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65화
태현의 영지에서 활동하는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온갖 뜬소문들이 돌아다녔다.
-동상 앞에서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박수 두 번 치면 추가 버프가 들어간다더라.
-아키서스 교단 NPC 펠마스한테 추가 골드 내고서 성수 사면 효과가 좀 더 올라간다더라.
-고블린 만능 제작기 돌릴 때 특정 아이템을 넣으면 보상이 더 좋게 나오는데….
이런 뜬소문들이 돌아다니는 이유는 하나.
아키서스 교단이 판온에서 유일하게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교단들은 선 성향 교단이든, 악 성향 교단이든 대부분 알려진 정보가 많았다.
어떤 스킬들이 있고 어떤 장비들이 있고….
플레이어들은 이런 정보들을 보고 어떤 교단에 갈지, 어떤 퀘스트를 할지 정했다.
그렇지만 아키서스 교단은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교단 특성이 랜덤!
오늘은 이랬던 특성이 내일은 저렇게 바뀌는 일이 흔했다.
안 그래도 적은 정보 때문에 혼란스러운 플레이어들은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혼란스럽고 헷갈릴지언정 아키서스 교단에 한번 발을 디딘 플레이어들은 웬만해서는 교단을 나가지 않았다.
한번 맛을 보면 빠져나갈 수 없는 아키서스 교단만의 맛.
그것은 바로 희박한 확률을 뚫고 대박을 터뜨렸을 때의 쾌감이었다.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나 이기기 힘든 도박에서 이겼을 때나 느낄 수 있는 쾌감!
그 쾌감을 한번 맛본 플레이어들은 아키서스 교단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한 방을 노리며 헤매게 됐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은 이런 뜬소문에 매우 민감했다.
“진짜 김태현 그림을 그리면 완성도가 높게 나온다고?”
“그렇다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검색해 보니까 이건 다들 모르는 거 같더라.”
“에이, 설마….”
화가 플레이어는 친구의 말을 못 믿고 반신반의하는 기색으로 붓을 들었다.
현실에서도 그림을 그리는데 판온에서도 그림을 그리냐는 소리를 듣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현실에서 그릴 수 없는 그림도 판온에서는 그릴 수….
[<사디크의 화신을 때려잡는 김태현>을 완성시켰습니다. 거친 스케치와 질감을 특징으로 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사디크 교단이 이걸 볼 경우 분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수준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그리는 데 성공합니다! 미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영지 내 평판이 오릅니다.]
“오… 오오?!”
“어때. 그렇지?”
“정, 정말 그런가?”
두 화가는 몇 번이고 그림을 그렸다. 전부는 아니지만 확실히 현재 수준에서 만들 수 없는 작품들이 나왔다.
[희귀 등급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떴다!!”
[계속해서 똑같은 그림을 그린 탓에 미술 스킬 성장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윽. 너무 똑같은 것만 그렸나?”
“뭐 좋은 거 없나? 참고하기 좋은 거….”
화가 중 한 명이 판온 게시판에서 <김태현 활약 모음>을 찾아 헤맸다.
“이거 좋다. 참고하기 딱 좋겠는데?”
“<쑤닝을 잡는 김태현>인가. 근데 이것도 중국 애들이 살까?”
“김태현 그림도 샀는데 이것도 사겠지. 중국에도 김태현 팬 있잖아. 그런 거 아닐까?”
“그런가?”
두 플레이어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갔다.
[영지에 <아키서스의 예술관>이 새로 건설됩니다.]
[아탈리 왕궁의 보물들이 <아키서스의 예술관>에 추가됩니다.]
[<아키서스의 예술관>에 작품들을 기부할 경우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어???”
* * *
“존경하는 귀족 여러분! 우리는 이제 반역자 도미닉을 처치하기 위해 출발을….”
영지도 얼추 정리되었겠다, 모든 준비를 끝낸 태현은 귀족들을 불러 출발 준비를 했다.
수많은 플레이어와 각 영지 귀족들이 이끄는 군대. 좀 불안하긴 했지만 숫자만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때 뒤늦게 나타난 한 무리의 일행!
두두두두두-
“뭐야?”
“귀족이 되어서 늦게 오다니. 형편없는 놈이군.”
다른 귀족들은 새로운 귀족이 늦게 온 줄 알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태현은 낯익은 얼굴을 보고 누군지 깨달았다.
저 특징적인 콧수염은….
브랑송 제독!
“김태현 백작! 도우러 왔소. 그런데….”
브랑송 제독은 다른 귀족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태현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김태현 백작. 저자들은 상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군.”
나지막하게 말했다고는 하지만 브랑송 제독은 이런 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그 말은 다른 귀족들의 귀에 쏙쏙 들어갔다.
“무쓴 소리! 브랑송 제독.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그 말은 우리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시끄럽다! 반역자 도미닉한테 왕궁이 더럽혀졌는데도 자기 영지에서 가만히 있던 자들이!”
“브랑송 제독 당신도 나서지 않았잖아!”
“난 바다 위에 있었는데 어떻게 나설 수 있었겠나!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거다!”
브랑송 제독은 경멸의 눈빛으로 백작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백작들은 굴하지 않았다.
“핑계다! 우리도 우리만의 사정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브랑송 제독은 자기는 안 나서면서 다른 사람들은 탓하는 비겁자인가!”
“이, 이 사람들이….”
브랑송 제독은 부들부들 떨었다. 대화를 들으며 팝콘을 먹고 있던 태현은 그제야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자. 여러분.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렴 브랑송 제독님 같은 고귀한 분께서 여러분들을 모욕하려고 저런 말을 하셨겠습니까? 도미닉 때문에 분하셔서 그런 거겠지요.”
“커험. 뭐….”
“크흠. 자기만 분한가?”
“아니, 김태현 백작. 저 사람들 꿍꿍이… 억.”
태현은 브랑송 제독의 옆구리를 날카롭게 찔러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지금은 서로 다툴 때가 아니라 힘을 합칠 때입니다!”
“맞아, 맞는 말이야!”
“김태현 백작이 영웅 아니랄까 봐 뭘 좀 아는군!”
백작들은 희희낙락하며 좋아했다. 태현이 잘 놀아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둘만 남게 되자 브랑송 제독은 다시 한번 간절하게 말했다.
“김태현 백작. 아무리 힘이 부족해도 저런 자들의 힘은 빌리는 게 아니야. 지금은 고분고분해 보여도 나중에는 자네를 괴롭힐 게 분명하네! 자네처럼 성실하고 청렴결백한 사람은 저런 더러운 자들을 상대하기 힘들 게 분명해.”
“??????”
옆에서 출발 준비를 돕던 에드안과 펠마스는 미친놈 보듯이 브랑송 제독을 쳐다보았다.
누가 뭐라고?
-저 사람 누구냐?
-브랑송 제독이잖아.
-요즘은 미친놈도 제독을 할 수 있냐?
-뭐 팔 없는 놈도 도둑을 하는데….
에드안의 양팔에는 다시 의수가 달려 있었다.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이 직접 만들어 준 의수였다.
-이 자식이… 시비 거는 거냐?
-아, 아니야. 하하. 농담이었네. 농담.
-네가 영지에 있는 동안 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아? 의수도 뺏기고… 크흑. 그런데 구박만 하시니….
-그야 돈 되는 건 다 두고 오고 그딴 예술품이나….
-그딴 예술품이라니! 그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물건들이야!
-돈은 아니잖아….
둘의 대화는 무시하고 태현은 다시 브랑송 제독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독님. 걱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도미닉은 살라비안 교단의 힘을 빌려 강해진 상황! 저런 사람들의 힘이라도 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결과로 제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어떻습니까. 반역자를 해치울 수 있는데!”
“김태현 백작!!”
“제독님!”
“자네의 뜨거운 의기는 잘 알았네. 나도 같이 동행해서 도와주도록 하지. 저 귀족들이 자네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도와주겠네!”
“감사합니다!”
[브랑송 제독의 아탈리 왕국 제3 함대가 일행에 합류합니다.]
* * *
“근데 어떤 방식으로 공격할 거냐?”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왕궁으로 접근하는 상황.
태현 일행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런 대규모 공성전을 지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일단 멀리서 닥치는 대로 성벽과 성문을 때려 부순 다음에, 병력을 보내서 성벽을 기어오르든 성문을 통과하든 해야겠지?”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성벽과 성문을 부수는 건 자신 있었다.
그건 태현과 태현 영지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특기였다.
기계공학!
지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신이 나서 잔뜩 폭탄을 싣고 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공성 병기 재료와 글라이더 등 성벽과 성문을 때려 부술 도구가 가득했다.
거기에 저번에 만들었던 <김태현의 추적 파괴 골렘>과 <김태현의 전투 승리 골렘>까지.
<요새 수호 골렘>은 영지에 두고 왔지만 저 골렘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걸어다니는 강철의 거인은 공성전에서 강력한 힘을 보여줄 것이다.
많은 게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태현은 성벽과 성문을 때려 부수는 것 하나에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마법 방어든 뭐든 간에 안 움직이는 건물을 때려 부수는 건 그들이 판온에서 제일!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제 성벽과 성문을 뚫고 들어가면 남은 왕국군과 독기가 잔뜩 오른 살라비안 교단의 뱀파이어들과 괴수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여기서 막힐 가능성이 컸다.
‘지금 전투력 높은 애들이… 파워 워리어 쌍단검 애들은 아직 못 써먹겠고, 새로 들어온 왕국군하고 귀족들이 데리고 온 기사들인가? 에반젤린이 데리고 온 뱀파이어들하고 남은 고렙 플레이어들까지 쓸 수는 있겠군.’
역시 가장 좋은 건 남의 병력을 쓰는 것!
귀족들이 데리고 온 기사들을 쓰는 게 가장 좋았다.
그렇지만 욕심 많은 귀족들이 순순히 선봉을 맡을 리는 만무. 어떻게든 수를 써야 했다.
* * *
“오송 백작님. 선봉을 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커허험. 으음. 내가 선봉을 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는 하지만, 명성으로 보면 김태현 백작에게 밀리고, 데리고 온 기사들의 실력을 보면 다른 기사들에게 밀리고… 다른 사람들이 낫지 않겠나?”
[설득이 통하지 않…]
“아쉽군요. 명예로운 선봉을 맡아주시는 분께 이 수도를 맡아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잠깐. 뭐라고?”
탁-
오송 백작은 돌아서려는 태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태현은 못 이기는 척 돌아섰다.
“네?”
“방, 방금 뭐라고 했나?”
“선봉을 맡아서 가장 커다란 공을 세우시는 분께 이 수도를 맡기려고 했다는 말이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저처럼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이 수도를 맡겠어요? 지금 제 영지 하나 감당하기도 벅찬데.”
꿀꺽-
[오송 백작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을 어길 경우 귀족들 사이에서 악명이 매우 크게 퍼질 수 있습니다.]
[약속을 어길 경우 오송 백작이 당신을 공격할 수 있…]
메시지창들이 경고를 했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 들키면 되니까!
“김태현 백작.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네. 명성은 자네보다 부족하고 기사들은 다른 백작들보다 부족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나서야 했다는 것을!”
“백작님!”
“내가 선봉에 서겠네! 내 기사들을 이끌고!”
“하하. 감사합니다!”
* * *
“부카드 백작님. 선봉을….”
“크흠. 내가….”
“사실 수도를 맡기려고 했….”
“내가 맡지!”
다른 백작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피브레 백ㅈ….”
“내가 맡겠네!!”
‘쉽군. 쉬워.’
찾아온 백작들을 모조리 선봉에 세우는 데 성공한 태현!
[카르바노그가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고 황당해합니다.]
태현은 카르바노그를 무시하고 말했다.
“자! 이제 수도가 코앞이다! 대장장이들한테 갖고 온 걸 조립하라고 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