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34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한번 가볼까?”
최상윤은 불안함을 떨치고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간만 보는 건데 설마 큰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좋아! 가자고! 김태현이 다시는 날 무시하지 못하도록 해주겠어!”
‘그런 속셈이었냐?!’
최상윤은 짠한 눈빛으로 케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밖에서는 나름 손꼽히는 판온 선수에, 최상위권 랭커 중 한 명인데….
왜 저렇게 궁상맞고 불쌍한지 알 수가 없었다.
* * *
“오스턴 왕국의 브소 요새가 결국 무너졌습니다!”
“좋았어!”
길드 동맹은 환호성을 질렀다.
오스턴 왕국이 점점 밀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해 안에 오스턴 왕국 통일을 끝낸다!
“그래도 방심은 하지 마라. 오스턴 왕가는 저력이 있으니까.”
당장 왕가의 창고 같은 것만 봐도 일반 플레이어들은 꿈에도 넣을 수 없는 유니크 아이템들이 우글거렸다.
“예!”
“쑤닝 님.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갖고 와.”
쑤닝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태현의 영지에 첩자를 보낸 지 꽤 되었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그런 놈 상대하면서 그런 짓까지 해야 해?’라고 반응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절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다 태현한테 당하면서… 아니, 상대하면서 배운 것이었다.
원래라면 태현 주변 사람을 매수하거나 하려고 했는데, 전부 다 시작부터 실패했다.
-아, 또 인터넷 광고네. 안 산다고!
-해외 번호? 보이스 피싱이잖아. 내가 속을 거 같냐!
-매수요? 일단 선불로 주세요. 아니, 왜요. 믿어보세요. 선불로 보내 보시라니까요? 제가 먹튀할 것 같아서 이래요?
‘…….’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거 같아서, 쑤닝은 그냥 새로 플레이어들을 뽑아서 태현의 영지로 보냈다.
어차피 태현의 영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둘 정도 섞여도 이상할 게 없었다.
목적은 태현 일행의 감시와 보고!
촤악-
쑤닝은 보고서를 펼쳤다.
-목표 대상. 케인.
-3시 20분, 케인은 신전 앞마당을 쓸었다.
-3시 45분, 케인은 신전 뒤의 텃밭의 잡초를 뽑았다.
-4시 5분, 케인은 김태현을 욕했다. 무슨 속셈인지 주의가 필요.
-4시 20분, 케인은….
“이거 어떤 새끼가 올렸어?!”
* * *
판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채, 태현은 구슬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대, 대단해…!”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붙잡고 끙끙대도 못 할 걸 몇 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위엄!
‘인간 중장비인가?’
“뭐해? 찍어. 찍어.”
김 PD는 놀라워하면서도 숙련된 반응을 보여줬다. 이런 걸 안 찍으면 생존의 법칙 PD 자격이 없다!
“김태현 상의 탈의는 안 하나?”
김 PD는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것만 하면 시청률이 몇 퍼센트는 더 뛸 거 같은데!
“이 날씨에 누가 그런 짓을 해요?”
“물 뿌리고 올래?”
“PD님이 뿌리고 오시죠. 아까 뛰던 거 보니까 그랬다가는 진짜 팰 거 같던데.”
스태프들은 질린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카메라고 뭐고 간에 빡치면 팰지도 모른다!’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게 태현의 무서움이었다.
“우와…! 진짜 만들었어!”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섬을 돌아다니던 MC 팀은 구경 왔다가 완성된 간이 숙소의 퀄리티를 보고 경악했다.
MC는 벽을 툭툭 두드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초보자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보다 더 잘 만들잖아?!’
나름 손재주에 자신이 있었는데 태현이 만든 걸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물고기 잡아 왔… 응? 다른 사람들도 왔네요?”
낚싯대를 들고 오던 이세연은 다른 사람들을 발견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어색한 눈빛으로 이세연의 시선을 피했다. 아까 놀리던 게 떠오른 것이다.
“지내실 곳은 찾았어요?”
“아직….”
“어머, 어떡해요? 아직도 못 찾으셨다니.”
“곧, 곧 찾을 거야!”
자존심 때문에 MC 팀 출연진들은 호언장담했다. 이세연은 그걸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탁탁-
MC 팀이 물러가고 나서 이세연은 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렇게 땀나도록 고생한 것도 그렇고, 저쪽 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준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고마웠….
“더우니까 저리 가라.”
“…….”
이세연은 물고기를 던지려다가 참았다.
“둘 사이가 정말 안 좋은 거 맞죠?”
“그건 왜?”
대답하던 하연은 살짝 붉어진 보라의 표정을 보았다. 저건 설마….
“정신 차려, 보라야! 쟤는 아주 나쁜 놈이라고!”
“나쁜 남자는 인기 있….”
“그냥 나쁜 놈이라고!”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친절하고.”
“네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데 친절은 무슨!”
“언, 언니도 그 연락 안 하는 케인 씨 좋아하면서….”
“으읏….”
제대로 허점을 찔린 하연은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말 한 번 다시 걸어볼래요.”
“보라야.”
“네?”
“판온에서는 유명한 말이 있어. 내가 입찰한 아이템 상회입찰하지 말라고.”
케인에게 주워들은 말이었지만 의미만은 확실하게 와닿은 말!
하연은 진지하게 보라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남이 침 발라놓은 것에 손대지 말라는 거지.”
“……?”
“세연 언니랑 싸우고 싶지 않으면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둘이 사이가 안 좋잖….”
“원래 싸우다가 정이 든….”
퍽퍽-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하연은 고개를 돌렸다.
태현과 이세연이 서로에게 돌멩이를 살벌하게 집어 던지고 있었다.
“저것도요?”
“저건 사랑싸움 같은 거지.”
“…….”
“진, 진짜야.”
* * *
“저기, 태현 씨. 혹시 그 공구 세트 좀 빌릴 수 있을까?”
“가져가시죠. 다 썼는데.”
“!”
너무 손쉽게 내주는 태현의 모습에 MC는 당황했다.
안 주려고 버티거나, 무슨 교환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진짜? 진짜 그냥 빌려주는 거야?”
“그럼 빌려주지 뭐 어쩌게요?”
태현은 ‘이 인간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MC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아까 대놓고 비웃었는데도 괴롭히지도 않고 그냥 빌려주다니!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이세연이 듣고 태현에게 전달을 안 해서 그랬지, 만약 그랬다면 태현의 성질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돌아온 MC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태현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야, 김태현 씨 진짜 그릇이 크네. 아까 그렇게 놀렸는데도 그냥 턱 빌려주고.”
“그냥 호구 같은 거죠.”
“어허. 무슨 소리를. 이렇게 빌려줬으면 사람이 감사해야지. 창성이 너 그러면 안 돼.”
최창성이 투덜거리자 MC가 핀잔을 주었다.
동굴은 못 찾았기에 있는 걸 조합해서 대충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태현 씨가 만든 것처럼 만드시게요?”
“음….”
‘솔직히 그건 자신 없는데….’
기대 가득 눈빛을 받은 MC는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대충 지낼 곳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왜 그렇게 잘 만들어서 사람을 이렇게 부담 주는 거야?’
그러는 사이 위기감을 느낀 최창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두고 보자. 이따가 미션 때 뭔가 보여주겠어.’
* * *
“우르크 쪽인가?”
“우르크보다 더 동쪽인 것 같은데. 멀리도 도망쳤네.”
“우르크보다 더 동쪽이면….”
최상윤은 기억을 되살렸다. 우르크 지역도 지금 막 플레이어들이 정착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보다 더 동쪽은 정말 소수의 탐험가 플레이어나 랭커들 정도만 드나들었다.
“거기 거인들 나오는 곳이잖아?”
풀이나 나무는 찾아볼 수 없이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맥.
거기에 사는 거인 몬스터들까지.
거인 몬스터들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최소 레벨 200은 넘기는 몬스터들이었다. 그중 정예나 준 보스 몬스터면….
“음, 이 인원으로 될까 모르겠는데.”
“우르크 지역에 아저씨들 있는데 좀 데리고 갈까?”
김태산과도 아는 사이였던 최상윤은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오크 아저씨들은 확실히 든든한 전력이었다.
“그… 그 아저씨들?”
케인은 질린 표정이었다. 뭔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겉모습이었던 것이다.
“겉모습은 그래도 실력은 확실해. 들렀다 가자. 이 인원으로 거인 사냥은 좀….”
최상윤의 말에 결국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헉!”
산의 통로를 지나 원래 오크 부족들이 요새를 짓고 있던 곳에 도착한 일행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언제 이렇게 지었대?”
생각보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영지가 넓고 대단했던 것이다.
시야의 끝에서 끝까지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넓이!
게다가 그 넓은 영지에 허름한 천막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그 천막에서 나오는 건 오크 부족 전사들!
우르크 지역의 오크 부족들과 좋은 꼴을 본 기억이 없는 케인은 긴장부터 했다.
“어, 어떻게 쟤네들을?”
당장에라도 도망칠 기세!
“진정해. 아저씨는 오크 종족이니까 오크 종족 영지로 데리고 오기도 쉬웠겠지.”
“아… 그렇구나….”
“취익! 너희는 누구냐!”
“힉!”
오크 정찰대가 그들을 알아보고 부르자 케인은 기겁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오크들은 공격부터 하지 않았다.
“저, 그 여기 영주님하고 아는 사이인데 안내 좀….”
“취익, 족장님과 아는 사이라고? 알겠다.”
오크는 의심하는 눈빛이었지만 일단 데려다주려고 했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몇 배는 나아진 태도였다.
“취익, 그런데 너….”
“?”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다. 취익.”
오크는 케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 무슨 소리. 난 여기 처음인데.”
“췩, 그런가?”
오크 전사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 *
“숫자에는 숫자인 법이지. 음음.”
“아저씨!”
“아, 깜짝이야!”
오크 전사들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던 김태산은 깜짝 놀라 뒤로 돌았다.
아들의 친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상윤이구나. 무슨 일이냐?”
“부탁이 있어서요….”
최상윤한테 설명을 들은 김태산은 뺨을 긁적거렸다.
“음, 나도 해야 할 일 많은데….”
“영지 관리요? 다른 아저씨들도 많잖아요.”
“아니, 그거 말고.”
김태산의 목표는 다시 힘을 길러서 길드 동맹에게 제대로 엿을 먹여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먼 목표!
지금 당장의 목표는 전설 직업인 <우르크 오크 대족장>으로 전직하는 것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오는 연계 퀘스트도 열댓 개를 가볍게 넘겼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우르크 지역에 남아 있는 오크 대족장 카라그가 있었다.
‘그놈을 잡아야 해.’
그러나 이게 의외로 만만치 않았다. 안 그래도 레벨 300을 넘기는 강한 보스 몬스터였는데, 악마의 피까지 받고 미쳐 버리자 정말로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벌써 1차, 2차 토벌대 팀이 갔다가 완전히 박살 나서 후퇴한 상황!
“카라그를 잡을 생각이다.”
“카라그를요? 너무 무모한 거 아니에요? 지금 플레이어 수준으로 잡을 놈이 아닌 것 같던데.”
최상윤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최상윤도 동영상을 봐서 카라그가 어떤 수준인지 알고 있었다.
태현이 우르크 퀘스트를 깨고 나서, 몇몇 겁 없는 랭커들이 카라그를 잡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부하 오크들도 전부 사라졌으니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전원 전멸!
눈이 있는 플레이어들은 바로 깨달았다. 카라그는 현재 수준으로 잡기 힘들다는 것을.
“그렇지만 잡아야 해. <오크 선조들의 해골 목걸이>를 놈이 갖고 있을 테니까.”
<오크 선조들의 해골 목걸이>. 대대로 오크 대족장에게 내려오는 대족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아이템!
연계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그 아이템을 손에 넣어야 했다.
‘응?’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저 아이템, 그때 에드안이 훔쳐서….
태현한테 주지 않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