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52화
“확실히 맞는 말이야. 음음. 그렇게 당해놓고서도 그냥 왔을 리가 없지. 분명 무슨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해.”
옆에서 케인이 추임새를 넣었다.
에반젤린은 한층 더 어이가 없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케인이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아니 어이가 없어서… 그쪽이 그런 소리를 할 처지야?”
“내가 왜?”
“대회 끝나고 캐나다 선수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케인 선수는 뭐 김태현한테 약점 잡힌 거 있냐고 묻더라!”
“?!”
“내가 보기에 너는 스톡홀름 증후군 수준이야!”
“스… 스톡 그게 뭔데?”
케인은 물었지만 뜻을 아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에반젤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케인이 아니라 퀘스트였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그냥 도와주러 온 게 아니지. 나도 내 퀘스트 깨러 온 거야. 살라비안 교단 막는 퀘스트.”
그 말을 들은 태현은 다른 일행들과 수군거렸다.
물론 다 들리게!
“저 말 진짜 같냐?”
“진짜 아닐까요?”
“흥. 난 아닌 것 같은데.”
-속임수 같다. 우리 거인 똑똑하다. 뱀파이어는 거짓말 잘하는 종족이다.
“다 들리거든!”
* * *
자기가 받은 퀘스트창(원래는 파티를 하더라도 일일이 다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에반젤린은 첩자 의혹을 풀 수 있었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취급 안 받는데…!’
실력이면 실력, 얼굴이면 얼굴, 게다가 이제 불운 페널티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더 이상 혼자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거 따위는 전혀 신경 안 쓰는 게 태현 일행!
“자. 그러면 살라비안 교단에 대해서 아는 걸 자세히 설명해 봐. 두괄식으로. 마지막에는 세 줄 요약 넣는 거 잊지 말고.”
“맞아, 맞아!”
스르릉-
에반젤린은 대답 대신 무기를 뽑으려고 들었다. 내가 더러워서 그냥 싸우고 말지!
“잠깐. 저 사람은 누구야?”
“아. 지수라고 아는 동생.”
“앗. 반가워요.”
에반젤린은 반갑게 인사했지만 유지수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에반젤린을 쳐다보았다.
“내, 내가 뭐 잘못했나?”
“흠. 케인이랑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군. 찔리는 게 많은 인생을 살아왔니?”
“누가 할 소리를…!”
“뱀파이어라서 무서운가 보지. 어쨌든 설명이나 해봐.”
“나도 아는 게 그렇게 많지는 않아….”
에반젤린이 말해준 살라비안 교단의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악신 계열에, 사악한 힘을 받아들여서 일반 뱀파이어보다 몇 배로 더 강하고, 도미닉은 그 뱀파이어 교단의 꼭두각시 중 하나며….
“그리고 아키서스 교단을 싫어해.”
“…….”
이번에는 태현이 입을 다물 차례!
“왜??”
“나도 몰라. 당한 게 많나 봐.”
[카르바노그가 낄낄댑니다.]
“뭐… 상관없지. 도미닉도 이미 날 싫어하는데 교단이 더 싫어한다고 달라지겠어.”
이제 와서 한 놈 더 추가한다고 태현의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게 다야? 뭐 더 없고? 혼자 온 건 아니지?”
마치 빚쟁이처럼 뻔뻔하게 말하는 태현!
“…내가 부리는 뱀파이어 전사들하고 마법사들 데리고 왔는데.”
“하하. 에반젤린. 난 널 믿고 있었어.”
“너는 정말….”
영지로 이동하면서 태현은 살라비안 교단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 필요할지 고민해 보았다.
다른 귀족들의 병력을 끌어들이거나 이이제이는 나중에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영지에 있는 저 많은 인원들을 데리고 싸우려면 준비가 필요했다.
‘음. 이번에 현철도 기껏 얻었는데 아직 쓰지도 못하고 있는데….’
조잡한 기술로 추출해 낸 현철 덩어리:
조잡한 기술로 추출해 낸 거대한 현철 덩어리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추출해 내는 것도 어마어마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태현은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영지에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에게는 아키서스 교단의 각종 아이템들을 지급해 줄 수 있었다.
성수부터 시작해서 성기사들, 사제들을 동원한 축복까지. 이 정도면 대 뱀파이어 준비로는 기본은 될 것 같았다.
[카르바노그가 뭔가 잊은 것 없냐고 묻습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이름이 붙은…]
‘단검은 어따 쓰지?’
일반 플레이어들한테 뿌릴 수는 없었다. 일단 태현 혼자 만드는 만큼 양이 그만큼 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태현을 노리는 적들이 이런 단검들을 대량 구매한 다음 역으로 태현을 노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뿌리더라도 좀 믿을 만한 놈들한테 뿌려야 한다!
그래야 회수도 가능하지!
‘현철은 일단 거인들한테 줘야겠다.’
고민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거인들에게 주는 게 맞았다.
현철이 워낙 다루기 어려워서 좋은 무기를 만들기 어려웠고, 그나마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몽둥이 같은 종류였다.
현철로 거인들이 쓸 몽둥이를 만들다니, 대장장이들이 듣는다면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거인들이 쓰면 효과도 좋고, 무엇보다 나중에 다시 뺏어서 녹인 다음 제련할 수 있단 말이지.’
투박한 몽둥이라면 녹여서 다시 다른 무기로 만들어도 손해가 적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올리기 위해 최소 몇 번은 더 현철 덩어리를 만질 생각인 태현이었다.
뚝딱뚝딱-
“자. 여기 너희 무기야.”
-우오오! 이게 뭐냐!
“아아. 이건 ‘금속 무기’라는 거다.”
-대단하다! 인간! 너무 대단하다!
-응?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만져본 느낌이다.
자기네들 성소에 있던 바위를 갖고 왔으니 거인들이 익숙할 법도 했다.
그러나 태현은 시치미를 뚝 뗐다.
“그만큼 잘 만들었기 때문이지!”
-그런가!
-인간 대단하다. 강하고 재주도 많다! 우리 인간 계속 따라다니고 싶다!
“아, 아니 그건 좀….”
* * *
태현 일행이 영지 멀리 도착하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따라 나와서 함성으로 환영했다.
“김태현!! 김태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주님 투기장 하나 더 지어주세요!”
꿈틀-
환호의 외침 중 하나가 태현의 심기를 거슬렸다.
너희들만 좋은 짓을 내가 다시 하라고?
“언제 출발하죠?! 뱀파이어하고 싸우고 싶어요!”
“장비 세팅도 다 뱀파이어하고 싸우려고 바꿨습니다!”
몸이 근질거리는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금 당장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면 우르르 달려 나갈 기세!
그러나 태현은 진지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제가 하려는 퀘스트에 이렇게 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태현의 공손한 태도에 다시 한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잘나가는 랭커 중 한 명이 보여주는 이런 태도는 언제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태현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태도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마치 기르던 짐승을 잡기 전에 마지막으로 잘 먹여주는 것 같은 태도!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일단 해야 할 건….”
“……?”
“수비입니다!”
“??!”
“제가 알아본 결과, 뱀파이어 놈들은 여기로 공격해 올 겁니다. 굳이 뱀파이어들을 잡기 위해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방어를 굳히고 있다가 역습하면 훨씬 더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
“여기서 저번에 대해적 갈르두를 상대해 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웅성웅성-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나왔다. 저번 갈르두 해적단이 쳐들어왔을 때 영지에 있다가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그 퀘스트가 판온에서 가장 재밌었던 퀘스트 중 하나!
레벨이 높지 않아도, 장비가 화려하지 않아도 어려운 난이도의 퀘스트에 참가해서 무언가 할 수 있었다.
“그때처럼 방어하는 겁니다. 참 쉽죠?”
“예!!!!”
지금 당장 싸우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들은 불평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좋다고 환호했다.
“자! 그러면 여러분 방어를 위해 건설을 합시다!”
말을 마친 태현은 사악하게 웃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보고 태현이 떠올린 건….
바로 공사였다.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화려하게 벌이는 전투? 태현은 그런 건 믿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제대로 된 지휘가 되겠는가!
기껏해야 공격, 후퇴 정도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인원을 데리고 왕국 수도를 장악한 뱀파이어 교단과 맞붙는 것보다는 공사가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펠마스, 갈락파드.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돈 없고 손 없어서 못했던 건설들을 이번 기회에 다 해치우자!”
“……!”
두 간부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 * *
뚝딱뚝딱-
땅땅땅-
골짜기 밖에까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망치를 두드리고 삽으로 땅을 팠다.
영지 뒤는 거대한 골짜기와 산이 막아주고 있었으니, 영지 앞을 아예 높은 성벽으로 둘러쌀 생각이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성벽 앞에는 작은 요새들이 추가로 세워지고 있었다.
“이 요새는 제가 지휘해서 짓겠습니다! 절 따라오세요 모두들!”
“여기 구역을 지으려면 재료가 더 필요한데… 저쪽 숲에서 챙겨오면 될 것 같습니다.”
태현의 영지에 있던 건축가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런 대형 건축 퀘스트야말로 스킬이 성장할 기회!
물론 이런 퀘스트도 보상을 받고 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그들은 전혀 보상을 생각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이 영지를 아끼는 마음에서 자원한 것!
뱀파이어들에게서, 혹은 나중에 들어올 다른 공격에서 이 영지를 지키는 완벽하게 건축물을 세우리라!
새로 온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지?’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묻지 못했다.
-아니. 뉴비 티 내시네. 아키서스 영지에 하루 이틀 와보시나.
-퀘스트를 하려면 준비해야 하는 거 몰라요?
-아, 아니. 나도 알지! 그냥 한번 말해봤어!
의문을 품는 놈이 이상한 놈이 되는 분위기!
-그런데 성벽이나 요새는 그렇다 쳐도, 아키서스 건물은 왜 짓는 거지?
-그러게…? 기도소나 창고 같은 건 지을 필요 없지 않나?
-뱀파이어랑 싸우니까 버프 같은 거 때문에 짓는 거겠지!
-창고… 가? 그런가?
어마어마한 노동력으로 영지가 빠르게 철옹성으로 바뀌는 걸 보며 에반젤린은 감탄했다.
이렇게 대규모로 인원을 동원해서 벌인 경우가 판온에 있었던가!
보통 이 인원의 1/10도 안 되는 인원도 많은 축에 속했다.
“그런데 살라비안 교단이 여기로 온다는 정보는 어떻게 얻어낸 거야?”
“응? 아. 그거? 나도 몰라. 그냥 기다리면 오겠다 싶어서 말한 건데.”
“……!”
“도미닉도 나 싫어하고 교단도 나 싫어하면 기다릴 경우 알아서 오지 않을까 싶어서.”
“거, 거짓말을 했다고?”
“거짓말은 아니지. 계속 기다리면 온다니까.”
“안 오면 어쩌려고!”
“언젠가는 오겠지. 뭐 안 와도 상관없고.”
태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판온 1 때는 뭘 해도 다 혼자서 해내야 했는데, 판온 2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도와주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덕분에 이렇게 날로 먹을 수 있는 것!
“백작님. 성수 만들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 가서 도와줄게.”
태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스킬 하나라도 더 올리려고 무조건 참가했다.
“태현 님. 저기 대장장이들이 뱀파이어 상대하려고 은을 도금한 화살을 만든다는데요.”
“앗! 나도 갈게!”
“태현 님. 저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폭탄 만든다고….”
“음. 그건 안 간다. 멀리 떨어져서 만들라고 해라.”
어쨌든 솔선수범하는 태현의 모습은 영지에 몰려온 플레이어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랭커 중에서 저렇게 겸손하게 솔선수범하는 랭커가 얼마나 있는가!
보통 랭커 정도 되면 어깨에 힘을 주고 저런 잡일 퀘스트 같은 건 길드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뭐든지 직접 끼어서 만들려고 했다.
화르륵!
덕분에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의 마음에도 불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