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22화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존댓말!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녕하다.”
“하… 하하….”
“그리고 고맙다.”
“…네? 뭐가 말입니까?”
“네 언데드는 내가 잘 쓸게.”
“잠깐… 잠깐?!”
-전원 공격!
태현이 손을 들고 외치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언데드 군대들이 함성을 지르며 덤비기 시작했다.
-죽음, 죽음, 죽음!
데스 나이트를 필두로 언데드 전사들이 덤벼드니, 척살 부대는 진형이 완전히 박살 났다.
“은화살! 은화살 꺼내!”
“사제들 활에 버프 좀 걸어줘!”
“그럴 시간 없어! 바로 턴 언데드 주문 날려!”
“너, 너무 많아서… 무리입니다!”
파파파팍!
-크아악… 아프다! 아프다!
그 와중에도 척살 부대는 삼삼오오 모여서 덤벼드는 언데드들을 쏘아냈지만 거기까지였다.
“흩어져서 싸워! 거리를 벌려!”
“놈들이 너무 많습니다! 옆에도 뒤에도 있어요!”
콰직!
“으악! 물렸어!”
-나도 있다!
“크아악!”
구울 전사들이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데스 나이트들은 검을 휘둘러 갑옷째로 부숴버리고….
한번 파고들자 플레이어들은 닥치는 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망쳐! 도망!”
-어디를 도망치려고! 크아악!
척살 부대는 대부분이 로그아웃 당했고 발 빠른 몇몇 조만 도망칠 수 있었다.
[플레이어를 쓰러뜨렸습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크게…]
‘아니. 먼저 선공 갈긴 놈들인데!’
태현은 불평했지만 그렇다고 오르지 않을 악명이 안 오르지는 않았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싸움으로 레벨 업을 했다는 것!
망령으로 변신했고, 수많은 언데드들을 불러일으킨 데다가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을 전부 쓸어버렸으니 레벨 업 할 만했다.
‘기껏 1 오른 게 서글프지만….’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따져서 뭘 하겠는가. 태현은 언데드들을 시켜 장비들을 줍게 했다.
[강력한 언데드들은 이런 잡일을 모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더 피를 보고 싶어 합니다. 계속 이런 명령을 내렸다가는 반항할…]
-산 자에게 죽음을 더….
“아. 시끄럽고. 줍기나 해.”
-저기에 살아 있는 심장이… 컥!
“일하라고. 인마. 일하라니까?”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휘둘러지는 공격!
화르륵!
사디크의 화염까지 써서 태우려고 하자 언데드들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언데드들이 공포에 질려서 더더욱 복종합니다.]
[당신의 지휘력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뒤에서 막 싸움을 끝낸 오크 아저씨들은 태현이 언데드들을 부리는 걸 보고 감탄했다.
“태현이 녀석 사람을 제대로 부릴 줄 아는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용케 저 인원을 다 데리고 다니네.”
뒤에서 일어난 오크 아저씨들의 습격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물량 작전!
그만한 언데드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능력이었다.
“진짜 대단하네. 나도 언데드 부리는 직업 해볼 거 그랬나?”
“에이, 네크로맨서처럼 허약하게 뒤에서 깔짝깔짝대는 직업이 뭐가 재밌다고. 남자는 역시 힘! 힘 아니겠어?”
“하긴 그것도 그래.”
그래도 오크 아저씨들의 부러운 눈빛은 사라지질 않았다.
저런 언데드 부대를 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언데드 한 마리 기르고 싶다!
길드 동맹과의 싸움에서 숫자로 깨진 아저씨들은 선망의 눈길로 태현의 언데드 부대를 쳐다보았다.
[데스 나이트가 <수많은 화살 공격을 받고 살아난 데스 나이트>로 진화합니다.]
[최고급 구울 전사가 <독이빨을 가진 구울 전사>로 진화합니다.]
[최하급 망령이 하급 망령으로 진화합니다.]
[……]
전투가 끝나자 공을 세운 언데드들이 진화하는 메시지창이 나왔다.
추가 개성을 달거나, 아니면 몬스터 자체가 진화하거나.
원래라면 안 그래도 강한 언데드 군대를 더 강하게 만드는 보상이었지만, 태현은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다.
‘저거 망령 상태 풀리면 대부분 역소환 될 텐데….’
태현의 능력으로는 이 언데드 군대의 대부분을 유지하지 못할 테니 그림의 떡이었다.
‘한둘만 챙겨봐?’
어떻게든 한둘 정도는 데리고 있을 수 있을 테니, 가장 쓸 만한 언데드를 골라서 데리고 다니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뭐가 좋을까….’
태현은 언데드 목록을 훑어보며 가장 쓸 만한 놈들을 찾아보았다.
[데스 나이트가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으로 진화합니다.]
‘이거다!’
태현은 이거다 싶었다. 데스 나이트 지휘관이라면 데스 나이트 몬스터가 진화한 형태.
무엇보다 본인이 언데드 몬스터를 이끄는 언데드 몬스터라는 게 좋았다.
네크로맨서 직업이 아닌 태현이 언제나 언데드를 소환해서 데리고 다니려면 페널티가 심했던 것이다.
“좋아. 너는 앞으로 나와라.”
-예, 주인님.
“너 빼고 나머지는….”
역소환하려던 태현은 수많은 언데드 군세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냥 역소환하면 너무 아까운데 방법이 없을까?
“아.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태현을 쳐다보는 언데드 전사들.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이다비, 커다란 솥 좀 가져다줄래?”
* * *
“흑흑아. 불이 약한 거 같은데.”
“흑흑아. 불이 약한 거 같다니까.”
“흑흑아. 자꾸 불이 약하면 널 연료로 태운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인님!
흑흑이가 황급히 말하며 솥의 불을 지폈다.
척살 부대가 있었던 자리에는 거대한 솥이 설치되고, 그 밑에는 흑흑이가 지핀 강력한 화염이 끓어올랐다.
“뭐 하려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태현이 저러는 걸 보니 요리를 하려는 것 같은데….
지금 요리할 게 있나?
“곧 알게 될 거야. 흠. 팔팔 잘 끓는군. 자, 너부터 들어가라.”
-뭐라고 했나?
“들어가라고.”
태현은 구울 전사를 잡아서 솥 안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비장의 몬스터 정수 만들기!
“…….”
-…….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과, 태현이 데리고 있던 언데드들은 지금 태현이 뭘 하려는지 깨닫고 경악했다.
일종의… 재활용!
어차피 역소환할 놈들이니, 통째로 몬스터 정수를 만들려는 것이다.
귀찮아진 태현은 각종 스킬을 사용해서 언데드들에게 강하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자. 최하급 망령 놈들은 다 들어가라!”
[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보너스를…]
[명성이 오릅니다.]
‘응? 왜 명성이 오르지?’
이해는 안 갔지만 일단 주니 잘 받았다.
[<영혼 착취> 스킬의 레벨이 오릅니다.]
-끄아아… 끄아아아….
-원망할 것….
태현은 먼저 주변을 완전히 뒤덮고 있던 망령들부터 처리했다.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언데드들을 퇴치하는 것으로 인해…]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그러고 보니 최하급 망령의 정수를 모아서 <망령의 정수>를 만들 수는 없으려나?’
최하급 망령의 정수:
최하급 망령이 가진 미약한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수입니다. 그렇지만 워낙 약한 정수라, 이걸 모은다고 망령의 정수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만들고 싶으면 <최고급 망령의 원혼>을 갖고 와라!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메시지창이었다.
“…….”
태현은 시무룩해져서 메시지창을 껐다.
이런 최하급 몬스터 정수 아이템은 쓸 곳이 애매했다. 태현 수준에서 버프용으로 쓰기도 그렇고….
“아. 네가 마시면 되겠군.”
태현은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을 불러서 줄줄이 나오는 하급 정수들을 건넸다.
어차피 쓰기 애매한 아이템이라면 하나 남길 언데드한테 다 투자하는 게 가장 좋았다.
-주인님. 이건 명예롭지 않….
데스 나이트는 기사 출신 언데드답게, 언데드들 중에서도 나름 명예를 따지는 별종 몬스터!
물론 태현 앞에서는 그런 게 의미가 없었다.
“네가 들어갈래?”
-주인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꿀꺽꿀꺽!
태현은 중저가, 아니, 중하급 언데드 몬스터들에게서 나오는 정수들은 모조리 데스 나이트 지휘관에게 마시게 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최고급 구울 전사의 정수를 만들었습니다.]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이 정수를 마셨습니다. 몬스터의 전체적인 스탯이 증가합니다.]
[계속해서 언데드의 정수를 마시게 한 것으로 인해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이 진화합니다.]
‘역시!’
계속해서 정수를 마시게 하면 어떤 변화가 있으리라고 예상했는데,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은 소환자의 MP를 더 이상 소모하지 않습니다.]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은 언데드 관련 버프를 더욱 강하게 받습니다.]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의 물리 공격력이 더욱더 강력해집니다.]
[강해진 <깃발을 든 데스 나이트 지휘관>은 더 이상 마계에 혼이 묶이지 않습니다. 몬스터에게 이름을 붙여줄 수 있습니다.]
‘오. 이런 효과가.’
태현은 데스 나이트를 쳐다보았다. 다른 데스 나이트보다 큰 덩치에, 더 질 좋은 갑옷. 위압적인 푸른 안광까지.
특징이라면….
“넌 골골이로 하자.”
-아니 그건 좀….
“흑흑이랑 잘 어울리겠군.”
흑흑이 위에 골골이를 태우고 싸우게 하면, 드래곤 라이더 데스 나이트 비스무리한 게 되겠지!
-주인님! 언데드잖습니까!
흑흑이가 기겁했다.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언데드면 안 되냐?
-저는 사디크 신의 마수잖습니까! 언데드는 당연히 싫습니다!
-아. 사디크면 뭐 언데드랑 친한 그런 거 아닌가? 나야 그런 줄 알았지.
-…….
사디크가 악신이어도 일단은 신이었다. 언데드와 사이가 좋을 이유가 없는 것!
-그래도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래. 앞으로는 기억할게.
-…그래도 태우실 거죠?
-응.
흑흑이도 이제 태현이 어떻게 행동할지 짐작하고 있었다.
“골골아.”
-…저는 그냥 데스 나이트가 좋은 것 같은데….
“넌 쟤 위에 타도 별문제 없지?”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정수를 먹은 탓에 견딜 수 있습니다. 정수에서 신성력이 느껴지더군요.
“그래. 잘됐… 응? 뭔 소리야?”
[<골골이>의 신성 저항력이 증가합니다.]
이런 메시지창을 봤을 때는 그냥 전체적인 능력이 향상하는 상태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듣고 보니 정수에 신성력이 들어간 탓에 저항력이 증가한 것 같았다.
태현은 고개를 돌려 솥을 쳐다보았다. 지금 솥의 화염은 흑흑이가 붙인 사디크의 화염이었다.
-제 잘못 아닙니다!
태현이 빤히 쳐다보자 일단 발뺌부터 하고 보는 흑흑이!
“아니. 널 탓하는 거 아니거든?”
계산 착오였지만 좋은 계산 착오였다. 언데드 몬스터한테 신성 저항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으니까.
“잘됐네. 골골아. 계속 마셔라!”
-…….
얼굴에는 뼈밖에 없는 골골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정말 싫다’는 표정이 느껴졌다.
결국 최하급 망령들을 포함해서 근처에 있던 중하급 언데드들은 모조리 싹이 말랐다.
정수가 되어 골골이의 뱃속으로!
‘시간이 없으니 빨리빨리 해야지.’
태현은 남은 고급 언데드들도 빨리 집어넣으려고 했다.
이러다가 망령 상태가 풀리면 언데드들이 역소환되거나 저항할 수 있었다.
“흠흠….”
“?”
“태현아.”
뒤를 돌아보니 오크 아저씨들이 멋쩍은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이건 뭔가 바라는 게 많은 얼굴!
태현은 그들이 뭘 원하나 생각했다. 답은 하나였다.
“스타우는 바로 보내겠습니다. 특급 배송으로 보내드리죠.”
태현도 원하는 바!
그렇지만 아저씨들이 원하는 건 다른 거였다.
“그… 저렇게 다 솥에 넣을 거면 우리한테 하나씩만 주면 안 되냐?”
“그래, 그래. 데려가서 잘 키울게.”
“…….”
태현이 어이없어하는 도중 아저씨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뭡니까?”
“난 좀 다른데… 저거 다 끓이면 나도 좀 먹을 수 있냐? 몸에 좋을 것 같은데.”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다른 아저씨들이 옆에서 구박했다.
이미 그들도 한 번씩 해본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니, 저게 몸에 좋을 리가 없다니까! 언데드잖아!”
“원래 뼈에 붙은 살이 진국이잖아! 저 언데드들도 그럴 수 있다고!”
“이런 미친놈이 보약 찾다가 훅 갈 소리를 하고 있네. 너 저번에도 뱀 잘못 먹어서 끙끙 앓아놓고 저런 소리를 하냐! 보약은 무엇보다 재료 확인이 중요하다고!”
추하게 싸우는 아저씨들은 본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구울 전사를 집어 던졌다.
풍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