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63화
친구가 쓸쓸한 외톨이로 죽게 되는 것보다는 뭐든지 낫지 않겠는가.
최상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태현은 나중에 갖고 있는 게 돈밖에 없는 쓸쓸한….
‘어라. 별로 나빠 보이지 않긴 하네.’
…어쨌든 간에 최상윤은 이다비를 응원할 생각이었다.
‘미안하다, 지수야. 이다비도 친구거든!’
속으로 유지수에게 사과한 최상윤은 멈칫했다.
그런데 태현이한테 뭘 선물한다?
‘진짜 뭘 선물하지?’
“으음….”
그러는 사이 태현은 케인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건 어떠냐?”
“구려.”
“이건?”
“구리네.”
“이ㄱ….”
“아, 구리다고.”
“마지막 건 보지도 않았잖아!”
“넌 고르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골라달라고 해라.”
“으윽… 어째서….”
케인은 시무룩해져서 투덜거렸다. 태현은 달래주기 위해 당근을 내밀었다.
“이게 나 좋으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대회도 있고 좀 있으면 너도 방송에 얼굴 내밀 텐데 거기에 패션 테러리스트 케인으로 실리고 싶어, 아니면 패션 좀 아는 놈으로 실리고 싶어?”
“패, 패션 좀 아는 놈으로….”
“그래. 그러면 넌 고르지 마라.”
“…?”
케인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이다비 동생들에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손님, 어떤 걸 찾으시나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죠?”
“음. 그러니까….”
생각해 보니 사이즈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태현에게는 눈이 있었다.
게임에서 상대를 한 번 보면 어떤 장비를 착용하고 있고 어떤 직업인지 알 수 있는 뛰어난 관찰안!
“안 물어봤어?”
“잠깐. 아마 대충….”
“뭐야. 물어보고 온 건가.”
“아니. 머릿속에서 계산 중인데.”
“…넌 재능을 쓸데없는 곳에 쓴다 정말.”
저번 <생존의 법칙> 방송 때도 느꼈지만, 이 자식은 뭔가 쓸데없는 곳에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어!
‘그냥 올림픽이나 나갈 것이지….’
“앗. 형!”
“?”
“??”
뒤에서 들리는 말에 태현과 케인은 서로 쳐다보았다. 웬 형?
“네 동생이냐?”
“아니. 난 여동생밖에 없는데… 네 동생 아냐?”
“난 외동이야. 인마.”
웬 처음보는 사람이 형이라고 하자 태현과 케인은 서로에게 떠넘기려고 했다.
“저번에 보셨잖아요!”
“네 팬 아닐까?”
“네 팬으로 하면 안 되냐?”
“난 게임이랑 현실이랑 모습이 좀 많이 달라서… 내 팬일 가능성은 좀….”
케인은 말하고서 다시 시무룩해졌다.
“에이. 저번에 뒤풀이 때 보셨잖아요.”
“?”
“그, 과 개총 때….”
“아. 그때.”
태현은 기억을 떠올렸다. 교수님한테 끌려서 억지로 갔던 그….
뭔가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오던 사람들은 많았는데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았었다.
케인은 속삭이듯이 물었다.
“뭐야? 누구야?”
“같은 과 후배 같은데.”
“앗. 그러면 내 동생이랑 같은 학교란 건가?”
“그렇게 되겠지? 과야 다르지만.”
후배는 케인을 보더니 물었다.
“혹시 저분은 케인 님?”
“흠흠. 그래. 내가 케인이지.”
“오오…!”
“더 좋아해도 좋다. 하하.”
“아뇨. 전 태현이 형 팬인데….”
“…….”
케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태현은 어깨를 토닥거렸다.
“너 쟤랑 친하냐?”
“오늘 처음 보는데. 아.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뭐 대충 처음 본다고 치자.”
“그런데 왜 저렇게 친근하게 굴어? 막 형이라고 그러고.”
“그런 성격인가 보지.”
“으. 난 저런 녀석 상대하기 싫은데. 알레르기가 있다고….”
케인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상큼하게 웃는 태현의 후배가 두렵게 느껴졌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인싸의 기운!
“여긴 뭐 사러 오신 건가요?”
“그렇지.”
“잘됐네요! 같이 돌아다니죠, 형!”
“음. 이제 와서 말하기 좀 미안하긴 한데… 너 이름이….”
“유제건입니다!”
케인은 감탄했다. 대놓고 면전에서 이름 기억 못한다고 하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니.
“이제부터 기억해 주시면 되겠네요, 형!”
“그래. 그래.”
“다음 모임에는 언제 나오시나요?”
“몰라.”
“언제 한번 같이 판온 하시죠!”
“글쎄.”
“그러고 보니 저번에 과에서….”
태현은 계속 영혼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케인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저렇게 접근하는 후배도 후배였지만 태현은 더 대단했다.
저렇게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니!
‘나였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것 같은데!’
“앗. 이 재킷 괜찮은 거 같은데 제가 선물해드릴까요?”
“아니. 괜찮은데. 그보다 네가 왜?”
“하하. 사양 안 하셔도 되요. 음. 사실은….”
유제건이 목소리를 낮추자 케인과 태현도 가까이 다가섰다. 뭔 소리를 하려고?
“제가 좀 금수저거든요.”
“…….”
“…….”
케인은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지가 지 입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놈이 진짜로 있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낯간지럽지 않나? 역시 이런 발언에는 태현도 좀 당황하지 않을….
“음. 그렇구나.”
“!”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태현! 케인은 옆에서 속삭였다.
“야. 저런 놈인데 괜찮아?”
“뭐, 약간 아픈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판온 생각해 봐. 저것보다 더 이상한 놈들 많잖아.”
“…그렇군!”
케인은 바로 납득했다. 태현이 보고 상대한 놈들과 비교한다면 저 정도는 이상한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
물론 케인은 몰랐다. 태현이 상대한 이상한 놈들에 그도 들어가 있을 줄은.
“저희 아버지가 사장님이시거든요.”
“그래. 나도 아는 할아버지가 회장님이시지.”
“하하하. 농담도….”
태현은 상냥하게 후배의 말을 들어주었다. 스스로도 참 많이 관대해졌다고 느낄 정도였다.
여기서 굳이 구박을 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냥 상냥하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그만일 것을.
둘의 대화(사실 일방적으로 태현이 듣고만 있었지만)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는 건 케인이었다.
‘김태현 저 자식이 짜증 내면서 주먹 날리는 건 아니겠지. 이 자식아! 어디서 돈 자랑이야! 내가 너보다 돈이 얼마나 더 많은데! 하면서….’
케인은 속으로 동생한테 저놈 이름 보내서 상대하지 말라고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 *
“앗! 태현 님!”
“옆에는 누구?”
최상윤은 못 보던 사람이 있자 당황했다. 케인은 입모양으로 뻥긋거렸다.
-이상한 놈이야.
-너보다 더 이상하다고?
-야!
“저. 태현 님. 이거….”
이다비는 목도리를 내밀었다.
최상윤과 이다비가 머리를 맞대고(나중에는 정수혁까지 같이 와서 고민했다) 선물을 고민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판온에서 이세연 공격한 다음 이세연이 갖고 있는 아이템 뺏어서 가져가면 좋아할지도 몰라!
-…그건 불가능할 거 같습니다.
-크흑. 그러면 뭐 하지?
결국 고민 끝에 이다비는 그냥 알아서 하기로 결정했다.
“응?”
“추우실 것 같아서요.”
“아. 고마워.”
태현은 웃으면서 목도리를 받아 걸쳤다. 그걸 본 유제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무 싼 거 같… 악.”
“후배야.”
“네, 네?”
“입 닥쳐야 할 때는 가만히 있자.”
태현은 웃으면서 유제건의 어깨를 붙잡았다. 웃고 있었지만 태현의 눈빛에서 유제건은 살기를 느꼈다.
‘무서워!’
“네, 넵!”
이다비가 선물하는 걸 지켜본 최상윤은 정수혁에게 말했다.
“우리 근데 선물 고르는데 별로 도움 안 된 거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 *
“인터뷰요?”
“네네. 알다시피 이번 던전 공략 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한 팀 중 한국 팀이 많잖습니까.”
전통적으로 E-스포츠 강국!
그건 판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선 진출 팀들 중 한국 팀들은 두각을 드러냈다.
게다가 꼭 한국 팀이 아니더라도 한국 국적 선수들은 찾아보기 쉬웠다.
어떤 외국 팀은 5명 중 3명이 한국 선수들일 정도!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본선 진출한 팀과 선수들을 모아서 간단하게 방송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인터뷰하고서 간단한 프로그램 정도만 진행할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될 거 같습니다.”
MBS의 배장욱 PD가 이렇게 직접 연락을 준 건 꽤 오랜만이었다.
투기장 대회나 다른 프로 리그는 판온 회사에서 직접 주최하는 형식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MBS는 국내 게임 방송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공중파 방송사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
그 이유는 적극적인 프로그램 기획과 아이디어에 있었다.
태현을 섭외해서 대박을 친 것도 배장욱 PD!
“저번에 생존의 법칙에 나가신 거 봤습니다. 흑흑. 저희는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렇게 안 우셔도 나갈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앗. 정말입니까?”
배장욱은 반색했다. 태현이라면 판온 할 시간 없다고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도 이제 게임단을 이끄는 입장인데 그 정도는 해야죠.”
“아. 그렇죠.”
배장욱은 웃었다. 태현도 처음 봤을 때와는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이세연 씨와 태현 씨가 나오기만 하면 흥행은 기본으로 보장이고, 다른 선수들도 무조건 나오려고 할 겁니다. 두 분은 특별하니까요.”
“음. 나가지 말까….”
“?!”
배장욱과의 통화를 끝내고 태현은 다시 캡슐에 들어갔다.
방송 나갈지도 모른다고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정말로 나가게 되다니. 그것도 팀 단위로.
‘본선 1차전 날짜가 얼마나 남았더라… 그 전에 왕궁을 공략하고 싶은데….’
* * *
[영지 근처에 퍼진 살라비안 교단의 오염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뱀파이어들이 싫어합니다. 찾아오는 뱀파이어들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영지 근처에 흐르는 용암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크윽! 용암 폭탄 만들어야 하는데! 아깝다!”
“그래도 많이 챙겨놨으니까 몇 번 만들 정도는 될 거야.”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아쉬워하며 지나가는 게 보였다.
태현은 새삼 느꼈다.
사람 숫자라는 건 대단하구나!
판온 1에서는 대부분 솔플만 했던 태현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동원해서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왜 사람들이 대형 길드를 만들고 운영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번 명령만 내리면 순식간에 일이 해결되니….
물론 이건 태현의 경우가 특수한 경우였고, 보통 대형 길드여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일치단결해서 일하지는 않았다.
[오송 백작의 군대가 합류합니다.]
[부카드 백작의 군대가 합류합니다.]
[피브레 백작의 군대가…]
“와, 귀족이 이끄는 군대야? 나 처음 보는데.”
“김태현은 이걸 어떻게 부른 거지? 보통 공적치 포인트로는 절대 안 될 텐데….”
사람들은 멀리서 질서정연하게 다가오는 귀족 군대를 보며 놀라워했다.
판온에서 보통은 볼 일이 없는 귀족들이 이끄는 군대!
“후후. 김태현 백작.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군. 내 요리사도 데리고 왔으니.”
[귀족 전속 요리사 데브엘이 요리를 시작합니다.]
[데브엘이 <강렬한 향기 요리>를 사용합니다.]
[데브엘이 <아탈리 왕국 귀족 요리>를…]
[……]
[요리 스킬이 부족해서 레시피를 완전히 알아내지 못합니다.]
부럽다!
귀족이 데리고 온 요리사 NPC를 보며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태현의 영지에는 저런 NPC가 없는데!
요리사 NPC, 데브엘은 정말 정석적인 요리사였다.
이상한 괴식 스킬이 아니라 정통 요리 스킬을 익히고 정통 레시피들을 잔뜩 알고 있는 요리사!
“데브엘이라면 그 데브엘?”
“비전 요리 스킬을 갖고 있는 전설 요리사 중 하나잖아?”
영지 요리사 플레이어들이 수군거리는 말이 태현의 귓속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