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21화
이제는 살다 살다 김태현 놈의 아버지 길드에 발목을 잡혀야 하나!
도동수는 탄식했다.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니 여기는 김태현이 없었다.
김태현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순간 겁부터 먹고 시작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겁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건 기회!
얄미운 김태현 놈의 아버지와 그 길드를 전부 짓밟아버리면, 김태현에 대한 복수가 될 수 있었다.
‘아주 좋아!’
꿈틀-
도동수의 손가락이 굽혀지며 다시 무기를 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도망치지 말고 전부 다 짓밟아주마!
대회 때문에 저평가되는 일이 많기는 했지만, 도동수도 상위권 랭커 중 한 명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 쟁쟁한 한국 팀 멤버에 뽑히지 않았을 것!
“어. 저놈 보게. 눈빛 흉흉한 거 봐.”
“누구 하나 죽일 눈빛 같은데? 왜 저런 눈으로 우리를 보지? 우리가 뭘 했다고?”
“아마 태현이한테 쌓인 원한을 우리한테 풀려는 게 아닐까? 원래 종로에서 뺨 맞으면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게 전통이잖냐.”
“허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더 추해지려고 하다니. 이미 충분히 추한데.”
오크 아저씨들은 딱히 들으라고 떠드는 게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자기들끼리 떠드는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동수의 귀에 안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죽여 버린다!”
“앗. 저놈 화났나 봐.”
“네가 그런 소리를 해서 그렇지.”
도동수는 재빨리 로이를 제치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상대로 싸우면서 아무 계산도 없이 싸우지는 않았다.
도적 계열 영웅 직업, <그림자 춤꾼>은 이렇게 숨을 곳이 많은 숲에서 치고 빠지기 좋은 직업이었다.
은신 상태로 숨었다가 상대가 등을 보이면 공격, 그 후 다시 은신.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 상대는 계속해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 다 잡지는 못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한 대여섯 명만 로그아웃당해도 튈 테니까!’
도동수도 다 잡을 생각은 없었다. 흩어져서 도망치면 그럴 수도 없었고.
그냥 따끔한 교훈만 내려줄 생각!
-그림자의 교훈, 사악한 은신!
도동수의 몸이 그림자로 뒤덮이더니 허공으로 사라졌다.
오크 아저씨들은 그걸 보고 투덜거렸다.
“아. 도적 새끼들은 이래서 짜증 나. 맨날 은신이야, 은신.”
“이상하게 도적 고르는 애들은 다 한국 애들인 거 같지 않냐?”
“기분 탓이겠지. 그보다 로이는 저놈 못 잡고 놓친 거야? 역시 기가 허한….”
“지금 당장 찾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꺼냈지만 로이는 당황했다.
어떻게 찾아야 하지?
‘또 폭탄을 던져야 하나? 몇 개 남지도 않은 데다가 아까랑은 달리 놈도 멀리 떨어진 것 같은데….’
“안 보이나 보군!”
두리번거리는 로이의 등짝을 향해, 도동수는 호쾌하게 달려들었다.
순간 허공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도동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큭!”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의 검에 독이 발려 있습니다. <바요른 맹독>에 중독됩니다.]
[출혈 상태가…]
로이는 바로 반격하려고 했지만 도동수는 이미 예측하고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숙련된 움직임이었다.
“역시 안 보이나 보군. 하나 알려주지. 은신 스킬 시간을 올려주는 <그림자의 교훈>. 그리고 사기적인 은신 스킬 <사악한 은신>. 이 두 가지를 합치면 너처럼 은신 대비책을 안 세운 놈은 갖고 놀 수 있다. 원래 너 같은 놈한테는 안 쓰는 귀한 스킬이지만 써주지!”
한 번 쓰면 쿨타임이 너무 길어서 아껴두고 있었는데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도동수는 대가를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었다.
“큭!”
물론 로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까처럼 있을 법한 곳에 폭탄을 던져댔다.
그렇지만 아까와는 달리 움직일 수 있는 도동수는 폭탄이 던져지는 순간 바로바로 피해댔다.
퍽, 퍽!
그럴 때마다 로이는 나타나서 한 대씩 정확하게 맞았다.
포션으로 회복하고 있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
계속 이렇게 버틸 수는 없었다.
‘크윽…!’
‘저 인간들은 안 도와주나?’
도동수는 로이를 농락하면서 힐끗 시선을 돌렸다.
오크 아저씨들이 덤비면 피하고 숨으려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냥 가만히들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놀러 온 것처럼!
“저 녀석 역시 기가 허한 게 맞군. 도와줘야겠다. 내가 그러니까 한약을 먹으라고 했는데.”
“맞아, 맞아.”
말과 함께 오크 아저씨들은 다들 주섬주섬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화려하게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포션 병이 뭔가 딱 봐도 비싸고 좋아 보였다.
‘위험!’
도동수는 급하게 달려들어서 공격했지만 워낙 아저씨들의 숫자가 많았다. 기껏해야 두 명만 방해했을 뿐이었다.
“이 자식이!”
“꽤 비싼 건데! 네가 물어줄 거냐!”
“썅!”
도동수는 욕설과 함께 다시 은신 상태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묵직한 오크식 망치 공격이 들어왔다.
몸이 크게 흔들리고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의 충격!
“커헉!”
“이 자식이 어디 숨으려고. 너 인마, 그렇게 도둑질 좋아하면 나중에 도둑놈 된다!”
[<오크 포효 강타>에 맞았습니다. 한동안 움직일 수…]
‘위험!’
-춤꾼의 도ㅈ….
-사냥꾼의 시야, 은신 방지 저주, 사냥꾼의 시야, 은신 방지 저주, 사냥꾼의 시야, 은신 방지 저주….
“?!?!?”
도동수는 주변에서 들리는 스킬 소리에 기겁했다.
오크 아저씨들이 주문서 스크롤을 하나씩 꺼내서 찢고 있었다.
저 비싼 아이템들을 무슨 과자 봉지 까듯이 하나씩 까는 그들!
[은신 방지 저주로 인해 은신 스킬 성공률이 하락합니다.]
[은신 방지 저주로 인해…]
[사냥꾼의 시야로 인해 상대방의 시야가 향상됩니다.]
[사냥꾼의 시야로 인해…]
주문서 스크롤을 각각 하나씩 뜯는 게 아니라 무슨 몇 개를 꺼내 계속해서 뜯고 있으니 그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다.
도동수는 어떻게 막으려고 해봤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경험 많은 그도 처음 당해보는 기막힌 상황!
이 많은 인원들을 상대로 어떻게 한단 말인가.
로이는 뒤에서 큭큭대며 웃었다.
“이 자식… 너도 한번 당해봐라….”
“……!”
그러는 사이 준비가 끝난 오크 아저씨들이 우르르 무기를 들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야! 몰아서 패!”
“그물 꺼내! 저놈 못 튀게 해라!”
* * *
싸움은 끝났다. 매우 평범한 싸움이었다.
화려한 컨트롤이고 뭐고 없이 그냥 포위해서 두들겨 패기!
거기에 도동수는 패배했다. 그것도 굴욕적으로.
그물 아이템에 잡혀서 묶인 다음 두들겨 맞다니. 초보자 시절에도 겪어본 적 없는 굴욕이었다.
은신이 막히고 움직임도 막혔지만 그래도 도동수는 끝까지 저항했다.
-그림자 맹독의 칼춤!
[상대가 <연금술사가 만든 상급 불사의 비약>을 먹고 있습니다. 공격이 대부분 흡수됩니다.]
“야 이 치사하고 비열한 놈들아!”
평소라면 이런 소리를 안 하는 도동수도 입을 열게 만드는 현질!
대체 한 번 싸울 때 아이템을 얼마나 쓰는 거야!
“너도 써 인마!”
“너도 사서 쓰려는 노력을 해!”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을 안 해!”
최후의 발악도 막히고, 두들겨 맞던 도동수는 결국 HP가 0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김태현도 아닌 것들한테! 으헉!”
“특이한 유언인데?”
“얘 때문에 시간 낭비했다. 빨리 가자. 태현이가 스타우 안 내줄라.”
오크 아저씨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움직였다.
로이는 그 모습에 새삼 감탄했다.
컨트롤이야 평범하고 겉모습은 이상했지만 이 아저씨들만큼 무서운 파티도 찾기 드물었다.
* * *
“김태현 나온다!”
-포션 쓸까요?
-대기해. 놈이 포션만 낭비하게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예!
김태현 척살 부대는 긴장한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수를 쓸 것이냐?
폭탄이라면 버틴다!
-크르륵….
“응?”
-산 자에게 죽음을… 산 자에게 죽음을!
“으… 응?”
태현의 뒤에서 뭔가 엄청나게 거대하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마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산 자에게 죽음을!!
파아아아앗!
엄청난 규모로 뭉쳐 있던 언데드 망령들!
나중에 플레이어들에게 <여섯 봉우리 산맥 전투>라고 불리는 이 싸움은 언데드 망령 군세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뭐… 뭐야!”
“어, 어떻게 할까요?”
-모두 진정해라!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저렇게 많은 언데드들을 다 부릴 수는 없어. 그중 대부분은 약한 언데드들일 거다. 겁먹지 말고 진형을 유지해! 그리고 발사해라!
척척척-
쑤닝의 말에 척살 부대는 재빨리 활을 들어 대규모 망령 군세를 겨냥했다.
그리고 발사했다.
파파파파파팟!
전문적으로 태현을 상대하기 위해 키운 보람이 있었다. 부대의 궁술 솜씨는 제법이었다.
[<최하급 언데드 망령>이 화살에 쓰러집니다.]
[<최하급 언데드 망령>이 화살에…]
“와아아아!”
“놈들이 다가오지도 못한다!”
태현의 군세 숫자도 어마어마했지만, 척살 부대 인원도 인원이었다.
그 인원이 전부 활을 들고 닥치는 대로 쏘아 대니 최하급 망령은 붙지도 못하고 녹아내렸다.
“계속, 계속 쏴!”
“잠깐. 적당히 쏴라! 스킬은 아껴!”
조장들이 당황할 정도로 척살 부대는 아낌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그러는 사이 던전 입구에서는 무시무시한 언데드 부대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르륵, 크르륵….
-내 검이 피를 원한다!
데스 나이트, 썩은 살덩이 골렘, 한계까지 강화된 구울 전사들….
언데드 몬스터로 변신한 태현이 직접 끌고 나온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대부분이 궁수인 척살 부대를 상대로는 붙기만 하면 학살이 가능!
상대방의 원거리 공격도 처음에 보낸 최하급 언데드 부대로 막아내고 신경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됐군.’
태현은 속으로 확신했다. 이 싸움은 이겼다!
상대는 뒤집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선수들! 전부 들어가! 저거 못 막으면 터진다!”
쑤닝의 다급한 말에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상황은 이해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팬들이 보는 상황에서 활약까지 가능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가자!”
“간… 컥!”
“어?”
-와아아아아아아아!
뒤에서 들려오는 귀를 찢는 듯한 오크 전투 함성!
[<타오르는 오크 전투 함성>을 들었습니다. 전체 능력치가 조금 하락합니다.]
“어떤 미친놈이 여기를 공격… 저 새끼들은 왜 여기 있어!?”
쑤닝은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오크 떼들을 보며 경악했다.
쑤닝이 <최강지존무쌍>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한동안 오스턴 왕국에서 계속 길드 동맹을 짜증 나게 만들었던 그 길드 아닌가!
‘우르크 지역으로 꺼진 줄 알았는데? 아니, 이 자식들 설마 내 정체를 알아챘나?’
쑤닝 입장에서는 복수를 위해 왔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오크 아저씨들은 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몰랐다.
“쳐라! 쳐라!”
“저놈들 목만 따면 스타우다!”
거칠게 외치며 들이박는 오크 아저씨들! 그 기세에 선수들이 있던 곳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지루하게 기다리던 플레이어들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드디어 싸움 났다!”
“그래! 이래야 김태현이지! 이런 걸 기다리고 있었어!”
“장하다 김태현! <베이징 파이터즈>를 네 손으로 멸망시켜버리렴!”
그렇지만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애가 탈 뿐이었다.
“안 돼! 일어나요! 지면 안 돼!”
“근데 스타우가 뭐지?”
“상인가?”
-광포한 돌격, 늑대의 분노, 강철 발톱 갈기!
늑대 위에 탄 오크 아저씨들은 늑대 스킬들까지 사용해가며 돌격해댔다.
완전히 허를 찔린 선수들은 완전히 두들겨 맞으며 녹아내렸다.
“이익!”
선수 한 명은 오크 아저씨 한 명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지만….
“도와줘라!”
“오케이! 지금 간다!”
오크 아저씨들은 밀린다 싶으면 아이템을 쓰고 친구들을 불러왔다.
네다섯이 한 명을 밟으려고 덤비면 아무리 선수라도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젠장, 튀어!”
“일단 물러서!”
선수들은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쑤닝도 그 사이에 껴서 도망쳤다.
‘두고 보자!’
-쑤닝 님! 김태현이 이끌고 앞에 오는데 어떻게….
조장의 귓속말은 도중에 끊겼다.
언데드로 변한 태현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안녕?”
“안,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