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70화
에반젤린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빨리 가자니까? 뭐해?”
“갈 거야! 꿍얼꿍얼… 같은 호구인 줄 알았는데….”
“?!”
케인의 수상쩍은 투덜거림과 함께, 둘의 왕궁 내부 공략은 시작되었다.
* * *
[의식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붉은 힘이 당신의 HP를 빨아들입니다.]
‘아. 진짜 신경 쓰이네.’
케인은 HP 상태를 확인하며 움직였다.
<아키서스의 노예>라는 강력한 직업의 스킬.
거기에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얻은 각종 아티팩트 아이템들.
그 두 가지가 아니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정도로 HP 감소 속도가 높았다.
태현이 한 가지 놓친 것은, 태현이 왔을 때보다 의식이 더 진행되었다는 것!
덕분에 케인만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근데 쟤는 왜 저렇게 태연하지?’
케인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지금 에반젤린도 HP가 쪽쪽 빨리고 있을 텐데….
설마 에반젤린이 케인보다 훨씬 레벨이 높고, 스킬과 장비도 더 좋단 말인가?
케인은 분했다. 그래도 태현 일행에서는 언제나 그가 NO.1 탱커였는데…!
그런데 굴러온 돌 에반젤린한테 밀릴 줄이야.
‘크흑. 평소에 더 열심히 연습할 거 그랬어. 김태현이 스킬 레벨 올리라고 할 때 한 번이라도 더 올릴걸….’
분함 다음에 오는 것은 자기반성!
“너 괜찮아?”
“괜, 괜찮지. 난 끄떡없어! 하하! 이 정도로는 몇 날 며칠을 있어도 된다고!”
“그래? 난 직업이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라 여기서 페널티를 안 받거든. 근데 넌 아니니까 페널티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견딜 만한가 보네?”
“뭐… 뭐?”
케인은 충격 받은 얼굴로 에반젤린을 쳐다보았다.
직업 특성으로 페널티를 안 받다니!
“왜?”
“이… 배신자!! 너 혼자 들어가!”
“?!”
그러는 사이 복도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침입자를 막아라!
“블러드 골렘!”
핏덩어리를 뭉쳐서 만든 것 같은 덩치 큰 골렘. 뱀파이어 마법사들이 잘 부리는 소환수였다.
바로 정체를 알아본 에반젤린이 외쳤다.
“조심해!”
“흥. 나도 이런 골렘 정도는 몇 번 상대해 본 적 있는 사람이거든? 너 기계공학 골렘 상대해 본 적 있냐? 내가 말이지… 억!”
[괴력으로 인해 튕겨 나갑니다!]
가드를 올리고 안심하고 있던 케인은 블러드 골렘의 일격에 뒤로 날아갔다.
쿵!
[괴력으로 인해 충격 상태에 빠집니다.]
[<노예의 근성>으로 저항에 성공합니다.]
[강한 공격을 맞는 것으로 <굳건한 신체>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뭐, 뭐야?!”
“여기 있는 골렘들은 밖에 있는 골렘들이랑 차원이 달라!”
“미리 말해줬어야지!”
“말해주는데 네가 앞으로 나간 거잖아!”
케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에반젤린은 슬슬 수상해졌다.
얘 왜 이렇게 멍청해?
대회 때는 분명 안 이랬는데…?
투기장 대회 때 케인은 태현 팀의 선봉을 맡은 탱커로서 그야말로 눈부셨다.
탱커의 역할이면 탱커의 역할.
자기희생이면 자기희생.
다른 팀들의 탱커들 모두가 ‘와, 정말 대단하다’, ‘세계 제일의 탱커는 케인에게 어울리는 칭호다’라고 떠들었을 정도!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뭔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의식이 완료되었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 드디어 살라비안 님의 온전한 힘이 내 손에 들어왔다. 버러지 같은 놈들… 두려워하라! 내가 손수 찢어서 너희들의 피를 마셔줄 테니까!
“…….”
“…….”
케인과 에반젤린은 서로 쳐다보았다. 둘의 생각은 바로 일치했다.
‘X됐다!’
동시에 밖에 있는 태현한테 귓속말이 날아왔다.
-애들아? 내가 메시지창을 잘못 본 것 같은데. 잘못 봤다고 해줄래? 의식이 완료되었다는데?
“…너 때문이야!”
“아냐! 너 때문이야!!”
* * *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노예>를 시킨 건 실수였던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후… 아니야. 케인과 에반젤린은 최선을 다했겠지. 의식을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어.”
퍼퍼퍼퍽!
달려오는 흡혈귀들을 검과 폭탄, 독으로 쓸어버리면서 태현은 말했다.
“그 상황에서 걔네들은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뭐… 걔네들 잘못이 아니야. 책임은 나한테 있어.”
태현의 말을 들은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 제대로 한 거 맞겠지?’
콰아앙!
의식을 막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소득은 있었다.
태현 일행이 왕궁 뜰 앞에서 소란을 피우며 덤비는 교단원과 싸우는 사이, 내성의 성문과 성벽마저 뚫린 것이다.
우르르-
[아탈리 왕궁 수도 내성 3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아탈리 왕궁 수도 내성 1 성문을…]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 성 파괴자를 얻었습니다.]
“오오오… 오오오오!!”
태현이 먼저 걸었던 길을 이제야 뒤따라오는 후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성 파괴자 떴다!”
“드디어 우리도 어엿한 기계공학 대장장이야!”
대장장이들 주변에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존재감 넘치는 미친놈들의 원!
미쳐 날뛰는 대장장이들은 내버려 두고, 플레이어들은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떠들었다.
“지금 들어가도 되나?”
“성벽 무너지고 성문 무너졌으니까 넘어가도 될 거 같은데? 해자 위에 다리만 깔면 되잖아.”
“태현 님! 지금 들어가도 되나요!”
원정대 플레이어들의 물음은 태현에게도 곧바로 들어왔다.
물론 태현은 거절했다.
‘지금 의식이 완료되었다고 떴는데 플레이어들 들어오면 그냥 피주머니 되겠지….’
살라비안 교단 특성상, 수준 안 되는 플레이어들 여럿 와봤자 방해만 될 가능성이 컸다.
“위험하니 안 됩니다! 일단 기사단만 들어오도록!”
그 와중에도 기사단은 어떻게든 안으로 들여보내려는 끈질김!
“아니, 우리는 왜….”
“이 정도면 공 많이 세운 것 같은데….”
두 백작은 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오송 백작이 치열하게 싸우다 영웅적인 죽음을 맞은 게 찝찝했던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펠마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크흠. 저희 김태현 백작님께서는 내성에 가장 먼저 들어가셔서 왕궁을 점령하실 수 있는데도 백작님들에게 이 기회를 양보하려고 하시는 건데… 크흠, 크흠. 뭐 싫다면야….”
“!”
“!!”
“왕좌에 가장 먼저 앉으실 기회를 걷어차다니 정말 어리석… 크흠, 크흠.”
“돌격! 돌격!”
“지금 당장 들어간다!”
남아 있는 전력이고 뭐고 간에 신경 쓰지 않고 눈이 뒤집힌 두 백작!
펠마스는 뒤에서 간사한 얼굴로 낄낄 웃었다.
“태현 님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고? 그러면 기다리지 뭐.”
“김태현이 들어오지 말라면 들어오면 안 되는 거겠지.”
원정대 플레이어들 대다수는 태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멈췄다.
정말 보기 드문 신뢰!
다른 길드의 공성전은 간부들이 ‘정지!’라고 해도 보통 듣지 않았다.
-간부 놈들이 자기들만 먹으려고 저러는가 보다! 우리도 가자! 늦으면 다 뺏긴다!
그렇지만 태현이 이끄는 원정대는 그대로 정지했다. 그만큼 태현에 대한 신뢰가 가득했던 것이다.
“김태현 혼자 먹으려는 거 아냐?”
“왕궁 보물 혼자 털려고….”
그러나 모두가 그러는 건 아니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고, 욕심 많고, 의심 많은 플레이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들어가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수도 왕궁에 있는 보물들을 직접 턴 플레이어들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만큼 왕궁은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다.
“야. 김태현이 속이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너 뭐야! 너 뭐하는 놈이야!”
“너 이 새끼 첩자지! 너 길드 동맹 스파이지!”
“?!”
혼자 가기는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선동을 위해 은근슬쩍 말을 꺼냈는데….
돌아오는 건 너무 격한 반응!
“아, 아니. 누가 스파이야.”
“너 성기사 이즈 킹 길드 놈이냐?”
“아니라니까!”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해!”
“난 그냥….”
옆에서 조용히 이 공성전을 관찰하고 있던 진짜 길드 동맹 첩자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걸 느꼈다.
‘저 미친놈은 왜 갑자기 김태현 욕을 해서 이 난리를 만드는 거야?’
결국 욕심을 낸 플레이어들은 선동을 포기했다. 그러고는 서로 눈빛만 교환했다.
-우리끼리라도 가자!
보물 몇 개만 찾아도 대박, 만약 보스 레이드에 발이라도 담그면 대박, 뭘 해도 대박밖에 보이지 않았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무너진 성벽을 몰래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 * *
“김태현 백작! 도우러 왔네!”
“내가 더 먼저 왔네! 누가 더 빨리 왔나가 중요하지 않겠나!”
이제 곧 의식을 끝낸 도미닉이 등장할 텐데도 호다닥 달려오는 두 백작을 보며, 태현은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저런 호구들은 언제나 태현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백작님들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래… 어. 저 흉흉한 핏빛 기운은 뭔가?”
“살라비안 교단 놈들이 원래 저렇지 않았습니까.”
쾅!
케인과 에반젤린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왕궁 입구를 통해 빠져나왔다.
“미, 미안! 의식을 못 막아서….”
“됐어. 너희들도 최선을 다했겠지.”
“…….”
“…….”
“…왜 대답이 없지? 너희 설마….”
“아, 아니야! 우리 최선을 다했지!”
“맞아! 최선을 다했어!”
태현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뭔가 수상쩍었다.
그러는 사이 왕궁의 천장이 무너지더니, 거대한 핏빛 기둥이 하늘로 쏘아졌다.
그러고는 귀를 찢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찮은 놈들… 너희들이 한 짓거리가 모두 다 무의미한 짓거리라는 걸 깨달아라. 살라비안 님의 진정한 힘 앞에서는 너희의 하찮은 군대 따위는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아. 자식 되게 불안하게 하네.’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한 가지 믿고 있는 게 있다면….
도망칠 자신은 있다는 것 정도!
잡캐 중의 잡캐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직업 스킬을 익힌 것도 모자라 각종 신의 권능 스킬도 빼앗아 익힌 태현이었다.
권능 스킬들은 쓰지 않고 아껴놓은 상태. 이걸 쓰면 태현 한 몸 정도는 빠져나갈 수 있었다.
태현은 최악의 경우 공성전을 포기하고 후퇴할 생각이었다.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보자. 살라비안의 화신 정도 되나? 그건 좀 끔찍하겠지만….’
파아아앗-!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왕궁 뜰 앞에 도미닉과 살라비안 교단의 대주교가 나타났다.
아무런 호위도 없이 단둘이 나타났는데도 그 위압감이 대단했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크크크… 기분 좋군.”
도미닉은 오만한 얼굴로 허공에 떠 있는 핏빛 구(球)에 손을 뻗었다.
“이게 뭔지 아느냐?”
“?”
“이게 바로 살라비안 님의 혼이 담긴 유산이다. 살라비안 교단 궁극의 비의! 살라비안 님이 남기신 혼의 조각을 아티팩트에 담아내는 것이다!”
살라비안이 남긴 혼의 조각.
그리고 그 혼의 조각을 깨울 피와 마력.
마지막으로 그 깨운 혼의 조각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이 세 가지가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의식은 끝났다!”
원래라면 말 많다고 구박했을 태현이었지만 이번에는 참았다.
정보가 필요했으니까!
“정말 놀랍군! 살라비안 교단 대단해!”
[카르바노그가 한심하게 쳐다봅니다.]
“이제 와서 아부해 봤자 늦었다. 김태현 백작. 네놈은 가장 처참하게 죽여주마. 자. 봐라. 이게 바로….”
촤아악-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긴장해서 쳐다보았다. 얼마나 강력한 아티팩트일까? 얼마나 강력하길래 저렇게 호언장담을?
도미닉의 손에 들린 건, 핏빛으로 물들어 꿈틀거리는 두 개의 의수였다.
“저, 저게…!”
“저게 그 살라비안의 의수인가!”
“에반젤린. 저거 들어본 적 있어?”
“나도 들어본 적 없어! 전설에 없는 무기인가 봐!”
다들 경악하고 두려워하는 동안, 정작 의수를 꺼낸 도미닉은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이… 이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