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86화
생각지도 못한 제안!
그 제안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악마들이 동맹을 제안하다니.
왕국을 얻자마자 이런 비밀 동맹 제안이 온 것도 놀라웠지만, 그걸 보낸 놈이 악마라는 게 더 놀라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악마가 동맹 제안을 하지?’
‘아무리 태현 님이어도 악마가 동맹 제안을 할 줄은….’
플레이어 최초로 악마에게 비밀 동맹 제안을 받은 태현!
그러나 태현은 놀라지 않았다.
“안 놀랍냐?”
“별로. 저게 처음도 아니잖아.”
“!”
‘그랬지!’
생각해 보니 태현은 이미 봉인된 악마 에슬라와 비밀리에 손을 잡은 전적이 있었다.
지금 영지에 있는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도 그 에슬라의 부하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악마가 비밀 동맹 요청을 해와도 놀랄 이유가 없는 것!
“당연히 거절해야죠! 지금 다시 공격할까요?!”
그런 사정을 모르는 유지수는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녀에게 악마는 그냥 보스 몬스터였다.
나오면 일단 잡아야 하는 거지, 타협하거나 거래할 상대가 아닌 것!
“아니. 잠깐만. 거래할 수도 있잖아.”
“악마잖아요! 거래하면 속거나 배신당할 거예요!”
“글쎄… 그건 좀….”
“으으음….”
“??!”
케인과 이다비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유지수가 당황했다.
“악마인데 믿을 수 있나요?”
“당연히 믿을 수는 없는데, 솔직히 김태현이 속을 것 같지는… 않지.”
“오히려 속이면 모를까요. 속일 것 같은데요.”
“저 악마 놈은 겁이 없네. 뭘 믿고 거래를 하겠다고 왔대?”
케인과 이다비는 불쌍하다는 듯이 수군거렸다. 그 대화를 들은 유지수는 더욱더 당황했다.
대답 없이 자기들끼리 떠들자 데르벤은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폐하. 이 제안이 낯설고 당혹스럽고 두려우실 수 있다는 것 이해합니다.”
“아니 별로 낯설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은데.”
“후후후. 허세를 부리실 필요는….”
“아, 됐고. 자세한 거나 말해봐.”
[당신이 두려워하지 않자 악마 데르벤이 당황합니다!]
“후, 후후. 제 주인님께서는 신분을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 뭐 괜찮아.”
“압니다. 알아요. 폐하. 정체도 모르는 자의 제안을 받을 수는 없… 잠깐, 뭐라고요?”
“괜찮다니까.”
“…???”
[악마 데르벤이 더더욱 당황합니다!]
[악마 데르벤이 소속된 마계에 당신의 소문이 퍼집니다.]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괜찮습니까?”
“아, 괜찮다니까!”
“그, 그러면… 알겠습니다.”
“그보다 어떤 지원을 해줄 건데? 자세히 좀 말해봐.”
“…….”
[악마 데르벤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고른 건 실수가 아니었나 의심합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 덕분에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메시지창으로 나왔다.
태현은 좀 사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런! 악마의 제안을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다니. 내가 커다란 실수를 하는 게 아닐까?”
“후후후.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악마 데르벤이 만족합니다.]
“하지만 제 제안을 들어보시면 그 생각이 싹 사라지실 겁니다. 저희 주인님께서 주실 수 있는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악마 데르벤이 비밀 동맹 시 지원 가능한 목록들을 나열합니다.]
<하급 악마 전사 군단 셋>
<중급 악마 전사 백인대>
<고급 악마 전사 지휘관>
…….
<악마 대장장이가 만든 무구 세트>
<악마 연금술사가 만든 물약 세트>
…….
<지옥 혈통의 말떼들>
<지옥화염 사냥개들>
<거대 악마 거북>
…….
데르벤이 잘난 척을 할 이유가 있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대한 지원!
이 지원만 있으면 박살이 난 수도도 순식간에 회복하고 병사들을 무장시킬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다른 귀족들을 공격해 영토를 뺏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방심하지 않았다. 제안이 달콤할수록 의심해야 하는 건 상식.
이런 제안을 상대가 왜 했는가?
‘그런데 진짜 왜 한 거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저런 걸 그냥 내주다니. 뭐 안에 폭탄이라도 심어놨나?
그런 게 아니라면 줄 이유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태현이 먹튀라도 한다면 어떻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고민 좀 더 해봐야겠군.’
“이런 걸 그냥 줄 리는 없을 텐데, 뭘 원하는 거지?”
“후후후. 폐하. 폐하의 그 위업은 마계에서도 들려옵니다. 악마를 물리친 영웅!”
“‘속여먹은’이 아니라?”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뭐 어쨌든 계속 말해봐.”
소문이 약간 왜곡되어 펼쳐진 것 같았지만 태현은 넘어갔다. 중요한 거 아니었으니까.
“저희가 원하는 건 폐하의 능력입니다. 제 주인님께서 원하는 악마를 해치우시기만 한다면, 저 보상들은 폐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으음….”
한마디로 지원을 받는 대신 데르벤의 주인이 하라는 대로 싸우는 사냥개가 되라는 소리였다.
이해가 안 가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너무 후한데? 굳이 날 지목해서 이렇게 지원할 필요도 없고.’
상대가 정말 강한 악마거나,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
태현은 일단 데르벤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아주 좋은 제안이다. 내 점수는….”
“예?”
“아니. 말실수했군. 고민 좀 하고 대답해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폐하. 좋은 대답이 돌아오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데르벤은 공손하게 묵례하고 자리를 떠났다.
악마가 떠나고 일행만 남자 태현이 입을 열었다.
“저거 뭔 속셈 같냐?”
“글쎄… 상대해야 할 악마가 엄청 센 거 아닐까? 마계의 주인급 정도 되면 아직 플레이어가 잡을 수준이 아니잖아.”
기본적으로 레벨 5, 600을 넘기는 보스 몬스터들은 아직 플레이어들이 잡을 수준이 아니었다.
저 먼 미지의 땅에 있는 드래곤이라거나 마계의 악마 공작들이 그런 예에 들어갔다.
“뭔가 더 속셈이 있는 것 같아요. 앗, 에다오르나 아다드한테 제안을 받고 함정을 파려는 게 아닐까요?”
“!”
확실히 이다비는 케인보다 발상이 좋았다.
파워 워리어 길드를 운영하면서 얻은 통찰력!
“확실히 그건….”
“가능성이 있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선배를 잡으려고 그렇게까지 하나요?”
유지수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도 남지!””
“그, 그래요?”
“나 같으면 전 재산 건다.”
“케인은 실제로 전 재산을 걸지 않았었나?”
“시끄러!”
“좋아. 일단 상대방한테 꿍꿍이가 있다고 치고… 저거 지원만 어떻게 먼저 받아먹을 방법이 없을까?”
“!”
이게 바로 본론!
아직 계약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먹튀를 할 방법을 고민하는 태현이었다.
“아, 아니. 사기를 쳐도 돼? 악마잖… 생각해 보니 되겠군.”
위험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기를 쳐온 인생!
“먼저 지원을 달라고 하면?”
“주기나 할까? 안 주면?”
“일단 찔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악마를 잡아서 협박하는 건 어때요?”
“그건 좀 무모한… 잠깐, 방금 누가 의견 낸 거야?”
유지수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들었다. 순식간에 적응이 끝난 유지수였다.
“함정이 있지 않을까요? 악마인 이상 먹고 튈 경우를 대비할 것 같은데.”
“나도 그게 찜찜해.”
“폐하. 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뭐?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기다리라 그래.”
“아, 아니. 다른 손님인데요.”
[새로운 아탈리 국왕의 소문을 듣고 정체불명의 손님이 찾아옵니다.]
“…???”
* * *
태현은 손님을 똑같이 안내했다. 아까와 똑같이 로브로 전신을 뒤덮은 수상한 모습!
태현은 확신했다.
“저건 100% 암살자다. 두 번이나 아닐 리 없지.”
“…….”
“…….”
“자, 케인. 신호 보내면….”
“싫어, 이 자식아! 이번엔 네가 하라고!”
한 번 속은 케인은 학을 뗐다. 이번에도 암살자 아니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휙-
손님이 로브를 걷어치우자, 탄성이 튀어나왔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신성력과, 뒤에 달려 있는 흰색 날개!
천사!
“천, 천사다!”
“천사 처음 보는데…!”
“진짜로 있었네요!”
[성스러운 종족, 천사를 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신성력이 크게 오릅니다.]
[스탯이…]
어떻게 보면 악마보다 더 보기 힘든 종족이 천사였다.
대륙에서 신들이 전부 떠나고, 악마들은 마계로, 천사들은 천계로 떠난 이상 천사를 볼 일은 없었다.
악마들은 대륙을 탐내고 계속 마계에서 기어 나오려고 하니 만날 일이 종종 있었지만 천사는 그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느 신의 천사지?’
하도 등쳐먹은 교단들이 많은 데다가, 아키서스가 호감형 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경고합니다. 아키서스를 좋아하는 신은…]
‘알고 있으니까 조용히 해.’
굳이 아키서스를 좋아하는 신이 없다고 강조해 주는 친절한 카르바노그!
-애들아. 공격 준비해라.
-?!?!
어떻게 보면 악마보다 더 긴장하는 태현이었다.
“대륙의 위대하신 영웅인 폐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그래. 잠깐 거기서 더 다가오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태현!
“저는 천사, 요하스라고 합니다.”
“어느 신을 모시지?”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특정 인간을 지원한다는 게 밖에 새어나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매우 수상한데.’
자기 이름을 안 깐다는 말에 태현의 경계심이 급격히 상승했다.
[카르바노그가 저 천사를 수상하다고…]
‘알아, 알아.’
“흠흠. 그래서…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지?”
“?”
“?”
태현과 천사는 서로 의문에 찬 시선을 던졌다.
“설마 아무 지원도 안 갖고서 온 건 아니지?”
뒷말에 ‘악마도 갖고 왔는데’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제가 여기 온 건 숭고한 목적 때문입니다. 폐하.”
“지원은?”
“무릇 신들은 여러분들을 굽어살피시기에 마계의 악마들이 여러분들을 타락시키려고 할 때에도….”
“아, 지원은 진짜 안 갖고 왔냐?”
“…물론 지원도 갖고 왔습니다.”
“휴. 다행이군. 쫓아낼 뻔했네.”
[천사 요하스가 당신의 소문을…]
[천사 요하스가 소속된 교단에서 당신의 평가가 하락합니다.]
[더 이상 평가가 하락할 수 없습니다. 하락하지 않습니다.]
“…….”
알 필요 없었던 정보까지!
“폐하. 폐하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이제까지 온 적 없었던 유혹들이 폐하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중 가장 사악한 것이 악마의 유혹입니다. 악마가 찾아오지 않으셨습니까?”
“흠. 글쎄. 잘 모르겠네. 요즘 사람들이 워낙 사악해서 말이야. 맞다. 저기 오스턴 왕국에 길드 동맹이란 단체가 있는데 악마들이랑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이 있더군.”
쉴 틈도 없이 잽을 찔러넣는 태현!
어떻게든 나중에 길드 동맹한테 더 엿을 먹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태현이었다.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그 악마의 속셈은 뻔합니다. 속으시면 안 됩니다.”
“뭐지?”
태현은 살짝 기대했다. 안 그래도 수상했는데, 천사가 정보를 알려준다면….
“폐하에게 달콤한 악마의 힘을 보여주어 타락시키려는 겁니다!”
“…그, 그게 다인가?”
좋은 거 아냐?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타락이라니 얼마나 사악합니까!”
“힘만 받고 입 싹 닦으면 안 되나?”
“한번 힘을 받아들이면 거절할 수 없게 됩니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음. 한 번만 받고 자르면 될 것 같은데… 그보다 요하스. 내가 악마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악마가 구체적으로 뭔 계획을 꾸미고 있고 어디 소속인지 좀 말해줘 봐.”
“말해주시면 주의하시겠습니까?”
“그럼, 그럼~ 물론이지. 내가 얼마나 악마를 무서워하는데.”
[최고급 화술 스킬을…]
[요하스가 설득에 넘어갑니다!]
“원래 이건 비밀입니다만….”
‘이건 비밀이지만~’으로 시작하는 요하스의 말을 들으며, 태현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천사는 쉽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