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71화
그걸 본 케인이 입을 벌렸다.
“자기도 놀랄 정도로 강한 아이템이라는 거야? 저걸 어떻게 이기냐…?”
“아니, 저건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반응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한테서 많이 본 반응 같은데?
물론 가장 많이 당황한 건 도미닉이었다.
아탈리 왕가의 왕관을 넣고 의식을 진행했는데 나온 건 처음 보는 의수 두 짝!
“…?????”
[도미닉이 극도로 당황합니다.]
[일시적으로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
태현은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다.
에드안 너 이 자식…!
‘대단한 놈 같으니!’
설마 에드안이 훔쳐 갖고 나온 왕관 때문에 의식을 막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괜히 구박했네!
그렇다면 지금 할 건 하나뿐.
“공격 개시!”
“폐, 폐하! 정신 차리십시오! 뭐하시는 겁니까!”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가 당황한 목소리로 도미닉을 불렀다. 흉흉한 기세로 덤벼드는 태현 일행과 기사단까지.
지금은 도미닉의 힘이 필요했다.
“어디를 감히… 여기는 살라비안 님의 땅이다. 저리 썩 꺼지지 못할까!”
대주교는 분노해서 거대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블러드 골렘들이 우르르 튀어나오며 길을 막았다.
“뚫어! 지금 패야 한다!”
“교단의 전사들이여, 지금 여기로 당장 오너라!”
대주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법진을 그려 근처에 있던 교단원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군세에 태현은 이를 악물었다. 빨리 뚫고 가서 죽여야 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왕궁 안뜰의 넓이가 있어서, 밖에서처럼 무자비한 소환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대신, 대주교는 양보다 질에 집중했다.
소환수와 교단원을 향한 어마어마한 버프 주문들!
-피의 오라, 끓어오르는 피, 증오의 신념….
[살라비안 교단의 정예 블러드 골렘을 쓰러뜨렸습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살라비안 교단의 정예 블러드 골렘을 쓰러뜨렸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콱! 콰콰콱!
다른 플레이어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폭딜을 넣으며 길을 뚫는 태현이었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뚫는 만큼 새로 보충되는 교단원!
거기에 계속해서 대주교가 강화를 넣고 있었다.
‘젠장. 뚫고 넘어갈 방법 없나? 위아래로 다 덤벼드니….’
태현이 전열에서 이탈해서 뒤를 돌았다가는 당장 일행이 밀릴 것 같았다.
그만큼 여기 모인 교단원들은 무시무시했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태현이 앞에서 미친듯이 날뛰고 있었고, 거기에 기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벽 개시!”
-기사의 장벽!
쿠쿠쿵-
자세를 잡고 대열을 맞춘 기사들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요새였다.
덤벼들던 살라비안 괴수가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쿠당탕-
-꽤애애액! 꽤애액!
“쏴!”
유지수의 호령에 타이럼 사냥꾼들은 일제히 괴수의 급소를 노렸다.
“눈 노려 눈! 가죽 질 떨어진다!”
‘저놈들은 이 상황에서 가죽 질을 따지나?’
케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무기를 휘둘렀다. 이상한 놈들이긴 했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이런 싸움에서 든든한 원거리 딜러들이 있다는 건 정말 숨통이 트였다.
케인과 에반젤린, 기사단이 앞에서 막고.
그 바로 뒤에서는 최상윤과 태현, 이다비가. 그리고 가장 뒤에는 정수혁과 유지수가 이끄는 사냥꾼들까지.
태현 일행의 조합도 만만치 않았다. 살라비안 교단을 뚫고 들어가진 못해도 밀리진 않았다.
“대주교님. 지금 도착했습니다!”
“어서 와라. 저 놈들을 찢어버려라!”
“!”
뒤늦게 살라비안 교단의 간부들이 추가로 도착했다.
겉모습만 딱 봐도 하나하나가 정예인 준보스 몬스터들!
‘이런….’
아티팩트 같아 보이는 코트를 입고 기괴하게 웃음을 흘리는, 한 손이 갈고리인 뱀파이어 해적.
머리가 두 개 달린, 살라비안 교단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뱀파이어 사제.
생김새가 거의 괴수나 다름없는, 전신에 달린 수십 개의 팔에 온갖 무기를 달고 있는 뱀파이어 전사.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친숙한 데스 나이트.
정말 무시무시한 교단의 간부들이 다 여기 모여 있었….
“응?”
태현은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마지막 간부를 다시 확인했다.
저건… 골골이였다.
뭔가 많이 받아먹은 것처럼 때깔이 고와지고 신수가 훤해지긴 했지만….
-!
“!”
멀리서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골골이는 태현과 눈이 마주쳤다.
-너 뭐하냐??
-주, 주인님. 설명을 들어주십시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입니다….
골골이의 해명은 눈물겨웠다.
‘흑흑이 그 새끼가 절 버리고 간 탓에’로 시작되어서, 살아남기 위해 얼떨결에 뱀파이어 사제가 소환한 정예 몬스터인 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태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살아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 도망치고 있거나 두들겨 맞고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교단 안에서 일하고 있을 줄이야.
게다가 지금 불러낸 걸 보니 그사이 공을 세워서 간부의 말단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니 뭔… 저렇게 쓸데없는 데에 능력을 발휘하냐 쟤는?’
차고 있는 목걸이와 갑옷은 살라비안 교단에게 상으로 받은 아이템들!
태현은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지금 중요한 건 골골이의 살라비안 교단 출세기가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골골이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골골아!
-예! 주인님!
-찔러!
-예? 누구를 말입니까?
-누구겠냐. 대주교를 찔러!
-…진, 진짜 찌릅니까?
골골이는 기겁했다. 지금 주변에 대주교, 도미닉, 간부진 전원이 있는데….
찌르는 순간 골골이는 잘 다진 고깃덩어리, 아니, 잘 다진 뼛조각이 될 것이다.
-넌 죽어도 시간 지나면 다시 소환되잖아.
-그래도 이게 보통 괴로운 게 아닙니다만….
-골골아. 거기서 명예롭게 죽을래, 아니면 내 손에 더 아프게 죽을래?
[최고급 화술 스킬이…]
[협박에 성공했습니다!]
-지금 찌르겠습니다!
-네 충성심이 날 기쁘게 하는구나!
골골이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대주교가 골골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데스 나이트군. 소문은 들었다. 도미닉 폐하께서 소환해서 그런지 아주 영리하고 강해. 소환수는 소환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야.”
골골이는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간부들은 원정대 놈들을 처리해라. 특히 저 김태현 놈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저놈을 무너뜨리면 원정대는 무너진다.”
“하지만 놈의 힘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상한 힘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아마 그 사악하고 더럽고 비열하고 야비하고 치사한 아키서스의 힘이겠지. 걱정 마라. 살라비안 님께 받은 내 권능의 힘으로 아키서스의 힘을 막아보겠다. 데스 나이트. 넌 나를 지켜라. 이번에도 공을 세우면 내가 직접 축복을 내리겠다.”
끄덕-
다시 골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묵직한 모습이 대주교의 마음에 쏙 들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 계신 살라비안 님의 혼이여….
시작만 들어도 불길한 주문 영창!
대주교는 강력하고 긴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건 써지기 전에 막아야 했지만, 살라비안 교단도 이런 대마법을 쓸 때 대주교가 약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주교를 둘러싸고 방어에 들어갔다.
정말 바늘 하나 들어가기 힘든 철저한 방어!
“대주교… 대주교! 지금 뭐하고 있나?”
그사이 혼란에서 깨어난 도미닉이 대주교를 불렀다. 대마법을 준비 중인 대주교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주교님께서는 지금 강력한 마법을 준비 중이십니다.”
“이 상황에?! 위험하다!”
“걱정 마십시오. 폐하께서 소환한 데스 나이트가 직접 지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뭐?”
도미닉은 양손에 의수를 들고 멍청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 순간 골골이가 번개 같은 속도로 검을 뽑아 들고 대주교의 가슴팍을 찔렀다.
푹!
“?!?!?!?!?!?!”
“크아아악!”
“아니 이런 미친!”
“저, 저 미친놈이?!”
[마법을 준비 중인 살라비안 대주교를 공격했습니다. 마법이 폭주합니다!]
[살라비안의 분노가 이 근처를 덮칩니다!]
콰아아아아아앙!
대주교를 중심으로 핏빛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살라비안 교단의 전사들은 물론이고, 간부들 전원이 휘말렸다.
[데스 나이트, 골골이가 커다란 타격을 받고 소환이 해제됩니다!]
[골골이를 다시 소환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언데드 소환에 필요한 힘을 많이 모을수록 시간이 짧아집니다.]
-으아악! 주인님!
그 옆에 있던 골골이도 바로 사망!
[살라비안 교단의 뱀파이어 해적…]
[살라비안 교단의 백 개의 팔을 가진 뱀파이어 전사…]
[…가 사망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골골이의 레벨이 오릅니다.]
[골골이의 레벨이…]
“와, 미친.”
싸우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멈추고 멍하니 뒤를 지켜보았다.
살라비안 교단의 진형이 완전히 붕괴되고 있었다. 정말 살벌한 마법 폭주였다.
“어… 근데 우리도 튀어야 하지 않을까?”
점점 커지는 핏빛 회오리! 태현은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신의 예지!
아껴두었던 권능 스킬들을 사용해 방어!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이 펼쳐지자, 안으로 들어오려던 핏빛 회오리는 빠르게 약해졌다.
“이쪽으로!”
태현은 신의 예지로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였다.
덕분에 핏빛 회오리는 살라비안 교단 간부들과 전사들, 괴수들만 쓸어버렸다.
[살라비안의 분노가 끝납니다.]
“다, 다 죽었나?”
그러나 아니었다. 난장판 사이에 도미닉 혼자 서 있었다. 도미닉이 차고 있는 반지가 선홍빛을 발하며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아키서스 놈…! 내가 너부터 죽였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정말 맞는 말!
“자비를 구걸하려면 지금 구걸하는 게 좋을 거다. 이제 내가 널 찢어 죽일 테니까!”
도미닉은 붉게 물든 눈으로 태현을 노려보며 의수를 꺼냈다.
“왕관이여! 내게 힘을!”
“아니, 그거 왕관 아니야!”
“닥쳐라, 아키서스 놈. 그 혓바닥으로 어디까지 속이려고 하느냐!”
[설득에 실패합…]
“이렇게 모습이 변한 것은 분명 살라비안 님의 뜻이 틀림없도다! 이 의수! 널 이 의수로 찢어 죽이라는 뜻이겠지!”
“…….”
태현은 말없이 <오스턴 왕가의 오리하르콘 석궁>을 꺼냈다.
화살을 준비하면서 이번 원정에서 쓸 양이 될까 걱정했었다.
쏠 수 있는 화살은 하나인데 죽여야 할 놈은 너무 많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마법 폭주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철컥-
[카르바노그가 지금 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응? 왜?
[카르바노그가 저 의수가 공격을 막아낼 것이라고 합니다!]
-…진짜?
대도적(자칭) 에드안이 차고 다니던 장비에 그런 효과가?
아니, 살라비안의 힘이 담겨서 그런가?
태현은 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일단 카르바노그도 신이었으니까.
그러는 사이 도미닉은 의수를 착용했다.
철커덕-
[살라비안이 남긴 혼의 조각이 도미닉에게 깃듭니다.]
[<도적의 의수>가 살라비안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됩니다.]
[도미닉이 폭주합니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악!”
도미닉은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온몸의 옷이 찢어지더니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어째서! 어째서! 왕관을… 분명 왕관이라면 견딜 수 있다고…!”
“아니, 그거 왕관 아니라니까.”
“죽이겠다… 아키서스! 죽인다! 아키서스! 죽인다! 아키서스!”
[<살라비안의 혼에 잠식당한 도미닉>이 분노합니다.]
[도미닉을 처치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괴물은 왕궁을 불태우고 아키서스의 화신을 죽이러 올 겁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핑!
태현은 주저하지 않고 석궁을 당겼다.
누구든지 간에 변신 직후가 가장 약하고 당하기 쉽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
퍽!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