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82화
실제로 앨콧의 말을 들은 길드원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마오쩌둥하고 덩샤오핑… 네….”
길드원 대부분이 중국인인 상황. 너무 과감한 닉네임이긴 했지만, 용납 못 할 닉네임은 아니었다.
-정말 두 분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해서 지었나 보다.
-사상이 가득한 사람이군!
물론 태현은 어이가 하늘로 솟구치기 직전이었다.
-너 돌았냐??? 지금 복수하려고 이러는 거냐?
-아, 아니야! 진짜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고! 난 중국인 이름 잘 모른단 말이야!
-넌 길드 동맹 소속 놈이 중국인 이름 하나 제대로 못 지어낸다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니, 난 길드 동맹 소속이어도 외국인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 애들 이름 다 비슷비슷해 보인단 말야! 기억나는 게 그거밖에 없었어!
앨콧도 억울했다. 정말로 안 떠올라서 유명한 이름을 따온 건데 어쩌란 말인가.
가명을 <쑤닝>으로 지을 수도 없고!
-애초에 왜 우리를 중국인으로 소개시키려고 한 건데?
-그야 위험하니까 그렇지! 안 그래도 난 길드 동맹에서 외국인이라 의심이나 견제 많이 받는 편이라고.
길드 동맹 자체가 워낙 중국인들이 많은 길드다 보니, 앨콧 같은 외국인들은 여러모로 손해를 봤다.
물론 앨콧은 랭커였으니 대놓고 손해 보는 건 없었지만, 태현과 같이 퀘스트를 한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워졌다.
해적의 유배지에 갇힌 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잘 변명해서 해결했지만, 그래도 찜찜한 건 찜찜한 법!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수상한 둘과 같이 있다는 게 들킨다면?
소문이나 의심이 늘어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태현과 케인을 수상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가장 좋은 게 국적!
오스턴 왕국에서 플레이하는 중국인 플레이어라면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갔다.
“닉을 왜 그렇게 지으셨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존경심 때문이죠.”
“엄청 존경합니다!”
태현과 케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답에 길드원 중 몇몇은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면 앨콧 님은 이 두 놈… 아니, 두 분을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
처음 봤을 때는 ‘저놈들은 뭐하는 미친놈들이지’란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호의의 눈빛이었다.
“오스턴 왕국에서 돌아다니다가 만났는데 쓸 만해서 같이 움직이고 있지. 그보다 그걸 왜 묻냐? 지금 그게 중요하냐? 내 시간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처음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만약 저희 길드원이 아니면 저희 길드에 받아줄 수도 있으니….”
“그건 내가 알아서 위에 말하면 되니까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 응? 죄송할 일을 하지 말라고.”
“잘못했습니다!”
‘자식 성질 더럽네.’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까 굽신거리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성질을….
“마오쩌둥 님.”
“…아, 아! 나였지! 그, 그래.”
“혹시 저희 길드에 들어오고 싶으시면 말해주십시오. 닉 멋있습니다!”
“패션도 멋있습니다.”
“…….”
케인은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심란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것들 어떻게 못 떨쳐내나? 빨리 죽여야 서로 편하다고.
-그게 말이 쉽지, 안 들키고 어떻게 죽여?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안 되는데.
-위험한 곳에 끌고 가서 밀어버리자고. 너 때문에 마수 산란장 부화 못 돕고 있잖아.
태현은 투덜거렸다.
원래라면 마수 산란장에 있는 알들에게 영양분을 듬뿍듬뿍 줘야 했는데,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한 짓이었냐?! 왜, 왜 그러는 거야! 안 그래도 잡기 힘든데 더 잡기 힘들어지잖아!
-그러라고 하는 건데? 야. 내가 길드 동맹을 방해해야 하겠냐, 방해하지 말아야 하겠냐?
-방해해야 하겠지….
괜한 질문을 했다!
태현이 휴전을 맺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앨콧은 그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김태현이 그런 걸 신경 쓰는 인간이 아니지!’
“자. 그러면 다시 시작해 보자고. 나는 사디크의 화신을 추적하기 위해 이 지하를 뒤지고 있어. 지하를 뒤지다 보면 사디크의 마수 산란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콰직! 콰지직!
길드 동맹에서 온 길드원들은 일단 마수 산란장의 알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케인은 속으로 울었다.
-크윽! 김태현! 저걸 지켜보기만 할 거야?
-지켜봐야지 뭐.
-넌… 마음이 아프지도 않냐! 내가 쟤네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태현은 케인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이 산란장들을 추적하다 보면 화신이 숨어 있는 은신처나 거주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만약 찾지 못하더라도 산란장을 다 때려 부수면 사디크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어. 마수들이 다 사라지면 화신도 자기가 직접 나서겠지.”
“좋은 생각 같습니다, 앨콧 님!”
“저 NPC들도 그래서 준비한 거군요.”
앨콧은 혼자 있지 않았다. 지나온 통로 뒤에 광부 NPC들이 있었던 것이다.
산란장을 찾기 위해 광산에서 고용한 NPC들!
“그래. 얘네들이 이런 거는 잘 파지. 그렇지만 너희도 왔으니 같이 파야겠지? 그래야 빨리 되니까.”
앨콧은 말과 함께 삽과 곡괭이를 꺼내 길드원들에게 던졌다.
다 같이 해야 통로가 빨리 만들어졌다.
“자, 휘둘러!”
“…….”
길드원들은 불만 섞인 표정이었지만, 누구 하나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퍽, 퍼퍽-
자리에 모인 모두가 곡괭이를 휘둘러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 오옷!”
“오오오옷!”
남들과 유난히 구분되는 한 남자!
마오쩌둥, 아니 케인이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대체 어디서 배우신 곡괭이질이십니까?”
[광부 던튼이 당신의 곡괭이질에 감탄합니다!]
[에어포른 광산에 당신의 소문이 퍼집니다.]
“혹시… 제 스승님을 뵐 생각 있으십니까?”
<희귀 직업-에어포른 광부 전직 퀘스…>
“필요 없어!”
태현이 농담 삼아서 한 말이, 점점 더 현실로 와닿고 있었다.
쾅!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벽의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새로운 마수 산란장이 나타났다.
“!”
“정말 일정 거리만큼 있군요!”
길드원들은 감탄했다.
-야, 적당한 곳으로 꼬셔서 죽일 생각을 해야지!
태현은 구박했다. 앨콧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좀만 더 기다리면….
물론 태현은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태현은 재빨리 손을 움직여 꿈틀거리는 마수의 알 하나를 건드렸다.
-신의 예지!
지금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건드리고.
-<깨어나라>!
언령 스킬까지 사용해서 마수의 알을 깨웠다.
-사디크의 화염 룬!
마지막은 사디크의 권능 스킬까지!
그러자 결과는 확실하고 빠르게 나타났다.
[사디크의 마수가 알에서 깨어납니다!]
“앨콧 님! 마수가 깨어납니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까! 광부들은 뒤로! 나머지는 앞으로!”
앨콧은 마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길드원들을 앞으로 보냈다.
암살자인 앨콧이 탱커 역할을 하면서 전선을 유지시킬 수는 없는 법.
길드원들은 앨콧이 뒤로 돌아서 마수들을 찌를 시간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시간을 벌어라!”
“예!”
길드원들은 단단히 진형을 유지했다.
-끄에에에엑!
어설프게 깨어난 마수가 분노의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좁은 산란장, 거대한 마수, 게다가 태현의 버프 덕분에 화염 버프까지!
상대하기 안 좋은 조건이란 조건은 다 달고 있었다.
그러나 길드원들은 겁 먹지 않았다. 앨콧이 있었으니까.
꽝!
[거대한 충격을 받아 뒤로 물러납니다. 잠시 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크으….”
“앨콧 님! 빨리 공격해 주세요!”
“지금 간다!”
꽝! 꽝!
다시 이어지는 공격. 한 번 버티자 마수의 공격은 더 매서워지고 사나워졌다.
“앨콧 님!”
“간다니까! 돌아보지 말고 앞에 집중해!”
“앨콧… 으헉!”
꽝, 꽝, 꽝, 꽝!
결국 두들겨 맞던 길드원 중 한 명이 사망!
“아니, 일 제대로 안 하고 뭐하냐!”
“앨콧 님! 빨리… 크악!”
하나둘씩 쓰러지는 길드원들!
태현과 케인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팝콘을 뜯기 시작했다.
“헉헉. 간신히 끝냈다.”
“훌륭했어, 앨콧!”
“맞아! 박진감 넘치는 연기였어. 다른 사람들은 뭐에 당했는지도 모를 거야!”
“…….”
앨콧은 한숨을 쉬었다. 싸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기분이었다.
“보낸 길드원들이 전부 로그아웃 됐으니 퀘스트에서 뭐라도 보여줘야 해.”
“걱정 마. 그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넌 우리 일이나 도와주면 돼.”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기분인데….’
앨콧은 점점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태현이 도와주면 확실히 천군만마의 도움이긴 한데, 나중에 들킬 경우에는 확실히 목을 조를 것이다.
‘에이, 이미 늦었지.’
“자. 그러니까 근처에 털 만한 놈들이나 좀 알려줘.”
“…….”
잠깐 고민한 앨콧이었지만 결국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손해 보는 건 그가 아니었으니까!
* * *
앨콧이 정보를 공유해 주자 태현과 케인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뛰었다.
물론 앨콧한테도 위에서 압박이 날아왔지만, 앨콧은 퀘스트 핑계와 상대가 너무 빨리 도망친다고 변명을 했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마수를 부화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란장을 발견할 때마다 최대한 마수에게 먹이를 주고 키워댔다.
그걸 본 앨콧이 계속 기겁한 건 덤이었다.
“후. 좋아. 이쯤 털면 됐고… 그러면 이제 사디크를 찾아볼까?”
태현의 말에 케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속삭였다.
“야. 그런데 우리는 안 도와주는 게 낫지 않아? 산적질하는 게 더 낫지 않나? 나 재미 들렸는데.”
아까부터 계속 마수를 성장시켜서 뿌리고 있는 태현이, 사디크의 화신을 찾아서 처리하려는 앨콧을 도와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산적질은 잠깐 멈춰서 쉬어야 해. 이렇게 날뛰면 다들 몰려오게 되어 있거든. 그리고… 사디크의 화신은 결국에 쓰러지게 되어 있어. 애 자체가 불완전한 데다가, 교단도 없잖아. 빠르냐 늦냐의 문제일 뿐이지. 그러면 차라리 앨콧처럼 배신자를 한 명 잘 만들어놓는 게 좋다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확실하게 앨콧을 섭외하려는 태현!
“무엇보다 사디크의 화신을 앨콧 혼자서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잖아. 난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어쨌든 일이 어떻게 끝나더라도, 앨콧은 확실히 우리를 거스르지 못하겠지.”
“그렇군…!”
케인은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산란장을 찾으며 돌아다니던 셋.
[사디크의 은신처를 찾아냈습니다!]
[깊은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침입자를 막아냅니다.]
“!!”
새롭게 굴을 파서 도착한 곳은 마수 산란장이 아닌 은신처였다. 드디어 다른 곳이 나타난 것이다.
“됐어! 됐다고!”
앨콧은 뛸듯이 기뻐했다. 밑바닥에서부터 단서 조각을 모으고 일을 진행시켜서 퀘스트를 해냈을 때.
그때만큼 기쁜 순간은 없었다.
“좋아. 간다. 김태현! 네가 있어서 이렇게 든든한 적은 처음이야.”
“하하. 뭘 그렇게까지.”
태현은 앨콧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녀석. 무럭무럭 자라거라.’
은신처의 입구로 들어가자, 거대한 지하 동굴의 모습이 눈앞에 들어왔다.
강 대신 흐르는 건 뜨거운 용암이었고, 천장에서는 괴상하게 생긴 사디크의 소형 마수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하던전 <사디크의 은신처>에 입장하셨습니다.]
[<사디크의 은신처>는 사디크의 화신이 힘을 회복하기 위해 만든 간이 성소입니다. 사디크의 화신이 불러낸 마수들이 이 주변을 지키고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서투른 짓을 할 경우에는 사디크의 화신이 깨어나 신의 분노를 보여줄 것입니다.]
앨콧은 망설였다. 솔직히 이 정도 되는 퀘스트는 혼자서 깨기 힘든 퀘스트였다.
원래라면 길드의 지원을 받아가며 깨는 퀘스트!
‘김태현하고 케인이 있으면… 깰 수 있을지도 몰라.’
원래 퀘스트는 적은 인원이 먹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앨콧은 길드를 부르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