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81화
“어… 어떻게?!”
케인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야….
-헉!
잡아떼야 하는 상황에서 무심코 대답해 버린 것!
저런 대답은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현은 혀를 찼다. 이미 부정하기엔 늦었던 것이다.
“그래. 김태현 맞다.”
“그러면 저 이상한 놈은 케인인가?”
“…….”
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무슨 스킬이라도 쓴 건가?”
“아니, 그냥 느낌이 들어서 찍어본 건데.”
앨콧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그도 여기서 태현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사디크의 화신을 쫓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데 왜 갑자기 김태현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느낌으로? 그게 가능해?”
케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외모도, 장비도, 다 달라진 상황. 그런데도 느낌으로 사람을 맞추다니.
그러고 보니 앨콧은 유명한 암살자 플레이어였다. 그쯤 되면 저런 초감각이 생기는 걸까?
케인이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앨콧은 설명에 나섰다.
“아니. 모두 가능한 건 아니고 김태현만 그런 건데….”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 중 김태현만 알아볼 수 있다…?”
앨콧을 쳐다보는 케인의 눈빛이 기묘해졌다.
이 새끼 이거 완전 스토커 아냐?
‘잠깐. 생각해 보니 이 자식 길드 동맹이면서 김태현한테도 협조 잘했었잖아? 정말 스토커인가?’
앨콧이 들었다면 억울해서 돌아버렸을 의심을 하는 케인!
케인이 그러는 사이 앨콧과 태현은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널 보는 순간 소름이 쭉 돋았거든. 그래서 설마 했지.”
“뭐… 뭐?”
케인은 다시 기겁했다. 저거 정말….
“음. 이런 방식으로 날 알아볼 줄이야.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겠어.”
“그냥 우기면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괜찮지 않겠어?”
“그럴지도 모르겠어.”
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앨콧은 스스로 뿌듯해했다.
김태현과 마주치고서 이렇게 태연하게 대할 수 있다니!
과거의 상처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심지어 존댓말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대할 수 있었다.
이걸 다른 사람들이 봤어야 했는데! 특히 크로포드 같은 놈이!
화염 마법사 랭커인 크로포드는 볼 때마다 놀리고 있었던 것이다.
“넌 근데 여기 무슨 일이냐?”
“난 투기장 뛰고 있었는데….”
길드 동맹에서 구박하는데도 빠져나오지 못한, 아키서스 투기장의 매력!
앨콧은 거기서 우승 한 번 하겠다고 계속 매달려 있었다.
-한… 한 번만 우승하게 해줘!
물론 도미닉이 사달을 일으키기 전의 이야기였다.
“거기 공성전 때문에 닫혀서 다른 퀘스트 하러 왔지. 맞다. 혹시 나 투기장 이용권 남는 거 있으면 줄 수는….”
“없어.”
“그, 그래. 없으면 어쩔 수 없고.”
바로 쪼그라드는 앨콧이었다.
“무슨 퀘스트길래?”
“뭐? 너 몰라? 사디크 화신 찾아서 토벌하는 퀘스트인데.”
“아. 그거.”
“오스턴 왕국에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전부 다 떴다고.”
앨콧이 사디크의 화신을 추적하고 있는 이유는 꼭 길드 동맹이 시켜서는 아니었다.
사디크의 화신이 바로 잡히지 않고 피해가 점점 커지자, 국경 근처에 있는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두 왕국 플레이어들 모두에게 퀘스트가 뜬 것이다.
<사디크의 화신을 토벌하라-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
교단은 몰락해도 신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디크의 교단은 몰락해서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사디크의 화신은 부활에 성공해 대륙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광폭한 신의 화신을 막지 않는다면 대륙에는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
왕국에서는 이 위기를 해결할 용사를 구하고 있다. 이 위기를 해결할 경우 커다란 보상을 받으리라.
보상: 국왕과의 직접 대면 후 결정.
-!!
-이… 이거, 작위 퀘스트 아니냐?
-국왕과의 대면 후 결정하는 거면… 작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추측이지만 꽤 가능성 높은 추측이었다.
중앙 대륙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에랑스 왕국의 귀족 작위!
오스턴 왕국처럼 피폐한 상황도 아니고, 아탈리 왕국처럼 이리저리 찢어진 상태도 아닌, 그런 멀쩡한 에랑스 왕국의 작위에 눈빛을 빛내는 사람들은 많았다.
앨콧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넌 근데 길드 동맹 소속인데 에랑스 왕국 영지를 받아도 되냐?”
“영지 있으면 좋은 거지! 땅은 무조건 좋은 거야!”
‘아버지하고 비슷한 소리를 하는군….’
앨콧은 일단 받고 나서 생각할 모양이었다.
길드 동맹 입장에서도 앨콧이 오스턴 왕국을 떠나서 입는 아주 조금의 손해보다, 에랑스 왕국에 알짜배기 영지를 얻어서 들어오는 이익이 컸다.
‘김태현 녀석 진짜 몰랐나?’
앨콧은 속으로 생각했다.
보아하니 태현은 정말 사디크의 화신 관련 퀘스트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만약 태현이 불러낸 거였다면 저렇게 무심할 리가 없었다.
‘역시 사디크의 화신은 김태현이 한 짓이 아니었군. 길드 놈들이 너무 예민해졌어. 저거까지 어떻게 김태현이 했겠어.’
몇몇 길드원들은 ‘저거 김태현이 한 거 아니냐, 선제공격 해야 한다, 지금 해야 한다!’로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길드원이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저건 못하지’ 같은 식으로 넘겼지만!
“그런데 사디크 화신 토벌로 온 게 아니라면,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냐? 너희들 여기 와서 좋을 거 없을 텐데.”
처음 보는 산적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둘. 앨콧은 의아해했다.
“그게….”
“음….”
“?”
그 순간 앨콧에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길드 동맹의 간부들이 보낸 귓속말이었다.
“…….”
귓속말로 설명을 듣던 앨콧의 안색이 변했다. 혜성처럼 나타나서 깽판을 치는 산적 2인조라니.
-듣고 있는 거 맞지, 앨콧? 웬 같잖은 두 놈이 나타나서 난리인지 모르겠어. 네가 처리를 해줘야 할 것 같아!
-어….
-어? 좋다는 거지?
-어….
케인은 갑자기 벙어리가 된 앨콧을 보고 물었다.
“쟤 왜 저래?”
“흠. 표정을 보니 귓속말로 날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군.”
“?!?!?”
앨콧은 기겁하고, 케인도 놀랐다.
‘여기는 다 미친놈들밖에 없나??’
한 놈은 눈빛만 봐도 누군지 알아채고, 다른 한 놈은 표정만 봐도 뭔 말을 들었는지 눈치채는, 소름 끼치는 육감의 세계!
“어… 어떻게….”
“나 보면서 표정 굳히길래 혹시나 해서 짚어봤는데 역시나였군. 진짜 길드 동맹이 명령하디?”
“아, 아차!”
앨콧은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딱 잡아뗐어야 했는데!
그 모습을 본 케인은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꼈다.
‘자식… 그 마음 이해한다.’
사람이 아무리 머릿속으로는 미리 생각을 해놔도 저런 경험을 하게 되면 반사적으로 반응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하긴 뭐… 너도 암살자 랭커고… 길드 동맹이 시켜도 이상할 게 없지.”
“하, 하하. 그렇지.”
“그래. 잘 가라.”
태현은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걸 본 케인도 무기를 뽑아 들고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난 네가 마음에 들었는데….”
“잠깐, 잠깐, 잠깐! 왜! 난 공격도 안 했어!”
“이제 할 거 아니야.”
“나, 나는 널 공격 안 해! 내가 왜 널 공격하겠어!”
“날 공격 안 하더라도 내가 어디 있는지, 산적 듀오 정체가 뭔지는 말하겠지. 너무 슬프군, 앨콧. 난 널 믿었는데 그렇게 낱낱이 위에 보고를 해버리다니….”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 것처럼 가정해 버리는 태현!
그 모습에 앨콧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아니라니까!”
“지금은 안 했지만 곧 할 거 아니야. 그러면 내 마음이 아플 거고, 그러면 그걸 풀기 위해 널 찾아서 족쳐야 하는데… 나중에 하면 귀찮으니까 지금 하는 거지. 앨콧. 나도 마음이 아프다. 얌전히 맞아주라.”
“공격도 안 하고 보고도 안 해! 날 믿어줘!”
앨콧은 진심을 담아 외쳤다. 그걸 본 케인은 생각했다.
‘얘는 왜 길드 동맹 소속인 랭커가 김태현만 보면 저렇게 분노조절을 할까? 소문만 들어보면 엄청 성질 더러운 놈이라던데. 소문이 잘못된 건가?’
태현 앞에서는 자동으로 분노조절이 되는 앨콧이었지만 케인이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정말이야?”
“정말!”
“만약 약속을 어기면 널 쫓아가서 죽인 다음에 리스폰 한 곳으로 찾아가서 계속 죽이고… 아니다, 굳이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지. 판온 1 때처럼 해주마.”
오싹!
한 줄로 사람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태현이었다.
앨콧은 다급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제야 태현과 케인은 무기를 집어넣었다.
‘살, 살았다….’
* * *
목숨을 구했지만 앨콧의 위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태현과 케인이 앨콧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봤다는 말은 하지도 말고, 우리 찾았다는 말은 하지도 마라.”
“계속 찾다가 못 찾았다고 하면 되겠네! 내 핑계 좋지 않냐?”
“맞다. 길드 동맹 물자 중에 좀 비싼 거 있으면 공유 좀 해봐.”
“비싼 거 입고 다니는 놈 있으면 걔도 좀 말해보고. 탱커 위주로 알려주라.”
“…….”
앨콧은 속으로 둘을 욕했다. 이런 강도 새끼들….
“잠깐, 잠깐. 나도 핑계가 필요하다고. 나 정도 되는 랭커가 너희 둘 같은 뉴비 산적을 못 찾았다는 게 말이 되겠어?”
“하긴….”
“지금 내가 사디크 화신 찾고 있는 퀘스트 중이니까, 그 퀘스트 핑계를 대고 못 한다고 할게.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뭐 그 정도라면야 허락해 주지.”
“고… 맙다?”
“뭘 별걸 가지고 다.”
말하는 사이 앨콧에게 다시 귓속말이 날아왔다.
-앨콧. 알겠어. 그만 튕기라고. 내가 아끼는 길드원들 보내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퀘스트 일단락하고 그 산적 놈들 좀 추적해 줘. 현상금 걸긴 했는데 너만 한 사람이 없잖아. 사디크의 화신도 문제지만 이 건방진 산적 두 놈한테 따끔하게 맛을 보여줘야 한단 말이야.
앨콧의 애매한 대답을 오해한 길드 간부!
-아, 아니. 안 보내줘도 되는데?
-뭐? 이미 보냈어. 다 왔을 거야.
-뭐, 뭐?!
앨콧은 기겁해서 둘을 쳐다보고 말했다.
“야! 길드원들 여기로 오고 있대!”
케인은 그 말을 듣고 분노했다.
“뭐?! 그 사이 일러바쳤냐?! 이런 개자식! 널 믿었는데! 친근하게 생각했는데!”
“뭔 개소리야! 모르고 오는 거야! 그 누가 봐도 ‘나 산적이에요’ 하는 복장 벗고 최대한 다른 복장으로 갈아입어! 너희 그런 거 잘하잖아!”
둘은 상황을 깨닫고 후다닥 갈아입기 시작했다.
태현이야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가면까지 있었으니 쉬웠지만 케인은 이런 거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가장 특이하고 안 쓰는 장비들!’
그 결과 완성된 전위적인 패션 그 자체!
타다닷-
“앨콧 님! 계십니까!”
“도우러 왔습니다!”
딱딱하고 예의 바른 태도. 굴 밖에서 길드 동맹의 길드원들이 공손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앨콧의 성질이 더럽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트집 잡히면 안 돼.’
‘알고 있어. 앨콧 님은 성질 까다롭다고 하셨으니까.’
“들, 들어와라!”
“?”
앨콧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굴 안으로 들어가니 처음 보는 두 플레이어가 있었다.
한 명은 도적 플레이어였고, 한 명은….
“…???”
“????”
도저히 직업을 알 수 없는 괴상한 복장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패션 뽑기’ 콘테스트를 하면 나올 것 같은 복장!
“앨, 앨콧 님. 저 둘은… 누굽니까?”
“내, 내 친구들이야.”
“친구들? 어떤 분이십니까? 저희가 이름을 들어 본 랭커분들입니까?”
당연히 들어봤겠지만, 그걸 지금 말하는 순간 앨콧은 ‘저 배신자 새끼 매달아라!’ 꼴이 날 가능성이 컸다.
길드 동맹 소속은 아니어도 친한 편이었던 장쓰안도 태현과 같이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욕을 먹고 있는데….
앨콧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가명, 적당한 가명을 떠올려야….
“쟤네는 랭커는 아니고… 어… 마오쩌둥하고 덩샤오핑이야.”
“…….”
태현은 앨콧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저 미친놈이 가명을 뭐 저딴 식으로 짓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