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75화
그렇게 생각하니 고민이 됐다.
그의 상관은 길드 동맹 좀 먼저 들어왔다는 것 때문에 어깨에 힘주고 다니면서 맨날 구박이나 하는데….
이걸 보고해 봤자 ‘넌 훼방도 못 놓고 김태현을 도왔냐?’라고 까겠지!
그런 거 참아가면서 길드 동맹에 계속 있을 이유가 있을까?
‘중국인들은 모두 길드 동맹 오라고 해서 갔더니… 제대로 된 혜택도 없고 말이야….’
장샨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투덜거렸다.
오스턴 왕국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이 빠져서, 지금 길드 동맹의 하위 등급 길드원들은 일반 플레이어와 별 차이가 없었다.
세금 내고 던전 입장 못하고 시설 이용 제한 걸리고….
‘생각하니까 화나네!’
-야. 장샨. 뭐하냐? 이게 빠져 가지고. 제대로 보고 안 해? 원정은 또 성공했네. 훼방도 못 놔? 어?
장샨이 생각하는 사이 귓속말이 날아왔다. 장샨은 결심했다.
-X까!
-뭐, 뭐? 너 미쳤어?
[상대방을 차단했습니다.]
* * *
태현의 걱정과 달리 영지는 의외로 멀쩡하게 돌아갔다.
가브리엘을 빼고 나머지 11명의 사람은 대부분 제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성기사 이즈 킹의 모젝도 그랬다.
아니, 오히려 모젝이 가장 정상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일단 세금을 내리고 NPC들 불만도 내려가게 치안을 강화시켜야 해. 지금 성벽을 가장 먼저 다시 올려야 하고 그 다음은 요새를… 왜 다들 그렇게 쳐다보지?”
“오올….”
“아니. 솔직히 ‘성기사만 우대해 주자!’ 이럴 줄 알았는데.”
다른 랭커들은 수군거렸다. 모젝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 것이다.
그러자 모젝이 발끈했다.
“날 뭐로 보고!”
“아니… <성기사 이즈 킹> 같은 이름을 가진 길드에 들어가는 사람은 일단 좀 편견을 갖고 볼 수밖에 없지….”
“맞아. 맞아.”
“<성기사이즈킹> 길드는 좋은 길드거든! 이름 빼고는 다 좋은 길드거든!”
모젝은 진심으로 그의 길드가 좋은 길드라고 생각했다. 이름만 빼고.
“자기도 인정하지 않았냐?”
“심지어 이름도 붙여서 불렀어.”
“닥쳐!”
어쨌든 회의는 잘 굴러갔다.
다들 자기가 영지 운영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뻐하고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 이런 기회를 날릴 수 없어!
[통치 회의가 종료됩니다.]
[다음 회의 때까지 영지는 다음과 같은 규칙으로 진행됩니다.]
[……]
그리고 그건 회의에 참가하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원정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크든 작든 감투 하나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감투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내가… 내가 수리할 거야! 비켜!”
“아냐! 내가 수리할 거라고!”
“허허. 싸우지 마라. 너희 둘 다 수리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구나!”
펠마스는 두 플레이어 사이의 분쟁을 해결해 주고서는 지나갔다.
물론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 *
“그런데 살라비안 교단의 대주교는 어떻게 찾지?”
영지에서 자기가 모르는 사이 자기가 통치 회의 12인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에반젤린과 최상윤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걱정 마. 내가 누구야?”
“아ㅆ….”
“뭐?”
“아, 아니야.”
태현이 맨날 에반젤린을 부를 때 부르던 별명이 입에 붙은 것!
최상윤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에반젤린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내 직업이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잖아. 살라비안 교단은 추적할 수 있어.”
에반젤린이 이끄는 뱀파이어 중 한 명이 나서서 <피의 흔적> 스킬을 사용했다.
-여기입니다, 주인님.
“좋아! 이대로 가면 되겠네.”
“와아아!”
최상윤뿐만 아니라 에반젤린을 따라온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1시간 후….
-여기입니다, 주인님.
“저기….”
“이거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 건데?”
“…….”
최상윤과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원망 섞인 눈으로 에반젤린을 쳐다보았다.
한 시간 째 추적만 하고 있는데 적들의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 상황!
“아하하, 하하하하….”
에반젤린은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적들이 생각보다 빨리 도망갔나 본데… 우리가 너무 느린가 봐.”
“그걸 1시간 전에 깨달았으면 안 됐니?”
* * *
“자. 다들 다시 복창해 봐.”
“나는 나가서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다시, 케인만.”
“나는 나가서 헛소리를 하지 않는… 아니 왜 나만!”
“네가 가장 위험하니까 그렇지 이 자식아!”
태현은 케인을 앞에 두고 단단히 주의시켰다.
“인터뷰한다고 신나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생방송 아니어도 재밌는 이야기 나오면 그대로 내보낼 사람들이니까. 알겠어?”
“아. 알겠다니까. 내가 애도 아니고.”
“…….”
“…….”
케인을 제외한 다른 팀원 전원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과연 괜찮을까?’
“신호를 정하는 게 어떨까요? 태현 님이 손가락으로 한 번 찌르면 입 다물고, 두 번 찌르면 말하고….”
“이다비 너까지 왜 그래?!”
태현은 다시 한번 대기실에서 팀원들을 확인했다.
‘코디 괜찮고, 케인 복장은… 음. 멀쩡해. 안 이상하군.’
MBS에서 진행하는, 국내 판온 게임단 인터뷰.
한국 게임단만 나오는 인터뷰지만, E스포츠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절대 가벼운 게 아니었다.
실제로 던전 공략 대회 본선도 과반에 가까운 팀이 한국 팀이었고, 해외 팀이어도 한국인 선수 한두 명쯤은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MBS도 확신하고 있었다. 국내 방송이어도 수많은 해외 사람들까지 이 방송을 보게 될 것이라고.
‘관심이 안 갈 리가 없지!’
“앗. 김태현 선수! 팬입니다.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김태현 씨. 이렇게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김태현 ㅅ….”
태현 팀 대기실을 지나갈 때마다 선수들이 태현을 보고 아는 척을 해왔다.
다른 팀들도 유명한 랭커들과 선수들을 데리고 있었지만, 그것과 차별되는 압도적인 인기!
그뿐만 아니었다. 태현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도 인기가 좋았다. 케인만 빼고.
“나, 나는 누군지 모르겠어?”
케인은 은근슬쩍 선수들에게 물었다.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시지?”
“팀 KL 매니저인가?”
“훈련 코치?”
“케인! 케인이잖아! 이 자식들 일부러 이러는 거지!”
대화를 지켜보던 PD는 소곤거렸다.
“야, 저거 찍고 있지?”
“물론이죠. 크헤헤.”
정말 태현 팀은 알아서 분량을 만들어주는, 걸어 다니는 흥행 보장 수표였다.
태현 본인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모두 캐릭터가 확실!
옆에서 그런 사악한 속셈을 담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선수들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 아아! 케인 선수! 팬입니다!”
“팬인데 왜 얼굴도 못 알아보는데!”
“그야….”
판온 내 캐릭터와 현실 모습이 이렇게 차이 나는 건 케인뿐!
최상윤도 대회에 출전하고 나서는 여장을 풀고 다녔으니 다들 케인만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흥. 됐어.”
“아니. 진짜 팬이에요. 저번 투기장 대회 때 보고 얼마나 멋있었는데요.”
“진, 진짜? 정말이지?”
“그렇다니까요. 맞다. 제가 친구랑 이걸로 싸웠었는데, 혹시 확인 좀 해주실래요?”
“뭔 확인?”
“그때 그 대회에서 그 자폭이 원래 계획하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강제로 떠밀린 건지… 저는 분명 계획하고 합을 맞춘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제 친구는 그게 아니라고 하니까… 그게 말이 돼요? 그런 게 즉석에서 나올 리가….”
“…….”
그러는 사이 태현은 오랜만에 어색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안, 안, 안녕하십니까.”
“어… 네. 안녕하십니까.”
“…….”
“…….”
무겁고 어색한 침묵!
투기장 대회 때는 팀 에이트의 주장, 현재는 유성 게임단의 팀원.
류태수와 마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한테 ‘판온 1 김태현의 사칭이나 하다니! 너는 가짜다!’라고 외친 적 있던 류태수!
판온 1 태현의 광팬으로서 태현한테 가짜 태현이라고 했던 민망함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질 않았다.
“유, 유성 게임단은 좋죠?”
“좋, 좋습니다. 이세연 씨도 훌륭한 리더고….”
“그, 그렇군요. 회장님도 훌륭하시죠. 게임단에 관심도 많고.”
“그, 그건 몰랐습니다. 회장님을 뵌 적 있는데 그냥 진지하신 분이라고 생각했….”
이다비는 그 대화를 보고 자기까지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누군가 저 대화를 구해줘!’
벌컥-
“류태수 씨, 방송 시작 전이니까 와서 대본 한 번 더…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
“이세연 씨!”
“이세연!!”
“?!?!”
태현과 류태수가 모두 반색을 하며 이세연을 반가워하자, 이세연은 당황해서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자식들 뭔 속셈이지?
“뭐, 뭐야. 무슨 속셈이야?”
“아니야. 아니야. 자. 여기 오라고.”
“…?”
태현은 신이 나서 이세연을 끌고 안으로 왔다. 이제야 좀 대화가 멀쩡하게 돌아가겠네!
이세연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그러니까 그게….
이다비는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이세연은 바로 알아차렸다.
‘이 인간들이….’
태현한테 욕한 태현의 광팬과 태현. 둘이 대화하기 어색하다고 자기를 끌어들이다니!
“난 갈래.”
“왜! 조금만! 조금만 더 이야기하자! 던전 공략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쫑긋-
주변에 있던 다른 선수들마저 귀를 쫑긋거렸다.
대회에서 1위, 2위를 다투고 있는 저 두 팀의 리더.
듣기만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됐거든? 둘이 어색하게 대화해.”
“어, 어색하기는 무슨.”
“맞, 맞습니다. 전혀 안 어색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퍽이나 그렇겠다!”
이세연은 태현을 밀어냈다. 그러나 태현은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방송에서 폭탄 가지고 안 놀릴 테니까!”
“진짜? 진짜지?”
“그래. 조금만 더 여기 있어줘!”
그걸 본 PD는 감동으로 눈을 감았다.
김태현은 볼 때마다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PD는 확신했다.
김태현은 방송을 위해 태어난 인재야!
* * *
“이건 좀 짓궂은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요. 하하하. 이번 대회를 앞두고서, 가장 상대하기 두려운 팀이 있나요?”
MC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질문이 나오자 자리에 앉은 게임단 선수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야. 우리 이름 적어줘라.”
“한 표도 없으면 어떡하지?”
짓궂은 질문이었지만 모두들 훈훈했다.
오늘 방송 진행이 편안하고 친근했기에, 이런 짓궂은 질문에도 다들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자. 모두들 쓰셨나요? 자. 순서대로 한 팀씩 들어주세요!”
각자 걱정되는 팀을 화이트보드에 써서 들어 올리는 식.
모두들 팀원들끼리 상의해서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팀 KL.
-팀 김태현.
-팀 김태현.
‘팀 김태현이 아니라 팀 KL인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MC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웃었다.
“여러분. 팀 KL입니다. 김태현이 아니라.”
-유성 게임단.
-유성 게임단.
-유성 게임단….
유성 게임단도 팀 KL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름이 나왔다.
유 회장이 봤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세연도 화이트보드를 들었다.
-팀 KL.
사실 이세연 본인은 굳이 팀 KL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류태수를 포함한 다른 팀원들이 강력히 주장했다.
-팀 KL이 2위 아닙니까!
-근데 쟤 이름 적어주기는 얄미운데….
-주장님!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시면 안 됩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는 건 그쪽이잖아… 알겠어. 알겠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이세연은 포기하고 팀 KL의 이름을 써줬다. 확실히 2위 팀을 적어주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경계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다른 팀을 고르자면 또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내야 했으니….
‘김태현은 우리 팀 이름 적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세연은 태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현은 마지막 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