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66화
우르르-
태현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공성 병기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샤아아악-
그걸 본 플레이어들이 거리를 벌린 것은 물론!
“히익. 저 미친놈들 뭐 만드는 거야?”
“눈 마주치지 마! 눈 마주치지 마!”
“엄, 엄마야! 나 쳐다봤어!”
플레이어들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과 눈을 잘못 마주치면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두려워했다.
수도의 성벽 앞에서 원정대가 그렇게 준비를 하는 사이, 성문이 열리고 살라비안 교단의 전사들이 마수를 타고 뛰쳐나왔다.
“이 반역자 놈ㄷ….”
파파파파파팍!
타이럼 사냥꾼들은 누군가 뛰쳐나오자마자 화살을 들고 닥치는 대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
“…….”
플레이어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보통 저렇게 나오면 무슨 말을 하는지 기다리지 않나?
태현도 마찬가지로 황당해했다.
“쟤네들은 정말 가차가 없군. 안 그래? 지ㅅ….”
“…….”
유지수는 들어 올린 활을 당기다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멈췄다.
타이럼 사냥꾼들과 같이 쏘고 있었던 것!
“너도 많이 늘었다?”
“아, 아니. 저는 쏘려고 한 게 아니라요….”
“아니, 뭐 어때. 쏘면 좋지.”
물론 화살을 두들겨 맞은 살라비안 교단의 전사들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막아내고 튕겨내서 데미지는 없지만 기분만은 확실히 더러워졌다.
“비겁한 놈들! 반역자답구나! 너희들은 명예도 모르느냐!”
살라비안 교단의 상급 전사가 호통을 쳤지만, 타이럼 사냥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우! 냄새나는 모기 놈들!”
“살라비안 교단은 모기 교단이래요!”
“뱀파이어들은 대머리! 도미닉도 대머리!”
[유치한 도발에 살라비안 교단의 전사들이 분노합니다.]
[타이럼 사냥꾼들의 유치한 도발을 듣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가끔은 저렇게 유치한 공격도 효과적이구나!
태현은 깨달음을 얻었다.
말싸움에서 밀린 살라비안 교단의 전사들은 호통을 쳤다.
“시끄럽다! 나와 싸울 놈이 있다면 나와 봐라!”
[살라비안 교단의 영웅적인 전사, <피 흘리는 제무반>이 결투를 요청합니다.]
[결투를 거부할 경우 원정대의 사기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결투에서 승리할 경우 원정대 전체에 추가 보너스가 들어갑니다.]
웅성웅성-
지켜만 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메시지창을 보고 떠들기 시작했다.
“나, 나! 나 하고 싶어!”
“태현 님!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이길 자신 있습니다!”
“김태현! 여기 중에서는 내가 레벨이 제일 높을 거야! 날 뽑아줘!”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는, 랭커들과 랭커를 바라보고 있는 고렙 플레이어들이 손을 들고 일제히 나섰다.
이건 기회다!
단순히 태현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뿐만이 아니라, 이 공성전을 지켜보고 있는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
랭커 플레이어든 고렙 플레이어든 모두 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길 원했다.
대회의 성적이든, 판온 내 플레이로든 상관없었다.
명성과 부!
이름을 알리는 순간 그 두 가지는 손에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체를 숨기고 다닌 판온 1의 태현은 특별한 경우였지만, 지금은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우상이 되어 있었다.
가장 성공적으로 판온 1 때의 명성을 계승한 플레이어!
오죽하면 판온 2에서도 태현처럼 얼굴 가리는 신비주의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다 태현의 영향이었다.
“설마 케인을 내보내는 건 아니겠지! 친하다고 케인을 내보내는 건 너무해!”
“맞아요! 김태현 님. 케인이 실력이 좋다는 건 알지만 이건 공정하게 결정해 주세요! 저희들도 못지않다고요!”
결투를 하겠다고 나선 플레이어들에게 태현은 단순히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위치에 서고 싶다!
그 결과 태현한테 따지기보다는 그 옆의 만만한 상대를 먼저 견제하게 됐다.
바로 그 상대는 케인이었다.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결투는 나설 생각도 없었는데 왜 날?
“난 나설 생각도 없었거든 이 자식들아?”
“그렇게 말하면서 태현 님이 시키면 못 이기는 척 쏙 나갈 생각이겠지!”
“맞아! 치사하게! 매번 그랬잖아!”
“영상 봐서 알아! 자기가 직접 안 나서는 척하면서 받을 건 다 받고!”
“너희들은 눈깔이 삐었냐?!”
케인은 울컥했다. 이 자식들은 김태현이 억지로 시키는 것도 못 알아보나?
쾅!
“덤벼! 이 자식들아.”
케인이 바닥을 내려찍으며 외치자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케인을 공격하긴 했지만 케인의 실력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생각이 빠르게 오갔다.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지면 망신인데… 그래도 이기면….
대박!
“좋아! 내가 한… 억!”
콰당탕-
나서려던 플레이어가 넘어졌다.
“어떤 새끼야?!”
“나다. 이 새끼야.”
“헉! 태현 님!”
“난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끼리 알아서 정하고 잘 논다. 니들끼리 할래? 난 빠져줄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원정대에 참가한 일반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는 상냥하고 공손하게 말하던 태현이었다.
그 말투에 익숙해져 있던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아니 갑자기 왜 이래?
그러나 사실 이게 원래 태현의 성격이었다.
판온 1 때 모습!
최상윤은 그걸 보고 침을 삼켰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 멋있어….”
유지수가 중얼거리는 걸 보며 최상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중증이야. 중증.’
끄덕-
이다비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최상윤은 경악했다.
‘이다비 너까지!?’
넌 정상인 줄 알았는데!
“공정하게 정해줄 테니 그만 떠들어라.”
“어, 어떻게?”
“그건….”
사실 태현도 별생각이 없었다. 케인을 내보낼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원래는 그냥 내가 나가려고 했는데….’
이건 태현이 나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태현이 나간다고 하면 아무도 반대는 못 하겠지만, 속으로 ‘아니 너무한 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것 같은 분위기!
이거 하나 정도는 양보해 줘도 상관없었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이 수십 명이 넘는 플레이어 중 어떻게 골라내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크헬헬.”
“???”
모두의 시선이 옆으로 쏠렸다. 이 간사한 웃음소리는 대체?
바로 펠마스였다.
“자리는 하나지만 앉고 싶은 사람들이 여럿이라면….”
펠마스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그 뜻은 하나!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저걸로 하지.”
“!?!?!??!!?”
* * *
-저기… 난 도와줄 뱀파이어들도 끌고 왔고 쟤네들이랑은 다른….
-참가하고 싶으면 돈을 내세요. 에반젤린 님.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하하. 호구… 아니, 고객님한테 반말을 할 수는 없잖아.
-너 방금 호구라고 하지 않았어?!
결국 에반젤린은 씩씩대며 물러섰다.
원래 알고 지냈던 사이든 뭐든 간에 봐주는 건 없다!
살라비안 교단 토벌 퀘스트 때문에 결투에 나서려고 했는데, 나가려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아서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골드 좀 넉넉히 챙기고 다닐걸….’
이번 퀘스트를 앞두고 경매장에서 새 장비를 산 덕분에 골드가 간당간당했다.
덕분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골드를 퍼부을 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져라. 제발 져라.’
‘에반젤린이 뭔가 저주를 하는 것 같은데.’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에반젤린만 저주하는 게 아니었다.
떨어진 모든 플레이어들이 저주하고 있는 것!
‘제발 져라. 제발 져라. 제발 져라….’
오싹!
케인은 몸을 떨었다. 뭔가 음습한 기운이 뒤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성기사 모젝이다! 내가 결투에 나서겠다!”
“성기사 모젝. 나 <피 흘리는 제무반>이 상대해 주겠다! 네 소속은 어디냐!”
“나는 파이토스 교단 소속이다. 그리고 길드는… 음….”
“…?”
방송을 의식하며 각도를 잘 잡고 외치던 모젝이 머뭇거렸다.
제무반도, 다른 사람들도 의아해했다.
왜 말하다가 말지?
“…<성기사 이즈 킹> 길드다!”
길드 이름이 조용한 평원에 드넓게 울려 퍼졌다.
“뭐? 성기사이즈킹 길드?”
“그 공연음란죄 길드? 난 거기 길드 이름 바꾼 줄 알았는데. 아직 안 바꿨었나?”
“그리고 거기 김태현이랑 싸운 거 아니었나?”
“그런 놈이 왜 여기 있어? 스파이 아냐?”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자 당황한 모젝이 손을 흔들며 변명했다.
“김태현! 난 스파이가 아니다! 그, 길드가 싸웠던 건 아주 옛날 일이고 지금 우리 길드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데….”
“우우! 스파이다 스파이!”
“첩자다 첩자! 물러가라 공연음란죄 길드!”
모젝 때문에 탈락한 플레이어들이 시끄럽게 야유하기 시작했다.
모젝이 첩자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저놈이 내 기회를 뺏었다는 것!
-너만 아니었으면!
-맞아! 너만 아니었으면!!
이다비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파워 워리어 길드에 들어와도 참 잘 적응할 거 같아.’
여론이란 건 무서웠다. 한두 명이 시작하면 별생각이 없던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게 되어 있었다.
-스파이! 스파이! 스파이!
-변태! 변태! 변태!
“크흑… 길마 때문이야! 하필 왜 그딴 식으로 지어 가지고!”
모젝은 울부짖었다. 비싼 골드 주고 이름을 떨치러 나왔는데 얻게 된 건 부끄러움밖에 없었다.
“이놈! 날 무시하다니!”
“!”
그사이 무시당한 제무반이 분노해서 돌격했다.
촤아악!
-살라비안의 추가 팔!
등에서 새 팔이 솟아나고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났다.
쾅!
[방패로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데미지가 10%로 감소합니다.]
그러나 모젝은 기습에 당했는데도 방어에 성공했다. 성기사답게 방어를 굳힐 경우 그 단단함은 확실했던 것이다.
“안 돼! 멍청한 짓이야!”
에반젤린은 그걸 보고 외쳤다. 원래라면 저런 식의 방어는 훌륭한 전술이었다.
방어를 굳히고 있다가 상대가 지칠 때 역습!
성기사의 황금 전술 중 하나.
그러나 살라비안 교단은 교단원 전원이 뱀파이어. 그 말은 즉….
촤르륵!
-살라비안의 흡혈!
“억!”
제무반의 몸에서 새로 돋아난 팔이 모젝을 붙잡았다. 그리고 흡혈을 하기 시작했다.
[제무반에게 붙잡혔습니다. 떨쳐내지 않을 경우 계속해서 흡혈당합니다.]
[흡혈로 인해 HP가 감소합니다.]
[흡혈로 인해 HP가…]
“이, 이런…!”
피하거나 아예 스킬을 써서 접근하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한 번 붙잡혀서 흡혈을 당하기 시작하니 성기사의 높은 HP도 무의미!
-파이토스의 눈부신 저항력!
[살라비안의 흡혈이 몸속에 어두운 힘을 불어넣습니다.]
[파이토스의 눈부신 저항력이 실패했습니다.]
‘헉!’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을 잘 알았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모젝은 너무 무모했다. 살라비안 교단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모젝이 태현만큼 임기응변에 능하거나 실력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 정도는 아니었다.
-파이토스의 눈부신 저항력, 파이토스의….
[HP가 5% 미만으로 떨어집니다.]
[매우 위험합니다!]
[살라비안의 흡혈을 푸는 데 성공합니다!]
HP가 5% 채 남지 않았을 무렵에야 모젝은 간신히 스킬을 성공시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미 승부는 정해진 상황!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외쳤다.
“모젝! 튀어! 튀라고!”
“이미 늦었어! 도망쳐야 해!”
“그럴 수는 없어!”
“?!”
“길드 이름까지 말했단 말이야! 쪽팔리게 도망칠 수는 없다고! 길드 이름을 부끄럽게 만들 수는…!”
“모젝…!”
아까까지 야유하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는 순간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그러려면 일단 길드 이름부터 바꿔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