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23화
“태현이 이 녀석! 무시하지 마!”
“아니. 무시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죠.”
풍덩!
고급 언데드들이 솥에 던져질 때마다, 아저씨들은 자기 일처럼 아쉬워했다.
“저놈 보양식 소리는 무시하고….”
“아니 왜! 내 말 좀 들어봐!”
“쟤 좀 닥치게 해라.”
‘언데드도 잘 먹으면 보약이다’라는 독특한 이론을 펼친 아저씨는 다른 아저씨들에게 제압당했다.
오크 아저씨들도 눈이 있었다.
망령으로 변한 태현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것!
“어쨌든 데려가고 싶은 건 진짠데, 안 되냐?”
“돈 주고 살게! 얼마면 돼!”
골드 주머니를 흔드는 아저씨들!
“앗.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신데요?”
옆에 있던 이다비가 솔깃한 얼굴로 물었다. 언제나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는 그녀였다.
판온의 새로운 시장, 언데드 애완동물!
‘…잠깐, 안 될 것 같은데?’
이다비의 이성이 다시 돌아왔다.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제가 안 주려는 게 아니라… 데리고 갈 능력이 있어야 데리고 가죠. 여러분들 중에 네크로맨서가 하나도 없잖아요. 이런 데스 나이트 정도면 기본적으로 흑마법 스킬 고급은 찍은 네크로맨서여야 원활하게 부려먹을 수 있는데….”
갖고 있는 마법 스킬은 적어도, 태현은 기본 마법 스킬 자체는 레벨이 높았다.
그런데도 태현은 망령 상태가 풀리면 대부분을 역소환해야 했다.
그만큼 고급 언데드들은 부리기 힘들었다.
“거봐. 태현이도 저렇게 말하잖아.”
“으음….”
“그러니까 푹 고아서 먹… 읍읍! 읍읍읍읍!”
“정말 방법이 하나도 없나?”
양성규는 아쉬운 얼굴로 물었다. 아쉽지만 판온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건 태현이니, 태현이 방법이 없다고 하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하나도 없는 건 아니긴 한데요.”
“뭐?”
“방법이 있다고?”
“언데드들을 다 데리고 갈 수 있는 완벽하고 좋은 방법이 있다고?!”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한 것 같은데.”
뒤에서 케인이 중얼거렸다. 저 아저씨들은 자기들 좋은 대로 듣는 재주가 있었다.
“일단 아저씨들한테 언데드 하나씩 드릴 테니까 받으세요.”
“그러면 바로 반란 일으키지 않나요?”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흑마법 스킬이 부족한 플레이어가 언데드를 부리면 언데드가 바로 도망치거나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응. 아마 그러겠지.”
“?”
“그러면 힘으로 제압해야죠.”
“……!!”
주변에 있던 일행의 입이 벌어졌다.
세상에 그런 무식한 방법을!
“반란 일으키면 패서 제압하고, 도망치려고 하면 패서 잡고… 계속하다 보면 공포심 올라서 어느 정도 말을 들을 텐데….”
판온에서 부하 NPC를 데리고 다닐 때에는 여러 스탯, 스킬이 관련되었다.
기본적으로 지휘 스킬에, 언데드 NPC라면 마법, 흑마법 스킬.
거기에 부하 NPC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충성도, 엄격하고 무섭게 굴면 공포심이 올랐다.
충성도나 공포심이나 둘 다 말을 잘 듣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스탯이었다.
태현이 말하는 건 이 공포심을 힘으로 올리라는 것!
“엄청 좋은 방법이잖아!”
“맞아! 그거라면 할 수 있겠어!”
아저씨들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태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말 다 안 끝났거든요. 어쨌든 이게 엄청 비효율적인 방법이라서… 일단 팰 때 죽이면 안 돼요. 여러분들은 잡으면 다시 소환할 능력이 없으니까. 그리고 공포심 스탯으로 말 듣게 하려면 엄청 올려야 할 텐데 그러려면 한두 번 패는 걸로는 부족할 걸요. 한 몇십 번은 패도 모자랄 텐데… 그냥 흑마법사를 불러요.”
“아냐! 잘 키워볼게!”
“맞아! 내가 세 끼 꼬박꼬박 주고 산책도 시킬 테니까!”
갑자기 어렸을 때의 동심이 살아난 아저씨들!
솥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언데드들 앞에 서서 필사적으로 태현을 막았다.
귀찮아진 태현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 그러면… 하나씩 데려가세요.”
‘내 일 아니니까.’
아저씨들이 언데드 부하한테 칼침을 맞든 뺑소니를 당하든 사실 태현이 알 바 아니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자!
번뜩!
태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저씨들은 우르르 달려 들어와 언데드들을 하나씩 골라 가지기 시작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고르세요.”
“난 얘로!”
“난 얘가 좋아 보여! 덩치가 크잖아!”
냉정하고 논리적인 분석이 아닌 단순히 겉모습으로 언데드들을 하나씩 골라 가지는 아저씨들.
[흑마법 스킬이 극도로 낮습니다.]
[언데드 몬스터가 당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흥! 날 구해준 건 고맙지만 자격이 없는 자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 컥!
“내 말 들어! 내 말 들으라고!”
-잠… 잠ㄲ….
“내 말을 들어!”
다짜고짜 몽둥이부터 휘둘러대는 아저씨들!
-무슨 말을….
“들으라고!”
-아니, 말을 해야 알ㅈ!
퍽퍽퍽퍽!
단순하게 ‘패다 보면 공포심이 오르겠지’라고 생각한 아저씨들!
덕분에 언데드 하나씩을 맡아 쫓아다니면서 두들겨 패는 오크들이라는 기묘한 상황이 완성되었다.
-거기 서! 거기 서란 말이야!
-저는 명령을 듣겠습니다!
-아니야! 네게는 공포심이 부족해!
“…초현실적이야.”
“남은 거 빨리 다 쓸어 넣고 가자.”
태현은 무시하고 남은 언데드들을 쓸어 넣고 정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골골이에게 먹였다.
“골골이 녀석 잘 먹네. 좋지? 응?”
-…….
골골이는 포기하고 정수를 마셨다. 저 멀리서 두들겨 맞는 언데드들을 보니 자신의 처지가 상대적으로 좋게 느껴졌다.
[<골골이>의 힘이 오릅니다.]
[<골골이>의 체력이 오릅니다.]
[……]
[……]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골골이의 반지:
내구력 50/50.
더 이상 마계에 혼이 묶이지 않은 데스 나이트 골골이는 역소환 당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름을 붙인 주인의 부름으로 다시 대륙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골골이를 부를 수 있는 반지입니다.
투박한 데스 나이트의 뼈로 되어 있는 반지. 아이템의 성능은 보잘것없었지만 골골이를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확실히 용용이나 흑흑이는 죽으면 다시 똑같은 놈을 부를 수 없으니까 함부로 못 썼는데….’
태현은 흐뭇한 눈으로 골골이를 쳐다보았다.
역시 언데드 종족은 이런 점에서 쓸모가 있다니까!
오싹-
골골이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지금 레벨이 어떻게 되지?”
용용이는 300을 갓 넘겼고, 온갖 언데드의 정수로 닥치는 대로 레벨을 올린 골골이는 330. 그리고 흑흑이는….
혼자 340대에서 놀고 있었다.
-…주인이여….
용용이는 슬픈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태현도 이건 어쩔 수가 없었다.
딱히 흑흑이를 주도적으로 키운 건 아닌데, 악명을 올릴 플레이를 너무 많이 해서 어쩔 수가 없었던 것!
“태현아! 그러면 우리는 이만 가볼게!”
“언데드 고맙다! 잘 키울게!”
“스타우도 곧 보내겠습니다!”
“그래! 정말 고맙다!”
신이 난 아저씨들은 행복한 얼굴로 떠나갔다.
손에는 언데드 하나씩을 잡고서!
‘과연 잘 풀릴지 모르겠군.’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흑마법 스킬도 없는 사람들이 언데드를 부리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언데드들은 도망치고 반항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돌아가는 길에 싸움이라도 난다면?
일이 몇 배로 꼬일 게 분명!
물론 태현은 굳이 그걸 지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 일 아니니까!
“좋아. 그러면 이제 돌아가서 던전 예선이나 뚫자고.”
태현이 여기서 신나게 척살 부대를 쓸어버리고 선수들을 박살 내는 동안, 다른 멀쩡한 팀들은 대회 던전을 돌면서 전략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 * *
“요즘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폭탄을 사는 사람이 좀 많아진 거 같아요.”
“확실히 그래.”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시적인 현상인 줄 알았는데, 확실히 폭탄 판매량이 늘었다.
골짜기에 있는 <악마의 대장간>에서 일하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자기들이 만드는 걸 팔기도 했다.
물론 사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정말 절박하거나 정말 겁이 없는 사람들!
그렇지만 요즘 이상하게 폭탄 아이템들이 많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영지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와서 사가고 있는 것이다.
“이건 혹시….”
“?”
“드디어 기계공학 붐이 온 거 아닐까?”
“!”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예전부터 말했던 기계공학 붐!
태현이 기계공학으로 맹활약을 펼칠 때부터 대장장이들은 기계공학 붐이 오는 걸 꿈꿨다.
물론 그런 건 오지 않았다.
대장장이 스킬 중에서 기계공학은 너무 불안정하고 극단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대장장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간 붐이 온다!
그리고 지금. 이상할 정도로 많이 팔려나가는 폭탄….
설마 이게 붐 아닐까?!
“드디어 온 건가?!”
“저번에 역병 지대 만들었을 때 사람들 반응이 뜨겁긴 했지!”
정확히 말하자면 ‘히익 저 미친놈들;;’이나 ‘진짜 가까이 다가가지 말아야겠다’ 같은 반응이었지만, 대장장이들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애들아! 더 열심히 일하자!”
“와!!!”
“그런데 이번에 던전 공략 대회 열리지 않아요?”
“열리지. 그런데?”
“그냥 열린다고요. 일하러 가죠!”
“그래! 일하자!”
대장장이들에게 대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 * *
“저거 또 도망친다!”
“아오, 진짜 말 더럽게 안 듣네!”
오크 아저씨들은 투덜거리며 도망치는 언데드들을 쫓아갔다.
태현의 말대로, 언데드 하나씩을 끌고 가는 건 정말 고생 그 자체였다.
눈만 돌리면 도망.
뒤만 보이면 공격!
‘사악한 언데드’란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사악했다.
“으으… 흑마법 마법서들 잔뜩 샀는데….”
“스킬 너무 안 오르는 거 아니냐?”
아저씨들은 투덜거리면서 흑마법 관련 마법서들을 꺼냈다.
경매장에서 파는 초급 흑마법 마법서들!
판온에서 상위 마법서들은 잘 팔지도 않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애초에 직접 퀘스트를 깨서 얻는 게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평소에 마법을 전혀 쓰지 않던 아저씨들에게 흑마법을 시작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해야 한다!
“<초급 실명 저주>! <초급 실명 저주>!”
“아니, 왜 나한테 쏘냐!”
“맞아도 안 다치잖아. 좀만 연습하자!”
양성규는 아저씨들을 데리고 가면서 불안해졌다.
올 때와 달리 속도가 확 느려진 지금. 공격을 받으면 일이 귀찮아졌다.
게다가 <최강지존무쌍> 길드는 은근히 적이 많았다. 오스턴 왕국에서 싸울 때 이를 갈던 건 길드 동맹만이 아니었다.
아까 있었던 일은 방송을 타고 바로 퍼져나갔을 거고….
‘태현이 녀석 나온 일이니까 대부분 다 봤겠지?’
양성규의 추측대로였다.
판온 제일가는 이슈메이커답게 관련 글들 대부분이 태현 분석글이었다.
-김태현vs<베이징 파이터즈>
-김태현을 상대하던 플레이어들의 정체는?!
-김태현,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다! 충격과 공포의 언데드 군대!
-싸움만 터지면 나타나서 바가지를 씌우는 정체불명의 상인들을 고발합니다!
-네크로맨서 경력 10년 차가 김태현의 언데드 군대를 분석해 봤다.
-<베이징 파이터즈>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
던전 공략 대회의 예선 던전이 열렸는데도 그걸 덮어버리는 수준!
정말 시작부터 화끈하게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양성규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이 자식들!”
“!”
앞의 언덕에서 <베이징 파이터즈>의 남은 선수들과 척살 부대들이 나타난 것이다.
“감히…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 우리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숫자가 좀 적은데….’
아까 깨진 덕분에 숫자가 너무 볼품없어 보였다. 20~30명 정도 되는 숫자.
그렇다면 다른 곳에 매복하고 있나?
“태현이 녀석이 시킨 일이다! 불만이 있으면 태현이한테 가서 따져라! 아직 저기 있으니까!”
“시끄럽다! 김태현은 나중에 상대하고, 일단 너희부터다!”
“너희 설마 태현이는 무서우니까 우리를….”
뜨끔!
정곡을 찔린 선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아저씨들이 분노했다.
“이런 XXX들이!”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어디서 우리를 얕봐!”
“야! 너 몇 살이야!”
“에이! 시끄럽다! 공격! 공격해!”
길게 말싸움해 봤자 자기들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선수가 신호를 보냈다.
퍽!
그리고 멀리서 날아온 화살에 맞고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