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54화
“파워 워리어 길드는 지금 오빠를 가장 많이 도와주고 있는 길드. 제가 거기에 들어가면 확실하게 도와드릴 수 있을 거예요!”
“어….”
이다비는 머뭇거렸다.
사실 지금도 태현은 유지수를 꽤나 잘 챙겨주고 있었다.
케인과 에반젤린에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 차이!
마치 이다비가 동생들을 챙겨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생 취급하는 것 같은데… 그게 더 좋지 않나?’
이다비 입장에서는 유지수가 동생 취급받는 게 부러웠다. 자기도 저렇게 어리광….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파워 워리어 길드 가입하는 건 저는 상관없지만 추천하지는 않아요.”
가입했다가는 일행의 다른 사람들이 이다비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저렇게 순진한 애를 꼬셔서 가입시키냐!’
‘이다비 님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같은 반응이 나올 게 분명!
“왜요?”
“파워 워리어 길드는… 으흠. 별로 질이 좋은 길드가… 그보다는 굳이 파워 워리어 길드에 가입 안 해도 다른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지금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잖아요? 궁수 NPC들도 저렇게 데려오고.”
타이럼 사냥꾼들은 뭔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실력 하나만은 확실했다.
일제히 집중사격을 퍼부으면 대형 몬스터도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
‘그에 비해 우리 길드원들은….’
태현이 단검을 쓸 사람들을 모아달라고 했기에 이다비는 길드 내에서 일단 사람을 모아보았다.
-태현 ㄴ….
-저요! 저요! 저요!
태현 말만 나오면 손부터 들고 보는 길드원들!
-…엄격한 심사 조건으로 뽑겠습니다.
-!!
결국 이다비는 면접을 볼 수밖에 없었다.
-헤헤. 길마님. 이거 약소하지만….
-이 자식 치사하게! 길마님! 저는 저놈보다 더 비싼 주머니에 담아왔습니다!
-성의는 잘 받겠어. 탈락!
-크아악!
이다비는 몇 가지 조건을 정했다.
성실하고, 체력이나 민첩 스탯이 높고, 단검 스킬이 있고….
그러면서 느낀 건 하나였다.
아, 정말 파워 워리어 길드에는 쓸 만한 인재가 없구나!
모으긴 모았지만 과연 이걸로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니까 괜히 길드에 들어오는 것보다는 다른 걸로 도움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이다비의 말에 유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예를 들면요? 퀘스트를 돕거나?”
“그렇죠.”
“학, 학교 갈 때 같이 가는 거는요?”
“그렇… 네?”
“내일 학교 갈 때 할아버지 운전기사님에게 부탁해서….”
“잠깐, 잠깐만요.”
할아버지의 운전기사라고 말한 게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왜 갑자기 학교가 나오지?
“학교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내일부터 개강인데요…?”
“!”
이다비는 깜짝 놀랐다. 일단 둘이 같은 학교였다는 건 그렇다 치자. 그보다….
-태현 님. 내일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음, 일어나서 케인을 깨우고 구박 좀 한 다음 아침을 먹이고 캡슐에 들어가겠지. 그런 다음 나와서 점심을 먹고 캡슐에 들어가고 다시 저녁을 먹은 다음 캡슐에 들어가지 않을까?
-완벽한 계획이네요. 저도 그러려고요!
아까 태현과 나눈 대화!
뭔가 많이 이상한 계획이었지만 둘은 서로 이상한 걸 눈치채지 못했다.
‘설마 내일 개강인 거 모르시는 거 아니겠지?’
* * *
“무슨 소리야. 이다비. 내가 모를 리 없잖아.”
망치를 두드리며 공성병기용 창을 만들던 태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다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죠?”
“그래. 당연히 알고 있었지. 응? 근데 네가 어떻게?”
“아. 유지수 씨한테….”
“지수한테 들었어? 둘이 의외로 친하네? 걔가 낯 많이 가리는데. 음. 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믿음직스럽잖아.”
“…….”
이다비의 얼굴이 붉어졌다.
옆을 지나가던 버포드가 ‘저 자식들 뭐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사디크의 화신이 나타나도 목숨 걱정이나 해야 하고… 투덜투덜….’
한때는 판온 유일의 사디크 교단 플레이어였는데, 지금은 <사디크의 화신이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배신자이니 걸리면 위험합니다!>란 메시지가 떴다.
자기가 선택한 거니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억울한 건 억울한 것!
“그런데 태현 님. 아까는 분명 내일 계속 게임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렇지. 원래 개강 첫 번째 주에는 빠져도 되거든.”
“…그, 그래요?”
“그리고 그 다음 주까지도 괜찮고.”
“…….”
“세 번째 주까지 빠지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커버가….”
“그냥 갔다 오세요. 어차피 지금 건설 중이니까!”
유지수가 이상한 것만 배울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 * *
“기분이 좋아 보이네?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으응. 아무것도 아냐.”
유지수는 그러면서 힐끗 강의실 뒤를 쳐다보았다. 김예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지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힐끗거리며 강의실 뒤를 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 설마 김태현 선수 기다리는 거야?”
“아, 아, 아닌데?”
“맞는 것 같은데….”
다른 과였지만 우연히 만나서 빠르게 친해진 둘이었다. 김예리는 곧 일어나야 했지만 조금만 더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과였지? 팬이야?”
“오ㅃ… 아니, 선배랑은 먼저 만난 적이 있어….”
“진짜? 나도 그런데.”
“어???”
유지수는 당황했다. 언제 어디서?
“팬, 팬 사인회 같은 거에서?”
“그런 것도 했었어? 아니. 그런 거에서 만난 게 아니라… 말 안 했었나? 내 오빠가 김덕수인데.”
“그게 누구?”
“케인.”
“…….”
“왜 그래?”
“미, 미안….”
유지수는 게임에서 케인을 노려보았던 게 떠올라서 곧바로 사과했다.
설명을 들은 김예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신경 안 써도 돼. 그보다 지금 여기 사람들 다 김태현 선수 때문에 이러는 거야?”
강의실에는 분명 다른 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 명 앉아 있었다. 곧 있을 강의를 들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
태현이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찾아온 게 분명했다.
“난 이해해!”
“어… 그, 그래.”
유지수의 열정에 김예리는 살짝 당황했다. 지수한테 저런 면이 있었나?
김예리한테 태현은 오빠를 사람 만들어준 오빠 친구였다.
케인이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지? 사람 맞나?’ 싶을 정도!
-그러니까 김태현이란 놈이 있는데. 그놈이 내 길드를 망가뜨렸어! 흑흑! 그거 잘해서 스트리머로 데뷔하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결국 망했다는 거네?
-그놈만 없었으면! 동생아. 돈 좀 빌려줄래?
-…….
처음에는 이랬다가….
-요즘 나 좀 잘나가는 거 같아. 곧 선수 데뷔할지도 몰라!
-그래.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물론 오빠 상상 속에서만 말이야.
-망, 망상 아니거든!
-망상이라고는 안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야! 같이 다니는 애들이 있는데 다들 대단하다고.
-오빠랑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다 오빠처럼 이상한 사람들이잖아.
레드존 길드 때 사건으로 푹푹 찌르는 여동생! 케인은 마음이 아팠다.
-걔네들이랑은 헤어졌고….
-그러면 누군데?
-김… 김태현.
-뭐?
작아지는 목소리!
-왜 같이 다녀? 탈탈 털렸다면서? 설마 협박당하는 거야?
-아냐! 아니… 협박은 맞나? 하지만 이건 내 자유 의지야!
-…….
‘오빠가 드디어 이상해졌구나!’
그때만 해도 김예리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그 뒤의 일은 더 충격적이었다.
케인의 선수 데뷔!
민망한 모습을 좀 보여주기는 했지만 대회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고(자폭도 했지만), 상금까지 당당히 타왔다.
거기에 게임단에 들어가서 선수로 뛰고 있지 않은가.
예전의 그녀에게 ‘너희 오빠는 김태현한테 털렸지만 곧 있으면 같이 다녀서 프로게이머로 데뷔까지 한단다’라고 말했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태현 선수는 오빠가 뭐가 예뻐서 계속 데리고 다니지? 게임 잘해서인가? 근데 오빠가 게임 잘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케인이 들었다면 ‘야!’라고 외쳤을 소리였다.
달칵-
앞의 문이 열리고 교수가 들어왔다. 태현의 전공 교수인 김 교수였다.
“오늘은 사람이 좀 많네? 출석부터 불러볼까?”
하나씩 출석을 불러가던 김 교수는 무언가 깨달았다.
‘김태현 이 자식… 안 나왔잖아!’
태현 얼굴 한 번 보겠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태현이 끝까지 안 오자 당황해했다.
“뭐야? 왜 안 와?”
“이거 듣는 거 맞아? 정보가 틀린 건가?”
* * *
“야!!!”
“아니, 개강총회에만 나오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이런 미친놈 같으니….’
김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개강총회에 꼭 한 번 나오라고 했더니 그걸 개강총회에만 나오라고 알아듣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일주일에 한 번만 나와서 수업 듣는 놈이 그걸 빠져?!”
“첫 번째 주라 제 시간표가 확정이 안 되어서….”
“말 같지도 않은 변명 하지 마! 네 시간표는 이미 확정 끝났잖아! 너 기다리던 애들이 몇 명이나 있었는데!”
“예? 그런 미친놈들이 있단 말입니까? 대학 와서 왜 그런 짓을?”
“네가 할 소리냐….”
“그보다 얼굴만 내밀면 되는 거 맞죠?”
지금 태현은 김 교수한테 잡혀서 끌려가고 있었다.
“얼굴만 내밀면 안 되고 조금 앉아 있다 가. 애들 질문도 좀 받아주고 우리 과가 얼마나 좋은지도 말해주고 네가 나 같은 멘토를 만나서 얼마나 좋았는지도 말해주고.”
“네? 마지막은 처음 듣는… 그리고 교수님께서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과 애들이 저 별로 안 좋아해요.”
“그건 네가 착각하는 거라니까.”
김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태현을 끌고 갔다.
지금의 태현과 몇 년 전의 태현은 위상 자체가 달랐다.
몇 년 전의 태현은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는데 성격 더러운 놈인 거 같다 조심하자’ 정도였지만, 지금의 태현은 ‘아니! 저 사람이 그 김태현이야!?’였다.
같은 짓을 해도 몇 년 전의 태현이 했다면 ‘헉 무서워!’겠지만 지금의 태현이 하면 ‘헉 역시 김태현 선수야 뭔가 있어 보여!’라는 반응이 나오게 마련!
“자. 들어가!”
“!!!!!”
둘이 안으로 들어가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치만 안 보였다면 소리라도 지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교, 교수님. 여기 앉으세요!”
“아닙니다. 여기 앉아주세요!”
“제 옆이 비어 있습니다! 여기 잔도 하나 더 갖다 놨는데!”
“이 자식들… 평소에 이렇게 좀 챙겨주지….”
평소에는 맨날 자기 옆에 안 앉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던 놈들이 태현이랑 같이 왔다고 자기 옆에 앉히려고 하다니.
“무슨 소리십니까 교수님! 저희가 교수님을 얼마나 존경하는데! 김태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XX학번 강준수라고 합니다! 직업은 성기사입니다!”
“성기사? 혹시 어느 교단이니?”
“데메르 교단인데요…?”
‘헉. 혹시 아키서스 교단이 아니라서 그런가?’
팬답게 태현이 어떤 직업이고 뭘 하는지는 다 꿰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태현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녀석. 아주 좋은 교단을 골랐구나.”
“선배님! 저도 성기사입니다! 저는 파이토스 교단입니다!”
“…….”
“?!”
태현이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자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라고 말했던 후배는 당황했다.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