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24화
양성규는 뒤를 돌아보았다. 오크 아저씨들 중 활을 쏜 사람이 있나 싶었다.
그러나 오크 아저씨들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네가 쐈냐?”
“아니. 나 활 안 쏘는 거 알잖아.”
“헉, 설마 언데드가! 이런 기특한… 아니, 저 새끼 또 도망치네! 잡아! 잡아!”
호다닥 도망치다가 두들겨 맞는 언데드들!
아저씨들은 아예 빙 둘러싸는 형태로 언데드들이 못 도망치게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 절호의 기회였는데도 선수들과 기타 플레이어들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파파파파파팍!
미친 듯이 화살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까 척살 부대도 나름 궁수로 구성된 강한 부대였지만, 지금 날아오는 공격은 그 척살 부대의 공격보다 훨씬 더 매섭게 느껴졌다.
“으아아악!”
“바위 뒤로 숨어! 일단 피해!”
‘저기 숨어 있었군!’
언덕 뒤에서 숨어 있던 플레이어들이 뛰쳐나오자 양성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딱 보니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멈추는 순간 사방에서 튀어나와 공격할 생각 같았다.
계획대로 흘러갔으면 언데드 신경 쓰느라 천천히 가고 있던 그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을 것!
‘그런데 쟤네는 누구냐?’
양성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에 시선을 집중했다.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 몇 명과, 그 플레이어들이 끌고 온 사냥꾼 NPC들!
한눈에 봐도 플레이어 수준부터 사냥꾼들까지 범상치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랭커 같았고, 사냥꾼 NPC들도 전원 정예로 보였다.
파파팍! 파파파팍!
계속해서 무자비하게 화살이 쏟아져 내리자, 결국 선수들은 하나둘씩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습이 시작부터 막힌 이상 저 오크 아저씨들까지 합류하면 역으로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거 잘 도망치네. 로이야. 찍고 있지? 저거 잘 찍어서 올려봐라.”
양성규는 도망치는 이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양성규도 나름 괘씸했던 것이다.
태현이는 내버려 두면서 그들은 건드리다니.
한마디로 그들은 비교적 만만해 보인단 것 아닌가!
따끔한 교훈을 내려야 했다.
“어? 사진 찍는 건가?”
“사진이 아니라 영상. 영상 찍어서 올리나 봐. 젊은 애들이 그 많이 보잖아.”
“어험. 잠깐만. 나 장비 좀 갈아입고….”
“동영상도 포토샵이 되냐? 나 좀 잘생기게 해줄 수 있지? 뱃살도 좀 없애주고. 내가 원래는 이런 몸이 아닌데 오크 종족을 골라서….”
로이는 무시하고 도망치는 선수들을 찍었다. 아저씨들을 상대하다 보면 끝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 고마워요. 그런데 그쪽은 누구…?”
“저는 유지수고, 이쪽은 파이드 길드, 그리고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
유지수는 힐끗 고개를 돌려 사냥꾼들을 쳐다보았다.
오크 아저씨들도 패션 센스가 괴악한 편이었지만, 그녀가 데리고 있는 사냥꾼들도 만만치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가죽 아이템으로 깔맞춤은 기본이고, 가죽 위에는 화려한 물감을 덕지덕지 그려놓았다.
“…별로 신경 안 써도 되는 NPC들이에요. 그냥 사냥꾼이에요.”
“아니! 유지수 님!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희도 제대로 소개해 주십시오! 잘츠 왕국에서도 인정받은 명예로운 타이럼 사냥꾼들인데!”
뒤에서 사냥꾼들이 아우성치며 항의했다. 유지수는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걸 본 양성규는 어디서 많이 본 기분이 들었다.
저건 아저씨들을 데리고 다니며 고생하는 그의 모습!
‘세상일은 다 똑같군그래.’
“저 녀석들 패션이 제법인데?”
“흠흠.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오크 아저씨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양성규는 한 대 때리려다가 말았다.
“그런데 김태현 형… 오빠… 씨… 아니, 선수는 어디 계신가요? 도와주러 왔는데.”
유지수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기 있는데… 그보다 싸움 끝난 건 알죠?”
“…네?”
유지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많던 인원들이 있었는데 벌써 끝났다고?
그 말을 들은 길드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싸움이 벌써 끝났다고? 아니, 그 인원을 어떻게 벌써 다 끝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면 지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지수 불쌍해서 어떡해?”
“수능 때문에 접속도 못하고 그래서 임팩트 있게 나타난다고 이렇게 왔는데….”
부들부들!
유지수의 꼭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모두 조용히 해주세요!”
“쉿. 지수 화났다. 모두 모르는 척해주자. 따뜻한 눈으로 쳐다보자.”
“다 들리거든요!”
유지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그래도 저기 있을 테니까 일단 가서 얼굴이라도….”
“어. 지수야. 김태현 선수 벌써 영지 갔다는데?”
뒤에서 길드원 한 명이 게시판을 보고 말했다.
“…네?”
“지금이라도 따라갈래?”
“그건 좀 스토커 같은데.”
“이미 충분히 스토커 같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모두 다 닥쳐주세요….”
유지수는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일어섰다.
“그냥 퀘스트나 하러 가죠.”
결국 포기!
이제 와서 영지로 찾아가 봤자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 그래! 김태현 그거 별거 아냐! 게임 엄청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지만 찾아보면 다른 사람도 많을 거야!”
“?”
오크 아저씨들은 태현이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거겠지?
“맞아! 애인이랑 헤어져도 캐릭터는 남으니까 게임을 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퀘스트 하러 가자!”
“됐거든요.”
“지수가 요즘 좀 차가워진 거 같지 않아?”
“우리가 많이 놀려서 그래.”
길드원들은 수군거리며 유지수의 뒤를 따라갔다. 예전에는 훨씬 더 순진했었는데….
“?”
“?”
서로 인사하고 갈라지려던 두 무리는 각자 가는 길이 겹치자 서로를 다시 쳐다보았다.
“어… 이쪽으로 가세요?”
“어? 그쪽도?”
* * *
판온의 온갖 대륙을 돌아다니며 아키서스의 조각을 찾아 헤매야 했던 태현과 달리, <타이럼 레인저>인 유지수는 주로 잘츠 왕국에서 활동했다.
그만큼 잘츠 왕국에서 쌓은 공적치 포인트와 NPC들과의 친밀도는 대단했다.
유지수의 직위는 올라가고 올라가 결국 <타이럼 사냥꾼 지휘관 후계자>가 되었다.
명백한 2인자!
타이럼 사냥꾼들을 마음대로 동원해서 부려먹을 수 있는, 태현이 들었다면 ‘아니 그런 좋은 자리가 있어?!’ 하고 감탄했을 직위!
물론 유지수는 태현이 아니기에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필요한 게 있으면 길드원들이 도와줬기에 사냥꾼들을 전부 동원할 일도 없었고.
그렇지만 저 자리에 오르자, 나오는 직업 퀘스트가 완전히 달라졌다.
<타이럼 사냥꾼 신규 모집>
잘츠 왕국에서도 타이럼 사냥꾼은 3D 직업에 들어간다. 늙은 타이럼 사냥꾼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타이럼 사냥꾼을 안 하고 마법사 같은 거나 한다니까’라며 걱정하고 있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이들을 모집해 타이럼 사냥꾼으로 훈련시켜라!
<타이럼 사냥꾼 훈련 1>
새로 모집한 타이럼 사냥꾼들은 아직 풋내기에 불과하다. 타이럼 사냥꾼들을 키우는 건 시련과 고난!
새로 모은 타이럼 사냥꾼들을 데리고 잘츠 왕국의 산맥을 돌며 보스 몬스터 다섯 마리를 사냥해라.
<타이럼 사냥꾼 훈련 2>
…….
<타이럼 사냥꾼 훈련 7>
타이럼 사냥꾼은 잘 가꿔진 왕국에서만 있을 수 없다. 왕국의 세력이 없는 미개척지로 가서 새로운 땅을 개척하라.
우르크 지역의 다음 지역을 개척하고 요새를 건설하라.
이제까지는 혼자, 혹은 소규모 파티로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만 사냥하면 됐다.
타이럼 레인저의 퀘스트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이다.
그렇지만 자리에 오르자 NPC들을 뒤져가면서 찾고 고용하고 훈련시키고….
평소에 안 해본 퀘스트를 한 유지수는 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안 그래도 사람을 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유지수였다. 대부분이 이상한 NPC인 타이럼 사냥꾼들을 관리하는 건 몇 배로 힘들었다.
‘수능이 끝나서 다행이야.’
사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캡슐에 들어가는 걸 보고 아버지, 유성우 사장은 걱정하며 말리려고 했다.
-아무리 다 끝났다지만 너무 게임만 하는 거 아니니?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저 정도면 별로 많이 하는 거 아니지 않으냐? 크흠. 크흠.
-?!
그리고 현재 깨고 있는 퀘스트는 우르크 지역 퀘스트!
딱 봐도 오래 걸리고 난이도 높은 퀘스트라 사냥꾼들을 모아 준비를 하고 가려고 하는데….
잘츠 왕국 근처에 태현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날아온 것이다. 그것도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
-도와주고 가죠! 도와주고 갈래요! 도와주고 갈 거예요!
-도, 도와주고 가. 아무도 안 말렸어. 진정해. 지수야.
-네. 진정했어요.
-그렇다고 갑자기 진정하지는 말고! 무섭잖아!
* * *
그게 무산된 지금 눈물을 머금고 일단 우르크로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우르크에 돌아가는 <최강지존무쌍> 일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잘됐네! 우리도 주로 우르크에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요. 도와줄 테니까.”
“앗. 그러고 보니….”
유지수는 지금 <최강지존무쌍>라는 길드가 우르크 지역에서 새로 영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는 걸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길마는….
태현의 아버지!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가 신세를 졌는데 뭘 그 정도야. 땅은 넓으니까 쓰고 싶은 곳 있으면 얼마든지 써요. 앗! 저 언데드 놈 또 도망치네. 잡아! 잡아!”
“…….”
* * *
투기장 리그와 달리, 판타지 온라인 던전 대회는 예선 순위만 뚫으면 어떤 팀이든 참가가 가능했다.
즉 아마추어팀이 프로팀 대신 본선 대회에 나갈 수도 있다는 것!
덕분에 던전 대회의 반응은 뜨거웠다.
수백 개가 넘는 파티가 던전 입구를 들락날락하며 계속해서 대회 던전을 도전했다.
게시판에는 하루가 멀다 않고 대회 던전 공략 글들이 올라왔고….
“그렇지만 쓸 만한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분석에 가장 능숙한 건 역시 이다비였다.
현재 태현 팀의 목적은 예선 돌파!
판온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설마 김태현이 있는 팀이 예선을 못 뚫겠어?’라고 생각했지만, 태현 팀은 아니었다.
-우리 진짜 까딱하다가는 못 뚫을지도 몰라!
그만큼 훈련과는 담쌓고 지냈던 그들!
태현이 받아온 퀘스트가 워낙 어마어마하고 많이 돌아다녀야 했던 퀘스트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팀원들은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특히 케인이.
“왜? 좀 참고하려고 했는데.”
“그야 프로팀들은 이런 게시판에 글을 안 올리거든요.”
그랬다.
지금 게시판에 ‘나는 이렇게 던전을 공략했다’, ‘이 던전은 이렇게 공략해라’ 같은 글을 올리는 건 대부분 아마추어들!
프로팀은 자기들의 전략을 철저하게 감췄다. 본선 전까지 괜히 자기들의 전략을 공개해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남들이 보면 참고해서 그들의 기록을 깰 수도 있는데 조회수 좀 올리자고 공개하는 팀은 없었다.
“아마추어팀들 전략은 엄청 다양하고 격차가 커서….”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이다비를 포함해 다른 일행은 엄청나게 눈이 높아진 상태였다.
대부분의 공략 영상을 보면 ‘응? 이게 공략이라고? 너무 못하는데?’란 반응이 나오는 수준!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건 유행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대회니까 유행이 있겠지. 무슨 유행인데?”
어느 곳이든 간에 유행이 있기 마련. 투기장에는 투기장 전략의 유행이, 필드 사냥에는 필드 사냥 전략의 유행이….
최상윤과 태현은 추측하기 시작했다.
“포션 조합 같은 건가?”
“아니면 도는 순서? 벌써 몬스터 잡는 순서가 나왔나?”
“아뇨. 폭탄이요.”
“…응?”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아이템으로 폭탄을 갖고 들어가는 게 유행이에요. 지금 보면 폭탄 쓰는 팀들이 되게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