는 이다비처럼 자체 공격력이 부족한 직업이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아직 안 보이는 옵션이 있고, 이름부터 <악마가 봉인된>이니….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 * *
프이드는 잠깐 사이 살이 쭉 빠진 것 같았다.
“이제 다 됐으니… 모스락을 상대할 계획을 세우자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고, 왠지 모르게 구슬프고 애달팠다.
그러나 태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약간 미안한 마음으로 태현은 말했다.
“저기, 있잖아….”
“?”
“한 가지 더 줘야겠는데.”
“뭘 또!!”
노이로제 반응을 일으키는 프이드!
[프이드의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악마들 사이에서 당신의 소문이 퍼질 수 있습니다!]
“아니. 진정해. 내가 지금 모스락 부하한테 가야 하는데, 널 잡아 왔다고 사기를 쳐야 하잖아. 그러려면 증거가 필요하다고.”
“…….”
[프이드의 친밀도가 다시 올라갑니다.]
설득이 성공했는지, 프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뭘 해줘야 하지?”
“네 신체 일부를 좀 가져가고 싶은데. 혹시 잘라도 괜찮은 부분 있니?”
말은 상냥했지만 담긴 뜻은 섬뜩한 소리!
프이드는 오랜만에 오싹함을 느꼈다. 이 인간 놈 눈빛이….
‘파이토스 교단 놈들, 대체 뭐하는 미친놈을 키운 거냐?’
[파이토스 교단의 악명이 올라갑니다.]
‘응?’
태현은 의아해했다.
“…내 뿔이 있다.”
“뿔 같은 건 없는데?”
“마법으로 감추고 있으니까 그렇지. 자.”
프이드의 이마에서 길고 뾰족한, 탐스러운 두 개의 뿔이 나타났다.
“이 뿔 끝을 조금 잘라 가면 믿을 거다.”
프이드는 말하면서 매우 괴로운 표정이었다.
그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뿔을 조금 잘라내야 하다니.
“아니지.”
“뭐가 아니란 거지?”
“죽였는데 그렇게 조금 잘라가면 누가 믿겠어. 확 잘라가야지.”
“아, 아니… 길이가 크게 중요한가?”
“상대도 악마라고! 속이려면 최선을 다해야 해! 그렇게 애매하게 잘라가 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태현은 뜨겁게 설득했다. 물론 이유는 하나였다.
‘고위 악마로 몬스터 정수 만들 기회다!’
창고도 털고 이제 뿔까지 잘라서 가져가려는 태현!
적들 상대로 정말 미친듯한 알뜰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이드는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지만, 이미 불리한 싸움이었다. 명분마저 태현에게 있었으니….
“크흑… 잘라가라. 잠, 잠깐. 왜 두 개 다 잡는 거지?”
“하나만 잘라갔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두 개 다 잘라야 해!”
“야 이 미친 인간 놈아!!”
프이드는 울부짖었다. 슬슬 이 인간과 손을 잡은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파이토스 교단 놈들이 진짜 미친놈을 키웠어!’
* * *
요하스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태현은 혼자서 악마를 쓰러뜨렸을까? 악마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태현이 악마만큼 치사하고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이었지만….
“!”
기다리는 사이 태현이 안에서 나왔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태현은 승리한 표정으로 두 개의 뿔을 꺼내 흔들었다. 그걸 본 요하스는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분명 악마의 뿔!
“잡으셨군요!”
“하하. 파이토스 님이 도우셨지.”
“역시! 위대한 파이토스 님께서 폐하를 도우신 거군요!”
[파이토스가 이런 불경한 소리를 알게 되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그럼. 파이토스 님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언제는 한 번 이렇게 신탁을 내리셨지….”
누가 들으면 파이토스와 태현이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할 이야기!
그러나 이미 반쯤 넘어간 요하스는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요하스가 잘못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말하고 다닐 경우 파이토스의 분노를 살 수 있습니다.]
[요하스가 더 타락…]
“파이토스 교단의 사제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정말 기뻐할 겁니다!”
“그래. 많이 알리고 다녀.”
태현은 상냥하게 웃으며 등을 두들겼다. 말 그대로 등을 떠미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