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35화
‘말해야 하나?’
케인은 고민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 김태산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이런 걸 말해주면 도움을 받는 게 더 쉬워질 수 있었다.
‘그래. 말해야 겠….’
“근데 아저씨, 대족장이 갖고 있는 거 확실해요?”
“확실하지. 그럼 누가 갖고 있겠어?”
“물론 보통이라면 대족장이 갖고 있겠지만 부하나 아들 같은 NPC가 갖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다 찾아봤지. 우르크 지역 관련 책들 다 사서 확인하고, 우르크 갔다 온 적 있는 탐험가 플레이어들 불러서 확인했다니까.”
김태산은 단호하게 말했다. 케인은 옆에서 ‘어….’만 반복했다.
끼어들기가 애매해지는 상황!
“지금 대족장 잡으려고 우리 피해가 얼마나 난 줄 아냐?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확신도 없이 피해를 감수하겠어? 당연히 확인을 끝냈지. 내가 그런 놈이라면 난 천하의 바보 멍청이다!”
“…….”
“그런데 그쪽은 무슨 일로 온 거지?”
김태산은 고개를 돌려 케인을 쳐다보았다. 케인이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어… 파이팅입니다!”
“…그, 그래. 고맙다?”
김태산은 속으로 생각했다.
태현이 말한 것처럼 케인 저 녀석은 약간 좀 이상한 녀석이라고!
김태산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채, 케인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김태현 오면 김태현한테 하라고 해야지.’
괜히 자기가 말했다가 불똥만 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최상윤은 다시 설득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아저씨, 지금 카라그 잡는 건 좀 힘들지 않겠어요? 어차피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면 다른 퀘스트 깨면서 레벨 업 좀 하고 다시 도전하시죠. 지금 잡을 수준이 아닌 것 같던데.”
“음….”
“그리고 저희 도와주시면 태현이 돌아왔을 때 저희도 아저씨 도와드릴 수 있잖아요?”
“그건 좀 쫀심이….”
“아, 뭔 자존심이에요. 태현이는 그런 거 신경도 안 쓰는데. 필요하면 아저씨 막 이용… 아니,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하잖아요.”
“너 방금 이용이라고 했냐?”
“잘못 들으신 거겠죠.”
최상윤은 얼굴 하나 바꾸지 않았다.
‘태현이한테 못된 것만 배워서….’
김태산은 꿍얼거렸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최상위권 랭커 파티인 태현 일행이 낀다면, 카라그 사냥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태현은 판온에서 현재 잡을 수준이 아닌 보스 몬스터를 가장 많이 잡은 플레이어 아닌가.
단순히 캐릭터의 레벨과 스킬뿐만이 아닌, 온갖 기발한 계책을 쓸 수 있는 게 태현이었다.
“좋다! 도와주마!”
“오옷!”
“그래도 지금 영지에 사람 손 필요한 게 많아서 길드원들을 전부 동원할 수는 없고….”
“그 아저씨들 전부 다 데려오실 필요는 없는데.”
“응? 뭐라고 했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 포함해서 실력 있는 몇몇만 데리고 가자. 아, 그리고 새로 온 태현이 친구한테도 물어봐야겠군.”
“네???”
최상윤은 놀랐다.
“태현이 친구요????”
정말 놀랐다!
“…….”
“…아니, 선배님이 친구 있을 수도 있지요….”
정수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최상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잘 생각해 봐, 걔가 이제까지 판온 하면서 거기서 친구 만난 적이 있었어!?”
“어….”
“없었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보통 판온에서 태현을 알아보는 사람은 십중팔구가 태현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니까! 걔한테 친구가 있을 리가 있나!”
“그러면 저기서 말하는 그 친구는 누구죠?”
“…스파이가 분명해!”
“!”
“길드 동맹 쪽이 보낸 스파이 아닐까? 태현이 친구라고 해놓고 여기 숨어 들어가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려는 거지.”
“에이, 어떤 놈들이 그렇게까지 해.”
“아저씨는 리X지 때 그러셨는데? 첩자 심어서 PC방 랜선 끊….”
“뭐?”
“흠흠. 상윤아. 그런 근거 없는 소문은 퍼뜨리지 말려무나. 친구들이 오해하잖니.”
뒤에서 듣고 있던 김태산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니 실제로 하셨….”
“야.”
“네….”
일행은 밖으로 나섰다. 대체 태현의 친구가 누구일지 생각하며.
“모두 알겠지? 내가 신호 보내면 공격하는 거야.”
“알겠어.”
“안… 안녕하세요.”
“?!”
나타난 건 유지수였다. 최상윤은 유지수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 * *
“먹을 게 필요하겠어.”
“더 낚아올까?”
“아니, 물고기가 너무 작네. 기별도 안 가겠어.”
퀴즈로 낚시 세트를 얻어냈고 이세연이 의외로 낚시에 뛰어났기에 물고기들을 낚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제작진들이 안쪽에 뭐 풀었다면서? 그거 잡아도 되겠지?”
“그렇긴 한데….”
이세연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예전 화들을 봤을 때, 제작진들이 풀어 놓은 걸 잡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즉 출연진들을 놀리기 위한 함정!
그걸 알면서도 배고픈 출연진들은 일발역전을 노리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가끔 정말로 운 좋으면 잡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고.
“…그냥 안전하게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인스턴트나….”
“어허. 요리할 것도 다 갖고 왔는데 부정 타게.”
태현은 조리 도구 세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저걸 어디다 써?’ 했지만 태현은 끝까지 저걸 골랐다.
“그보다 뭐 풀어놨지? 야생 멧돼지면 좋겠는데.”
“무슨 사고 날 일 있어? 그래봤자 닭이나 토끼지.”
“그걸 못 잡는다고?”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을걸. 방송 보니까 토끼도 온순한 애들이 아니라 야생에서 뛰놀던 애들이라 엄청 재빠르고 잘 숨어. 닭은 또 어디서 토종닭을 데려와서 날아다니고….”
“토끼라….”
갑자기 카르바노그가 떠올랐다. 태현은 다른 일행이 잘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설마 그사이에 사고를 치진 않았겠지. 걔네들이 어린애도 아니고….’
탁-
태현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왜?”
“응? 잡으려고.”
“야… 진짜 그건 아니다….”
이세연은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좋은 사냥 도구를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뭔 돌팔매질로 잡을 생각이란 말인가.
일단 찾는다 쳐도 저걸로는….
“다른 거 만드는 게 낫지 않아?”
“귀찮고, 이게 더 편해. 재료 찾기도 편하고.”
“그래도 그건 좀….”
“아니에요! 태현 씨라면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응?”
태현과 이세연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보라가 뜨거운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저는 믿어요!”
“어… 그래… 고마워요?”
태현은 슬쩍 물러선 다음 이세연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 왜 저래? 뭐 원하는 게 있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세연은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얼굴로 대답했다.
* * *
“으아, 작업 끝났다!”
어설프지만 일단은 등을 댈 수 있는 숙소가 완성됐다.
“라면도 다 됐어요.”
보글보글 끓으며 매콤한 냄새를 풍기는 라면!
물론 양은 적었다. 달랑 2개뿐이었던 것이다. 퀴즈에서 있는 건 전부 다 갖고 왔는데도 이 정도였다.
“이야, 맛있겠다.”
꿀꺽-
그렇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진수성찬이 없었다.
“김치 없나?”
“저쪽 팀이 가져갔잖아.”
“그러고 보니 저쪽 팀은 뭐 먹지? 여기 있는 거 하나도 못 갖고 갔잖아.”
사실 태현이 안 갖고 간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태현이 다른 걸 챙기느라 못 갖고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게? 낚시?”
“낚시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시간 다 가겠다.”
“이것저것 밑반찬이나 양념은 가져갔는데… 설마 사냥하려는 건가?”
“크크크. 그러면 웃기겠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섬 안쪽에 풀어놓은 동물들을 잡으려다가 개고생만 한 출연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빨리 먹고 구경 가자.”
후루룩!
다들 허겁지겁 젓가락을 놀렸다. 안 그래도 적은 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빨리 먹어야지, 안 그러면 공구 세트 빌려줬다고 이것도 나눠먹을라.’
‘맞아, 맞아.’
사람이 배고파지면 치사해진다고, MC 팀은 조용히 식사를 끝냈다.
“좋아. 그러면 가자!”
MC는 태현 팀이 어떻게 하고 있나 구경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사냥감 구경이나 했을지 모르겠군. 했으면 대박인데.’
여기서 방송 분량을 가장 생각하는 건 PD와 MC였다. 방향성은 달랐지만.
MC가 보기에 태현은 확실히 분량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괜히 PD가 섭외했다고 기뻐 날뛴 게 아니었다.
유명하기만 하지, 정작 나오면 재미없는 행동으로 방송을 망치는 다른 게스트와는 차원이 다른 것!
만약 태현이 사냥감을 찾아 계속 헤매준다면 그것만큼 재밌는 그림도 없을 것이다.
‘고생 좀 하겠지만 어쩌겠어, 태현 씨. 젊을 때 고생하는 거잖아. 잘 부탁할게.’
내가 하는 것보단 남이 하는 게 낫다!
그런 사악한 생각을 하며 MC는 태현 팀의 숙소에 찾아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응?”
닭과 토끼의 털을 벗기고 손질하던 태현은 MC 팀을 보고 의아해했다.
“안 드립니다.”
“어, 어?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잡은 거야? 이걸 다?”
수북이 쌓인 닭과 토끼들을 보고, MC는 김 PD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렇지만 김 PD도 MC 못지않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도 황당했던 것이다.
* * *
-하하, 태현 씨. 잡을 수 있겠어요? 애초에 찾아야… 잠, 잠깐. 같이 가요. 카메라가 못 쫓아가는… 헉헉….
퍽!
태현이 사라지더니, 멀리서 돌 던지는 소리와 함께 태현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손에는 닭이 들려 있었다.
-?!?!?!
-아, 죄송합니다. 못 쫓아올 줄은 몰랐는데. 근데 더 속도를 늦추면 도망가니까 알아서 따라오세요.
불끈!
10년차가 넘는 카메라맨을 도발하는 태현의 말이었다.
‘반드시 따라가주마!’
그러나 무리였다. 맨몸이어도 따라가기 힘든데 무거운 장비까지 짊어진 상태로는 더더욱!
태현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라졌다 나타났고, 그때마다 손에는 닭이나 토끼 중 하나가 들려 있었다.
김 PD는 이제 놀란 걸 넘어서 첩자가 있나 의심했다.
‘우리 중 누군가가 토끼 위치를 알려줬나? 아니, 이런 미친 생각을 내가….’
스태프들 중 토끼 위치를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 지들이 알아서 숨고 도망치고 하는데.
‘내가 토종닭을 잘못 챙겨왔나?’
사람 기척만 느껴져도 몇십 미터는 우습게 날아서 도망치는 놈들이 저렇게 멍청하게 잡혀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돌멩이 하나로!
“PD님. 프로그램 잘못 나온 거 아니에요? <숨겨진 달인>이나 <세상에 무슨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내보냈어야….”
뒤에 있던 스태프들도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 * *
다른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태현은 느긋하게 손질을 끝내고 요리를 시작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토끼 고기와, 각종 양념을 넣고 구수하게 끓이는 닭고기가 모두의 코를 자극했다.
“이야, 여기 프로그램 어렵다고 이세연이 겁 많이 줬는데 생각보다 인심 좋은 프로그램이네요. 쩝쩝.”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쩝쩝.”
“…….”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런 굴욕은 처음이다!
김 PD는 결심했다.
절대로 봐주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태현의 입에서 우는 소리가 나오게 해주겠다!
꼬르륵-
태현 팀이야 고기를 잘 뜯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야박한 놈. 물어보지도 않네.’
‘한 입만 줬으면 좋겠다.’
“김춘식 씨. 이거 하나 드시죠.”
“네? 정, 정말요?”
태현이 닭다리 하나를 내밀자 김춘식이 말을 더듬었다.
사람이 정말 배고프면 이렇게 되는구나!
“뭘 이런 걸 가지고. 자. 가져가세요.”
“나, 나는? 왜 춘식이만 줘?”
MC는 애틋한 감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원래 알고 지낸 사이고 모르는 사이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 우리도 지금부터 친구하면 되지! 안 그래?!”
“안 그런데요.”
“제발 다리 하나만!”
이세연은 처음에는 방송을 재미있게 하려고 저러나 보다 싶었지만, 나중에는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 사람… 정말로 먹고 싶은 거구나!’
그렇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모습!
“잘 먹었습니다.”
“으흑흑… 으흑….”
“어휴. 여기 있습니다.”
“……?”
“하나 빼놨으니 드세요.”
“……!”
닭다리 하나로 사람을 갖고 노는 태현! 원래라면 화를 냈어야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드는 건 압도적인 감동뿐!
“크흑… 이렇게 사람이 좋을 수가….”
그 모습을 보던 이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