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26화
케인은 여기 몰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이들 중에 방금 했던 말을 인터넷에 올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그리고 그게 올라가면 다른 팀들에게 어떤 의미로 와닿을지도!
-지금 케인이 아탈리 왕국에서 선전포고 중ㅋㅋㅋㅋㅋ
-너희 봤냐? 케인이 말한 거? 패기 넘치더라.
-케인이라면 그럴 만한 자격 있지!
-약탈이나 하고 다니던 놈이 폼은 더럽게 잡네. 흥.
-너 길드 동맹이지?
-반성했으면 됐지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근데 진짜 케인이 선수들 다 잡을 실력은 되냐?
-되지 않나? 대회 때도 그렇고.
-대회랑 상황이 같냐. 안 나온 선수들도 많고 장비에 레벨까지 계산해야지.
-어차피 이번 해에 1:1도 대회 열리잖아? 어디 한번 보자고.
실시간으로 퍼지고 있는 소식.
케인이 만약 봤다면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을 것이다.
* * *
“음. 근데 확실히 둘이 인기가 좋군.”
최상윤은 뒤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주로 몰리는 건 태현, 그리고 그 다음이 케인이었다.
언제나 둘이 가장 앞에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왔기 때문이었다.
“뭐 쟤네들은 워낙 활약을 많이 했으니 어쩔 수 없… 응?”
그렇게 말하며 정수혁과 이다비를 보려던 최상윤은 당황했다.
정수혁과 이다비 앞에도 나름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정수혁 씨! 저는 마법사인데, 정수혁 씨 같은 컨트롤을 갖고 싶습니다! 어떻게 연습하면 될까요?”
“어…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 다음에는요?”
“기도를 하시면 됩니다.”
“?!”
정수혁에게 몰린 건 주로 마법사 플레이어였다.
정수혁의 화려한 마법 컨트롤에 반한 플레이어들!
“길마님! 저희 길드의 이름을 널리 알려주세요!”
“파워 워리어 길마! 상인 직업도 강하다는 걸 알려줘!”
이다비에게 몰린 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과 상인 플레이어들.
파워 워리어 길드원이야 당연히 하늘 같은 길마가 나간다는 점에서 기뻐했고, 상인 플레이어들은 대회에서 거의 유일한 상인 플레이어일 이다비에게 열광했다.
판온에서 제작 직업은 분명 대접이 나쁜 직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투나 레이드 같은 상황에서는 확실히 활약하기 어렵기는 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판온 1에서 태현이 대장장이로 다른 랭커들을 깨고 다닐 때 다들 괜히 열광한 게 아니었다.
평소에는 약한 직업 취급받던 직업이 한계를 뚫고 이기는 쾌감!
“길마님! 길마님! 길마님!”
“길마 파이팅! 파워 워리어 길마 파이팅!”
이다비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은근히 부담되었기 때문이었다.
“길마님?! 저희 모르는 척하는 거 아니시죠 설마?!”
“길드 문장 등에 달고 싸우셔야 해요!”
어쨌든 간에 정수혁도 이다비도 인기가 있자 최상윤은 살짝 서러워졌다.
‘나… 나도 여장만 하면 알아보는 놈들 많은데!’
지금 최상윤은 여장을 풀고 다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얼굴을 모르니 자동으로 변장이 되는 데다가 현실에서 얼굴을 내밀 때도 이게 더 편했던 것이다.
“쟤는 누구지?”
“새로 들어온 팀원 같은데.”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인맥으로 들어왔나?”
‘크흑!’
사실 인맥으로 들어온 게 맞긴 했으니 반박하기도 어려운 상황!
최상윤은 두고 보자고 다짐했다.
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주리라!
“야. 이제 그만하고 들어오자.”
“크크크, 아무도 날 막을 수 없다! <베이징 파이터즈>? <상하이 팬더즈>? <뉴욕 라이온즈>? 다 올 테면 오라고….”
퍽!
“야. 오라고.”
태현은 케인의 뒤통수에 창을 집어 던졌다. 그러자 케인이 그대로 넘어졌다.
[카르바노그가 고소해합니다.]
* * *
[전설 던전-<모래 괴물의 둥지>에 입장하셨습니다.]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결과가 대회 예선에 기록됩니다!]
들어가자마자 간이 대장간 설치.
그 이후 창 발사대 조립.
‘3분 정도인가. 벌충이 되어야 할 텐데….’
3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물론 다른 대장장이들이 봤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뭐 저런 속도로 만들어?! 밥만 먹고 저것만 했나?
대장장이가 만들어내는 아이템은 대장장이 캐릭터의 레벨과 직업, 스킬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렇지만 대장장이가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속도는?
그건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가상현실게임인 만큼, 얼마나 빠르게 재료를 꺼내고 스킬을 사용하고 망치를 휘두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태현의 움직임은 완벽함 그 자체였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재료를 꺼내서 스킬을 사용하고 바로 망치를 휘두르는 깔끔함!
‘대장장이 스킬의 교본’ 영상으로 팔아도 될 수준이었다.
이다비는 감탄했다. 상인 직업인 그녀는 대장장이 같은 제작 직업들과 어울릴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태현의 동작이 얼마나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볼 때마다 대단해….’
“으아암. 다 됐어?”
물론 그런 걸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기다리면서 하품을 하던 케인은 다 된 것 같자 기지개를 켰다.
“…….”
“응?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자. 바로 움직인다.”
태현은 발사대와 창들을 케인과 이다비에게 건넸다.
“으윽.”
바로 튀어나오는 신음! 케인은 끙끙대며 태현의 뒤를 따랐다.
‘김태현 발목에 모래주머니 몇 개만 몰래 달았으면….’
무거운 건 그인데 태현은 전혀 속도를 배려해 주지 않았다.
“던전 특성은 일반 몬스터가 죽을 때마다 다른 일반 몬스터들에게 버프가 들어가는 특성인가… 함부로 잡았다가는 귀찮겠군.”
“그렇지만 안 잡을 수도 없잖아?”
이 던전은 보스 몬스터들만 잡는다고 끝내는 게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들은 무조건 잡아야 하고, 일반 몬스터도 일정 점수 이상 잡아야 했다.
[남은 시간-56:30]
[점수-0/1,000]
“한 번에 몰아서 잡아야겠지. 점수는 그걸로 채우고, 그 다음에는 바로 보스 몬스터로 직행해서 보스 몬스터를 끝내면 돼.”
처음 들어온 던전이었지만 태현의 입에서는 술술 전략이 튀어나왔다.
이미 머릿속에는 영상에서 본 이 <모래 괴물의 둥지> 지도가 잡혀 있었다.
이런 빠른 판단력과 계산은 태현의 장점 중 하나였다.
“어떤 식으로 몰려고? 지금 케인하고 이다비는 이동 속도가 느려졌잖아. 잘못 몰면 뒤에서 잡히는 수가 있어.”
“음….”
“내가 앞으로 나서볼까? 여기서 이동속도는 내가 제일 빠른 축에 들 테니까, 앞으로 달려서 일반 몬스터 몰고 보스 몬스터 방까지 달려볼게.”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너 근데 이상하게 의욕적이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최상윤이 원래 이랬었나?
“대, 대회잖아. 의욕이 솟구칠 수도 있지.”
“그래? 뭐 잘됐네. 그렇지만 너한테 시킬 생각은 없어. 내가 맡아야겠다.”
“왜?”
“전설 던전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 영상 보니까 일반 몬스터 수준이 높더라. 가다가 발목 잡히면 귀찮아져.”
최상윤은 이동 속도는 빠르지만 HP는 그렇게 높지 않은, 유리몸이었다.
몬스터들이 발목을 잡는 데 성공한다면 최상윤도 죽고 케인-이다비도 길이 막히는 일이 생길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우직하게 정면에서 몬스터를 모는 건 위험할 것 같단 말이지.’
입구에서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까지 가면서, 싸우지 않고 일반 몬스터를 몰고 가는 건 흔한 전략이었다.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난이도가 올라가긴 하겠지만 광역기 스킬을 한 번에 퍼부을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게 일반 던전에서는 잘 먹혀도 조금만 어려운 던전으로 가면 잘 안 먹힌다는 점이었다.
몬스터 수준도 수준이지만, 던전 구조 자체도 달라졌다.
길이 어려운 건 기본이고 각종 발을 묶는 함정에, 매복하고 있던 몬스터까지.
별생각 없이 몰고 가려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었다.
태현이 보기에 전설 던전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정면에서 무식하게 몰려고 했다가는 따라오는 몬스터 숫자가 너무 늘어나서 위험할 거 같고….’
“일단 일반 몬스터들은 내가 몰아서 치울게. 그리고 마지막 보스 몬스터 상대할 때 끌고 들어갈 테니, 한 번에 스킬을 퍼부어서 잡자고. 별생각 없이 잡았다가는 나중에 일반 몬스터들이 보스 몬스터만큼 강해질 수 있으니까.”
“그게 가능하겠어? 아무리 너라도….”
최상윤은 걱정이 됐다.
즉 태현은 혼자 앞장서서 몬스터들을 데리고 움직여서 따돌린 다음, 다시 빠져나와서 보스 몬스터 방까지 간다는 소리인데….
아무리 태현이 컨트롤이 좋고 회피 능력이 좋다고 해도 버텨낼 수 있을까?
온갖 악조건을 덕지덕지 안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니. 좋은 생각이 있어.”
“?”
-토끼 변신!
“?!?!”
태현은 토끼 변신 스킬을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치도 못한 스킬에 깜짝 놀랐다.
여기서 이걸 왜?
그러나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태현이 앞으로 달려가다가 옆의 통로에 있는 작은 틈으로 쏙 빠져버린 것이다.
“??!?!”
정상적인 플레이어라면 들어갈 수 없는 크기의 작은 구멍으로 되어 있는 통로들.
그러나 태현은 영상에서 봤을 때부터 이 틈새에 주목하고 있었다.
-저기를 이용할 수는 없을까?
빠른 던전 돌파를 위해서는 맵을 외우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맵을 응용해야 했다.
그리고 태현에게는 마침 쓰레기… 아니, 좋은 스킬이 있었다.
타탁-
“!”
좁은 틈새 통로를 빠져나온 태현은 재빨리 위치를 확인했다. 이 풍경은 던전에서 어디더라?
그리고 다시 다른 통로로 들어갔다. 빠르게 움직여서 이 근처 좁은 통로들의 길을 다 파악할 생각이었다.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카르바노그가 우쭐해합니다.]
‘…….’
토끼로 변한 태현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카르바노그가 준 스킬이니 좋아해도 되긴 하는데….
왜 이리 떨떠름하지?
‘좋아. 됐다.’
지름길들이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대충 파악이 끝난 태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탓- 퍽!
도도하게 달려오더니 폴짝 뛰어서 매콤하게 한 대 먹이는 토끼!
-크억?
-공격이다! 공격! 누구냐!
-…토, 토끼가 우리를 공격한다!
뿔이 잔뜩 나있는 단단한 껍질로 몸을 감싸고 있던 두더지 같은 모래 둥지 전사들은 당황했다.
그렇지만 역시 전설 던전답게 그들은 재빨리 반응했다.
-잡아라!
-잡히면 구워 먹는다!
태현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주변에 있는 전사란 전사들은 모조리 끌어들였다. 그리고 뒤로 후퇴했다.
-길 만들었다! 이동해!
태현이 귓속말을 보내자 대기하고 있던 일행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팀은 흉내도 내지 못할 몬스터 몰이였다.
태현은 전사들을 이끌고 뒤로 빠지다가 적당히 시간이 됐다 싶자 좁은 틈새로 슬쩍 빠졌다. 그리고 지름길을 이용해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토끼로 변신해서 던전의 온갖 지름길들을 이용할 수 있는 태현에게 있어서 몬스터를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이놈들은 11 구역으로, 저놈들은 15 구역으로….’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태현은 치밀한 계산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일행들은 손쉽게 첫 번째 보스 몬스터의 방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다!”
“발사대 설치해! 내가 시선 끌고 있을 테니까!”
첫 번째 보스 몬스터, 독껍질거대전갈은 전갈의 모습을 한 거대한 곤충형 보스 몬스터였다.
최상윤은 재빨리 달려들어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케인의 역할이었지만 지금 케인은 발사대를 설치해야 했다.
탓, 타탓, 카카칵!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전갈의 딱딱한 껍질을 칼로 긁어내는 소리가 나왔다.
-키익!
확실히 단단히 시선을 끌었는지, 전갈의 꼬리에서 독침들이 ‘타다닥’소리를 내며 발사되기 시작했다.
“윽!”
최상윤은 <벨서스의 검막> 스킬을 사용해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다.
‘다 막아낼 수 있을까? 중독되고 시작하면 골치 아픈데…!’
그때 뒤에서 귀여운 소리가 들려왔다.
“뀨뀨!”
“??”
-아차. 토끼 상태란 걸 잊고 있었군. 케인, <노예의 쇠사슬>!
“아!”
케인은 알겠다는 듯이 최상윤에게 노예의 쇠사슬 스킬을 사용해서 앞으로 끌어당겼다.
팟!
최상윤이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태현이 변신을 풀었다. 뒤에 따라오는 일반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