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645화 (645/1,826)

§ 나는 될놈이다 645화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지만, 이다비의 얼굴이 진지한 걸 보고 유지수는 당황했다.

농담이 아니었어?

“저는 골드를 가지고 농담하지 않아요!”

“앗, 네.”

이다비의 박력에 유지수는 압도되었다.

회심의 공격이 막히자, 사디크 성기사단장은 다시 수세로 몰렸다.

꽝! 꽝!

“아, 아저씨들! 살살 팹시다! 갑옷 망가집니다!”

“야, 이 미친놈아! 지금 그거 신경 쓸 때냐!”

오크 아저씨들은 태현의 말에 기가 막혀서 따졌다.

보스 몬스터 잡을 때 그런 거 신경 쓰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무리 사디크 성기사단장이 궁지에 몰려 있다고 하더라도 보스 몬스터는 보스 몬스터였다.

아차 하면 훅 갈 수 있는 것!

하지만 태현은 진지했다.

“갑옷 말고 얼굴을 때려요! 데미지도 더 들어가고 갑옷도 덜 망가지고!”

“네가 해봐 인마!”

“야, 태현이는 하라고 하면 진짜 하는 놈이잖아.”

“아. 그랬지. 다시 말해야겠군. 우리가 너냐 인마!”

오크 아저씨들의 항의에 태현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창 한 번만 찔러 넣으면 된다!

그렇지만 사디크 성기사단장은 철저했다.

“에잇! 이놈!”

퍼퍼퍼퍽! 퍼퍼퍽!

오크 아저씨들의 공격은 피하지도 않고 맞아주지만….

-노예의 쇠….

-사디크의 화염 분신! 사디크의 스킬 차단!

케인이 스킬을 쓰려고 하면 기를 쓰고 방해했다.

“으아악! 왜 나만!”

안일하게 쇠사슬 쓰려고 했다가 호되게 반격을 맞은 케인은 뒤로 물러섰다.

게다가 태현이 접근만 하면 성기사단장은 바로 거리를 벌렸다.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자 태현은 전략을 바꿨다.

“야, 이 겁쟁이 같은 놈아! 사디크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맞다, 맞아!

흑흑이는 신이 나서 추임새를 넣었다. 태현은 뭔가 이상한 걸 깨닫고 물었다.

-잠깐만. 흑흑아. 너 아까 잘 날아다니던데 왜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냐?

-주, 주인님. 그게… 사디크의 화신이 떠나버려서 그런지 힘이….

-…그래. 알겠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알겠어 인마.

흑흑이의 변명이 귀찮았던 태현은 손을 흔들어서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성기사단장을 지목했다.

“모두들 저놈을 비웃읍시다!”

“응? 왜?”

“일단 하라니까 하지만….”

오크 아저씨들은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일단 하라니까 했다.

그리고 매우 잘했다!

“이 토끼 같은 놈! 할 줄 아는 건 토끼는 거밖에 없냐!”

“사디크 신은 화염의 신이 아니라 도망의 신이었냐!”

부들부들!

별 같잖은 오크들한테까지 비웃음을 받자 사디크 성기사단장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에베베베! 에베베베베!

“이 배신자 도마뱀 새끼가 진짜!”

참고 참던 사디크 성기사단장도 흑흑이의 도발에 폭발했다.

화르륵!

“빈틈 발견!”

“크아악!”

-사실 제게는 도발의 재능이 있었던 걸지도….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태현은 아키서스 검술을 사용해서 대만불강검을 이리 찌르고 저리 찔러 넣었다.

푹! 푸욱! 푸우욱!

“태, 태현이 저놈. 갑옷을 피해서 찌르고 있어!”

“귀신 같은 놈!”

“역시 태현 님이에요!”

이다비는 감탄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저걸 보고 배워야 하는데!

상대방을 그냥 잡는 게 아니라 장비를 빗겨서 잡는 완벽한 사냥법 아닌가!

“절대… 너희들은 그냥 둘 수 없다!”

성기사단장의 눈빛이 타오르자, 태현은 재빨리 손짓했다.

“전원 물러서!”

-사디크의 진노!

-아키서스의 축복!

거대한 화염 파도가 덮쳐오는 순간 태현은 바로 스킬을 사용해서 카운터를 쳤다.

[화신이 이끄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행운을 공유해 줍니다.]

[사디크의 진노를 회피하는 데 성공합니다.]

[사디크의 진노를…]

“죽일 놈의 아키서스!”

“이제 그 정도는 너무 식상하다!”

성기사단장이 저주를 퍼부었지만 태현 일행은 흔들리지 않았다.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보스 몬스터 레이드의 정석!

중간중간에 성기사단장이 발악하듯이 강력한 광역기를 썼지만, 태현이나 오크 아저씨들은 막아내고 피해내는 데 성공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정석적으로 잡은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은데.’

“크… 윽!”

쿵-

결국 마지막 일격을 맞고, 사디크 성기사단장은 앞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사디크 교단의 선봉장, 사디크 성기사단장이 쓰러졌습니다!]

[대륙을 불태우려던 사악한 교단, 사디크 교단의 마지막 간부진이 쓰러졌습니다. 이걸로 한동안 사디크 교단은 다시 나타나지 못할 겁니다.]

[대륙의 유일한 사디크 교단의 적통이 되었습니다. 사디크 교단의 부활을 선언할 수 있…]

‘미쳤냐?’

안 그래도 아키서스 교단만으로도 다른 교단들이 노려보는데, 사디크 교단 부활을 외쳤다가는 당장에 옳다구나 하고 토벌군을 조직할 것이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사디크의 신성 권능을 얻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명성이 30,100, 악명이 22,160. 한때는 악명이 명성을 넘겼었는데 이제는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악명 스탯이 남들의 서너 배는 되지만 그걸 줄일 생각은 안 하고 명성을 더 올려서 커버하는 태현!

[신성 스탯이 10,000을 넘겼습니다.]

‘앗. 뭐 또 주는군!’

태현은 바로 알아차렸다. 이건 뭔가 보상을 주는 메시지창!

두근두근!

‘뭘 줄까? 광역기도 좋고 원거리 딜링 스킬도 좋고… 저주 카운터 스킬도 좋겠지. 언령 스킬이 지금 너무 비효율적이니 보완해 주는 MP 회복 스킬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태현!

[현재 아키서스, 사디크, 카르바노그의 신성 권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살짝 불안해졌다. 그걸 지금 왜 다시 말해주지?

[이 중 하나의 신성 권능을 랜덤으로 얻습니다.]

‘안 돼!!!’

태현은 기겁했다. 하필이면 왜 랜덤이야!

‘아, 아직 결정 난 건 아니니까….’

1순위는 아키서스, 2순위는 사디크.

아키서스는 이상한 스킬도 많았지만 강력한 스킬셋이 많았다. 무엇보다 태현의 권능 스킬들과 연계가 가능했다.

사디크는 악신이긴 해도 파괴력 하나는 화끈했고!

제일 피해야 하는 건 카르바노그!

<토끼한테 먹이 주기>, <토끼한테 맛있는 먹이 만들기>, <토끼가 제일 좋아하는 미끼 만들기> 같은 스킬이 나오면 태현은 돌아버릴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항의합니다. 카르바노그의 권능도 좋은 것이 많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카르바노그의 신성 권능을 얻습니다!]

‘안 돼!!!’

[<카르바노그의 단검 제작>을 얻었습니다.]

“…어?”

* * *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권능 스킬.

그것도 제작 관련 권능 스킬이었다.

‘토끼 밥 주기 같은 거 나올 줄 알았는데….’

[카르바노그가 화를…]

‘알겠어. 알겠어.’

그렇지만 태현은 안심하지 않았다.

카르바노그의 단검이 뭔지부터 알아야지!

<카르바노그의 단검 제작>

토끼 신 카르바노그의 축복을 받아, 카르바노그의 단검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카르바노그의 단검:

내구력 ?/?, 물리 공격력 ?

토끼의 강함은 그 숫자에 있다.

(추가 옵션: 단검을 든 사람의 숫자가 주변에 많아질수록 단검의 공격력에 추가 버프.)

“?”

태현은 혹시 잘못 읽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러나 설명은 그대로였다.

내구력이나 물리 공격력은 직접 만들면 ‘?’ 대신 제대로 된 숫자가 나올 테니 넘어가고, 설명과 옵션이….

‘뭐 이런 옵션이 있냐?’

한마디로 저걸 든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강해진다는 것!

특이한 옵션이었고, 쓰기 애매한 옵션이었다.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거면… 기본 공격력이 어마어마하게 낮을 것 같은데….’

태현은 금세 눈치를 챘다. 너무 좋아 보이는 옵션은 언제나 함정이 있었던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우쭐해합니다.]

‘지금 우쭐해할 때 아니거든.’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꽝은 아닌 것만으로 만족했다.

사디크의 신성 권능은 따로 얻었고, 또 장비까지 얻었으니까.

“태현아, 태현아!”

“?”

확인하던 태현을 깨운 건 오크 아저씨들의 목소리였다.

“슬슬 튀어야 하지 않냐? 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쾅쾅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까 밖에서 쳐들어온 거인들이 점점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

“예. 챙길 거 다 챙겼으니까 튀죠!”

* * *

에랑스 왕국.

대륙에 많은 왕국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플레이어들이 에랑스 왕국에서 시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장 잘나가는 왕국!

다양한 시설과, 아주 좋은 치안. 어떤 직업이든 간에 에랑스 왕국에서 시작하면 평균 이상은 갔다.

어떤 직업을 고르든 평균 이하로 가는 타이럼 시와는 반대!

그렇기에 에랑스 왕국의 플레이어들은 평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게시판에 <오스턴 왕국인데 여기 또 전쟁 퀘스트 떴어요!> 같은 글이 올라와도 ‘그런가 보다’, 게시판에 <우르크 지역에서 개척 중인데 여기 10분 간격으로 몬스터들이 쳐들어와요!> 같은 글이 와도 ‘그런가 보다’!

콰아아아앙!

그렇기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화염 기둥을 보고, 플레이어들이 도망치지 않고 다가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 뭐야? 유성이야?”

“헉! 그러면 현철 같은 거 구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 날로 먹는 이벤트를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이야…!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니까!”

웅성웅성!

유성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퍼지자 주변 필드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는… 사디크다….

“응?”

그 순간 중앙 대륙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메시지창이 떴다.

[사디크의 화신이 중앙 대륙에 발을 디뎠습니다. 대륙의 모든 교단에 증오심을 가진 사디크의 화신은 모든 것을 태우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설 등급 퀘스트-사디크의 화신을 토벌하라!>

무한한 증오심을 가진 사디크의 화신은….

동시에 사디크의 화신 토벌 퀘스트까지!

그제야 가까이 다가선 플레이어들은 저 유성의 정체를 깨달았다.

“잠, 잠깐….”

“도망치자!”

-나는… 사디크다!

화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불의 거인이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화염의 파도로 뒤덮었다.

[HP가 0이 되어…]

[HP가 0이 되어…]

그것만으로 필드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전원 전멸!

-일어나라… 나의 부하들이여!

화르르륵!

불타는 대지에서 화염으로 지글거리며 타오르는 사디크의 마수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분도 되지 않아 대지에는 거대한 마수 군단이 완성되었다.

성 하나 정도는 그냥 짓밟을 수준!

-키키키킥, 사디크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캬하악! 모든 걸 태워버리고 싶다! 모든 걸 태워버리고 싶다!

-내 마수들… 음… 블랙 드래곤은 왜 없지… 그보다 내 충실한 종인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왜 보이지 않느냐….

-키힉, 주인님. 사디크 교단의 사람들은 다른 교단들에게 토벌당해서 몰락했답니다.

-뭐… 뭐라고…! 용서할 수 없다…!

-캬학, 아키서스 교단의 놈들이 가장 활약을 했답니다!

-용서할 수 없다…! 에랑스 왕국을 치려고 했는데… 오스턴 왕국에 교훈을 내리고 가야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 몇 개를 태워서 놈들에게 교훈을 내리겠다… 내게 저항하는 놈들에게는 오로지 화염이 있을진저!

쿵, 쿵-

사디크의 화신은 에랑스 왕국을 치기 전에 오스턴 왕국을 몇 대 때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아키서스 신앙이 퍼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그때, 쑤닝은 역사적인 선언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오스턴 왕국의 국왕은 도망갔고, 이제 통일이 눈앞이다!’

아직 점령하지 못한 몇몇 길드들의 영지가 있었지만 시간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건, 가장 커다란 경쟁자인 오스턴 왕국의 국왕!

이 국왕만 처리하면 오스턴 왕국의 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이 국왕이 길고 긴 공성전 끝에 결국 도망친 것이다.

계속해서 죽이고 죽여도 나타나는 길드 동맹의 어마어마한 숫자!

아무리 정예인 오스턴 왕국군도 이런 계속되는 공격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내전으로 숫자가 줄어 있던 왕국군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후후… 완벽하게 통치해 주마. 일단 오스턴 왕국의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얻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끌어들여야 하니 한동안 세금은 최저한으로 내리고… 좋아 좋아….’

오랫동안 계획한, 오스턴 왕국 장기 집권 계획!

이제 그 계획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