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74화
영지는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
판온 1 때부터 이어진, 수많은 영주 플레이어들이 한 고민이었다.
정답이란 건 없었다.
영지가 열 개라면 열 가지 방식, 백 개라면 백 가지 방식이 있었으니까.
그 영지의 상황에 맞춰서 통치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영지의 통치는 당근과 채찍을 줘야 하지. 처음에는 이런저런 혜택으로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모으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 다음부터는 본전을 찾으면 돼. 영지에 사람이 많고 혜택이 많으면 세금 좀 많이 걷어도 사람들이 온다고.
-그런데 쑤닝 님. 저희는 처음부터 세금 많이 걷고 있지 않나요? 지금 오스턴 왕국에 저희 길드원들만 득시글거려서 문제인데….
-너 죽고 싶냐?
쑤닝과 길드 동맹.
-영지 통치?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우리끼리 놀고 있으면 같이 놀고 싶은 놈들이 알아서 오겠지.
-맞는 말씀입니다. 형님. 우리는 저기 길드 동맹 놈들처럼 억지로 애들 끌고 오지 않습니다.
-오크 부족이 또 생겼다는데? 저기에 집 좀 지어줘야겠다.
-아니, 오크들은 무슨 눈만 감았다 뜨면 새로 생겨나?
김태산과 최강지존무쌍 길드.
-낚시꾼인가?
-네.
-그럼 환영한다.
-저, 낚시꾼이 아니면요?
-그러면 나가야지.
-…….
-농담이다. 규칙을 설명해 주마. 여기는 세금이 없다. 매일 아이템 상자를 하나씩 줄 테니 받아가라. 이 아이템 상자에는 일회용 고급 낚싯대와 미끼, 포션 세트와 장비가 있는데….
-?????
-왜?
-광, 광고가 허위 광고가 아니었어?!
유 회장이 이끄는 아란티스 영지.
각자 다 개성이 다르고 방식이 다른 영지들이었다.
중앙 대륙 말고도 새로 발견된 남쪽 프리카 대륙에 진출해 영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있긴 했다.
오스턴 왕국에서 밀려난 길드들이나, 에랑스 왕국, 에스파 왕국에서 활동하던 길드들이 노리는 시도였다.
왕국이 없고 부족들만 있으니 영지를 만들긴 비교적 쉬웠지만….
역시 중앙 대륙보다는 사람들이 적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잘 알려지고 많은 정보가 공유되는 중앙 대륙을 선호했지,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프리카 대륙을 선호하진 않았다.
게다가 필요한 레벨도 전체적으로 더 높았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현재 수도 모라 시는 많이 파괴된 상황(주로 태현이 이끈 공격 때문에).
복구하려면 어마어마한 골드가 들어갈 것이다.
태현이 보유하고 있는 골드는 일반 플레이어들보다는 압도적이었지만, 이건 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운영으로 들어갔다.
퀘스트 깨면서 얻은 골드, 다른 플레이어들 PK해서 뺏은 아이템 판 골드, 영지에서 나오는 골드….
이걸 다 잡아먹는 영지 운영비!
골드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골드.
‘그렇지만 아무래도 길드 동맹처럼 할 수는 없겠지.’
길드 동맹이야 이미 데리고 있는 길드원들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서버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들을 등에 업고서 나오는 힘!
그러니 세금을 엄청 세게 때리고 차별 대우를 해도 버틸 수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오스턴 왕국을 떠나도 길드원들이 있으니 왕국이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길드원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긴 했지만 그 정도면 싸게 먹힌 편이었다.
그렇지만 태현은 저런 식으로 조직화된 길드원이 없었고, 데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
‘길드 동맹도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하단 말이야. 기껏 오스턴 왕국 다 먹었는데 사디크의 화신이 나타나서 그 난리를 쳤으니….’
태현이 보기에는 참 안타까웠다.
저런 상황이라면 쑤닝의 대응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물론 원인 제공을 한 태현이 할 생각은 아니었다.
‘세금을 높일 수는 없고… 어떻게 해야 한다….’
고민하던 태현은 결론을 내렸다.
* * *
“여러분!”
“??”
태현이 내성 성벽 위에 나타나자, 도시 안에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태현을 주목!
“이번 원정은 성공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 모든 게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래서 저는….”
“고블린 만능 제작기 이용권을 뿌리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시무룩-
기대한 플레이어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태현은 당황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걸 주려고 하는데!
“이 도시를 여러분들과 함께 운영하려고 합니다.”
“?”
“?????”
플레이어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태현의 말이 너무 뜻밖이었던 것이다.
“공적치 포인트를 계산해서 높은 사람들부터 앞으로 나오십시오! 이 도시에서 원하는 자리를 드리겠습니다!”
[모라 시를 자유도시로 만들겠습니까?]
-예.
[모라 시는 자유도시로 변합니다. 자유도시의 통치는 12인 통치 회의에서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됩니다.]
[통치 회의는 최소 매달 한 번씩 열려야 하며, 열고 싶으면 과반의 인원을 모아 열 수 있습니다.]
[통치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귀족 작위나 명예로운 칭호가 있어야 합니다.]
[도시 내에 귀족 작위를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통치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도시 내 공적치 포인트 순위에 따라 결정됩니다.]
태현이 직접 다스리는 게 아닌, 이번 원정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 중 공적치 포인트가 높은 12명을 뽑아 그들에게 영지 통치 권리를 부여하는 형식!
도시 내 귀족 NPC들이 깡그리 없어진 상태여서 플레이어들한테 공이 돌아간 것이다.
“우…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정말요?”
“물론이죠.”
태현은 상냥하게 웃었다.
그러나 사실 속은 못 먹는 감, 남한테 떠넘기는 것에 가까웠다.
어차피 아탈리 국왕 즉위 퀘스트는 태현만 할 수 있었고, 국왕 즉위만 하면 자유도시든 뭐든 태현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플레이어들이 직접 통치하게 된 이상, 저 플레이어들은 알아서 자기 주머니를 털어 도시를 수리하고 발전시킬 것이다.
‘게다가 공적치 포인트 순위 높은 놈들이면 보통 랭커겠지. 가진 골드도 많고 길드도 있을 테니 탈탈 털어서 다스리지 않을까?’
“근데 공적치 포인트 1위 누구지?”
“글쎄… 순위 확인을….”
터벅터벅-
사람들 사이에서 한 명의 플레이어가 나왔다.
저, 저건…!
“제가 1위입니다. 태현 님!”
“그… 그래.”
1위는 가브리엘이었다.
외성과 내성 성벽을 모두 때려 부수고 길을 만든 공적치 포인트!
태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다음 사람은?”
“난데?”
얼마 지나지 않아 통치 회의에 참가할 사람 12명이 모였다.
가브리엘, 에반젤린, 케인, 유지수, 이다비, 최상윤, 정수혁….
“…….”
태현 일행이 7명이 넘는 상황!
‘아니. 돈 좀 뜯으려고 했더니….’
“크헤헤. 김태현. 우리가 공적치 포인트로 비교해도 지지 않을 줄 알고 일부러 비교한 거구나? 공정한 것처럼 보여주려고.”
“시끄러. 인마.”
“?!”
케인은 눈치 없이 말했다가 괜히 한 소리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머지 5명은 외부인이었다는 점이었다.
각자 다 다른 길드 소속에, 전원 랭커!
그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정말 저희가 통치해도 됩니까?”
“의견만 맞으면 뭘 해도 상관없으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와… 정, 정말로….”
꿀꺽-
랭커들이라고 해도 간신히 하위권 랭커에 발을 디딘 수준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
‘정말 영지를 통치할 수 있는 건가?!’
‘이런 기회가…!’
‘뭐… 뭐부터 해야 하지?’
다들 복잡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런 와중에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
“그런데… 저놈은 첩자 아닙니까?”
“뭐… 뭐가 어때서!! 모젝 대신 온 거야!”
성기사 이즈 킹 길드의 모젝.
이번 원정에서 공적치 포인트 12위로 통치 회의 마지막에 낀 사람이었다.
물론 일대일 결투에서 죽고 로그아웃 당한 상태라, 같은 길드의 친구가 대신 참석한 상황!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의심쩍은 눈빛으로 봤다.
“성기사 이즈 킹 길드는 수상쩍은데….”
“우리 저놈 쫓아내는 투표할래?”
“너무하잖아! 같이 싸운 동료인데! 편견을 버리라고!”
“편견을 버리라고 해도 저 길드명부터가 수상쩍었어.”
수군수군!
태현은 회의장에 모인 인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망한 거 같군.’
“태현 님. 그래도 한 가지 좋은 게 있어요.”
“?”
“저희가 과반이라 마음만 먹으면 통치는 마음대로 할 수 있겠네요.”
“…!”
이다비의 말을 듣고 태현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그런 효과가!
* * *
“다음. 음. 자네는… 뭘 원하나?”
공적치 포인트 12위한테까지만 혜택이 있는 건 아니었다.
현재 모라 시의 온갖 작위가 빈 상태였다.
수비대장, 마구간 관리인, 연금술사 상점 관리인, 대장장이 길드 대표….
평소라면 이런 작위는 온갖 퀘스트를 깨고 깨야 간신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작위였다.
예를 들어 수비대장 자리를 얻고 싶으면 영지 수비 관련 퀘스트를 계속 깨서 NPC와 친해지고 공적치 포인트를 쌓는 식!
그런데 태현은 이걸 그냥 휙휙 보상으로 던져주고 있었다.
다들 미친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저, 저는 마구간 관리인! 마구간 관리인 해보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몬스터 길들이기 스킬을….”
“합격!”
“?!”
지원한 플레이어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아니, 뭐 더 안 물어봐요?”
“왜. 뇌물이라도 줄 생각인가?”
이번 일을 맡은 펠마스는 진지하게 물었다.
줬으면 좋겠다!
“아, 아니요. 제가 감히, 태현 님의 친절한 선물에…!”
“쳇.”
“방금 쳇이라고?”
“아냐. 어쨌든 합격! 저리 가! 쉭쉭!”
에드안은 왕궁을 털러 갔는데 자기는 이런 잡일이나 하고 있다니.
그래도 펠마스는 투덜거리며 일 처리를 해냈다. 평소 영지 관리를 하던 가락은 어디 가지 않았다.
“다음. 자네 이름이….”
“장, 장샨입니다.”
“그래. 장샨. 자네는 뭘 하고 싶나?”
“지금 수비대장 자리가 비었나요?”
“1, 2, 3은 찼고 4 수비대장은 비었네.”
“하고 싶습니다!”
“그래. 해라.”
펠마스는 바로 합격을 찍어서 보냈다.
[모라 시 4 수비대장 작위를 얻었습니다.]
[4 수비대 NPC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수비대 인원을…]
[……]
정말 바로 뜨는 메시지창!
장샨은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는….
길드 동맹이 보낸 첩자였던 것이다.
‘아, 아니.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지?’
길드 동맹이 시킨 건 그냥 ‘야, 가서 이번 원정 관찰이나 해라. 들키지 말고. 훼방 놓을 수 있으면 최대한 놓고.’였다.
여기서 제대로 지킨 게 별로 없었다.
관찰은… 별로 제대로 본 게 없었다.
콰콰콰콰콰쾅 하더니 성벽 무너지고 사람들 우르르 달려가고, 내성에서 싸우더니 원정이 끝나버렸다.
차라리 파워 워리어 길드 홍보 영상이 더 설명이 잘 되어 있을 것이다.
훼방?
훼방은커녕….
-야. 김태현이 속이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너 뭐야! 너 뭐하는 놈이야!
도중에 김태현을 못 믿고 내성으로 들어가려는 놈이 나왔을 때, 오히려 놈을 공격했다.
-너 성기사 이즈 킹 길드 놈이냐?
물론 자기가 걸릴까 봐 한 짓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으면 안 됐다.
어떻게든 분란을 일으키는 게 훌륭한 첩자!
‘으… 보고하면 욕 더럽게 처먹을 거 같은데….’
장샨은 괴로워했다. 한 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4 수비대장 정도나 되는 작위 얻었으니까 이거 보고하면 쓸 만하지 않을까?’
4 수비대장 작위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이 새끼는 첩자로 보내놨더니 공적치 포인트를 얼마나 쌓은 거야?’라는 반응을 하겠지만….
‘잠깐. 4 수비대장이면 길드 동맹에서 내 위치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 아닌가?’
장샨은 문득 깨달았다.
원래 위치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앉아버린 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