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17화
쑤닝이 분노하자 다른 선수들은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일단은 도와주러 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쑤닝이 이렇게 오니까 좋네!”
“맞아, 맞아!”
“여기 쑤닝 네 팬도 있어!”
“쑤닝 님 팬이었어요!”
아무리 봐도 지금 팬이 된 것 같은 얄팍함!
“됐어, 이 자식들아. 같잖은 수작 부리지 말고 내 말이나 잘 들어. 내 작전을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
쑤닝이 노려보자 선수들은 뱀 앞의 쥐처럼 기가 죽었다.
요즘 길드 동맹이 엄청나게 잘나간다고 해도, 쑤닝은 워낙 호구처럼 당한 이미지가 있어서 살짝 우습게 보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위압감이 대단했다.
‘이 자식 언제 이렇게 변한 거지?’
예전에 쑤닝을 한 번 본 적 있었던 선수는 놀랐다. 그때도 대형 길드의 길마긴 했지만, 이 정도 압박은 없었는데….
‘괄목상대란 게 진짜 있긴 있구나!’
못 본 사이 이렇게 사람이 바뀔 줄이야!
* * *
“수혁아. 쓸어버려.”
“예!”
-너희 둘도 같이 도와줘라!
-알겠다. 주인이여.
-주인님. 저 마법사 옆은 좀 무서운데….
흑흑이는 정수혁을 보며 질색했다. 마법의 달인인 드래곤답게, 흑흑이는 정수혁이 어떤 마법사인지 알고 있었다.
재수 없으면 아군도 공격하는 마법사!
-시꺼.
-흑흑….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용용이와 흑흑이를 옆에 붙였다.
지금 케인, 이다비는 잡몹과 싸우기 힘들었고, 최상윤, 태현은 광역기가 적은 폭딜형 딜러였다.
그렇기에 잡몹 처리는 정수혁과 용들이 해줘야 했다.
꿀꺽-
정수혁은 긴장한 얼굴로 지팡이를 쥐었다. 태현이 기대하는 만큼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침착하게 해라. 어차피 대회도 아니니까 이 전략이 통하나 보는 거야. 안 되면 다른 방법 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자상한 태현의 말에 정수혁은 용기가 다시 솟구치는 걸 느꼈다.
뒤에서 짐을 짊어지고 있던 케인은 투덜거렸다.
“저 자식은 나 빼고는 다 친절한 것 같아.”
“네가 사서 매를 버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수혁의 마법 연사는 통로에 나타난 드워프 전사들을 빠르게 쓸어버렸다.
카흘라단의 번개 자체도 강력했지만 거기에 따르는 <아키서스의 마법> 패시브 스킬과, 뒤에서 두 드래곤이 마법 지원을 해주는 것 덕분에 더더욱 강력한 위력이 나왔다.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마력 증폭의 안개!
-사디크의 화염 분출!
“?”
-?
-??
용용이는 정수혁의 마법에 맞춰서 보조를 해주고 있었는데, 혼자 공격 마법을 쓰는 흑흑이!
정수혁은 흑흑이한테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좀 아니지 않나?
-공… 공격 마법 쓸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흑흑이는 태현의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말했다.
-잘하자. 흑흑아.
-네….
흑흑이는 시무룩해져서 날개를 내렸다. 공격 마법 위주인 건 사디크 탓이지 그의 탓이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괜찮은데?’
그 이후로 일행은 빠르게 2층을 돌파했다.
던전의 일반 몬스터들은 정수혁과 두 신수와 마수의 힘으로 빠르게 쓸어버리고, 보스 몬스터들은 공성 장비를 내리고 빠르게 딜링.
나름 정석적인 방법이 잡혀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얘네들은 안 오나?’
슬슬 1층 입구에서 뭔 소리라도 들려야 하는데, 아무도 안 오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읍읍읍!(날 두고 가지 마라, 김태현! 정정당당하게 다시 싸우자!)”
멀리서 희미하게 읍읍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함정이랑 같이 죽으면 그걸로 좋았고, 안 죽으면 데리고서 다시 써먹을 생각이었다.
연습까지 보여줄 생각은 없다!
[안녕하십니까. 판온 플레이어 여러분. 던전 공략 대회 관련으로 공지 드립니다.]
“!”
“!!”
보기 드문, 판온 운영진 측의 메시지!
저번 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부터는 운영진이 직접 주최하는 대회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자세한 사항이 공지로 나오나?’
판온 던전 공략 대회는 대략적인 대회 콘셉트와 일정만 나왔을 뿐, 자세한 사항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던전 공략 대회의 본선 참가 팀은 총 32개 팀이며, 예선 종료 날짜까지 정해진 던전을 클리어한 순위로 결정됩니다.]
한 마디로 던전을 깬 기록 순위가 32위까지여야 참가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프로 리그 대회와 달리, 아마추어 팀도 얼마든지 참가 가능한 형식이었다.
‘프로 게임단들이 눈물 좀 흘리겠는데.’
이런 대회에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연습에 한계가 있는 아마추어 팀과 달리 밥 먹고 게임만 하는 프로 팀이 훨씬 더 유리하겠지만….
[중앙 대륙의 각 도시 근처마다 <대회 예선용 전설 던전> 입구가 생겨납니다. 이 던전은 입장 시 다른 파티와 겹치지 않으며,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던전 종류는 다양하게 있으며 본선 대회의 던전도 이 중 결정됩니다.]
“어?”
“응?”
열심히 사냥하던 태현 일행은 메시지창을 보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던전을 무제한으로 제공해 주면….
굳이 이렇게 남의 던전을 뺏어서 연습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그냥 저기 <대회 예선용 전설 던전>에 들어가서 전략을 준비하면 되는 것!
“…….”
“…뭐, 뭐 이것도 나름 연습이 되었으니까요… 실제로 지금 좋은 방법이 나왔잖아요!”
“…….”
이다비만 어색한 침묵을 풀기 위해 애쓸 뿐!
그 뒤로 나온 대회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기본적으로 5인 던전.
-제한 시간은 총 1시간. 두 팀이 동시에 들어가(던전 안에서는 만나지 않는다) 1초라도 빠르게 클리어한 팀이 승리.
-본선에 진출한 32개 팀은 토너먼트식.
-던전 내에서는 죽어도 다시 부활. 다만 죽을 때마다 시간에 페널티가 붙는다.
-던전 클리어 조건은 던전 내 모든 보스 몬스터 사냥. 다만 일반 몬스터도 일정 점수 이상 잡아야 한다.
-착용 가능한 장비는 제한이 없지만 던전 내에서는 레벨 조정이 있다. 소모품이나 기타 아이템은 가방에 갖고 들어갈 수 있는 만큼만 가능.
대부분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클리어 조건이 보스 몬스터만 잡는 게 아니라, 일반 몬스터도 몇 마리 이상 잡아야 한다는 점 정도?
레벨 조정은 있을 법했다.
안 그러면 레벨이 깡패니 순위권 팀들은 모조리 랭커 순위로 도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차피 장비는 그대로 착용 가능하니….’
작년 투기장 대회처럼 빡세게 장비까지 다 벗고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일단 확실한 건….
“지금 당장 가봐야겠다.”
<대회 예선용 전설 던전>에서 기록을 재고 예선을 통과하고, 또 여기 던전들 중에서 본선용 던전이 골라질 테니….
지금 다른 던전에서 연습하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모조리 다 찾아올 게 분명했다.
‘대회가 생각보다 훨씬 더 팽팽하겠어.’
즉석에서 던전을 주는 게 아닌, 대회 전까지 던전을 미리 알려주고 연습을 할 시간을 주는 형식!
정석적으로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물론이고 온갖 방법이 다 나올 게 분명했다.
* * *
“앗! 저기서 누군가 나온다!”
밖에서 진형을 짜고 대기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태현이 나오자 척살대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어이!”
“?”
“전설 던전을 그냥 제공해 준대서 이만 가보려고 하는데, 우리 서로 화해할까?”
“…….”
그러니까… 지금 이 난리를 피운 게, 남의 던전에서 연습 좀 해보려고 한 거였단 말인가?
“죽어!!!!”
“개XXX!!!!”
“음. 거절을 독특하게 하는군.”
태현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일행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뭐래요?”
“싫대.”
“에이. 쪼잔하긴.”
“…….”
이다비는 그 사이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정보를 수집했다. 들려오는 정보에 이다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태현 님.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이 통일된 장비를 입고 질서 있게 포위망을 짜고 있다는 소식!
“별거 아니겠죠?”
“아니. 평소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원래라면 ‘겁 없는 길드 몇 개 왔나 보다’ 했겠지만, 태현은 뭔가 찜찜함을 느꼈다.
길드가 장비 맞춰 입고 포위망 잘 짜는 건 그렇게 보기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얘네 입고 있는 장비 재료가 특이해 보이는데, 뭐지?”
“고무 재료 같은데요… 앗.”
“폭발 저항 옵션 달린 거지. 얘네는 바로 달려온 놈들이 아니군.”
태현은 바로 알아차렸다.
어디서 급하게 달려온 길드원들이 아닌, 노골적으로 태현을 노리는 놈들!
‘뭐지? 나 노리려고 플레이어들이라도 전문적으로 키운 건가? 에이, 설마 그럴 놈이 있을까…? …있을지도?’
생각하던 태현은 있을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일행에게 추측을 들려주고 물어봤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충분히 가능성 있지!”
“나도 그랬겠다!”
“저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선배님!”
“고맙다. 이것들아.”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별로 레벨은 안 높아 보이지만… 그래서 더 찜찜하군.’
평소처럼 레벨 믿고 덤비는 플레이어들은 무섭지 않았다.
저렇게 레벨이 비교적 안 높은데도 각오를 한 놈들이 더 무서웠다.
뭔가 계산이 서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행히 상대도 안으로 들어왔다가는 바로 죽을 거라는 걸 알 테니 들어오지는 못하고 포위만 하고 있었다.
‘계속 시간을 끌어도 되긴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좀 아깝군.’
<베이징 파이터즈>도 도시 근처에 열린 전설 던전 깨러 갈 텐데, 태현 일행만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정답은 돌파!
어떤 식으로 돌파하느냐가 문제였다.
상대는 태현의 전략을 알고 거기에 맞춰서 준비했으니, 평소 안 쓰던 전략으로….
-흠흠. 태현아.
-?
진지하게 머리를 굴리던 태현에게 귓속말이 왔다. 김태산의 친구인, 오크 아저씨들이었다.
-뭡니까? 지금 바쁜데요.
-그… 있잖냐. 너희 영지에 있는… 그 뛰어난 NPC.
-?
태현은 순간 의아해했다.
영지에 뛰어난 NPC가 있었나?
-아. 갈락파드요?
갈락파드는 약간 맛이 갔지만 그래도 뛰어난 NPC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그 사람 말고.
-맥크레니 상단 NPC들? 용병들?
-아니. 걔네도 말고.
-아. 바쁘니까 빨리 본론만 말해요!
‘성질은 아버지 그대로 닮아 가지고….’
아저씨들은 속으로 투덜댔지만 참았다.
지금 갑은 태현이었으니까!
-그, 요리 잘하는 친구 있잖냐.
-?????
-아, 모르는 척하지 말고! 그 고블린 중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라는 스타우라는 친구!
-어… 음… 뭐 뛰어나긴 한데….
-그래! 그 친구를 혹시 영지에 빌려줄 수 없을까?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잘 아는 아저씨들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영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뛰어난 NPC 한 명은 보물 그 자체였다.
그 NPC 때문에 영지 발전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었고, 그 NPC 한 명을 보려고 찾아오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걔를 왜요?
-그래. 그런 뛰어난 NPC를 빌려주기 싫은 네 마음도 이해한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태현은 정말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했던 것!
-하지만 태현아! 우리도 그만큼 진지하단다!
-…….
태현은 그냥 포기했다. 어차피 스타우로 다른 요리사들 견제하는 것도 실패한 데다가 이미 괴식 요리 배우는 플레이어들도 생겨났으니…
스타우가 어디 갔다 와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그냥 값이나 톡톡히 뜯어내야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아쉬울 때는 착실하게 뜯어내자!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부탁 들어주시면 빌려드리죠.
-진짜냐!?
-정말로?!
-고맙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마!
-여기 우르크에서 괴식 요리 좋은 거 만들어지면 내가 팩으로 보내주마!
-…아, 네.
태현은 선물이 날아오면 케인에게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몸에는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