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87화
수많은 악마를 상대해 온 태현에게 천사는 쉬운 먹이일 뿐이었다.
[카르바노그가 천사 요하스를 동정합니다.]
[어느 신인지는 몰라도 아키서스의 화신한테 부하를 보내다니, 참 멍청한 신…]
‘어허. 욕하지 말자고.’
태현 입장에서는 참 착한 호구일 뿐!
요하스를 욕할 이유가 없었다.
“악마 공작 모스락을 아십니까? 물론 폐하께서 모를 리 없겠지요. 마계의 한 층을 점령하고 있는 악마 공작 모스락을 폐하 같은 영웅께서 모르실 리 없으실 테니 말입니다.”
“물론이지.”
물론 모스락이 누군지 잘 모르는 태현이었다.
[카르바노그가 모스락은 뒤에 숨어서 음모를 꾸미는, 음험하고 계략에 능한 악마라고 말합니다.]
‘흠….’
악마들도 각자 성격이 있고 타입이 있었다.
아다드가 부리던 갈그랄은 대표적인 전사 타입!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단 덤벼들고 보는 호전적인 전사 악마였다.
에다오르도 비슷했다.
투기장에서 계략을 꾸미긴 했지만, 마지막에는 직접 나타나 악마들을 이끈 걸 보면 꽤 호전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모스락이란 악마는 완전히 반대!
[카르바노그는 아키서스가 더 사악하고 음험하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고맙다. 카르바노그.’
“모스락은 폐하 같은 영웅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폐하는 악마들을 쓰러뜨린 영웅이시니 악마들과 싸우는 걸 꺼리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폐하. 악마한테 속으시면 안 됩니다! 모스락은 폐하를 이용하다가 마지막에 힘이 다하면 배신을 할 겁니다!”
“뭐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네.”
“예?”
“아무것도 아니야.”
태현은 설명을 듣고 안심했다.
사실 모스락이 태현을 다른 악마들한테 팔아먹으려고 저런 제안을 한 거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냥 사냥개로 쏠쏠하게 써먹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치려고 저러는 거면 훨씬 더 나은 편이었다.
‘악마들도 의외로 따뜻하군!’
“폐하! 저는 정보를 다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바로 그 악마를 불러내서 죽여야 합니다!”
“글쎄. 악마가 찾아왔었나?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서….”
“저한테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여기 악마의 기운이 흐릿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악마가 방금까지 있다가 간 게 분명합니다. 방금까지 있던 놈, 바로 그놈이 악마입니다!”
요하스는 말과 함께 케인을 가리켰다. 케인 근처에서 악마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거… 케인한테서 나오는 기운을 잡아내고 있잖아?!’
맛이 간 오크 대족장 퀘스트를 하다가 악마의 피를 마시고 반쯤 악마화된 케인.
요하스는 그 기운을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 날 가리키면서… 헉.”
케인도 그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그 악마를 잡으라 이거지? 그런데 뭐 지원은 안 해주나?”
“그 악마를 잡을 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거 말고는?”
“어… 위대한 정의를 이루는데 폐하 같은 영웅께서 다른 게 필요합니까? 정의감과 믿음만 있다면….”
태현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그래. 내 점수는 1점… 이 아니고, 어쨌든 너도 잠깐 나가서 기다리고 있도록.”
“폐, 폐하! 설마 다른 지원을 안 갖고 왔다고 해서 이러시는 건 아니시죠?”
“날 뭐로 보는 거야? 날 모욕하는 건가? 됐고 나가도록.”
“그게 아니라… 폐하! 저는 정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가라니까? 새로 얻은 <왕궁 추방> 스킬이라도 써줘?”
“폐하! 들어주십시오! 저는 악마 사냥에 관해 전문가이며 악마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나도 악마 사냥 전문가다. 네 도움은 필요 없어. 악마 한 마리 잡는 거 도와주는 것 같고 생색은 무슨.”
“다, 다른 것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요하스가 제안합니다.]
[화술 스킬에 따라 요하스의 도움이 결정됩니다.]
“뭐라?”
태현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요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라면…!”
“흠, 그래도 천사한테 너무 많은 걸 부탁하는 건….”
* * *
30분 후.
“…그러니까 악마 사냥이 끝나기 전까지는 같이 행동하고, 악마가 나타나면 같이 싸우고, 그러는 사이 만약에 영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줘야 하고… 또 관련 스킬을 훈련하는 동안 도와줘야 하고… 어… 너무… 잡다한 게 많지 않습니까?”
일이 다 정해지고 나서야 요하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그냥 부려먹는 거 아닌가?
“요하스. 하기 싫나? 하기 싫으면 말로 하지 그랬어.”
“아, 아니요.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자! 악마 잡으러 가자!”
“!”
요하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태현이 그래도 약속은 지켜주는구나!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아냐. 네 힘은 좀 더 아껴둬야지.”
“아니, 악마 사냥하기 위해 힘을 빌렸는데 악마를 안 잡으면 전…?”
“다른 악마들도 많잖아?”
“어, 영지에 다른 악마들도 있습니까?”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꼭 영지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
* * *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폐하! 역시! 그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일… 아차. 위대한 영웅인 폐하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후후후. 그러면 이걸 받아주십시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데르벤이 준 것은 지도였다.
“여기에 숨어 있는 악마들이 있습니다. 그 악마들을 처리해 주십시오.”
“그러면 주기로 했던 걸 바로 주는 건가?”
“후후, 다 드릴 수는 없고….”
“일단 선금으로 조금 줘야지 내가 믿을 수 있겠지.”
“저희 주인님께서는 거짓말을….”
“좋아하신다고? 나도 좋아해. 알겠으니까 선금 내놔!”
“…갖고 오겠습니다.”
[데르벤이 화술 대결에서 패배합니다.]
[영지에 아이템들이 추가됩니다.]
“그 악마들을 쓰러뜨리고 나면 다음 목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요하스가 악마 사신 보내라고 했더니 몰래 손을 잡아버리는 태현!
* * *
“잡으셨습니까?”
“아, 도망치는데 너무 잘 도망쳐서 놓쳤네. 진짜 빠르더라.”
“저런! 제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뭐, 괜찮아. 지금 같이 가면 되지.”
“네? 끝난 거 아닙니까?”
“뭔 소리야. 악마 사냥 끝날 때까지는 같이 움직이기로 했잖아.”
“어… 지금 도망갔다고….”
“어허! 세상에 다른 악마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그런 횡포를 보고만 있겠다는 거야?!”
“…….”
[요하스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계속해서 요하스를 속일 경우 요하스가 도망칠 수 있습니다.]
메시지창이 떴지만 태현은 모르는 척했다.
“자, 그러면 가자!”
요하스를 데리고 가면서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요하스를 가장 잘 써먹을 수 있을까?
태현은 이번 기회에 이 천사를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을 생각이었다.
오스턴 왕국 가서 길드 동맹원을 공격하는 건 무리겠지?
정체를 들키기도 쉬웠고 요하스가 반발하기도 쉬울 테니….
‘!’
태현은 깨달음을 얻고 무릎을 쳤다. 한 곳이 더 있었다.
“왜 방향을 꺾으십니까?”
“일단 우르크 들렀다 가자!”
대충 악마가 되어 미쳐 버린 오크 대족장 카라그!
그 카라그와 수하들이 아직도 오크 요새 최심부에서 떠돌고 있었다.
대(對) 악마로는 최상급인 천사가 손에 있는 지금, 안 잡으면 언제 잡겠는가!
* * *
“나는 느가다!”
“나는 느나! 쟤는 느다! 저 녀석은 느라!”
“나는 어… 느가….”
“그거 이미 했어!”
“느레?”
“그것도 이미 다른 놈 있어!”
“아, 이름 더럽게 어렵네!”
갑자기 오스턴 왕국에 일어난 산적 열풍!
철저하게 정체를 숨겨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던 태현-케인 듀오와는 달리, 이번 산적들은 누가 누군지 너무 뻔했다.
“이 오크 새끼들이!! 너희 최강지존무쌍 길드지!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을 것 같냐!”
“우린 그런 멋진 길드 모른다!”
“맞아, 이 애송이들아!”
복면 하나만 쓰고 나머지 삐까번쩍한 장비들은 그대로 차고 다니는 오크들!
판온에 이런 오크 길드가 몇 개나 있겠는가?
게다가 길드 동맹은 이 오크 길드와 한때 오스턴 왕국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털자! 털어!”
“현질보다 남의 걸 뺏는 게 더 좋은 거 같습니다, 형님!”
“하하. 둘 다 하면 되지 않겠냐?”
“역시 형님!”
인원이 인원인 만큼 오크 아저씨들은 싹싹 다 털었다.
사디크 화신 공략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뒷목을 잡을 일!
* * *
“아. 맞다. 아저씨들 없었지.”
태현은 우르크에 도착하고 나서야 상황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아저씨들이 산적질 해보겠다고 신나서 떠난 것이다.
“흠… 우리끼리 해야 하나?”
“왜 그러는데?”
양성규는 혼자 남아서 이 오크 영지의 관리를 맡고 있었다.
다들 산적질 하러 떠나면 여기는 누가 관리하겠는가!
“하하. 별거 아닙니다.”
“…매우 수상한데….”
양성규는 의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우르크 지역에 뭐 먹을 게 있어서 왔나?
“다음에 뵙겠습니다!”
“태현아! 잠깐!”
그러나 태현은 일행을 이끌고 호다닥 사라졌다. 그걸 본 양성규는 찜찜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형님. 태현이가 와서 형님 어딨냐고 묻던데요.
-뭐? 흠… 뭐 별거 없겠지. 걔가 갑자기 우리 영지 불태울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죠.
-우리가 뺏길 것도 없잖아?
-그것도 그렇죠.
김태산은 잊고 있었다. 예전부터 잡으려고 기를 쓰고 준비하고 있던 대족장 카라그가 산봉우리 요새 최심부에 있다는 것을!
* * *
“안 알려주고 해도 괜찮나요?”
“알려주면 기다리라고 할 거 아냐.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나눠 먹는 것보단 혼자 먹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
“…….”
부자 사이에도 용서 없는 경험치 경쟁!
“나중에 화내시면 어떡하죠?”
이다비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삐지는 거지. 그렇지만 그것도 다 대책이 있어.”
태현은 아이템을 하나 꺼냈다. <오크 선조들의 해골 목걸이>!
오크 선조들의 해골 목걸이:
대대로 대족장에게 전해져 내려온, 대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해골 목걸이다.
김태산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어야 할 아이템이었다.
‘이거 하나면 끝이지.’
어떤 원한과 삐짐이 있더라도 사르르 녹여 버릴 아이템!
“요하스. 빨리빨리 가르치라고.”
“…예….”
[요하스에게서 마법을 배웁니다.]
[가르쳐주는 상대가 최고급 마법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마법 스킬이 빠르게 오릅니다.]
[<퇴마의 황금 화살> 스킬을 배웁니다.]
[<천사의 날개> 스킬을…]
밑천을 싹 빼내려는 태현!
요하스를 세우고 일행 모두가 오순도순 마법을 뜯어내고 있었다.
“천사 관련 검술 스킬은 없냐?”
“천사 관련 궁술 스킬은 없어요?”
“혹시 천사들은 상인 스킬은 안 갖고 있나요?”
신이 난 일행들은 요하스에게서 뭐든지 뜯어내려고 했다.
“있습니다.”
“있어요….”
“그것도 있긴 한데… 아니, 이게 정말 악마 상대하는데 필요한 겁니까?”
[요하스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요하스가 자괴감에 빠집니다.]
“요하스, 힘내라고! 네 덕분에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야! 이게 다 수련 과정이라고.”
“그, 그렇습니까?”
“그래. 그렇지.”
“그러면 이제 악마를 잡으러 가는 겁니까?”
“잠깐만 좀 더 연습하고. 악마가 무섭단 말이야.”
“…….”
“그런데 혹시 천사들 사이에서는 대장장이 없냐? 악마들 사이에는 있던데.”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 태현의 영지에도 있는 NPC였다.
그 실력을 봤을 때 천사 대장장이도 만만치 않게 대단할 것이 분명했다.
“…없, 없습니다.”
[요하스가 거짓말을 합니다!]
[천사가 거짓말을 하는 건 매우 놀라운 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