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20화
태현이 던전 안에서 <고대 신의 망령>으로 변신하고 강력한 언데드 군대를 모으는 동안,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은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들어가 보면 안 되냐?”
“맞아, 쑤닝. 잠깐 확인만 하고 나올게.”
쑤닝은 속으로 탄식했다.
이런 X대가리들이랑 같이 일을 해야 한다니!
“내가 말했을 텐데. 저기 안에서는 김태현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지금 너희들이 들어가는 건 저놈이 노리는 거란 말이다! 왜 저놈이 안 나오고 있겠어?”
“…….”
“그보다 내가 너희는 그냥 꺼져도 된다고 했잖아! 왜 여기서 날 귀찮게 하는 거지?”
“그게 지금….”
선수들은 우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 그들도 ‘와! 김태현을 다른 놈이 맡아준다니! 너무너무 신나는걸?’ 하고 떠나고 싶었다.
지금 새로 대회 던전도 나왔겠다, 거기 가고 싶은 것!
그렇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뒤에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팬들이 있는데 이들만 두고 사라졌다가는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두려웠다.
캐릭터 손해보다 두려운 게 현실의 팬들을 잃는 것!
“창은?”
“로그아웃 당한 게 확실한 것 같아.”
“쑤닝 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창을 그렇게 쏘다니… 그래도 우리 선수인데….”
“너무하다니까.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야.”
“마치 김태현 같아.”
꿈틀-
쑤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른 놈은 그냥 넘어가더라도, 방금 그보고 김태현 같다고 한 놈은 얼굴을 기억해뒀다.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모욕!
‘넌 죽었어!’
* * *
와작와작-
“팝콘 다 먹었다.”
“또 사와. 아직 싸우려면 먼 거 같아.”
“언제 싸우는 거야? 아까 한 번 터지더니 그냥 안 싸우네.”
“서로 먼저 공격하는 쪽이 불리하니까 버티는 거겠지.”
“그래도 지루한데….”
구경꾼+팬으로 구성된 플레이어들은 지치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신이 난 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팝콘 팝니다! 2실버! 2실버!”
“어? 가격이 오르지 않았어요?”
“꼬우면 안 드시면 됩니다! 3실버! 3실버!”
“?!?!”
좀 있으면 이 장사도 못 한다는 걸 알고 있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한 몫 당기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아주 희미하게 벌꿀 맛이 느껴지는 소금 팝콘>이나 <물을 많이 부어서 양을 늘린 청량 음료>가 주력 메뉴!
팝콘만 파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짭짤한 간식들은 모두 만들어서 팔았다.
파워 워리어 길드 쪽에서는 아예 <매점 부대>라고 따로 별명이 붙었다.
팝콘 수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서 팝콘을 파는 그들!
매점 부대 소속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전부 요리 스킬과 달리기 스킬, 짐꾼 관련 스킬을 갖고 있었다.
‘저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지?’
도동수는 주변에 우르르 몰린 플레이어들 사이에 끼어서 슬쩍 둘러보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때 자기 정체를 숨기는 건 쉬웠다.
태현처럼 사기적인 아이템이 없어도, 얼굴까지 가려주는 망토나 후드, 복면만 덮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플레이어들의 복장이 워낙 다양했던 것이다.
‘돌아갈까? 아니, 괜히 돌아갔다가… 아직 김태현도 안 죽었고….’
도동수를 포함해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에게 귓속말이 치열하게 날아오고 있었지만, 도동수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있었다.
나중에 따지면 오해가 있었다고 끝까지 우길 생각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선수들과는 사이가 안 좋아지겠지만, 상관없었다. 프로는 실력으로 말하는 것!
‘김태현과 싸우는 것보단 낫지. 그보다 진짜 많이도 데려왔네.’
도동수는 입맛을 다셨다. 정체불명의 파티가 신경 쓰였다.
뭔가 김태현을 상대하기 위해 벼르고 벼른 것 같은데….
설마 오늘 김태현이 잡힌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만약 그랬다가는 도동수는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런 기회를 놓치다니!
“창 선수는 어디 갔어? 나 창 선수 보려고 왔는데.”
“아까 날아가던 게 창 선수야.”
“뭐?!”
“도동수는 어디 있지? 난 도동수 팬인데!”
“아까 죽은 거 아냐? 던전 습격할 때.”
“그런 거 같은데….”
‘좀 더 거리를 벌려야겠군.’
팬들의 대화에 찔린 도동수는 슬슬 거리를 벌린 다음, 산을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타다닥-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산을 타고 내려가자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고 시끄럽던 게 거짓말 같았다.
도동수는 한숨을 내쉬며 용케 잘 빠져나왔다고 생각….
“!”
-아우우우우~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
늑대 같은 잡몹은 눈을 감고도 처리할 수 있었다. 귀찮아하면서 무기를 꺼내던 도동수는 순간 움찔했다.
‘잠깐. 여기 늑대 없었는데?’
이 산에는 늑대 몬스터가 없었던 걸로 기억했다. 도동수는 의아해했다.
“달려라, 이놈들아!”
“더 빨리, 더 빨리!”
도동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 아래에서 거대한 늑대를 탄 오크 플레이어 수십이 몰려오고 있었다.
‘뭐야?!’
딱 봐도 멀쩡한 겉모습은 아니었다.
넓적하고 둥그런 녹색 얼굴에는 강렬하고 촌스러운 복면을, 장비는 정말 통일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세트였다.
그렇지만 도동수는 장비 중 몇 개가 정말 구하기 힘든 귀한 장비라는 걸 깨달았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정체가 뭐지? 산적인가? 설마 여기서 산적질을 한다고?’
저 위에 실력 있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많은데 산적질을 한다니.
정신이 나갔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일단 빠져야겠다.’
다행히 도동수는 도적 직업.
이런 상황에서 굳이 싸울 필요 없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들 가장 앞에 있는 건 로이였다.
그리고 로이는 엄청난 압박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로이야.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난 널 믿어.”
“네….”
“로이야. 저번에 유배지에 끌려갔다 왔다면서? 왜 그런 실수를 하고 그래.”
“…….”
“내 생각엔 네 기가 허해서 그런 거 같다. 이따가 한약 좀 달여 줄 테니까 그거 먹자.”
“그거 좋은 생각인데?”
오크 아저씨들은 서로 동의했다. 로이는 기겁해서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 괜찮거든요!”
“지금 내 성의를 무시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로이는 질색했다.
이번 퀘스트에서 정말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하면, 그 끔찍한 괴식 요리로 만든 탕을 꾸준히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기가 허하기는 무슨!
‘반드시 공을 세우고 말겠어!’
-적의 감지! 예민한 오감! 바람의 속삭임!
가장 앞에서 달려가던 로이는 도동수가 은신을 사용해서 허공에서 사라지는 걸 발견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음. 저 플레이어는 위쪽도 아니고 옆으로 도망치는 걸 보니, 전혀 상관없는 플레이어가 우리를 보고 괜히 겁먹어서 도망치는 거군’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이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저놈은 첩자가 분명합니다! 제가 잡아오겠습니다!”
“뭐? 뭐가 있다고? 아무것도 없는데?”
“로이야! 네 기가 허해서 헛것을 본 것….”
“아닙니다! 진짜 있습니다!”
‘저 새끼 뭐야?!’
안심하고 도망치려던 도동수는 갑자기 늑대를 타고 미친듯이 속력을 내는 로이를 보고 기겁했다.
알아챈 것도 알아챈 거지만 저렇게 목숨을 걸고 쫓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설마 그의 정체를 알아챘나?
-소음 감소, 깃털 같은 발걸음, 후각 교란….
도동수는 닥치는 대로 은신 관련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서 숨었다.
[<소음 감소>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은신에 추가 버프가…]
이 정도면 절대 찾지 못한다!
도동수의 생각대로, 로이는 도동수를 찾아내지 못했다.
-은신 감지, 은신 감지!
로이는 이를 질끈 악물었다. 스킬을 써도 숨은 놈이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생각보다 스킬 레벨이 높은 게 분명했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움직이면 은신 효과가 약해지니까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버티고 있을 텐데….’
궁지에 몰린 로이의 머리는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르게 굴러갔다.
잡아야 한다!
로이가 머뭇거리자 뒤에서 오크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이야! 네가 잘못 본 것 같다니까?”
“그냥 와! 내가 한약 한 첩 해줄게!”
“…….”
꿀꺽-
로이는 각오한 눈으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도동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뭐야? 뭘 꺼낸 거야?’
치이익-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섬뜩한 소리!
콰쾅!
‘폭탄이다!’
도동수는 경악했다. 저런 미친놈 같으니!
콰쾅! 콰쾅! 콰콰쾅!
로이는 닥치는 대로 폭탄을 집어 던졌다. 근처에 숨을 곳 같아 보이면 일단 던지고 봤다.
[폭탄이 폭발합니다!]
[폭탄이 오작동했습니다! 당신에게 데미지를 입힙니다!]
[폭탄이 불발했습니다!]
[폭탄이 폭발합니다!]
[폭탄의 폭발이 불안정합니다. 폭발 범위가 달라집니다!]
[장비의 내구도가…]
“큭!”
몇 발은 로이한테도 데미지를 입혔지만, 로이는 참고 견뎌냈다.
어차피 뒤에는 길드원들이 있으니 위험해지면 도와주리라.
지금 중요한 건 숨은 첩자를 찾아내서 그의 기가 허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것!
도동수는 결국 견디다 못해 은신을 풀고 나타나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미친놈아! 나한테 뭔 원한 있냐! 이게 뭐하는 짓이야!”
“찾았다! 찾았다고! 아저씨들! 보셨죠!? 제 기는 안 허합니다! 전 멀쩡하다고요!”
뒤에서 탄식이 들려왔다.
“정말 있었잖아?”
“기가 허한 줄 알았는데….”
“근데 쟤가 누군데 이 난리를 친 거냐?”
오크 아저씨들의 말에 도동수는 당황했다.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 짓을 한 거란 말인가?
그러나 로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첩자입니다!”
움찔!
‘들켰나?!’
당황한 도동수와 달리, 오크 아저씨들은 아직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어… 왜 첩자인 건데? 쟤가 뭐 수상한 짓이라도 했냐?”
너무 당연한 질문!
오크 아저씨들은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 혹시 생사람 잡는 거 아니지?”
“아… 아니에요!”
로이는 말을 더듬었다. 생각해 보니 증거가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면 분명히 한약이다!
이렇게 된 이상 로이는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했다.
“저놈! 제가 저놈 얼굴을 알아요! 저놈 분명히 본 적이 있어요!”
“?!?”
도동수는 진짜로 놀랐다. 복면 쓰고 있는데 뭘 어떻게 뚫어본 거야?
오크 아저씨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의아해했다.
“잠깐만, 로이야. 저놈 얼굴 안 보이는….”
“죽어라 첩자 놈!!”
더 이상 말해봤자 불리하다는 걸 깨달은 로이는 도동수에게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변명하기 전에 죽여서 증거를 없애버리겠다!
김태산에게 붙잡히기 전에는 로이는 나름 PVP에서 이름 날리던 랭커였다.
최상위권 랭커는 아니었어도 지금도 자신감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카캉!
“읏?!”
“이 자식. 뭘 잘못 먹고 이리 나대?!”
도동수는 분노해서 마주보고 덤벼들었다. 잘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웬 미친놈한테 붙잡히다니!
“죽어라! 첩자!”
“내가 누군지 알고 덤비는 거냐! 이 자식!”
샥-
로이는 도동수의 급소가 아닌, 도동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복면을 노렸다.
일단 복면만 벗기고 난 다음에는 모르는 얼굴이어도 아는 얼굴이라고 우길 작정!
[<일회용 가죽 복면> 장비가 파괴됩니다.]
로이의 공격에 복면이 파괴되었다. 도동수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에 오크 아저씨들은 다들 놀랐다.
“!”
“저놈은….”
“후. XX….”
도동수는 욕설을 내뱉으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상대가 그의 정체를 알아챘다면 놔주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였지?”
“누구냐?”
“아는 사람?”
“도동수!! 도동수!!! 이 새끼들아!!!”
울컥한 도동수는 저도 모르게 평정심을 잃고 외쳤다.
그제야 오크 아저씨들은 이마를 탁 치며 깨달은 얼굴로 말했다.
“아! 그 태현이한테 당한 놈!”
“접은 줄 알았는데!”
“이야! 반갑다! 아직 안 접었구나. 그래, 그래. 아직 젊은 놈이 그런 걸로 접으면 안 돼! 힘내라! 네가 못한 게 아니라 태현이가 너무 잘한 거야!”
“…….”
이쯤 되자 도동수도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 김태현의 아버지가 이끄는 ‘그’ 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