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41화
‘옛말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이 있었지.’
오크 아저씨는 쓸데없이 비장하게 고민했다.
저 순진무구하게 괴식 요리에 감동해서 눈물을 글썽이는 거인들을 보라!
이제까지 저렇게 순수하게 감동한 이들이 있었던가?
다들 괴식 요리의 성능이 좋아서 억지로 먹거나 한 거지, 맛까지 사랑해 준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저 거인들은 정말로 괴식 요리를 좋아하고 있었다.
저 거인들이 그렇다면 거인 부족의 다른 거인들은 더더욱 그러리라!
‘이것도 기회 아닐까? 좋다! 저놈들의 요리사로 일하면서 괴식 요리를 더욱 발전시키는 거야! 저기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더 강한 보약을 만들고!’
“좋다! 이 바위만 갖다 놓고 돌아가서 너희의 요리사가 되어주겠다!”
-오오! 오크! 오오!
-오크! 오오! 오크!
거인들은 신나서 아저씨를 둘러싸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물론 봐줄 만한 춤은 아니었다.
* * *
“뭐 케인을 보내는 것도 사실 무리겠지.”
태현은 빠르게 포기했다. 저렇게 경계를 강하게 하고 있는 곳에 들어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 도적이나 암살자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근처에 있는 다른 거인 부족들을 좀 잡아야겠다.”
“응?”
“왜?”
“소란을 일으키려면 준비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겸사겸사 레벨 업도 하면 좋잖아? 가자!”
태현은 일행을 데리고 자이언 산맥의 바깥쪽으로 돌았다.
여기는 검은 외눈 거인 부족 말고도 다양한 거인 부족들이 돌아다녔다.
“세 놈 미만으로 있는 걸 찾아. 찾으면 말하고.”
태현은 하늘에서 놀고 있는 흑흑이와 골골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둘에게 덩치 큰 거인 부족들을 찾아내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찾았습니다.
“좋아. 움직여!”
원래 태현 일행이었다면 굳이 손발을 맞춰볼 필요도 없었겠지만, 유지수에 오크 아저씨들까지 추가된 이상 파티 플레이를 좀 해볼 필요가 있었다.
주변 거인들을 사냥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킁, 킁! 인간이다! 인간!
-잡아서 먹자! 잡아서 먹자!
“공격 시작!”
쐐애액-
유지수가 쏜 화살을 시작으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눈을 노리는 데 성공합니다. 한동안 상대의 시야가 완전히 가려집니다.]
-눈이 안 보여! 눈이 안 보여!
“달려! 달려서 붙어!”
오크 아저씨들은 투박한 무기 하나씩을 붙잡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거인들의 덩치는 어마어마했지만 그들이 그런 것에 겁을 먹을 리 없었다.
“다리를 찍어버려! 일단 넘어뜨려!”
-이것들이! 이 쪼그만 것들이!
쿵! 쿵!
거인들은 다짜고짜 거대한 몽둥이를 휘둘러서 바닥을 찍어냈다.
거대한 덩치 덕분에 단순한 공격이 범위 공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준비하고 있던 오크 아저씨들이었다. 그 정도는 피할 수 있었다.
-으으… 화난다! 화난다!
“!”
거인들의 눈이 붉어지더니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바윗덩이를 돌멩이처럼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콰콰쾅! 콰쾅!
“조심해! 장난 아니다!”
“컥!”
[엄청난 힘으로 공격을 당했습니다!]
[잠시 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방어구의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오크 아저씨 한 명이 얻어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그 위로 거인들이 던진 바윗덩이들이 쏟아졌다.
[HP가 50% 이하로 떨어집니다!]
[HP가 20% 이하로 떨어집니다!]
[HP가 10% 이하로 떨어집니다. 조심하십시오!]
“으… 미친….”
오크 아저씨는 간신히 피해서 포션을 마신 다음 투덜거렸다. 방패로 막았는데도 그냥 방어 자세째로 날려버리는 무식한 힘!
-흑흑이, 골골이, 너희들은 저쪽을 도와줘라.
-주인님은요?
-난 혼자서 상대할 수 있어.
쉬이익!
흑흑이와 골골이는 위에서 덤벼들었다. 아래에 집중하던 거인들은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저건… 태현이가 부리는 애들인가?”
“멋… 멋있다!”
오크 아저씨들은 감탄했다. 확실히 겉모습 하나는 대단했다.
블랙 드래곤과 거기 위에 타고 있는 데스 나이트!
“우리가 데리고 온 건 언제 저렇게 되누?”
“그놈들 아직도 뭐만 시키면 반항하던데….”
-불타는 청백색 눈, 죽음의 망령이 서린 검, 혼란의 시야….
고급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 거기에서도 각종 강화를 받은 덕분에, 골골이는 고급 흑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으악, 머리가, 머리가 아프다.
-저 날아다니는 해골 짜증 난다!
문제는….
-사디크의 화염 세례!
[사디크의 화염이 <혼란의 시야>를 지워냅니다.]
[사디크의 화염이 <불타는 청백색 눈>의 효과를 지워냅니다.]
일단은 신성 스킬인 사디크 관련 스킬들이 흑마법과 충돌해서 지워버리는 것!
태현과 용용이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지만, 흑흑이와 골골이는 서로 방해하는 효과만 일으켰다.
-이 멍청한 블랙 드래곤 같으니, 뭐하는 짓이냐!?
-그건 내가 할 소리다! 데스 나이트면 칼이나 휘두를 것이지 왜 흑마법을 써? 마법은 내가 써!
“쟤네 뭐하냐?”
태현은 황당해했다. 도와주라고 보냈더니 자기들끼리 다투고 있었다.
쾅!
그러나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태현도 지금 만만찮게 바빴기 때문이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거인들이 던지는 거대한 바윗덩이 같은 건 무시하고 덤벼들어도 됐다. 어차피 회피가 떴으니까.
그렇지만 거인 중에는 독특한 몽둥이를 들고 있는 놈도 있었다.
쾅!
[<피에 젖은 거인의 몽둥이>에서 저주가 퍼집니다!]
주변에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저주!
저런 건 그냥 맞으면 위험했다.
태현은 용용이의 발을 잡고 허공으로 날아올라 피했다.
“머리로!”
-알겠다, 주인이여!
저주가 위험하다면 좋은 건 최대한 가까이 붙는 것이었다.
보통 다른 플레이어들은 거인을 사냥할 때 거리를 두고 둘러싸서 사냥했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최대한 붙어서 최대한 빠르게 끝장낸다!
-아키서스 검법!
거인의 몸에 약점이 어지럽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태현은 재빠르게 거인의 몸을 타고 누비며 약점을 정확하게 찔러댔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 검법의 효과로 <영원히 흘리는 피> 저주가 발동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 검법의 효과로 <마계의 화염> 저주가 발동됩니다!]
[믿을 수 없는 위험한 곡예로 민첩 스탯이 오릅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으아아! 으아아!
거인은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둘러서 태현을 잡아내려 했다.
그러나 의미가 없었다. 태현에게는 주먹이 닿아봤자 행운으로 회피가 떴으니까.
-뭐냐! 왜 안 잡히는 거냐!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거인이 쓰러집니다!]
쿵-
오크 아저씨들이 아직도 하나를 잡고 있는 사이, 태현은 혼자서 폭딜로 거인 하나를 눕혔다.
그걸 본 아저씨들은 경쟁의식을 느꼈다.
“야! 태현이 하나 잡는 동안 우리는 뭐하는 거야!”
“폭, 폭탄이라도 쓸까?”
“그건 좀…!”
-흑마법 쓰지 마라!
-너야말로 사디크 힘 쓰지 마라!
흑흑이와 골골이는 아직도 투닥대고 있었다.
‘개판이군.’
태현은 일단 흑흑이와 골골이를 불렀다.
-너희들이 싸우는 걸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주인님! 쟤가 잘못했어요!
-주인님, 저놈이 잘못했습니다!
-하하. 내가 정확하게 판결을 내려주마. 너희 둘 다 잘못했다.
-…?
-??
-그 말은 즉 지금 당장 저걸 잡지 않으면 너희를 몬스터 정수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이지. 보약도 아깝다. 빨리 안 잡아?
-…!!
흑흑이와 골골이는 새파랗게 질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현은 그걸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 웬수들밖에 없어요.’
-주인이여. 나는 잘 하지 않았는가?
-그래. 너밖에 없다.
태현은 용용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안 그래도 흑흑이와 골골이가 생긴 다음, 둘이 더 빨리 성장해서 초조했을 것이다.
그래도 안 삐뚤어지고 가장 열심히 하는 게 용용이!
흑흑이야 원판이 성격 더러운 블랙 드래곤인 데다가 사디크의 마수고, 골골이는 언데드 몬스터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본 유지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저도 잘 했는데….”
“그래. 잘 했어.”
“…네….”
유지수는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그걸 본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쓰다듬어달라는 거 아닌가?
-쟤가 너냐?
그러는 사이 오크 아저씨들은 거인 하나를 쓰러뜨렸다.
쿵-
남은 건 케인, 최상윤, 정수혁이 공략하고 있는 거인 하나!
“좋아! 꼴찌는 피했다!”
“상윤이 녀석이 꼴찌군.”
“저희는 세 명이거든요?!”
최상윤은 이를 갈면서 외쳤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거인의 다리를 완전히 공격해 간신히 넘어뜨렸다.
이제 딜을 넣을 시간!
그런데 뒤에서 오크 아저씨들이 시시껄렁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
[거인족 정찰대를 사냥하는 데 성공합니다!]
[붉은 머리 거인 부족이 이 사실을 알아챌 경우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자이언 산맥에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칭호: 거인 사냥꾼을 얻습니다.]
[……]
“다들 어땠습니까?”
“별거 아니었지. 하하.”
그렇게 말하면서 오크 아저씨들은 재빨리 포션들을 꺼내서 마셨다.
대부분이 HP 10% 밑으로 내려간 걸 경험했을 정도로 빡센 사냥이었던 것!
그에 비해 최상윤이나 태현처럼 컨트롤에 이골이 난 사람들은 좀 덜했다.
“보상도 엄청 좋고, 경험치도 팍팍 오르고.”
“난 벌써 레벨 1 올랐다?”
“너도? 나도 그럤는데.”
꿈틀-
태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왔다.
“흠흠.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거인족들을 좀 더 잡아서 어그로를 끄는 겁니다. 계속 잡다 보면 거인족들이 우릴 쫓아오겠죠.”
“?”
오크 아저씨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그러면?”
“그러면 당연히 걔네들을 데리고 사디크 성기사단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죠.”
“…….”
오크 아저씨들의 입이 벌어졌다.
생각치도 못한 발상!
“게다가 전 사디크 스킬도 쓸 수 있으니까 사디크 교단인 척도 할 수 있겠네요. 자! 빠르게 더 사냥합시다. 이 근처 거인족 애들이 보고 쫓아오도록!”
오크 아저씨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태현이 녀석 대단하긴 대단하네.”
“저러니까 랭커도 되고 대회도 나가고 그러는 거겠지?”
“저러는 건 누구한테 배웠대?”
“아무리 봐도 형님 보고 배운 거 같은데. 뭘 보고 자랐겠어. 리X지 때도….”
“어허. 쉿쉿. 형님 뒤에 계신다.”
“…….”
그래도 거인족 사냥은 김태산 빼고는 모두가 만족하는 사냥이었다.
어지간한 던전을 도는 것보다 훨씬 더 보상이 나았던 것이다.
워낙 자이언 산맥이 위험한 곳이라서 그런 것이었지만, 태현이 지휘하니 그 위험도가 확 내려갔다.
흑흑이와 골골이를 시켜서 3마리 이하의 거인을 찾으면, 일행이 가서 우르르 사냥!
확실히 난이도는 높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어지간해서는 죽는 사람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만큼 일행의 수준도 높았던 것이다.
[거인족 전사 무리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화산 바위 거인 부족이 분노해서 추적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붉은 머리 거인 부족이 분노해서 추적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떴다!”
계속해서 거인족 사냥을 하고, 오크 아저씨들 중에 몇 명은 레벨 업을 하고, 유지수도 레벨 업을 할 무렵….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창이 떴다.
“좋아. 더 이상 나 빼고 레벨 업 하는 꼴은 안 봐도 되겠군.”
“응?”
“모두 거인족들의 성지로 가자!”
“방금 뭐라고….”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 모두 움직여!”
“…….”
오크 아저씨들은 의혹에 가득 찬 눈길로 태현을 쳐다보았지만 태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