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93화
“경기 전 인터뷰를 거절하셨는데, 역시 경기에 집중하고 싶으셔서 그랬던 건가요?”
“네.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경기를 진행하면서 긴장되거나 하진 않았나요? 투기장 대회에 비해서 어떠셨나요?”
“상대가 안 보이니 오히려 다 까다로운 면이 있긴 했습니다. 연습을 많이 해둬서 다행이었죠.”
‘생각보다….’
‘멀쩡한데?’
케인과 최상윤은 태현의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시합도 끝났겠다 태현이 ‘상대 팀이요? 쓰레기 같은 놈들이죠! 시작하기 전에 인터뷰나 하고 있으니까 지는 거지!’ 정도는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오는 대답들은 예의 바른 대답!
“김태현 선수! 이번 대회에서는 폭탄, 그러니까 기계공학 스킬을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한 메타가 되었는데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번 대회에서 너무 유리한 위치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판온 주최 측의 편파 대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신지?”
“!”
전 세계 기자들이 왔는데 예의 바른 기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기자들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정도가 너무 심한 질문! 다른 기자들도 놀란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큰일 났다!’
‘욕 나오겠지?’
케인과 최상윤의 머릿속에는 벌써 기사 제목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김태현 선수 욕설 파문!
-김태현 선수, 본선 첫 경기 승리 후 가운뎃손가락을….
그러나 태현은 침착했다.
‘저거 아까 시비 걸던 놈 아닌가?’
원래라면 욕설에 깃발부터 꽂고 시작했을 테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PVP가 금지된 상태기도 했지만….
상대를 더 엿먹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
“?”
“??”
“김, 김태현 선수?”
태현은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 다른 기자들이 당황했다.
“김태현 선수. 다음 질문을….”
“…….”
침묵 시위!
그제야 태현이 뭘 하는지 알아차린 기자들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김태현 선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별문제는 없는데, 저 사람들 있으니까 무서워서 입이 안 열리네요.”
“!!!!”
-쟤네 나갈때까지 입 안 연다!
그랬다.
여기 모인 기자들은 태현의 인터뷰 하나 따려고 모인 사람들인 만큼, 그걸 따지 못하게 되면 매우 흉포하게 변할 수 있었다.
태현은 그 점을 기막히게 찌른 것이다.
“잠깐, 잠깐만! 우리는 판온 측에 허가받고 들어온 기자인데….”
대회 관련해서 경기장 안에 들어와 뭔가를 하려면 일단 비싼 돈을 내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언론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뭐 계세요. 전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되니까.”
“…케인 선수!”
“…….”
케인은 무심코 대답하려다가 태현이 쳐다보자 바로 분위기를 읽고 입을 다물었다.
태현은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입 열면 죽는다.
태현한테 찍힌 기자들은 애타게 다른 선수들을 불러보았지만, 팀 KL의 단결은 철통같았다.
말 한 마디 나오지 않는 단체 침묵!
그러자 슬슬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 일단 좀 나가보시죠?”
“거기 어디서 나왔는데 그런 질문을 해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듭니까? 어느 나라야?”
“안 그래도 편집장한테 까였는데 이렇게 시간 낭비하게 만들어야겠어?”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눈총!
“아니. 같은 기자인데 힘을 합….”
“같은 기자는 무슨. 같은 기자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기자를 말하는 거지. 처음 본 그쪽하고 손잡을 이유가 없는데?”
“남의 인터뷰 잘라먹고 그런 소리가 나와? 같은 기자라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당신은 깃발 꽂았어! 내가 성기사 랭커야!”
점점 더 격렬해지는 반응을 보며 태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더 싸워라 더 싸워!
“팝콘 드릴까요?”
“아. 고마워.”
* * *
결국 인터뷰는 태현에게 찍힌 기자들이 쫓겨난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기자들이 나가자 태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바꿔 친절하고 공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성격 좋고 예의 바르고, 실력 있고, 얼굴 되는 태현은 프로게이머 선수의 완성형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드높은 인기까지 합쳐져 태현은 자리의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난 네가 욕할 줄 알았어.”
“하려다 말았지. 일단… 주장이기도 하고….”
최상윤은 그 말에 살짝 감동받았다. 이 녀석도 변하긴 변하는구나!
“눈빛이 기분 나쁜데?”
“착, 착각이겠지. 지금쯤 유성 게임단도 경기 끝났을 테니까 보러 가자!”
대놓고 화제를 돌리는 최상윤이었지만, 태현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태현도 유성 게임단의 경기 방식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방식을 썼길래 예선 1위로 통과할 수 있었던 걸까?
이제까지는 비밀을 지켜왔지만, 본선 대회에서까지 그걸 숨길 수는 없었다. 태현 팀도 본선 경기에서는 전력을 다해 움직였다.
‘스킬 하나만 빼고.’
대회 본선 경기를 진행하면서 태현도 나름대로 고민했다.
과연 이 스킬을 미리 써야 하는가?
던전 공략 대회는 5:5 투기장이나 1:1 결투장처럼 상대방과 대결하는 게 아니라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던전 타임어택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차라리 맞붙는 게 낫지, 이건 사람이 할 게 안 된다!
다른 팀과 동시에 입장해서 던전을 공략한다.
관객들은 동시에 진행되는 두 팀의 던전 공략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자체는 괜찮았지만 문제는 들어간 팀이었다.
안에서는 상대방이 얼마나 빠르게 던전을 공략했는지 알 수 없다!
촉박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기록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최선의 전략을 세워도 한 번의 실수만 하면 기록이 와장창 망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게임에 임하는 선수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전략을 숨겨서 어설픈 견제를 시도했다가 그냥 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탈락이었다. 웃음거리도 못 됐다.
당연히 태현도 그런 가능성은 알고 있었고, 하면서 고민했다.
상대방이 그사이 새로운 전략이라도 들고 왔다면 태현 팀은 그대로 밀렸을 테니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대방은 전형적인 전략을 들고 왔다.
팀의 합을 맞춰서 공략하면서, 도중에 폭탄 아이템을 결정적인 순간에만 사용하는 전략!
가장 무난하고 일반적인 전략이었다. 폭탄이 오작동할 위험 때문에 최대한 결정적인 순간에만 쓰는 것이다.
덕분에 태현은 전략을 아낄 수 있었고 스스로의 팀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폭탄을 사용하는 메타인 이상, 그들 팀보다 더 안정적인 팀은 없었다!
“유성 게임단 리플레이 떴군. 보자.”
과연 이세연은 어떻게 플레이했을까?
-언데드 소환, 언데드 소환….
‘무난한 시작이군.’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부릴 수 있는 언데드 소환. 네크로맨서인 만큼 당연했다.
-최고급 슬라임 골렘 소환!
‘?’
슬라임 골렘?
골렘 소환이 네크로맨서의 주특기 중 하나였지만, 슬라임 골렘 같은 건 비주류에 들어갔다.
물리 방어력만 좀 높을 뿐이지 다른 장점이 없었던 것이다.
그걸 왜?
-삼켜!
“!”
태현은 경악했다. 슬라임 골렘이 폭탄을 하나둘씩 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저렇게 몬스터한테 맡겼다가는 더 불안정해져서 언제 터질지 알 수 없을 텐데?! 아니, 설마 슬라임 골렘의 특수 효과가 있나?’
이세연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슬라임 골렘이 저렇게 삼킨다는 건, 슬라임 골렘 안에 들어간 폭탄이 멋대로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는 뜻!
쿵, 쿵, 쿵-
슬라임 골렘이 뒤에서 따라오고, 유성 게임단의 선수들은 재빨리 최단거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을 끌어모아서 한 번에 날려 버리려는 전략!
-크아아악! 크아아악!
전략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을 끌고 와 한곳에 모였고, 그제야 이세연은 슬라임 골렘을 앞으로 보냈다.
‘잠깐. 골렘 안에 넣었는데 폭탄을 어떻게 터뜨리려는 거지?’
-사악한 힘의 강림, 골렘 분산 폭발!
이세연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골렘을 통째로 폭발시킨다!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골렘 안에 있던 폭탄까지 작동한 것이다.
태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계공학 스킬이 없는 이세연이 정말 효과적인 전략을 꾸렸다고.
‘다른 팀들이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폭탄을 어떻게 안정적일지부터 방법을 찾았다 이건가….’
물론 감탄은 감탄이고, 태현은 이세연을 칭찬할 생각이 없었다.
“자기 소환물을 폭발시키다니! 저런 상도덕도 없는!”
“…….”
“네가 할 소리는….”
태현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시했다.
어쨌든 유성 게임단의 기록에 숨긴 비밀은 알 수 있었다.
태현 팀에게는 들고 다니는 공성병기와 안정적인 폭탄이 있다면, 이세연 팀에게는 폭탄을 넣고 다닐 수 있는 골렘이 있는 것이다.
‘대단하긴 하지만, 못 따라올 정도는 아니야. 남은 건 팀원들의 기량인가?’
두 팀이 갖고 있는 비장의 수단은 시간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남은 건 그걸 활용하는 팀의 능력!
‘그리고 숨겨진 전략이겠지.’
이세연은 과연 숨겨진 한 수를 갖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시했겠지만 태현은 이세연을 무시하지 않았다.
갖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 * *
“공성병기를 안에서 조립한 다음에 상인 직업이 들고 다닌다고? 진짜….”
태현이 보고 있는 사이, 이세연도 태현의 경기 영상을 보고 있었다.
보면서 연신 탄식하는 이세연!
“상인 직업을 이렇게 쓴다고? 아니, 진짜로??”
“역시 김태현 선수입니다!!”
“알겠으니까 좀 조용히 해줄래요?”
태현의 광팬, 류태수가 옆에서 흥분해서 떠들자 이세연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너 어디 팀이야?
“죄송합니다.”
“…….”
그래, 이 정도 선수 구하는 게 어디야.
이세연은 스스로를 달랬다.
저 단점만 빼면 나머지는 괜찮은 선수였으니까!
실제로 지금 대회가 진행되면서, 각 게임단 선수들의 실력이 드러나고 있었다.
분명 작년에는 실력 좋은 랭커로 뽑힌 선수가 대회에서는 죽을 쑨다거나, 작년에는 이름 없는 플레이어였는데 맹활약을 한다거나….
하루아침에 스타가 몰락하고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게 E스포츠계였다.
그런 면에서 유성 게임단의 선수 구성은 탄탄했다. 이세연의 선수 뽑는 눈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세연 선수. 뉴욕 라이온즈의 매킨리라고 합니다.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신지요?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벌써부터 이세연한테는 다른 게임단의 제안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 해가 끝나고 유성 게임단과의 계약이 끝나면 바로 채가려는 생각!
아직 후반기에 있는 투기장 대회나 결투 대회는 시작도 안 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다들 이세연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태현한테도 왔으려나? 아니, 걔는 주장이니까 좀 위치가 다른가?’
태현은 선수가 게임단을 직접 이끄는 특이한 케이스다 보니, 다른 게임단에서 제안을 하는 걸 망설일 수 있었다.
“아니. 진짜. 아니. 진짜! 이게 말이 돼?”
이세연은 보면서 혼자 떠들고 있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
그걸 본 김현아가 말했다.
“언니. 그만 봐요. 세 번째 보고 있네. 그 인간이 그렇게 좋아요?”
“뭐… 뭐… 뭐?”
“농담한 건데….”
김현아가 놀란 목소리로 말하자 이세연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김현아의 등을 두드렸다.
“무슨 농담을! 놀랐잖니!”
퍽! 퍽! 퍽!
“언니, 진짜 아프거든요?!”
김현아의 등을 두드리면서, 이세연은 생각에 잠겼다.
팀 KL과 유성 게임단의 첫 번째 본선 경기 기록은 둘 다 32분대.
그렇다면 팀 KL은 예선 전략을 숨기지 않고 본선 그대로 갖고 나온 게 분명했다.
‘하긴, 괜히 전략 숨겼다가 지기라도 하면….’
그사이 새로운 전략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보아하니 그런 건 없는 모양이었다.
‘설마 숨기고 있나? 잠깐. 그럴 것 같지는… 김태현이라면 그럴지도….’
“언니. 왜 혼자서 괴로워하는 소리를 내고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