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25화
“말도 안 돼! 그런 쓰레기 아이템이 유행한다니!”
케인은 격하게 반응했다. 당한 게 많은 그였기에 폭탄에 맺힌 게 많았다.
“죽을래?”
“아, 아니. 너 욕한 게 아니라….”
그러는 사이 최상윤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확실히 폭탄이 유행할 법도 하겠네.”
“네. 영상 몇 개만 봐도 알겠어요. 폭탄의 위험을 감안하더라도 쓸 만하겠더라고요.”
폭탄 아이템이 잘 안 쓰이는 이유는 그 불안정성 때문이었다.
안 터지는 건 기본이고 재수 없으면 들고 있는 사람까지 날려 버리는 그 특유의 불안정성!
비싼 골드 들여서 잔뜩 준비하고 던전에 들어갔는데 폭탄 잘못 써서 죽으면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욕먹는 게 괜히 욕먹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던전 공략 대회는 별개였다.
최대한 빨리 클리어해야 하는 대회!
거기에 일단 안에서 죽어도 캐릭터에는 사망 페널티가 없었다. 제한시간만 줄어들 뿐.
게다가 예선은 몇 번이고 도전이 가능했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니, 폭탄 아이템의 단점은 사라지고 장점만이 나타났다.
잡몹을 처리할 때 광역기 스킬을 아낄 수 있고, 준 보스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와 싸울 때에도 데미지 딜링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어디서든 쓸 수 있는 약방의 감초 같은 아이템!
그게 바로 이번 대회에서 폭탄 아이템의 위치였다.
“지금 영상 보면, 다들 어떻게 폭탄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써서 던전을 공략할지 연습하는 거 같아요. 어느 구간에서 어떤 식으로 몰은 다음 폭탄을 터뜨릴지….”
이다비가 킨 영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폭탄을 쓰는 파티들의 모습이 있었다.
태현도 ‘오, 저렇게 폭탄을 쓰나?’ 싶은 영상도 몇 개 있었다.
“얘네는 화살에 매달아서 쏘네. 윽. 터졌다. 아프겠군.”
콰쾅!
궁수 중 한 명이 폭탄을 꺼내 화살에 매달아 쏘려다가 터져서 사망하는 걸 보고, 최상윤은 얼굴을 찡그렸다.
남 일 같지가 않았던 것!
“보면 알겠지만 보통 세 번에 한 번 꼴로 터지는 것 같아요.”
“던전 공략할 용도로 산 폭탄이라면 싸구려는 아닐 텐데도 저 정도야?”
“원래 기계공학 아이템은 기계공학 스킬 낮은 놈들이 쓰면 더 위험해.”
“앗. 잠깐만요.”
이다비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폭탄류 같은 기계공학 아이템은 전부 태현 님 영지에서 파는 거 아니에요?”
“……!”
“그러게?”
생각해 보니 그랬다.
물론 판온은 넓고 플레이어는 더 많았으니 태현의 영지 밖에서도 기계공학을 올리는 플레이어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태현의 영지에 있는 대장장이들만큼 뛰어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그건 확실했다. 태현은 자신할 수 있었다.
‘밥만 먹고 폭탄만 만드는 놈들보다 밖에서 다른 거 하는 놈들이 폭탄을 잘 만들진 않겠지.’
그렇다면 대회에 참가할 정도의 플레이어들이 살 폭탄은 확실히 태현의 영지에 있는 대장장이들의 폭탄밖에 없었다.
“막으면 되는 거 아냐?!”
케인은 신이 나서 외쳤다.
손 하나 안 대고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늦었지, 임마. 지금 개나 소나 다 쓰고 있잖아.”
“벌써 대회에서 쓸 만큼은 사지 않았을까요?”
“풀린 양이 얼마인데, 막는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알겠는데 다 같이 입을 모아서 구박할 필요는 없잖아….”
시무룩해진 케인은 내버려 두고 태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굳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아도 돼. 폭탄이 유행이면 가장 유리한 건 우리니까.”
태현은 다른 영상 몇 개를 틀어보았다.
-으아앗! 죽어라!
창에 폭탄을 달고 달려드는 창술사 플레이어.
-<소규모 공중 부양>!
공중에 폭탄을 띄워서 몬스터를 정리하려 드는 마법사 플레이어.
-<구덩이 함정 파기>!
바닥에 판 함정에 폭탄을 재빨리 넣고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도적 플레이어까지!
확실히 사람들이 여럿 모이니 이런저런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태현이 보기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방법들이었다.
-으아악! 죽는다!
창에 폭탄을 달고 달려드는 창술사 플레이어는 폭발 사고에 피가 절반 이상 날아갔고.
-폭탄! 폭탄 조종 똑바로 해!
-나, 나는 똑바로 하고 있는데…!
공중에 폭탄을 띄우려던 마법사 플레이어는 폭탄이 공중에서 멋대로 폭발하거나 방향을 틀자 울상을 지었다.
그나마 그건 나은 편이었다. 재수 없으면 폭탄 작동시키는 순간 사고가 났으니까.
그럴 경우에 마법사처럼 HP 낮은 직업은 정말 위험했다.
-이건 무슨 소리냐? 킁!
함정에 폭탄 넣고 튀는 방식은 그나마 덜 위험하긴 했지만, 몬스터들이 폭탄 때문에 눈치를 채는 경우가 더 많았다.
소리부터 시작해서 안 들키기가 힘든 것이다.
‘역시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한 팀들이 안 보이는군. 프로팀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은데.’
영상을 모두 둘러본 태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미친 행운 스탯과 높은 기계공학 스킬을 가진 태현만큼 폭탄에 부담 없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판온 플레이어는 많으니 누군가는 태현이 떠올리지 못한 참신한 방법으로 폭탄을 쓸지도 몰랐다.
‘뭐 그런 팀이 열 개 넘게 나오진 않겠지.’
옆에 있던 케인이 태현의 말에 안도한 듯이 외쳤다.
“그, 그래! 다들 폭탄을 쓰면 우리가 가장 유리하지!”
“맞아. 그리고 너도 있고.”
“하, 하하. 그렇게까지 칭찬해 줄 필요는….”
케인은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렇게 칭찬을 해주다니.
“믿는다. 케인.”
“쑥스럽게 왜 이래? 하하하!”
태현은 케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최상윤은 케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야….”
“?”
“여차하면 널 폭탄으로 쓰겠다는 소리 아니냐 저거?”
“…!!!”
* * *
대회 예선 던전은 총 18개.
그중 무작위로 하나가 골라지고, 또 무작위로 던전의 특성이 골라졌다.
‘이제 무작위는 싫은데….’
무작위 스킬이 너무 많은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던전 특성은 다양했다.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의 수 자체를 늘리는 특성, 몬스터가 죽을 때마다 다른 몬스터들이 강해지는 특성, 힐러가 힐 할 때 방해가 들어오는 특성, 보스 몬스터가 엄청나게 강해지는 특성 등.
굳이 분류하면 플레이어들이 좋아하는 쉬운 특성과 꺼려 하는 어려운 특성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어려운 특성으로 분류되는 특성 중에는….
“역병이 있어?!”
몬스터 전원이 역병 저주에 감염되어 있어서 던전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역병에 걸리고 시작하는 던전!
물론 대륙을 휩쓸었던 저주만큼 강한 역병은 아니었지만, 회피 불가능하고 해독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까다로웠다.
그 상태로 일반 몬스터를 쓸고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예선에서야 피하면 되겠지만 본선에서 걸리면 귀찮긴 하겠군.’
예선 던전은 좋은 기록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었다.
까다로운 던전이나 특성이 걸려도 다시 시도하면 그만!
그렇지만 본선에서는 그게 안 됐다.
어떤 던전이 나오든 간에 상대 팀과 승부를 봐야 했다.
“좋아. 도전해 볼까.”
뭐든지 직접 해봐야 아는 법. 태현은 일행을 이끌고 가장 가까운 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 * *
“윽. 사람이 많긴 많군.”
던전 안에서는 안 만난다고 해도 던전 입구 근처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진지하게 대회 본선을 노리지 않더라도 궁금해서 온 사람들도 많았던 것!
“귀찮으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굴 가리고 바로….”
“쟤 벌써 사인해 주고 있는데?”
“…….”
태현은 최상윤의 말에 한숨을 쉬며 케인을 쳐다보았다. 신이 나서 사인을 해주던 케인은 뒤의 시선을 느끼고 움찔했다.
“왜, 왜? 여기는 아탈리 왕국이라서 안전하잖아! 암살자 없을 거야!”
케인이 말하자마자 인파 사이에서 한 명이 튀어나왔다.
“죽어라! 케인! <베이징 파이터즈>의 원수!”
“힉! <노예의 쇠사슬>!”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푹찍푹찍!
케인이 잡고 태현이 찌르고, 튀어나온 플레이어는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환상적인 호흡!
주변에서 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
-방금 봤어? 완전히 기습했는데 그걸 그냥 막아냈어!
그러나 그런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케인은 기가 죽어서 태현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아, 아니. 없을 줄 알았지.”
“말 좀 듣고 움직이자. 응?”
-저 둘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분명 서로 잘했다고 하고 있을 거야!
-그런 거 치고는 분위기가 좀 이상한….
안 그래도 케인의 등장에 뜨거워진 분위기가, 나타난 암살자 플레이어의 제압에 더욱 뜨거워졌다.
“김태현! 난 네 팬이야! 사인 좀 해줘!”
“사인 좀 해주세요!”
최상윤은 태현이 무시하고 그냥 갈 줄 알았다. 판온 1 때는 그랬으니까!
‘그나저나 판온 1 때도 그렇고 얘는 이상하게 아저씨 팬들이 많은 거 같아. 기분 탓인가?’
그러나 태현은 가지 않고 하나하나 사인을 다 해주기 시작했다.
최상윤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
“왜?”
“아, 아니. 그냥 갈 줄 알았는데. 너 이런 거 귀찮아하지 않았냐?”
“그건 판온 1 때고. 게임단 만들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최상윤은 감동했다.
‘너 이 자식… 성장했구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태현이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 최상윤은 감동이었다.
“뭐라고 적어줄까요?”
“[나는 어제 <베이징 파이터즈>를 털었다. 내일은 <길드 동맹>을 박살 내줘야지!]라고 써주세요.”
“…아, 네.”
“저는 [나 말고 다른 선수들은 두 단계 아래다]라고 써주세요.”
“…….”
태현은 뭔가 떨떠름해졌다. 다들 왜 이렇게 과격해?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길드 동맹이 오스턴 왕국에서 엄청나게 세력을 늘려나가면서, 그만큼 안티도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길드 동맹이나 산하 길드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그런 이상 길드 동맹 길드원들과 다른 사람들의 충돌은 당연했다.
-여기 우리가 먼저 왔어. 저리 비켜!
-아니 사냥터가 이렇게 넓은데…!
그렇지만 대부분 싸움을 피했다. 길드 동맹과 붙어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아니었다.
이득이고 뭐고 간에 시비 걸면 칼부터 날리고 보는 통쾌함!
-여기 우리가 먼저 왔어.
-그러니까 먼저 가고 싶다는 건가?
푹찍!
-여기 우리 자리임.
-그래. 니들 묫자리.
푹찍푹찍!
사람들이 환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최근 길드 동맹 길드원들한테 맺힌 게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는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김태현이라면 뭔가 보여줄 거다!’
“다음에는 어디에 불을 지르고 폭탄을 터뜨리실 건가요? 길드 동맹 수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저도 케인 씨처럼 폭탄을 안고 싸울 수 있습니다! 시키실 일 있으시면 불러만….”
슬슬-
이쯤 되자 태현도 질려서 뒷걸음질 쳤다. 팬의 눈빛이 어디서 많이 본 눈빛이었다.
‘가브리엘이랑 대장장이들 눈빛이랑 똑같잖아?’
상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그러나 태현에게 온 팬들은 양반이었다. 케인에게 몰려든 팬들은 더 심했으니까.
“케인! 케인! 케인!”
“하하하! 여러분 하하하!”
냉정한 태현과 달리 케인은 띄워주면 띄워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케인님! 길드 동맹과 다시 싸울 생각 있으십니까?”
“아, 시비 걸면 싸워야지!”
“어. 거기 랭커 한둘이 아니던데 자신 있으세요? 그리고 길드 동맹하고만 싸운 게 아니라 <베이징 파이터즈>하고도 싸웠잖아요. 다른 중국 팀들도 케인 님을 노리고 있을 텐데요.”
“거기 있던 랭커들 중에 나 잡은 랭커 있냐? 없잖아!”
케인의 말에 사람들은 열렬하게 환호했다.
“그렇긴 해!”
“케인! 케인! 케인!”
“그렇다는 건 다 이길 자신이 있다는…?”
“그렇지!”
“!”
“!!”
“저놈 말려야 하지 않냐?”
“냅둬. 지 인생인데.”
태현은 무시했다. 팀 KL은 각자 알아서 자기 말을 책임지는 게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