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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679화 (679/1,826)

§ 나는 될놈이다 679화

단 둘이었지만 정체불명의 2인조의 실력은 대단했다.

느구라고 불린 플레이어는 넓적하고 투박한 산적용 칼을 휘둘렀는데, 그럴 때마다 한 명씩 로그아웃됐다.

다른 한 명, 느가는 화살을 쏘고 마법을 날려도 멈추지 않고 덤벼들었다. 마치 걸어 다니는 요새 같았다.

“으악! 저놈 여기로 오잖아! 막아!”

창을 든 길드원 셋이 케인을 향해 덤벼들었다.

푸푸푹-

[<노예의 근성>…]

[매우 높은 체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핏속에 흐르는 악마의 피가 약한 공격을 튕겨냅니다!]

일반 공격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케인의 스탯과 스킬!

거기에 저번 대족장 퀘스트 때 악마에게 오염된 탓에 이런 스탯들은 더 높아진 상태였다.

모습은 추했지만!

“크하하! 내가 바로 느가다! 난 산적왕이 될 남자다!”

“…….”

뒤에서 싸우고 있던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라곤 했지만, 저 대사는 좀….

“히이익!”

그러나 그런 패기에 길드원들은 오히려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산, 산적왕이라니. 그런 직업이 있나?”

“어… 전설 직업 아닐까?”

‘그런 거 없어. 바보들아….’

버티던 길드원들이 하나씩 나뒹굴자, 남은 길드원들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태현은 굳이 쫓지 않고 뒤에서 외쳤다.

“우리 이름을 잘 기억해둬라! 느구, 느가! 앞으로 산적 플레이어라고 하면 우리 둘이 떠오를 테니까!”

“갔냐?”

“갔다. 챙기자.”

태현은 수레로 돌아와 아이템을 확인했다. 질 좋은 강철 주괴는 물론이고 각종 화살부터 시작해 무기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음?’

그냥 강철 주괴면 모를까, 이 소모 아이템 세트들은 뭔가 좀 다르게 느껴졌다.

어딘가에 필요해서 갖고 가던 아이템들 같았던 것이다.

‘아. 뭔지 알겠군.’

지금 길드 동맹이 이런 물자를 옮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사디크의 마수들!

사디크의 화신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놈이 남긴 마수들은 국경 지대에 나타나 요새와 마을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길드 동맹은 피눈물을 흘리며 대응하고 있었다.

-어쩌다 오스턴 왕국에 자리를 잡아서 이 고생을!

물론 오스턴 왕국밖에 플레이어들이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였지만, 정말 오스턴 왕국은 저주받은 땅이었다.

안 그래도 왕자들의 내전 때문에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NPC들이 준 상태였는데, 거기서 또 플레이어들끼리 싸움을 벌였다.

게다가 김태산 같은 놈들은 아예 역병 지대를 만들고 떠났고, 간신히 기껏 통일을 시켰다 싶으니 사디크의 마신까지 등장!

판온에서 가장 저주받은 왕국이라고 봐도 좋았다.

‘음. 이런 걸 뺏다니 살짝 미안해지는데….’

“끙끙. 김태현. 이거 양이 너무 많은데.”

“챙길 만큼 챙기고 나머지는 땅에 묻어. 이동 속도 느려질 정도로는 챙기지 마. 땅에 묻어 놓으면 나중에 다시 가져갈 수 있으니까.”

“너 정말… 많이 해봤구나….”

* * *

-화살 언제 옵니까?

-보냈으니까 기다려.

-지금 강철 없어서 대장장이들이 손가락만 빨고 있습니다.

-강철도 보냈으니까 기다려.

-느레, 느페 형제를 따라하는 놈들이 나타났어요!

-지금 마수가 요새 벽 부쉈는데 고칠 재료가 없어서 나무로 때우고 있어요!

-보냈다니까!

-느레 느페 따라하는 놈들이 나타났다니까요!

-아 어쩌라고!

-그놈들한테 털렸다고요!

-?!?! 뭔 개소리야!

요새로 물자를 보낸 길드 동맹의 간부는 당황했다. 어떤 간덩어리가 부은 놈들이 길드 동맹을 건드려?

판온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니, 모든 플레이어가 길드 동맹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적어도, 오스턴 왕국 내에서 길드 동맹을 건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싸움이 벌어지면 길드 동맹은 그 힘을 제대로 보여줬던 것이다.

마찰이 생기면 길드원들을 전부 불러서 짓밟아버린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길드 동맹을 건드릴 수 없었다.

가끔 미친놈이 나오긴 했지만 그런 놈들은 보통 처참하게 당해 게임을 접었다.

접을 때까지 쫓아가서 PK!

그게 길드 척살령의 무서움이었다.

-지금 가까이 동원할 수 있는 게 누구야? 에이젠 파티지? 에이젠 파티 보내서 추적하라 그래! 죽인 다음 위치 확인하고. 쫓아가서 또 죽여서 단단히 혼을 내줘!

간부는 이를 갈며 명령을 내렸다.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그 틈을 타 이런 일을 벌이다니.

이 쥐새끼는 반드시 벌을 내리겠다!

* * *

쉬익- 퍽!

[모라 시 근처에 출몰하는 도적단을 모두 해치웠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공적치 포인트가 오릅니다.]

“잘 쏘시네요.”

“어렸을 때부터 쏴서 자신 있거든요. 사실 잘하는 게 이거밖에 없어요.”

“활 하나면 충분하죠. 그것도 못하는 사람들 많은데요.”

이다비는 유지수와 함께 모라 시 주변을 돌며 일반 퀘스트들을 깨고 있었다.

모라 시가 한 번 살라비안 교단에 점령된 덕분에, 근처 치안이 많이 안 좋아진 상태였다.

덕분에 원정대 플레이어들에게는 퀘스트가 쏟아져 내렸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린다’라는 신조를 가진 이다비는 당연히 움직였다.

그러자 유지수도 도와주겠다고 따라온 것이다.

‘으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도와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다비는 살짝 걱정이 됐다.

유지수와 이다비는 공통점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유지수는 딱 봐도 잘 사는 집 아가씨 같았고, 성격도 착하고 순해 보였다.

이다비를 존경하고 있긴 했지만 이다비는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다.

‘파워 워리어 길드 운영하는 걸… 존경하면 좀….’

파워 워리어 길드원이면 편하게 대하겠지만, 태현이 아는 동생인데 ‘우리 같이 파워 워리어 길드 광고나 하면서 돌아다닐까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다비도 양심이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고민하던 이다비였지만 의외로 대화는 쉽게 풀렸다. 공통된 화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태현 오ㅃ… 선배가 요리에 독을 풀고 참가자들을 약화시킨 다음 길드원들을 싸움 붙였다고요?”

“그랬다니까요. 그런 다음에는 전부 다 잡아버렸죠. 저도 처음에는 그럴 줄 몰랐는데….”

유지수가 계속 묻자, 이다비는 태현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발랍 시 투기장!

생각해 보니 그녀의 인생이 전환점을 맞은 곳이 거기였다. 거기서 태현을 만났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 사람인지는 정말 상상도 못했지!

“그때도 케인 씨하고 같이 있었네요.”

“저, 저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케인 씨만 같이 가고….”

유지수는 축 처져서 중얼거렸다. 이번 산적질에도 케인만 같이 가다니.

타이럼 사냥꾼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지만 태현은 ‘너무 눈에 띄고, 궁수 직업은 케인이나 나랑 달리 정체 숨기는 게 힘들어서 안 돼’라고 거절했다.

이다비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이 가고 싶었어요.”

“…?”

유지수는 이다비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다비의 목소리가 너무 쓸쓸해 보였던 것이다.

파워 워리어 길마로서, 목적이 맞아서 태현과 같이 일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아쉬워 보이는 목소리!

‘어…?’

유지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케인보다 훨씬 더 이다비가 태현과 잘 어울렸던 것이다.

이다비를 태현 옆에 놓고 생각하니 안 맞는 게 없었다. 성격도 잘 맞지, 게임도 같이 잘하지, 태현의 일을 이것저것 도와주지….

‘두, 두 사람이 사귀는 거였어?’

사귀는 거라면 이제까지의 행동이 다 이해가 갔다. 같이 다니는 것부터 시작해서 종종 둘이서 따로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

사실 그건 숙소 위에 이다비 가족이 있어서 그런 거였지만….

유지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같은 팀이니까 스캔 터지지 않으려고 비밀로 한 거 아닐까? 난… 그것도 모르고…!’

시작도 하지 못하고 실연당한 기분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보다 둘 사이에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는 게 더 미안했다.

죄책감!

‘나, 나는 어떡하지?’

‘…저 눈빛은 길드원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 종종 보여주던 눈빛인데…?’

* * *

“나는 있잖아. 네가 하는 강도질은 좀 더 화려하고 멋질 줄 알았어.”

케인은 중얼거리며 삽을 휘둘렀다.

[정말로 아름답고 깊은 구덩이입니다!]

[삽질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초급 삽질 스킬이 중급 삽질 스킬로 변합니다!]

어떻게 된 게 싸우는 것보다 삽을 쓰는 게 더 많은 것 같았다.

“뭘 원한 건데?”

“아니, 너 판온 1 영상 보면 막 화려하게 콰쾅! 하고 폭발하고, 함정 파고 나타나고 습격하고….”

“그거 다 누가 설치했겠냐?”

“!”

“원래 화려한 영상 뒤에는 수많은 준비가 있는 법이지.”

둘은 길드 동맹의 에이젠 파티부터 시작해 따라붙는 파티를 몇 개 더 로그아웃시켰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계속 땅을 팠다. 땅을 파는 이유는 많았다.

최대한 땅을 많이 파서 임시 창고를 여럿 만들어 놔야, 나중에 손쉽게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었다.

적들이 많을 때 땅을 팔 수는 없었으니까.

거기에 적들에게 혼란 효과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구덩이는 개조해서 함정으로 쓸 수 있었다. 태현 정도 기계공학 스킬을 가진 사람한테 이런 구덩이는 정말 활용하기 좋은 장치였다.

“그나저나… 너 정말 삽질을 잘하는데? 내가 판온 1 때부터 이런 걸 해봤지만 너만큼 잘하는 사람은 드문데.”

태현은 진심으로 케인을 칭찬했다.

삽을 드는 각도부터 휘두르는 속도까지. 가장 이상적인 자세로 흙을 퍼내고 있었다.

“별로… 칭찬 같지가 않아서 안 기뻐….”

“아니야, 인마. 그것도 아주 좋은 재능이야. 광부 직업을 하지 그랬어. 괜히 약탈자 직업을 해서 고생했네.”

“…….”

케인은 복잡한 기분으로 칭찬을 받아들였다.

[영웅 작품, <둘이 걷다가 셋이 빠져도 모를 구덩이>를 파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삽질 스킬로는 거의 불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삽질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그만…!’

게임 시스템까지 뭔가 놀리는 기분!

턱-

“?”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자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탁탁- 탁!

케인은 세게 후려갈겼다.

[지반의 취약한 부분을 한 번에 찾아 부수는 데 성공했습니다.]

[놀라운 감각입니다!]

[삽질 스킬이 크게…]

“아, 좀!”

와르르-

성질 낼 틈도 없이 바닥이 무너져 내리고, 케인은 아래로 쑥 빠져버렸다.

“?!?!?”

“케인, 너 정말… 삽질의 달인이구나. 너라면 최고급 삽질 스킬, 아니, 전설 삽질 스킬을 노려도 될 거 같은데?”

현재 플레이어들이 갖고 있는 가장 높은 스킬은 최고급까지였다.

최고급을 넘어 전설 스킬을 찍는 순간, 그 스킬을 마스터하게 되는 것이다.

최초이자 최고의 영광!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스킬에 맞는 재능과,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태현은 케인에게서 재능을 보았다. 이제 하다못해 한 번에 저 밑까지 파고 내려가다니.

“개소리하지 말고 구해줘!!”

“알겠어. 내려간다.”

탁-

[사디크의 마수 산란장에 들어왔습니다.]

[뜨겁고 강렬한 사디크의 힘이 침입자를…]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카르바노그가 기겁합니다!]

“오… 이런 곳이.”

태현은 놀랐다.

오스턴 왕국과 에랑스 왕국 국경지대 근처에 계속해서 사디크의 마수가 나타나고 있다는 건 태현도 알고 있었다.

사디크의 화신을 잡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 지옥 같은 소모전!

덕분에 길드 동맹부터 시작해서 에랑스 왕국에 있는 길드들까지 다 사디크의 화신을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이런 마수 산란장이 지하에 있었다니.

넘어져 있던 케인은 일어서서 다가왔다.

벽에 붙어 있는 거대한 알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불길하게 꿈틀거리는 게, 당장에라도 깨어날 것 같았다.

“어떡하지? 불태워야 하나?”

“아니. 불태우면 어떡해! 넌 이 알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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