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660화 (660/1,826)

§ 나는 될놈이다 660화

태현은 순간 그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아니, 사실 잘못 본 것이기를 원했다.

지금 도미닉의 군대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데 왜 사디크의 화신까지 여기 있단 말인가.

게다가 도미닉의 군대는 기습과 암살과 속임수로 어떻게든 돌려보낼 자신이 있었지만, 사디크의 화신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지금 잡을 수 있을까?

레벨이 한 600, 700을 넘겨도 이상하지 않을 보스 몬스터!

최상위권 랭커들이 200 초중반을 넘나들고, 다른 랭커들이 막 200을 찍는 지금.

잡으려면 피해가 얼마나 나올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주, 주인이여. 어떻게 해야 하나?

태현은 1초 만에 결정을 내렸다.

“일단 눈 마주치지 말고 피하자.”

-알겠다!

파아아앗!

[<사디크의 영광>이 시전됩니다.]

[모든 은신 스킬이 해제됩니다.]

[모든 언데드 계열 종족들의 능력치가 내려갑니다.]

어두운 하늘에 화염으로 만들어진 구(球)가 떴다.

마치 인공 태양 같은 위엄!

문제는 그 인공 태양이 태현의 위치까지 발각시켰다는 점이었다.

“저거 뭐야?!”

“저, 저놈….”

“저놈 김태현 백작입니다!”

태현의 얼굴을 알아본 살라비안 교단이 재빨리 도미닉에게 보고했다.

도미닉의 얼굴이 귀신처럼 일그러졌다.

“이놈! 감히 내 위에서…!”

“쯧.”

반면 성벽 위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태현 님이다! 태현 님이야!”

“몰래 기습하려고 하고 있었구나! 역시 태현 님! 정정당당하고 멋있어!”

옆에서 외치는 환호성에 쑤닝 길드의 첩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저게 상황에 맞는 칭찬인가?

“뭐해! 넌 왜 안 외쳐!”

“헉, 죄송합니다. 김태현 만세! 정정당당한 싸움 파이팅!”

첩자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설마 이 모습이 길드 쪽에 들어가진 않겠지?

* * *

“김태현 백작. 감히 쥐새끼처럼 기습을 하다니!”

“기습으로 국왕 폐하를 시해한 놈이 뭐라는 거냐?”

“무… 무슨 소리. 선왕께서는….”

“도미닉은 선왕 폐하를 몰래 기습해서 죽인 놈이다! 도미닉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도미닉 아버지가 누구? 바로 그 반역자….”

“닥치지 못할까!”

[도미닉을 말싸움에서 완전히 패배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도미닉이 이끄는 왕국군의 사기가 현저히 하락합니다.]

[도미닉이 이끄는 왕국군의 반란도가 늘어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약점만 콕콕 골라서 찌르는 태현!

도미닉은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분노했다.

“내가 네놈만큼은 쉽게 죽이지 않으리라. 사지를 조각내서 처참하게 죽여 버리고 말겠다!”

말싸움에서 승리한 태현은 도미닉의 저주를 무시했다.

노리는 건 아까 흔들린 도미닉이 이끄는 왕국군!

“자! 여기 <아탈리 국왕이 하사한 검>과 <아탈리 왕궁의 나팔>이 있다!”

예전,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를 깨고 국왕에게 받았던 보상템들!

아탈리 국왕이 하사한 검:

내구력 50/50, 공격력 30

스킬 '국왕의 이름으로' 사용 가능

명성 제한 5,000

아탈리 국왕이 뛰어난 공적을 내린 신하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만든 검.

장식용이라 딱히 공격력이 높지는 않다.

아탈리 왕궁의 나팔:

내구력 10/10

스킬 ‘아탈리 왕가의 저주 해제’ 사용 가능, 스킬 ‘아탈리 왕가의 저주’ 사용 가능.

수리 불가능.

명성 제한 7,500

아탈리 왕궁의 보물창고에 보관되고 있던 나팔. 드넓은 범위의 저주를 걸고 푸는 능력이 있다.

“저놈은 검도 없고 나팔도 없고 아탈리 왕가와 관련된 아이템은 아무것도 없을 거다! 뭐라도 갖고 있는 게 있냐?”

“이 개….”

“있으면 꺼내봐라! 못 꺼내네! 왕관은 있냐?”

도미닉은 분노했다. 왕관은 지금 의식 때문에 왕궁 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걸 노리고 저렇게 말하다니!

“자! 여기 아탈리 국왕이 하사한 검이 있다! 모두 저 배신자, 반역자의 말을 듣지 말고 이쪽으로 와라!”

-국왕의 이름으로!

태현이 검을 들고 스킬을 사용하자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국왕의 이름으로>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아탈리 왕국 내 NPC들에게 국왕의 이름을 빌려 강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도미닉이 이끄는 왕국군의 반란도가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이제까지 검의 스킬을 아끼고 아껴뒀던 보람이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자 왕국군이 크게 흔들리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쏴버려!”

“…….”

“뭐하는 거냐! 쏴버리라니까!”

왕국군이 말을 듣지 않자 도미닉은 교단원들한테 명령을 내렸다.

케엑! 켁!

괴수들이 고개를 쳐들더니 태현을 향해 공격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윽. 저거 뭐야?”

-독이다! 독!

“앗. 가까이 몰아라. 용용아.”

-?!

용용이가 기껏 멀리 날아서 공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걸 말리는 태현!

날아오는 녹색 덩어리들.

그냥 맞으면 태현의 행운으로 회피가 떠버릴 테니….

“흡!”

-…주인이여. 미쳐 버린 것인가?

용용이는 어이가 없었다.

날아오는 녹색 덩어리를 손으로 낚아채서 입으로 집어넣는 태현!

‘윽. 맛없군.’

오크 아저씨들이 만약 이 모습을 봤다면 ‘태현이 녀석도 뭘 좀 아는군!’ 하며 흐뭇해했을 것이다.

[살라비안 교단의 괴수들이 만들어 낸 독을 먹었습니다. <독소 장착> 스킬이 오릅니다.]

[고급 요리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독을 먹고 받는 데미지가 줄어듭니다.]

[고급 독 제작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독을 먹고…]

분명 공중에서 기막힌 묘기를 보여주고는 있었지만 그 결과물은 뭔가 많이 이상했다.

살라비안 교단의 괴수들도 당황스러운 눈으로 태현을 쳐다볼 정도!

-쟤 지금 뭐하는 거냐?

[HP가 10% 미만으로 떨어집니다.]

HP가 10% 밑으로 떨어지자 태현은 독을 먹는 것을 멈췄다.

각종 스킬들로 독 데미지를 적게 입긴 했지만, 계속 먹으면 HP가 닳을 수밖에 없었다.

“자. 먹는 건 이 정도면 됐고… 답례다!”

-독소 장착, 맹독 살포!

태현의 앞에 독 덩어리들이 만들어지더니 그대로 안개로 흩어져서 밑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독소 장착으로 독을 만듭니다.]

[맹독 살포 스킬로 독을 안개로 만듭니다. 안개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아래로 불어라!

[언령 스킬을 사용합니다.]

[안개에 추가 효과가 부여됩니다!]

[안개가 더 강하게 불기 시작합니다!]

“크으윽!”

“커흑!”

밑에 있던 교단원들이 중독되고, 그보다 약한 뱀파이어 전사들은 픽픽 쓰러졌다.

태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폭탄 연속 투하!

콰콰콰쾅! 콰쾅! 콰콰쾅!

-캬아아악!

“끄아아악!”

혼자서 교단을 휘저으며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놓는 태현!

용용이를 타고 움직이면서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고, 그 상태에서 온갖 스킬로 광역 피해를 줬다.

성벽에 있던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크흑… 충성충성충성!”

“비행 괴수들은 당장 돌아와서 저 놈부터 잡아라!!”

살라비안 대주교는 결국 성벽을 공략하던 괴수들을 돌아오게 했다.

태현을 그냥 잡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사디크의 화신이 휴식에서 깨어납니다.]

[<사디크의 영광>으로 소진되었던 힘이 회복됩니다.]

“!!!”

충격적인 등장이었지만, 태현이 날뛰느라 모두가 잠시 잊고 있었던 사디크의 화신!

휴식에서 깨어난 사디크의 화신이 가장 먼저 한 말은 한 마디였다.

-아키… 서스….

“…….”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망했군.’

* * *

“찾았다. 사디크의 화신은 분명 이 산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파티장님. 사디크의 화신을 찾아봤자 우리가 이길 수는 없잖아요.”

길드 동맹의 탐험가 플레이어들은 국경 지대를 샅샅이 뒤지며 사디크의 화신을 찾고 있었다.

국경 지대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 지금, 유일한 해결책은 사디크의 화신을 없애버리는 것!

“걱정 마라. 어차피 싸우는 건 우리가 아니니까. 위치만 찾아내면 랭커들이 알아서 할 거야. 게다가 길드 내에서 찾아낸 자료들 보니까 대륙에 내려온 화신은 완전할 수가 없다더라. 사디크의 화신이 한 번 날뛰고 모습을 안 보이는 건 그래서일지도 몰라.”

“힘을 많이 써서 쉬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 그때 잡아버리면 되는 거야. 좋아. 바로 여기가….”

확!

탐험가 파티는 절벽을 넘어 올라갔다. 바로 여기가 사디크의 화신이 있다고 알려진 곳!

“…??”

“…???”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사디크의 화염만이 조금 남아 있을 뿐.

“어… 어디로 간 거야?”

* * *

-아키… 서스….

“아키서스의 영지는 여기가 아니라 오스턴 왕국인데.”

길드 동맹의 첩자는 기가 막혔다.

이 상황에서도 끝까지 거짓말을 시도하다니! 이 정도면 본받아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

-아키… 서스….

물론 사디크의 화신은 속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키서스의… 기운이… 느껴진다….

쿵, 쿵-

사디크의 화신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대한 불꽃이 튀었고 주변에 화염의 파도가 일어났다.

화아악!

그 서슬에 뱀파이어 전사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저 자식이 살라비안 교단이랑 손을 잡으면 위험한데.’

태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영지를 버려야 하는가?

이제까지 들어간 게 얼마인데! 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버려야 할 때는 어떤 것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적의 적은 친구라지만, 그것도 상황이 맞아줘야 하는 법.

살라비안 교단과 사디크 교단도 그렇게 친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내려다보는 거냐!”

도미닉은 분노해서 창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사디크의 화신에게 집어 던졌다.

-살라비안 부패의 창!

쐐애애액!

창은 쏜살같이 날아가서 사디크의 화신에게 박혔다. 그러나 별다른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뭐냐… 이 냄새는… 살라비안….

“어디서 교단도 다 잃어버리고 퇴물이 된 놈이 설치는 거냐! 썩 꺼져라! 여기는 살라비안 교단의 땅이다!”

도미닉의 말에 성벽 위에서 누군가 ‘크흑!’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버포드였다.

사디크의 화신은 말 대신 주먹으로 대답했다.

붕-

꽈아아아아아앙!

[사디크의 화신이 <사디크의 화염 지진>을 사용했습니다.]

주먹을 휘두른 곳을 중심으로 지진과 함께 화염이 솟구쳐서 바닥을 쓸어버렸다.

“끄아아아아악!”

“캬아아악!”

몰려있던 뱀파이어 군대는 아주 크게 타격을 받았다. 그걸 본 태현은 직감했다.

아, 이거 잘되겠다!

“용용아. 성벽 위로 가자! 구경이나 하면 되겠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둘이 붙을 줄이야!

‘아키서스에 대한 원한도 별거 아니군. 둘이 손잡고 싸워야 할 상황에 서로 맞붙다니!’

[카르바노그가 그런 무서운 생각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사디크의 화신이 <용암 함성>을 사용합니다.]

꽝! 꽝! 꽝!

거대한 용암이 수천 마리의 뱀파이어 전사들을 쓸어버렸다.

마치 신화에서 나올 것 같은 장엄한 모습!

아키서스 영지 앞에서 두 교단의 거대한 힘이 맞붙었다.

“저 퇴물부터 먼저 잡는다. 살라비안 교단의 전사들이여! 전부 일어서라!”

아까까지 대기하고 있던 교단 고위 NPC들과 전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빠르게 퍼지며 만들어지는 포위망!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갔던 중하급 뱀파이어들도 몰려와서 사디크의 화신 발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기어올라서 죽이려는 생각!

그러나 사디크의 화신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화르륵!

캬아아아아악!

중하급 뱀파이어들은 사디크의 화신과 닿는 것만으로도 단체로 타죽었다.

게다가 아까까지와는 달리 소환된 중하급 뱀파이어들은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

화염으로 완전히 태워버리자 부활도 불가능한 것!

“잘한다! 사디크!”

태현은 손뼉을 치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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