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51화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에랑스 왕국이나 오스턴 왕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아탈리 왕국도 나름 괜찮은 나라였다.
물론 각 영지를 갖고 있는 귀족들이 있으니 모든 걸 태현 마음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하나 있는 상황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
‘아니지. 지금 김칫국부터 마시면 안 되는군.’
순간 솔깃했지만, 태현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지금 보니 다른 귀족들도 다 야심 차게 도미닉을 해치우고 자기가 왕위에 오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병력이 거의 없는 태현보다는 군대에 기사단까지 데리고 있는 귀족들이 훨씬 유리했다.
‘생각 좀 해보자. 내가 부릴 수 있는 병력이….’
영지에 있는 병력은 맥크레니 상단 용병,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 사디크 교단 성기사 등 정도가 전부였다.
대부분이 영지 주변을 지키고 치안을 관리하는 데에도 빠듯한 정도!
[현재 영지를 지키는 병력이 적습니다.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영지 주민들이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줄어듭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본부가 영지에 있습니다.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줄어…]
[사디크 교단의 인원들이 영지에 있습니다.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줄어…]
사실 태현도 영주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병력을 늘릴 수는 있었다.
군대를 소집하고 훈련시키고….
영주와 영주가 아닌 플레이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것!
그렇지만 태현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군대는 소집하고 훈련하고 유지시키는 게 다 돈!
다른 영주들은 군대 없으면 치안이 개판 나고 민심이 하락하고 몬스터나 외부 공격까지 들어오니 눈물을 머금고 군대를 모으고 용병을 고용했지만….
태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민심? 태현 영지의 민심은 판온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았다.
외부 공격? 태현은 언제나 외부에서 병력을 빌려서 영지에 박아 놓았다.
아농 백작의 기사단부터 시작해서 이번에는 국왕의 근위대까지!
그렇기 때문에 태현은 군대를 만들기보다는, 아키서스 교단 NPC들을 늘리는 데에 주력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더더욱 몰랐으니까.
‘음. 좋다 말았군. 괜히 있지도 않은 병력 데리고 꼬라박지 말고 버텨야겠다. 다른 귀족 NPC 놈들이 도미닉을 처리해 주길 빌어야겠군.’
결정을 내린 태현은 근위대장을 보며 말했다.
“근위대장!”
“예! 백작님!”
“내가 바빠서 그런데 좀 기다려야 할 거 같군!”
“…백작니이이이임! 어허헝!”
태현은 마음만 먹으면 누가 눈물을 흘려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통곡하는 근위대장은 무시하고, 태현은 오리하르콘 추출에 집중했다.
화살 하나만 나오면 대박이다!
* * *
태현이 근위대장을 무시하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도 퀘스트가 떴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김태현 백작을 왕으로!-아탈리 왕국 국왕 퀘스트>
도미닉의 학살로 다미아노 2세의 아탈리 왕가 핏줄은 모조리 끊겼다.
정당한 귀족인 김태현 백작은 도미닉의 폭정을 끝내고 아탈리 왕국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려고 한다.
새로운 국왕이 될 수도 있는 김태현 백작을 도와 승리로 이끌어라!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막대한 보상이 있으리라.
보상: ?, ????, ?????
공적치 포인트에 따라 보상이 달라짐.
“!!!!!”
투기장 앞에 길게 줄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퀘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대박의 예감!
“야, 봤냐?! 봤냐?!”
“당연히 봤지! 사람들 모으자!”
“아탈리 왕궁에 뭔 일 났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게 이거였어?!”
태현이 직접 진행하는(아니지만) 퀘스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투기장 하려고 기다리던 플레이어들은 냉큼 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는 투기장보다는 이 퀘스트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태현의 퀘스트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보상마저 보통 퀘스트와는 비교가 안 됐다.
일반 플레이어들은 평소에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기회!
-김태현, 왕국 퀘스트에 도전….
-김태현이 하는 왕국 퀘스트 분석, 도미닉과 도미닉 군대!
-살라비안 교단이 뭐하는 교단임? 가입하려고 했더니 피 빨려고 하던데?
-김태현 왕국 퀘스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영지 가서 거점만 바꾸면 되나요?
덕분에 태현의 영지에 오지 않던 플레이어들도 우르르 몰려와서 영지에 거점을 박기 시작했다.
이 퀘스트를 놓칠 수는 없어!
* * *
“됐다…! 크흑!”
-헥헥… 주인님… 저는 더 이제….
[흑흑이의 브레스 스킬이 오릅니다.]
[흑흑이가 지쳐 쓰러집니다.]
[사디크의 마수를 쓰러질 때까지 부린 것으로 인해 아키서스 교단의 명성이 오릅니다.]
‘응?’
뭔가 이상한 메시지창이 있는 것 같았지만 태현은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참새 눈물만큼 나오는 오리하르콘을 모아서 결국 화살 하나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작은 오리하르콘 화살(1):
오리하르콘 화살 하나를 통째로 못 만드는 사람이 머리를 굴려 작게 만든 화살.
그러나 그 창의성과 실력만큼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7까지 올랐군.’
최상위 대장장이 랭커들은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넘어,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찍었다고 소문이 돌고 있었다.
어찌나 길드 쪽에서 아끼는지 찍고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정도!
이해는 갔다. 태현 같아도 상대 길드를 견제하려면 그런 대장장이부터 암살할 테니까.
암살하기도 쉽고 방해하기도 쉬운 목표!
‘대장장이 기술을 최고급 찍고 싶긴 한데, 시간이 없군. 이런 바위 더 구할 수 없나?’
“태현이 이 녀석!”
“?”
“음흉하기는! 형님이 부러워 죽으려고 하시더라!”
오크 아저씨는 태현의 등짝을 철썩 치더니 가버렸다.
“???”
“태현 님. 이거 퀘스트 떴는데 받으면 되나요?”
이다비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태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토벌대가 조직되고 있었던 것!
“아직 아냐! 뭔 토벌대야!”
“네?!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지금 상황이 저거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태현은 이다비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다른 멍청한 놈들, 케ㅇ… 은 그렇다 쳐도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이다비까지 저러다니!
“그런데 태현 님은 원래 불가능해 보이는 퀘스트도 했잖아요. 아니, 사실 불가능해 보이는 퀘스트들만 했던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
반박하기 힘들게 사실로 때리는 이다비! 그렇지만 태현도 할 말은 있었다.
“내가 했던 퀘스트들은 무모해 보여도 다 계산이 있어서 했던 거라고. 아무 계산도 없이 하는 건 케인이나 하는 짓이지.”
“응? 나 불렀어?”
지나가던 케인이 이름을 듣고 호다닥 달려왔다.
“야! 국왕 작위 퀘스트라니! 나 너무 기대된다. 뜨자마자 받았는… 컥! 왜!”
“그래. 이렇게. 그리고 이번 건 계산이 안 선단 말이야. 뭐가 있어야 퀘스트를 할 텐데… 근데 플레이어들 얼마나 모였어?”
말하던 태현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다비는 대답 대신 영지의 영상을 켜서 보여주었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이용권! 이용권! 이용권!
-투기장! 투기장! 투기장!
각자 뭘 바라는지 너무 확실하게 느껴지는 외침!
“이 정도면 좀 적은데? 뭐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 여기는 좁아서 이만큼만 있는 거고요, 다른 사람들은 다 도시 밖에서 서 있어요.”
“…?!?!”
도시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십 배는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태현은 이 인원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이건… 될지도 몰라!
* * *
“좋아. 지금 당장 영지로 돌아간다!”
“와!”
-와아아아!
-와아, 와아!
“…잠깐. 뭔가 이상한 놈들이 있는데.”
‘와!’는 태현 일행이 한 소리였다.
‘와아아아!’는 유지수가 데리고 다니는 타이럼 사냥꾼들이 한 소리였고.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타이럼이 가족 같은 분위기의 훈훈한 도시였지만, 타이럼 사냥꾼들의 실력은 확실했으니까.
그렇지만 ‘와아, 와아!’는 누가 한 소리지?
정답은 바로 거인들이었다.
김태산을 따라온 거인 부족들은 대부분이 영지에 자리 잡았지만, 몇몇 전사들은 태현을 따라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너, 대전사 이겼다. 우리 강한 사람 좋아한다. 너 따라간다.
“…….”
오크 아저씨들은 지나가면서 분함의 눈물을 흘렸다.
“크흑, 태현이 녀석. 거인들에게 인정을 받다니. 부럽다.”
“우리는 아직도 인정 안 해주던데!”
‘그딴 거 필요 없어….’
태현은 떨떠름한 눈으로 거인들을 쳐다보았다.
도움이 될까?
아니, 확실히 잘 쓰면 도움은 될 것 같은데….
고민하던 태현은 결국 거인들을 받아들였다. 이런 대형 퀘스트에서는 손 하나가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다다다다-
“?”
일행이 막 출발하려는데, 멀리서 한 무리의 파티가 나타났다.
-주인님! 뱀파이어입니다!
-주인이여, 뱀파이어다!
흑흑이와 용용이가 곧바로 반응했다.
나름 신을 모시는 신수와 마수인 둘에게 뱀파이어 같은 불결한 생물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
“!”
도미닉을 도와주는 건 살라비안 교단, 그리고 살라비안 교단은 뱀파이어를 부린다고 했으니….
“공격 준비! 암살자다!”
태현의 말에 일행은 재빨리 공격을 준비했다. 특히 타이럼 사냥꾼들은 신이 나서 화살부터 갈겼다.
-발싸! 발싸!!
-히히 화살 발싸!!
‘저놈들은 못 본 사이 더 이상한 놈들이 됐군.’
태현은 못 본 척했다. 유지수도 못 본 척하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마음고생이 심해 보였다.
동병상련!
아키서스 교단을 이끄는 태현 입장에서는 이해가 갔다.
“아야! 아얏! 쏘지 마! 쏘지 말라고! 나란 말이야!”
“?”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내며, 뱀파이어가 비명을 질러댔다.
“뭐냐?”
-속임수다. 속임수. 우리 거인 똑똑하다. 저런 속임수에 속지 않는다.
거인들은 우쭐해하며 말했다. 평소라면 듣지 않았겠지만, 태현은 그 말에 설득력을 느꼈다.
“확실히 속임수겠군. 뱀파이어는 사악하니까. 다시 공격!”
“야!! 김태현 이 나쁜 놈아!”
“저, 저 사악한 뱀파이어 봐. 내 이름까지 부르면서 수작을 부리는군. 다시 공격!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저… 태현 님. 저 사람 에반젤린 씨 아닌가요?”
이다비가 멀리 있던 뱀파이어의 얼굴을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케인은 무릎을 쳤다.
“아,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같은 대회에서 만나놓고 얼굴도 기억 못 하는 둘!
“중지! 잠깐. 그런데 에반젤린으로 위장한 뱀파이어일 수도 있잖아.”
“그런 복잡한 계략을 쓰는 사람이 있을 리가… 아니, 있긴 있네요. 태현 님밖에 없죠.”
그사이 에반젤린은 천천히 걸어왔다.
눈빛에는 분노, 슬픔, 원망, 기타 등등이 복잡하게 담겨 있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네가 암살자인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왔냐?”
“살라비안 교단 퀘스트 때문에 왔어. 으. 화살 왜 이렇게 아파? 피 쭉쭉 깎였네.”
“미안하게 됐어. 포션이라도 줄게.”
“나도 포션은 있… 아야! 야! 이거 성수잖아!!”
“아.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온 거라 착각했다. 미안.”
“…….”
이제는 거의 태현을 찌를 눈빛! 에반젤린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살라비안 교단 때문에 도와주러 왔더니….”
“잠깐. 너도 뱀파이어인데 도와주러 왔다고? 진짜?”
“…….”
이 자식은 무슨 속고만 살았나?
에반젤린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스스로 해답을 찾았다.
맨날 속이고만 살았으니 저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