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30화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태현은 김 매니저한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흔쾌히 수락하지는 않았다.
-근데 제가 아는 사람도 나온다니, 누구죠? 저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혼자 사는 인간들>에서 만난 사람들인가요?
‘그 사람들 귀찮은데.’
태현만 만나면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있었다.
-언제 한번 판온 같이 하죠!
<혼자 사는 인간들>에서 태현은 그 말을 듣고 ‘제가 폭탄으로 만들어도 괜찮나요?’라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농담인 줄 알고 웃었다.
‘저놈 저거 진심이다!’
케인은 진심이란 걸 깨닫고 경악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태현의 경험을 봤을 때 게임을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게임을 하는 건 대체로 결과가 좋지 못했다.
대학교 때도 한 번 그랬다가 싸움까지 나지 않았던가.
다행히 김 매니저가 말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오. 누구죠?
-물론 이세연 씨….
뚝-
-김태현 씨? 김태현 씨?!
결국 김 매니저는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다.
-태현 씨. 잘 들어보세요.
-잘 듣고 있습니다.
-이세연 씨가 만약 혼자 나가게 된다면… 분명 이번 대회 관해서 혼자 말하게 될 겁니다. 이세연 씨가 대회에 관해서 혼자 말하게 되면 너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김 매니저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본인에게 이런 수완이 있었다니!
태현도 살짝 감탄했다. 그냥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네요.
-그렇죠!? 저도 말하고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인도에서 찍는 거니까 이세연을 밀어버릴 수도 있고….
-…….
-농담이거든요.
-아, 네. 그렇죠? 저도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매니저는 이마에서 나오는 진땀을 닦았다.
* * *
무인도로 가는 배 위.
태현은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태현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판온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태현은 대부분을 몰랐지만!
“대회 잘 보고 있어요. 이번에 2위로 올라가셨던데! 하하. 축하드립니다.”
꿈틀-
상대방은 칭찬이라고 한 말이었지만 태현에게는 도발로 들릴 뿐!
“태현 씨. 오랜만입니다.”
양성규의 체육관에서 만난 연예인, 김춘식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앗. 김춘삼 씨!”
“…김춘식인데요?”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역시! 농담도 잘하셔.”
둘은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김춘식은 이 프로그램의 고정 게스트 중 한 명이었다.
“이거 많이 어렵나요?”
“네. 많이 어렵습니다.”
부정도 안 하고 바로 수긍해 버리는 김춘식!
“제가 해본 프로그램 중 제일 빡센 축에 들어가는 거 같아요!”
“…….”
“무엇보다 PD가 타협이 없거든요. 매번 하는 거면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맨날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잠잘 곳 만들고 먹을 거 구하고 해야 하니까….”
태현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 사람이 그 김태현이야?”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사람이 다가왔다. 모델 출신 연예인인 최창성이었다.
“아니. 난 케인인데.”
“어??”
“농담이야. 김태현 맞아.”
“…….”
최창성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는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것 같았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을 맞잡았다.
‘흐읍!’
최창성은 힘을 주었다. 자기 힘을 자랑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별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있었다.
‘뭐 하냐 얘는?’
최창성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손을 풀고 ‘흥’ 하고 가버렸다. 태현은 최창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정신적으로 어디 아픈 친굽니까?”
“그, 그런 건 아니고요.”
김춘식은 손을 흔들며 최창성을 변호했다.
“창성이도 여기 출연한 지 두 번밖에 안 됐거든요. 나름 그… 운동 잘하는 캐릭터로 잡고 있는데.”
모델 출신에 몸도 저러니, 방송에서 운동 잘하는 캐릭터로 밀고 나가기 좋았던 것이다.
특히 생존의 법칙처럼 몸 쓸 일이 많은 방송에서는 더더욱 쓰기 좋았다.
“제가 태현 씨 칭찬을 좀 많이 했더니 불안했나 봐요.”
“뭔 칭찬이요? 게임 칭찬?”
“아뇨. 운동이요. 체육관 다니는 선수들을 이길 정도로 대단하다고 했더니 자기보다 더 눈에 띌까 봐….”
“흠, 그러니까 제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시비 걸리는 이유가 김춘식 씨가 말을 잘못해서….”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농담입니다. 김춘식 씨 잘못은 아니죠.”
어쨌든 최창성이 왜 저러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판온이 주목표인 태현과 달리, 최창성이란 사람은 방송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 아닌가.
당연히 자기와 캐릭터가 겹치는 사람을 보면 불안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흑흑이가 새로 나타나자 불안해하는 용용이처럼!
최창성이 들었다면 분노했을 비유를 생각하며,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봐주는 건 없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원래 태현은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지 않고 떡이 될 때까지 패는 사람이었다.
안 패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
섬에 도착할 때까지 잠이나 잘까 생각하던 태현은 이세연과 마주쳤다.
두두둥-
‘효과음이 들리는 거 같아!’
뒤에서 이세연을 따라오던 하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벌어지는 일은 더 놀라웠다.
“안녕하세요?”
“…안, 안녕하세요?”
하연은 당황했다. 저 태현이 왜 저렇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거지? 그것도 이세연은 무시하고?
하연은 아직도 태현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케인이라고 속인 덕분에 정작 케인과 만나게 됐을 때….
“어휴, 잘 지내셨어요? 그… 뭐시냐… 걸즈 파이브 신곡 좋더라고요.”
“파이브 걸즈고 최근에 신곡은 낸 거 없는데요.”
“젠장.”
“…….”
그러는 사이 이세연이 옆에 서서 말했다.
“하연아. 네 옆에 있는 사람한테….”
“하연 씨. 그쪽 옆에 있는 사람한테 남 대화하는데 끼어드는 건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고 말해주세요.”
빠직-
이세연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돋았다.
사실 이미 톱급 연예인인 이세연은 <생존의 법칙>에 출연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PD가 애걸복걸해도 문제없었다. 그 PD와 사이가 안 좋아져도 나갈 방송은 많았으니까. 게다가 이거 하나 안 나간다고 PD와 사이가 나빠질 리는 없었고.
그런데도 <생존의 법칙>에 나가게 된 건 약간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너무 놀린 거 아닌가 하는 죄책감!
그렇지만 얼굴을 맞대자마자 그런 죄책감은 싹 사라졌다.
“하연아. 네 옆에 있는 사람한테….”
“하연 씨. 그쪽 옆에 있는 사람한테….”
이세연이 말하자 또 말을 자르고 들어가는 태현!
이세연에게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으아아아아!”
하연은 일어서더니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려고 했다.
정말 예상치 못한 반응!
“미, 미안. 하연아. 장난이 너무 심했나 봐.”
“그냥 해본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마. 맞다, 케인하고는 요즘 연락하고 지내?”
하연은 입을 삐죽대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존대하던 건 역시 일부러 한 거였다.
‘배배 꼬인 인간 같으니….’
‘음. 내 욕을 속으로 하고 있는 것 같군.’
이런 부분에서는 아주 발달한 태현의 감각이었다.
“안 하고 지내거든.”
“왜? 역시 케인이 짜증 나게 굴어서? 하긴, 그런 거라면….”
“아, 아니야! 그냥 그… 케인이 자기는 잠잘 시간도 아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까 괜히 부르면 방해될까 봐 연락 안 하고 있었어.”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인이 잠잘 시간도 아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걔가 너한테 그런 소리를 했다고?”
“나한테 한 건 아니고, 그… 인터뷰 있잖아.”
“설마 케인 인터뷰를 찾아본 거야?”
“왜, 왜! 찾아보면 안 돼?!”
이세연이 태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친한 동생의 파릇파릇한 연애 문제에는 눈치 있게 행동하라는 뜻이었다.
물론 태현이 이세연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싫은데? 더 파고들 건데?’
‘야…!’
태현은 이세연의 눈빛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물어봤다.
“뭔 인터뷰? 걔가 많이 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거.”
보아하니 정식 인터뷰가 아니라, 판온에서 만난 팬들이 한 질문에 대답한 영상 같았다.
케인은 딱 봐도 폼을 잡으면서 대답하고 있었다.
-하하, 제 하루 일과요? 저는 언제나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번 해에 있을 대회들이 있으니까요. 잠잘 시간마저 아껴가면서 연습하고 있고, 다른 모든 건 다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그 자식 어제는 만화책 보던데….’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리를 해라!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하연은 손가락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방해하는 것도 좀 아니다 싶고… 대회 끝나면 연락을 할까 싶었지. 음… 그렇지만 케인 정도면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길지도… 팬도 많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하연은 힐끗 태현을 쳐다보았다.
‘너하고 케인은 같이 지내고 있을 테니 케인이 누군가 만나고 있다면 냉큼 말해줘!’라는 눈빛이었다.
“없는데.”
“은근슬쩍 넘기지 말고! 없을 리가 없잖아!”
태현은 자세를 바로잡고 하연 앞에 섰다. 그 위압감에 하연은 움찔했다.
태현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없어. 없다고. 정신 차려. 케인에게 그런 상대는 없어.”
“…진, 진짜?”
“없다니까!”
확실하게 못을 박고서,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일이란 건 참 알 수가 없어. 그 케인이 뭐가 좋다고.”
“네가 할 소리는 아니거든?”
“흠… 하긴 네가 인기 있는 걸 보니….”
태현은 이세연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세연은 한 대 치려다가 말았다.
“야.”
“왜.”
“방송 때는 협력하자.”
“널 바닷속으로 밀어버리는 데에 협력하란 뜻인가?”
“…여기 방송 보면 알겠지만, 보통 고정 출연자들끼리 뭉치고, 초대받은 게스트들끼리 뭉치거든?”
“난 저기 끼고 싶은데.”
태현은 고정 출연자들을 가리켰다. MC, 김춘식, 최창성, 그리고 배우인 신연주.
이 넷이 고정 출연자였고, 거기에 매번 초대받은 손님들이 껴서 방송을 진행했다.
당연히 이런 고생을 많이 한 고정 출연자들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저쪽이 널 받아줄까? 너는 배신자 컨셉이랑 잘 맞지도 않아. 차라리 도동수가 나왔으면 웃겼겠네.”
“그럴듯한데?”
방송에 나와서 아예 첩자 캐릭터로 활동하는 도동수라….
생각하니 웃겼다. 물론 당사자는 절대 하지 않겠지만.
최창성은 태현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견제하는 게 명백하게 드러났다.
“처음 보는데 너무한 거 아니야?”
“뭐… 저 사람도 열심히 방송하는데 방송 안 나오는 네가 훨씬 더 인기 많고 하는 게 억울하겠지.”
“저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을 배려해 줘야겠네. 난 조용히 있어야겠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분량 만드는 것도 만드는 거지만 안 뭉치면 저쪽보다 고생하면서 방송해야 할 거야. 아무리 방송이라지만 난 일부러 불리하게 고생하기는 싫어.”
“좋아. 손을 잡자고.”
둘의 대화를 듣던, 파이브 걸즈의 보라는 작은 목소리로 하연에게 물었다.
“언니. 둘이 사이가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글쎄… 그건 나도 잘….”
옆에서 계속 지켜봤지만 아직도 알쏭달쏭한 둘의 관계!
일단 협력하기로 하자, 이세연은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런데 너희 팀은 어떤 식으로 던전을 공략했어?”
“내가 진짜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고 묻는 건 아니지?”
“자세하게는 대답할 필요 없고, 간단하게는 말해줘도 되잖아. 어차피 1차전만 하면 다들 전략 나올 텐데.”
게임단들이 자기 전략을 숨기고 있어도, 본선 1차전만 치루면 다 공개되게 되어 있었다.
태현은 이세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이세연은 약간 부담을 느꼈다.
“너 혹시 폭탄 썼냐?”
“?!”
이세연은 살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