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40화
“네, 도와드리려고….”
“뭘 도와줄 거까지야. 와줘서 고맙다.”
태현은 유지수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유지수는 케인을 보며 도전적인 시선을 보냈다.
“?”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는 거지?
“맞다, 케인. 방송에서 걸즈 파이브 애들 만났거든.”
“파이브 걸즈겠지….”
“어쨌든 거기서 좀 이해가 안 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
“네가 너무 대회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서 감히 연락을 먼저 할 수 없다는 등 개소리를 들었어.”
“…???”
태현은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케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아니. 난 그런 말 한 적 없….”
“진짜 없다고?”
“아니, 진짜 없는 건 아닌데… 그건 공식 인터뷰도 아닌데 그 정도는 괜찮잖아!”
케인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그가 별생각 없이 떠든 것 때문에 연락이 안 온 거라니!
“나한테 변명해 봤자 뭔 의미가 있냐? 걔가 그렇게 알고 있던데.”
“크흑…! 말도 안 돼…!”
케인은 주저앉았다. 그러자 최상윤이 와서 물었다.
“야, 빨리 가자며? 뭐하는 거야?”
“얘가 쓸데없는 소리 해가지고 연락 끊긴 이야기 해주고 있었어.”
“뭐? 설마 파이브 걸즈의 하연? 정말 차인 게 아니었단 말야?!”
남 연애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것도 없었다.
최상윤은 지금 빨리 떠나야 한다는 걸 잊고 호다닥 달려들었다.
“어떻게 된 건데? 응? 말해봐.”
“너 이 자식… 왜 이렇게 즐거워하는 거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저번에도 내가 조언해 줬잖아. 자. 말해보라고.”
케인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털어놓았다. 그걸 들은 최상윤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 자식 같으니!’
“왜, 왜 그렇게 쳐다봐?”
밖에 먼저 나간 오크 아저씨들이 하도 안 나오자 다시 들어왔다.
“애들아. 너희의 청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긴 한데….”
“청춘은 무슨. 개뻘짓….”
최상윤이 말하려다가 케인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멈췄다.
“빨리 가야 할 거 같다. 저 멀리서 거인 놈들 나타났어.”
“!”
* * *
쾅!
사디크 성기사단장은 발을 굴렀다.
“뭐하는 거냐! 바위는 어디 갔고 안에 있는 놈들은 어디 갔냐!”
-잘 모르겠다….
-열고 나간 거 아닌가?
거인들은 눈을 끔벅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성기사단장은 가슴을 탕탕 쳤다.
이 거인 종족은 정말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머리가 좋은 편인 검은 외눈 부족도 이 정도인데, 다른 부족들은 어떤 수준이란 말인가!
덕분에 모든 세력을 잃은 그가 끌어들일 수 있긴 했지만, 답답한 건 답답한 거였다.
“너희들이 아니면 들 수 없는 바위를 인간이나 오크 놈들이 어떻게 들겠냐!”
-아, 그렇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발견한 다른 놈들은 어디 갔지?”
-…….
-화장실 갔나?
“…….”
사디크 성기사단장은 이마를 감싸 쥐고 고뇌했다.
아, 이런 놈들하고 계속 잘해나갈 수 있을까?
위에서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에게는 성기사단장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래. 나도 이해가 간다.”
“응? 뭐가 이해가 가?”
케인은 자기를 말하는 건지도 모르고 의아해했다.
-대전사는 너무 예민하다.
-맞다. 화장실에도 오래 있고. 아마 그거 때문일 거다.
“…너희 동료 둘이 사라지고 갇혀 있던 놈들이 사라졌는데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오냐?”
-싸우는 소리는 안 났다. 어디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간 게 분명하다.
-맞다. 갇힌 놈들이 나쁜 놈들이라면 우리한테 덤볐을 거다. 사라진 걸 보니 별로 나쁜 놈들은 아닌 모양이다.
태현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거인 종족은 볼 때마다 태현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잘 한다 잘 해!
그러나 성기사단장은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다. 절대 그럴 리 없어. 이건… 아키서스 교단이 보낸 추격대가 분명하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눈치 챈 거지?
-아키서스? 그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
-어린 거인 몽둥이를 뺏어서 그 몽둥이로 때려서 기절시킨 다음 가죽 바지까지 벗겨 먹는 그놈?
“…….”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디크보다는 솔직히 아키서스가 훨씬 더 선한 신 아닌가?
[카르바노그가 비웃습니다.]
“이런 짓을 할 건 아키서스 교단밖에 없다!”
하도 많이 당해서 성기사단장은 피해망상까지 걸린 상태였다.
문제는 그게 정답이라는 것!
-대전사. 그건 아닌 거 같다.
-맞다, 맞다. 다른 거인 놈들일 수도 있다.
거인들이 똑똑해 보이는 상황. 그러나 성기사단장은 말을 듣지 않았다.
“시끄럽다. 동료들에게 전부 말을 전해라. 어떤 외부인도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무조건 공격해라!”
그렇게 말하고 사디크 성기사단장은 돌아갔다.
“자식, 눈치 좋네.”
“누군가가 너무 사디크 교단을 탈탈 털어먹어서 아닌가?”
케인은 합리적으로 중얼거렸지만 태현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음… 저기 안으로 들어가긴 해야 하는데.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자이언 산맥 안쪽에 있는 거인족들의 성지!
거기서 성기사단장이 뭔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려면 성기사단장이 부리고 있는 검은 외눈 부족은 물론이고, 다른 거인 부족들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나하나가 준 보스급 몬스터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싸움이 붙으면 들어가고 뭐고 할 거 없이 도망쳐야 했다.
안 그러면 사방에서 몰려드는 거인들에게 두들겨 맞고 로그아웃 당할 수 있는 것!
그러자 유지수가 손을 들고 외쳤다.
“제가 길을 뚫어볼게요!”
“아니, 괜찮거든. 너 혼자 간다고 뚫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유지수는 시무룩해져서 손을 내렸다. 그걸 본 케인은 속으로 웃었다.
‘하하.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나 가는 법이지. 난 김태현하고 오래 다녀서 그걸 알….’
“음. 케인 혼자 보내볼까.”
“…?!”
찌릿!
유지수가 케인을 노려보았지만, 케인은 당황해서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 *
오크 하나와 거인 셋.
판온에서도 보기 드문 조합이었다. 오크 아저씨는 솔직히 조마조마했다.
‘이 거인 놈들이 갑자기 확 돌아버려서 나 공격하면 어떡하지?’
거인 하나도 혼자서 잡기 힘든데, 세 마리나 있었다. 불안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바위를 들고 가던 거인들이 투덜거렸다.
-끙끙. 오크. 조금만 쉬었다 가자.
“힘들어?”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안 힘들다! 네가 힘들까 봐 그런 거다!
자존심 때문에 절대 티를 내지 않는 거인들!
그걸 본 오크 아저씨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숙함을 느꼈다.
그렇다. 같은 길드원들도 저러지 않았던가!
“자. 자. 알겠어. 너희들 강한 거 알지.”
-물론이다! 우리 거인 훨씬 강하다!
칭찬해 주면 좋아하고.
“그러고 보니 거인들은 마법 쓸 줄 아나?”
-우리는 그런 잡스러운 거 안 쓴다!
단순하고.
“앗, 저기 멧돼지 있군. 잡아먹을 시간이 안 될 테니 그냥 가자.”
-아니다! 아니다! 시간 된다! 잡아먹고 가자!
먹을 거 좋아하고!
‘완전 그놈들이랑 똑같은데?’
다른 아저씨들이 들었다면 항의할 생각을 하는 그였다.
-저거 도망간다! 저거 도망간다!
거인이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멀리서 다가가기만 해도 멧돼지는 바로 도망쳤다.
오크 아저씨는 재빨리 달려가 도끼를 집어 던졌다.
쉭- 퍽!
[멀리서 투척 도끼로 정확하게 멧돼지를 맞췄습니다.]
[투척 스킬이 오릅니다.]
[거인들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내가 구워줄게.”
요즘 요리에 재미를 붙인 아저씨였다.
주로 괴식 요리였지만!
‘음. 괴식 요리를 하면… 이놈들이 화내겠지?’
아무리 괴식 요리에 푹 빠졌다지만 여기서 괴식 요리를 권할 정도로 정신 나가지는 않았다.
거인이 먹고서 바로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르는 게 괴식 요리!
‘뭐, 이런 고기 요리는 가장 난이도 쉬운 편에 속하니까….’
나뭇가지를 꺼내 불을 붙인 다음 대충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굽는다.
[<대충 만든 멧돼지 고기 요리>를 시작합니다.]
기름기 가득한 멧돼지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며 먹음직스러운 향기가 났다.
‘거기에 이런 질 좋은 소금까지 뿌리면… 후. 거인들에게는 너무 고급 요리려나?’
오크 아저씨는 나름 비장의 소금까지 꺼내서 뿌렸다.
일반적인 싸구려가 아닌, 랭커 요리사 플레이어가 만든 걸 구한 최고급 소금!
-빨리 줘라, 빨리.
“그래. 여깄다.”
-음….
우적우적-
거인들은 순식간에 멧돼지 요리를 끝내버렸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먹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때? 어때?”
오크 아저씨는 기대되는 눈빛으로 물었다. 괴식 요리만큼은 아니어도 그가 한 요리였다.
게다가 평소에 못 먹고 배 굶주리고 다니던 거인들이 먹었으니 평가가 궁금한 건 당연한 일!
‘분명 엄청 좋아하겠지. 우오옷! 이게 뭐냐! 이 맛은! 이런 반응을 보이면 후후 이게 요리라는 거다라고 말해줘야….’
-짜다.
-그래. 짜다.
“…??”
오크 아저씨는 귀를 의심했다. 그냥 짜다고? 맛있다, 정말 맛있다, 우오옷 이게 뭐냐!가 아니라?
“그, 그게 다야?”
-그게 다인데?
-뭘 원하나?
“아니… 엄청 맛있지 않냐?”
-그냥 평범하다.
-맞다. 맞다. 이런 고기 요리 우리가 있던 곳에도 있다. 찾기도 힘들고 잡기도 힘들지만.
-먹는 건 그냥 배고파서 먹는 거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오크 멍청하다.
-맞다, 맞다. 오크 멍청하다. 그러니까 약하다.
‘이놈들이!’
발끈!
오크 아저씨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다른 건 넘어갔겠지만 거인 놈들이 요리를 그냥 먹는 거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고 하니까 화가 났다.
요리는 그의 자존심!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요놈들. 감히… 이거나 먹어봐라.’
오크 아저씨는 품속에서 비장의 병을 꺼냈다. 그의 특제 괴식 요리 보약이 담겨 있는 병이었다.
아직 괴식 요리에 적응 못 한 길드원들은 보기만 해도 질색하는 병!
꺼내자마자 강렬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비장의 특제 괴식 보약>의 냄새가 주변에 퍼집니다.]
[이 냄새를 싫어하는 NPC가 있을 경우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경고 메시지창까지 뜨는 수준!
거인들도 코를 벌름거리며 움찔했다.
-뭐냐, 뭐냐. 이 냄새는?
-강렬하다. 처음 맡아 본다.
“아아. 이건 보약이라는 거다.”
-보약? 아까 그 챙겨주라고 했던 그거 말인가?
오크 아저씨가 케인을 챙겨주라고 했던 걸 거인들은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놀라면서 말했다.
“그걸 기억하네?”
-몸에 좋다고 했다. 우리 몸에 좋아지는 거 좋아한다.
-맞다. 강해지는 게 거인의 목표다.
“짜식들. 너희는 우리 길드에 들어와도 잘 어울릴 거 같다.”
-?
“자. 마셔라.”
오크 아저씨는 보약 병을 건넸다. 나름 큰 병이었는데도 거인들에게는 작게 느껴졌다.
꿀꺽, 꿀꺽-
‘…음, 저놈들이 화내면 어쩐다?’
화가 나서 저지르긴 했는데, 저지르고 보니 제정신이 돌아왔다.
‘태현이 그놈이 불같이 화를 낼 텐데….’
-오오오옷!
-오오오오옷!
‘왔구나!’
오크 아저씨는 무기를 움켜쥐었다. 거인의 동작을 잘 봐야 피할 수 있….
-너무 맛있다! 너무 맛있다!
-이런 맛은 살면서 처음 먹어본다! 오크! 대단하다! 우리 부족 요리사로 데려가고 싶다!
<거인족의 요리사-검은 외눈 거인 부족 요리사 퀘스트>
흔히들 사람들은 고블린 요리사가 최악의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다.
언제나 밑에는 밑이 있는 법, 고블린 요리사보다 더 최악의 요리사는 바로 거인족의 요리사다.
협박을 받지 않는 한 거인족의 요리사로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상: ?, ???, 거인족의 요리사로 일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요리사 명성에 악영향이 갈 수 있음.
제정신이라면 아무도 받지 않을 퀘스트!
그러나 오크 아저씨는 고민했다.
‘으으으으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