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88화
이걸 태현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아니! 설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믿고 있는 신을 모시는 천사가?!?! 정말?!”
“…….”
“만약 난 아키서스 교단을 모시는 천사가 거짓말을 했다면 부끄러워서 죽어버렸을 거야!”
[카르바노그가 미친놈 보듯이 당신을 쳐다봅니다.]
[요하스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항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래. 알면 됐어. 그래서 천사 쪽 대장장이가 누군데? 소개 좀 시켜줘. 내가 뭐 이상한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니고… 흠흠. 영지에 조금만 있다가 가라 그래.”
“천사들 사이에는 대장장이가 따로 없습니다. 모두가 다 어느 정도의 스킬을 쓸 줄 압니다.”
“호오….”
몇몇 스킬을 중점으로 올리는 다른 종족들과 달리, 천사들은 대부분의 스킬들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쓸 줄 알았다.
다른 종족들과 차원이 다른 올라운더 종족!
대단하다면 대단한 것이었지만, 태현한테는 ‘저는 재주가 많아요! 제 재주를 써먹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거로 들릴 뿐이었다.
‘악마보다 훨씬 낫잖아? 어떻게 영지에 못 넣나?’
한 명 영입하면 정말 온갖 일에 부려먹을 수 있는 만능형 인재 아닌가!
아쉬운 점은 악마들은 욕심이 많아서 조건만 맞춰주면(물론 태현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영지에 머물렀지만, 천사들은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 그러면 좀 배우자.”
“저… 악마는 안 잡으러 갑니까?”
“악마를 잡으려면 악마를 상대해야 할 무기를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 * *
[<날카로운 천사의 레이피어> 제작법을 배웠습니다.]
[대륙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다른 대장장이 NPC들이 이 제작법을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천사의 다섯 깃털 경갑옷> 제작법을…]
[<천사의 축복 받은 화살> 제작법을…]
“…이제 그만해도 됩니까?”
[요하스가 우울해합니다.]
[요하스가 속은 게 아닌지 번민합니다.]
“하나만 더 가르쳐줘.”
“아까도 그 말 하셨잖습니까!”
태현은 요하스의 사기를 보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요하스에게 천사의 마법, 검술, 궁술, 상인 스킬까지 전수받은 다른 일행들은 싱글벙글하였다.
“태현 님. 이거 보세요. <천사의 넘치는 빛>이란 스킬이에요.”
<천사의 넘치는 빛>
상대와 교섭 시 사용하면 눈부신 천사의 빛으로 위엄을 보여줄 수 있다.
“이걸로 보너스를 받는 건가?”
화술 스킬이 이미 경지에 오른 태현에게 이런 건 별로 쓸모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다비도 화술 스킬은 꽤 높은 편일 텐데?
판온에서 그나마 화술 스킬이 높은 직업이 상인 직업이었던 것이다.
“네? 아뇨. 이거 쓰면 빛이 번쩍하고 나오니까 그사이에 아이템 슬쩍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주 좋은 아이디어야!”
일행은 그렇게 불쌍한 요하스의 밑천을 탈탈 털어먹었다.
악마와 달리 맨몸으로 지원하러 온 요하스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태현은 만족스럽게 얻은 것들을 정리했다.
‘천사 대장장이 스킬이나 제작법은 나중에 좀 써먹을 수 있겠군.’
특히 천사 종족 무기는 아직 대륙에 퍼지지 않은 제작법이라, 부르는 게 값이었다.
<천사의 날개 부채>
천사의 날개를 소환해 화염의 세기를 키웁니다.
<천사의 비전 제련법>
천사만이 다룰 수 있는 몇몇 금속들을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
…….
거기에 이런 추가 스킬들까지!
‘이제 슬슬 카라그를 잡으러 가야 하는데… 뭐 쓸 만한 거 없나?’
일행도 멀쩡하고 요하스까지 있었지만, 태현은 방심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강했던 카라그는 분명 악마의 피를 마시고 나서 더 미쳐 날뛰는 상태였다.
오죽하면 그 현질로 무장한 김태산과 아저씨들이 몇 번이고 후퇴했겠는가?
태현은 카라그가 어떻게 싸웠는지 떠올려보았다.
원래는 강력한 힘과 방어력을 믿고 미친 듯이 덤비는 전사였다면, 악마의 피를 마시고 나서는 거기에 마법까지 쓸 수 있는 완전체가 됐다.
‘성가시게 밸런스가 잡혀버리긴 했네.’
느리다면 발을 묶고 두들겨 패고, HP가 약점이라면 가까이 접근해 폭딜로 공략을 하고….
이런 식으로 약점을 노리는 것이 태현의 장기였지만, 이렇게 밸런스 잡힌 상대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찾아보자면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것 정도?
그래도 남은 본능 갖고도 충분히 잘 싸우고 있는 걸 보니 별로 단점도 아니었다.
‘오송 백작이나 다른 귀족들 뭐 갖고 있었지? 도미닉도….’
태현은 저번에 얻은 아이템들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하도 많아서 확인하는 것만 해도 일이었다.
<귀족의 인장 반지>
<오송의 떡갈나무 방패>
<눈부신 보석 단검>
…….
대부분 다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이거라면 카라그를 잡을 수 있겠어!’ 싶은 건 딱히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있는 거로 할 수밖에.’
태현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전략을 바꿨다. 언제부터 태현이 모든 걸 다 갖추고 싸웠던가.
안 되면 되게 한다!
“흠… 그러고 보니 요하스. 어느 신의 천사라고 했지?”
“그건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잖습니까.”
“그래?”
말은 그렇게 해도 태현은 요하스가 어느 신의 천사인지는 대충 눈치챈 상태였다.
왜냐하면….
<천사의 망치 강화술>
<천사의 망치 구별법>
<천사의 망치…>
이상하게 망치 관련 스킬이 많은 요하스!
거기에 태현 관련 친밀도가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수준이라면?
망치와 성기사의 신인 파이토스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런데 파이토스가 날 왜 도와주러 천사를 보낸 거지?’
요하스의 태도를 보니 몰래 방해하러 온 건 아니었고, 도와주러 온 건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 의도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에이,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니까.’
지금 중요한 건 카라그를 어떻게 잡느냐! 물론 태현은 생각한 게 있었다. 그래서 요하스한테 어느 신을 믿느냐고 물어본 것이었고.
‘파이토스 교단이라면 잘됐네.’
* * *
“저… 지금… 이게 진짜 필요한 겁니까?”
요하스는 지금 상황을 믿기 힘들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것도 그랬다. 왜냐하면 요하스 밑에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으니까.
[매우 잘 만들어진 걸작 기계공학 함정, <둘이 걷다 셋이 빠져도 모를 구덩이 함정>을 완성시켰습니다!]
태현은 오크 요새 최심부 앞쪽에 자리 잡고 함정을 파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약점은 이성을 잃었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함정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그냥 단순한 함정이 아닌, 정말 깊고 거대한 함정!
아무리 태현이라도 시간이 좀 걸릴 대공사였지만 태현에게는 부려먹을 수 있는 우르크의 오크들과 거인들이 있었고….
케인도 있었다.
-저, 저 인간 봐라! 우리보다 더 빠르게 땅을 판다!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
거인마저 감탄시키는 삽질의 재능!
그 결과 거의 던전 방 수준의 구덩이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완성되자마자 태현은 요하스에게 말했다.
-여기 위에 올라와 줄래?
-…….
요하스는 귀를 의심했다. 함정 위에 서 있으라니. 이건, 이건 설마….
미끼!
“다른… 다른 사람들을 써도 되잖습니까…?”
“악마 눈 뒤집히게 하려면 천사인 네가 적격이야. 다른 놈들은 제대로 반응 안 할 수도 있어.”
슬프게도 요하스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해도 악마는 요하스를 보면 요하스를 먼저 노릴 테니까.
“달려오면 피해도 됩니까?”
“안 돼. 빠뜨려야 하니까. 가만히 있어.”
태현은 갖고 있던 재료들을 총동원해 구덩이 함정 안에 추가로 함정을 설치했다.
[함정 안에 추가로 함정을…]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폭탄을 설치…]
[기계공학 스킬이…]
촘촘하고 빽빽하게 함정들을 밀어 넣는 집요함! 한 번 빠지면 뼈도 추리기 힘들어 보였다.
“요하스. 천사들도 혹시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나?”
이상하게 수상쩍은 태현의 질문! 요하스는 노려보며 말했다.
“합니다.”
“정말? 천사인데?”
“합니다!”
“그래. 그러면 <살아 움직이는 폭탄>까지는 못 쓰나….”
매우 불길한 스킬 이름!
그걸 들은 요하스는 진저리를 쳤다.
“좋아. 다들 준비! 카라그를 함정에 빠뜨린 다음에는 미리 지시한 대로 공격이다.”
태현은 일행을 배치시켜 놓고 위로 걸어 올라갔다.
[악마의 피를 마시고 미쳐버린 오크 대족장 카라그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도망치십시오!]
간단하지만 겁나는 메시지창.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머스킷을 꺼내 겨눴다.
-장비 영혼 파괴,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크… 크으으….
탕!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탄환이 날아갔다. 그 순간 카라그가 반응했다.
쾅!
[카라그가 공격을 쳐냅니다!]
“이런.”
-크아아아아아아아!
공격이 빗나갔지만 태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라그가 덤벼들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데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쿠르르릉-
마치 달려오는 전차 같은 기세!
태현은 재빨리 돌아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카라그가 <악마의 영혼 붙잡기> 스킬을 사용합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 태현은 저걸 맞는 순간 위험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쾅!
태현이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검푸른 해골 모양의 영혼이 생기더니 폭발했다.
‘회피 상관없이 맞으면 들어가는 저주인가?!’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그대로 들어갔을 것이다.
-크아아!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카라그의 무기에 담긴 악마의 힘이 당신을 공격합니다.]
[<신성 권능> 스킬에 따라 데미지가 줄어듭니다.]
치이이익-
무언가를 태우는 소리와 함께 태현의 갑옷에서 소리가 났다. 태현은 혀를 찼다.
장기전으로 가면 위험하다. 빨리 함정에 빠뜨려야 했다.
그러나 카라그는 그냥 태현이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 피하는 순간 벌써 태현 앞에 와 있었다.
-아키서스 검법!
파바밧!
카라그는 맛이 간 놈치고는 미친 듯이 재빠르고 교묘했다.
태현의 검이 위험하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이 후다닥 움직여서 공격을 피했다.
어지간한 움직임은 다 미리 읽고서 공격을 찔러 넣는 태현이었다.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태현의 공격을 막으면 막았지, 저렇게 다 일일이 피해내는 놈들은 드물었다.
‘젠장. 쓸데없이 귀찮게….’
태현은 자기 자신을 만난 기분이었다. 빠르고 교묘하게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피하는 테크니션.
거기에 무식한 스탯 덕분에 태현보다 기본 움직임은 더 빨랐다.
차라리 묵직한 탱커 타입이었던 대족장이었을 때가 낫지!
끌고 와야 하는 태현이 끌고 오지 못하고 붙들려서 싸우자, 케인이 귓속말을 보냈다.
-야! 괜찮아!?
-말 걸지 마라! 집중 깨진다!
저렇게 덤벼드는 이상 그냥 뒤돌아서 도망쳤다가는 위험했다. 어떻게든 때리면서 점점 끌고 가야 하는데….
“간다!”
“?!”
-노예의 쇠사슬!
촤라라락!
케인은 노예의 쇠사슬 스킬을 사용했다. 카라그는 보더니 피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끌려가더니 케인 앞까지 갔다.
그걸 본 태현은 경악했다.
“야…!”
끌고 간 건 좋았지만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케인은 태현이 아니었다.
물론 HP야 태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HP 회복력도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정도뿐.
이런 레벨 차이 심한 보스 몬스터 상대로는 태현처럼 맞지 않고 피해야 하지, 그냥 두들겨 맞으면 케인 같은 탱커는 HP 좀 많아도 바로 죽을 것이다.
‘무슨 생각이 있나, 케인?’
“어….”
막상 카라그를 끌고 온 케인은 눈을 깜박였다. 멀리서 싸울 때는 몰랐는데, 앞에 끌고 오니 보통 위압감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물든 녹색 근육질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거 별 생각 없이 한 거 맞구만! <살라비안의 폭주>, <아키서스의 권능:저주>!”
[<살라비안의 폭주>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HP와 HP 회복력,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이 매우 크게 증가합니다!]
케인은 갑자기 뜬 메시지창에 당황했다. 앗, 이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