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56화
-어?
꼴 보기 싫었던 골골이를 집어 던지고 속 시원해서 웃고 있던 흑흑이는, 무언가 어둠 속에서 덤벼들자 당황했다.
저놈들, 왜 골골이를 쫓아가지 않고 나한테 덤벼들지?
답은 금방 나왔다.
골골이가 대형 흡혈 박쥐를 타고 흑흑이에게 덤벼들고 있었던 것이다.
-!!
-이 검은 도마뱀 자식! 감히 날 집어 던졌겠다?!
-너 미쳤냐?! 이건 명령 위반이야!
-명령 위반은 무슨! 내가 받은 명령은 시선을 끄는 거다. 널 죽여도 시선을 끄는 건 끄는 거지!
살기 넘치는 칼질!
슉슉슉 하는 소리와 함께 골골이의 칼질이 어둠을 갈랐다.
꿰액!
[대형 흡혈 박쥐가 <끈끈이 선지>를 토해냅니다.]
[대형 흡혈 박쥐가 <흡혈의 칼날>을 시전합니다.]
대형 흡혈 박쥐는 골골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버프까지 걸어주었다.
덕분에 상대하는 흑흑이만 죽을 맛이었다.
파아앗!
마법으로 연막을 치고 재빨리 공중에서 급기동해 공격을 피해낸 흑흑이는 골골이를 설득하려 들었다.
-너 나중에 주인님에게 그대로 말한다!
-윽… 말, 말해봐라! 네가 먼저 했으니까! 나는 떳떳하다!
잠시 움찔하던 골골이는 흑흑이의 말을 무시했다.
먼저 집어 던진 건 저놈!
-이런 말 더럽게 안 듣는 언데드 놈!
-내가 할 소리다 더러운 도마뱀 새끼야!
이쯤 되자 흑흑이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흑흑이는 들킬까 봐 참고 있던 화염 마법들과 사디크의 권능 스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짙은 어둠 속을 사디크의 화염이 비추기 시작했다.
* * *
“어… 너무 시선을 끄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흑흑이 녀석. 쓸데없이 괜히 오바하네.”
멀리서 번쩍이는 화염과 시끄러워지는 소음을 보며, 태현과 에드안은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설마 골골이와 흑흑이가 치고받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시선은 확실히 끌은 것 같습니다. 마수들이 안 보이네요.”
탁-
둘은 조용히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는 밤에도 밝았던 수도였지만, 살라비안 교단이 점령하고 난 뒤부터는 밤에는 마법의 안개가 끼어서 희끄무레했다.
뱀파이어들에게 추가 보너스를 주는 마법의 안개!
어찌나 짙은지 주변 파악이 힘들 정도였다.
“후후. 태현 님. 오랜만에 제 실력을 보여드릴 때가 왔군요.”
“그냥 조용히 좀 하면 안 되냐?”
“네….”
구박을 받은 에드안은 시무룩해져서 은신을 준비했다.
[에드안이 <대도적의 은신> 스킬을 사용합니다.]
[뛰어난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는 에드안 덕분에 은신에 추가 보너스를 얻습니다.]
‘!’
태현도 나름 고급 은신 스킬을 찍은 사람이었다.
도적 직업이 아닌데도 고급 은신 스킬을 찍은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도 태현에게 추가 보너스를 줄 정도라면….
에드안은 최고급 은신 스킬 이상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새삼 대단하단 말이지.’
평소에 워낙 촐싹대서 그렇지, 에드안은 뛰어난 도적이긴 했다. 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랬다.
“후후. 어떻습니까? 저는 펠마스 같은 놈과 다른….”
말로 자꾸 점수를 깎아 먹는 게 문제!
‘이 자식이 자꾸 이러니까 나도 착각하게 되고….’
말하는 걸 듣다 보면 대도적이라기보다는 대도적을 사칭하는 NPC에 가까운 게 에드안!
“힉!”
“!”
골목을 돌자 길가에 거대한 마수가 나타났다.
뱀 형태를 하고 있는 살라비안의 마수!
“후후. 태현 님….”
‘오. 안 도망치나?’
에드안이 도망을 치지 않고 가만히 있자 태현은 놀랐다. 보통 도망쳐야 정상인데?
“…몸이 안 움직입니다….”
“…….”
태현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마수 뒤로 접근했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아직은 수도에서 소란을 크게 피울 때가 아니었다. 일단 왕궁 안에 들어갈 때까지는 조용하게 가는 게 좋았다.
그렇다면 노리는 것은 일격!
퍽!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살라비안의 마수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습니다. <피의 저주>가 발동됩…]
꿰에엑….
“!”
마수는 일격에 끝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뒤에서 접근한 데다가 은신 상태, 거기에 각종 버프까지 넣고 한 번에 찔러 넣었다. 그런데도 버티다니.
그렇지만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몸은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아키서스 검법!
다음 약점이 나타나고 태현의 검이 물 흐르듯이 그 약점을 공격했다.
쾅!
그제야 살라비안의 마수가 쓰러졌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태현은 재빠르게 마수를 옆으로 당긴 다음에 해체에 들어갔다.
마수만 보면 일단 해체하고 재료를 수집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태, 태현 님.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잠깐만. 이것 좀 챙기고.”
“그거 챙겨서 어디다 쓰시게요! 움직여야 합니다! 그 오크들처럼 이상한 습관 들이신 겁니까!”
“…!”
명치를 찌르는 에드안의 일격!
태현은 비틀거렸다. 내가 그 정도였나?
‘아, 아니. 난 그래도 그 아저씨들보단 낫지… 낫지 않나?’
마수 해체를 끝내고, 태현은 다시 움직였다.
고급 요리 스킬을 가진 덕분에 해체가 순식간에 끝난 것이다.
다양한 스킬들을 가진 태현은 어지간한 상황에는 다 대응이 가능!
‘그나저나 살라비안의 마수가 생각보다 HP가 높은 거 같다. 교단 특징이 깡체력인가?’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는데 버티다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각 교단마다 특징이 있었다. 아키서스는 행운, 사디크는 화염….
살라비안 교단은 타락한 뱀파이어들의 교단이란 건 알겠는데 그 특징이 뭔지는 애매했다.
피?
‘피면 확실히 체력이 높을 수도….’
“이쪽으로.”
후다닥-
둘은 안개 낀 길을 달리고 달려 왕궁으로 향했다.
날이 밝기 전에 털고 빠진다!
“…!”
왕궁 앞에 도착한 둘은 발걸음을 멈췄다.
마치 타오르는 것처럼 핏빛으로 붉게 물든 왕궁!
[살라비안 교단의 강력한 마법이 왕궁을 감싸고 있습니다.]
[안에 들어갈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케에엑, 케엑….
왕궁 근처를 살라비안의 마수들이 얼씬거리고 있는 데다가, 안에는 강력한 마법까지 있다고 경고했다.
“태, 태현 님. 꼭 보물을 지금 챙겨가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에드안은 겁이 났는지 태현을 설득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태현은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저렇게 마법을 강하게 쳐놨다는 건….’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있다는 뜻!
언제나 보안이 좋을수록 그 안에는 비싼 게 있었다. 판온 1때부터 느낀 법칙이었다.
뚫고 들어가서 훔치면 대박이다!
[카르바노그가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가 저 살라비안의 마법은 HP를 흡수한다고 말합니다.]
“…!”
살라비안 교단도 이런 건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 관련해서는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카르바노그!
‘HP를 흡수한다고?’
태현은 난처함을 느꼈다. 다른 거면 모를까 HP는 위험했다.
다른 랭커들에 비해 총 HP가 절대적으로 낮은 게 태현!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특성과, 각종 노가다로 인해 스탯 스킬은 부족하지 않지만 총 HP와 MP의 양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단점을 특유의 컨트롤과 스킬로 커버할 수 있었기에 태현이 강한 것이었지만….
저렇게 무조건 흡수하는 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좋은 생각을 떠올립니다. 아키서스의 신수와 도둑놈만 대신 안에 들여보내자고 말합니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
-…주인이여….
“미안하다. 용용아. 빨리 들어갔다가 나오자.”
-난 카르바노그가 싫다….
“나도….”
용용이와 에드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 * *
-침입자다! 침입자!
-어디서 더러운 블랙 드래곤이 여기를 범하느냐!
-네놈을 잡아서 피를 빨아 마셔주마!
‘돌겠네, 진짜!’
흑흑이는 울고 싶은 마음으로 날아올랐다.
원래 소란 좀 일으키고 가야 했는데, 골골이와 합이 안 맞은 덕분에 소란이 더 커지고 있었다.
이제는 박쥐와 유령을 타고 날아오는 뱀파이어 전사들까지 모이기 시작했다.
살라비안 교단의 전사들은 마수들과 달리 머리가 돌아가는 적들이었다.
마수들만 상대하던 때보다 몇 배로 힘들어진 상황!
-주변을 포위해라! 도망치지 못하게 해!
-놈에게 저주를 걸어라. 움직이기 힘들도록!
-데스 나이트의 이름으로 놈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
-잠깐… 넌 누구냐?
신나게 떠들던 타락한 뱀파이어 전사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못 보던 데스 나이트가 있는 것!
침입자를 공격하는 걸 보니 아군 같긴 한데, 저런 언데드가 있었나?
-…나, 나는 너희 편이다.
골골이는 그제야 이성이 돌아왔다.
아차, 나는 쟤네랑 다른 편이었지!
같이 흑흑이를 쫓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같은 편인 줄 알았던 것이다.
다행히 그 태도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뱀파이어들도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데스 나이트? 누가 불러낸 거지?
-그러게. 누가 불러냈나, 데스 나이트?
-어….
골골이는 머리를 굴렸다. 떠오르는 이름, 들어봤던 이름은 하나밖에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도, 도미닉 님이….
-뭐?! 도미닉 님?!
‘걸렸나?!’
-이거 내가 귀한 분을 못 알아보고 건방을 떨었네. 미안하게 됐어. 도미닉 님에게 말하지는 말아달라고.
바로 고개를 숙이는 뱀파이어들!
[타락한 뱀파이어 전사들을 속이는 데 성공합니다.]
[교활한 데스 나이트로 진화…]
* * *
[골골이가 뱀파이어들을 속여 넘기는 데 성공합니다.]
[주인으로서 명성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용용이와 에드안을 안으로 보내고 기다리고 있던 태현은 당황했다.
왜 갑자기?
아니, 그보다 골골이 이놈은 시선 끌라고 보냈더니 뭔 짓을 했길래 뱀파이어들을 속여 넘긴 거지?
일단 속여 넘긴 걸 보니 안 좋은 상황 같지는 않은데….
* * *
-대체 저 블랙 드래곤은 뭐하는 놈이지?
잽싸게 도망치는 흑흑이를 보며 뱀파이어들은 이를 갈았다.
골골이는 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기로 저놈은 사디크의 마수다.
-사디크!
-그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더러운 놈!
-그놈들 망하지 않았나? 교단이 박살 났다고 들었는데.
-아니. 저기 에랑스 왕국에 화신이 나타났다고 하더라고.
-화신이라니. 제법 대단하군. 우리도 어서 살라비안 님을….
뱀파이어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데스 나이트, 대단하군. 역시 도미닉 님이 불러내서 그런지 대단해.
-별, 별거 아니다.
-도미닉 님이 네게는 무슨 명령을 내렸지?
-어… 왕… 왕궁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 왔다고?! 왜 여기 온 거냐!
뱀파이어들은 깜짝 놀라서 골골이에게 따졌다. 골골이는 당황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너… 너희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내가 온 거 아니냐! 침입자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다니.
-크윽….
-맞는 말이야. 데스 나이트! 넌 어서 돌아가라. 우리는 반드시 저놈을 잡아서 명예를 회복할 테니.
-알, 알겠다.
골골이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하게 왕궁 안으로 갈 수 있다니, 일단 잘 된 건가?
-좋아. 가볼까….
-이봐!
-?
골골이는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뱀파이어들을 불렀다.
뱀파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쫓으라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당연하지!
파아앗!
멀리서 쉬고 있던 흑흑이는 다시 날아오는 뱀파이어들을 보며 기겁했다.
-돌겠네. 저놈들! 침입도 안 하는데 왜 자꾸 쫓아오는 거야! 이 정도면 그냥 봐줘도 되지 않나?!
흑흑이는 날개를 파닥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시를 지키고 있는 놈들이라 적당히 쫓아오다 말 줄 알았는데,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쫓아오고 있었다.
* * *
“으윽… 체력이….”
-힘내라. 도둑놈.
“내, 내 이름은 에드안인데….”
-도둑놈이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꼬박꼬박 그렇게 말하고 다녀서….
“대도적! 대도적! 도둑놈이 아니라 대도적!”
-아. 그랬군. 대도둑놈.
“…….”
에드안은 말하는 걸 포기했다. 이 건물 안에서는 계속 흡혈을 당하는 기분이라 힘이 들었다.
‘포션 하나 마시고 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