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15화
창은 태현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를 케인처럼 쓴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앗, 설마!’
“읍읍읍…(김태현, 아무리 내 능력이 탐이 난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제대로 스카우트를 해라!)”
‘이 자식 뭔가 헛소리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태현은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창의 오해를 풀어줄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온다!’
타탓!
던전 입구에서 통로를 달려온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태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태현이 입구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태현을 직접 보는 건 확실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순간 움직임이 굳었다.
‘빈틈!’
그런 긴장은 태현을 상대할 때 치명적이었다. 태현은 가장 가까이 있는 상대에게 다가가 공격을 퍼부었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콰콰콰콰쾅!
게시판에는 ‘태현에게 한번 잘못 물리면 HP가 어중간한 플레이어는 그냥 끝장이다’라는 말이 돌아다녔다.
그만큼 태현의 폭딜은 매섭고 위협적이었다.
그런 상대라는 걸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긴장으로 멈춘 플레이어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이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일시적으로 너무 막대한 데미지를 받아 잠시 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출혈…]
-치명타 폭발!
자세가 무너진 플레이어에게 어마어마한 딜을 쑤셔 박았는데도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한 명을 끝장내려는지 무시무시하게 추가타를 넣었다.
[HP가 0이 되어…]
그 결과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플레이어 한 명이 그대로 로그아웃당했다. 옆에 묶여 있던 창은 그걸 보고 기겁을 했다.
실제로 보니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한 명을 보냈는데도 태현은 방심하지 않았다. 곧바로 창을 끌어들여 앞에 세웠다.
만약 태현을 상대하기 위해 온 놈들이라면 태현의 회피 대책 정도는 세워왔으리라.
그렇다면 주의해야 할 건 회피를 무시하고 들어오는 저주들!
“……?”
그러나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앞을 보니 남은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돌아서서 도망치고 있었다.
“…….”
태현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명 죽었다고 도망치다니?
그렇게 난리를 쳤던 판온 1에서도 저런 모습은 흔치 않았다.
태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설마 함정인가?’
“읍읍읍…(너 설마 케인처럼 쓴다는 게….)”
* * *
“상도덕도 없는 새끼!”
“같은 선수면서 이래도 되는 거냐!”
“대회 운영위원회에 신고해야 해!”
사실 함정 같은 건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투덜거리면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된 건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태현이 <베이징 파이터즈>에 쳐들어왔다!
-대회 앞서서 김태현이 본때를 보여주려고 왔다더라!
-김태현이 와서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라고 하면서 난리를 치더라!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이 아주 제대로 자존심이 상해서 끝장을 보려고 한다더라!
-창 선수는 김태현하고 일대일로 아주 사생결단을 보려고 하고 있고, 도동수 선수는 저번 원한도 있고 해서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이를 갈고 있다더라!
당사자들이 들으면 ‘뭐? 내가 언제?’라고 할 소문들.
그러나 이미 게시판에는 파다하게 소문이 퍼져 있었다. 태현과 같이 들어온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이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던전 안은 좁고 복잡하고 정신없었다.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한 팬은 없었다.
어설프게 본 덕분에 팬들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이 각오를 했으니, 그 김태현도 이번에는 아주 큰코다칠 거다!
-맞아! 맞아!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대부분 태현을 싫어했다. 사실 태현이 한 짓들을 생각하면 좋아하는 게 더 이상했지만….
그런 만큼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선수들이 태현을 제대로 밟아주기를 원했다.
그 결과, <여섯 봉우리 산맥의 잊혀진 지하 요새> 입구 근처는 온갖 플레이어들이 구경을 위해 몰려들었다.
김태현이 끝장나기를 원하는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과, 누가 이기든 상관은 없지만 이런 흥미진진한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까지!
대회를 앞두고 이렇게 큼직한 이벤트는 흔치 않았다.
태현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은 많아도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판온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메이커!
-팝콘 팔아요! 팝콘! <파워 워리어> 정품 마크가 붙은 팝콘은 확실합니다! 저희는 설탕량을 속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들은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에게 매우 부담이 되고 있었다.
“어쩌지?”
“네가 들어가 봐.”
“방금 박살 난 거 보고 그런 소리가 나오냐? 난 지금 던전용으로 장비 세팅해놔서 김태현하고 싸울 상황이 안 된다고.”
“그걸 핑계라고 대냐? 장비를 바꿔 끼던가.”
“바꿔 끼려면 도시까지 가야 한다고!”
던전 안에서 전멸한 선수들 말고, 운 좋게 밖에 있던 선수들은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
그러고는 고민에 잠겼다.
-저기를 어떻게 뚫지?
원래라면 포기했을 것이다.
그들이 겁쟁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들도 <베이징 파이터즈>에 선수로 입단할 정도의 플레이어들!
그들이 포기하는 건 그만큼 태현의 악명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포기할 수도 없었다.
뒤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고 있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도망쳤다가는… 망한다!’
지금 막 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이 단체로 도망이라도 치면 팬들은 우르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뭐라도 해야 했다.
선수들은 일단 각자 소속된 길드에 지원을 불렀다.
판온에서 PVP가 생겼을 때 가장 든든한 건 역시 소속된 길드!
-길마님. 지금 저 건드린 놈이 있는데….
-어. 뭐라고? 누가 널 건드려! 당장 말해. 도와주러 간다!
-감사합니다, 길마님! 여기 <여섯 봉우리 산맥의 잊혀진 지하 요새>고 김태현 놈이 와서….
-으… 응? 잠깐만. 나 급한 일이 생겨서. 조금만 이따 다시 연락할게!
-…….
그러나 길드가 무조건 도와주는 건 아니었다.
태현과 싸우는데 도와달라는 건 무조건 득보다 실이 많은 제안!
-길마. 내가 지금 문제가 생겼는데….
-현, 현재 귓속말을 보낸 플레이어는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야!!
대부분의 길드들이 이 일에 끼어드는 걸 꺼려 했다.
그 결과 선수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들어가자니 손해만 볼 게 분명했고, 물러서자니 뒤에 구경하고 있는 팬들의 눈치가 보이고….
-코치님. 어쩌죠?
-글쎄… 이런 상황은 나도 처음이라….
-창! 지금 뭐 하냐! 대답이라도 해!
-…….
-도동수!
-…….
들어간 1군 선수들은 대부분 전멸, 창과 도동수는 쪽팔려서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
“후후. 도움이 필요한가?”
“……?!”
* * *
“왜 안 들어오지?”
“겁먹은 거 아닐까?”
“아냐. 뭔가 수상해.”
케인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함정을 좀 더 빡세게 지어야겠다.”
“……!!”
“우리 던전 돌려고 온 거 아냐?”
“조용히 해. 인마. 던전은 1층 함정을 빡세게 한 다음에도 돌 수 있어.”
태현은 주변을 치우고 자리를 잡았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시로 대장간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사디크의 화염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대장간의 능력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촤아악-
아예 자리를 잡고 불을 피우는 태현을 보며,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거야?”
“이미 갖고 있는 것만 설치하지 말고, 새로 만들어야지. 그래야 효과가 있어. 흑흑아.”
-예?
“나와서 불 좀 더 피워봐.”
-예….
흑흑이는 슬픈 표정으로 용광로에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사디크의 마수가 화염을 내뿜습니다. 용광로의 화력이 늘어납니다!]
[만들어지는 아이템의 성능이 더 좋아집니다.]
그러는 사이 이다비는 밖에 있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다.
“어? 겁먹은 거 맞는 거 같은데요?”
“그래?”
케인은 울컥해서 말했다.
“야. 내가 말할 때는 무시해놓고….”
“너랑 이다비랑 같냐? 어쨌든 겁먹었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함정 더 설치하고 우리는 우리 할 일 한다.”
태현은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에게서 뺏은 아이템들과, 창에게서 뺏은 아이템들. 그리고 갈르두에게서 얻은 안 쓰는 장비들까지 전부 꺼냈다.
[장비에서 재료를 추출합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료 추출 과정에서 페널티를 입지 않습니다.]
[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재료 추출 과정에서 보너스를 얻습니다.]
-신의 예지.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해 재료 추출 과정에서 보너스를…]
원래라면 경매장에 올렸을 장비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좀 있으면 대회인 데다가 밖의 상황을 봤을 때 한두 번 정도는 더 싸워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럴 때를 대비해야 했다.
[<대해적 갈르두의 각반 보호대>에서 <매우 순수한 강철>을 얻었습니다.]
[<다섯 보석이 박힌 카람브릴 갑옷>에서 <정체불명의 붉은 보석>, <정체불명의 파란 보석>…]
“읍! 읍읍읍읍!”
“음. 무슨 소리 하는지 바로 알아듣겠군.”
자기 갑옷이 해체되는 걸 본 창은 분노한 눈으로 항의했다. 물론 태현은 무시하고 보석을 챙겼다.
정체불명의 붉은 보석:
[현재 마법 스킬로는 볼 수 없습니다.]
‘고급 마법 스킬로도 아예 안 나온다고?’
일정 부분을 가려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여준다니. 다른 보석들도 마찬가지였다.
태현은 일단 보석들을 챙겼다. 감정을 하려면 다른 NPC를 찾는 방법도 있을 테니까.
지금은 함정부터 먼저 만들어야 했다.
[<발목을 잡는 강철 덫>을 만들었습니다.]
[<삼중 연쇄 폭탄과 연결된 밧줄식 덫>을…]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척척척척-
무슨 십 년 넘게 대장간에서 일해온 대장장이처럼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 태현의 모습!
나름 많이 봐온 케인도 다시 한번 감탄했다.
‘누가 보면 현실에서도 대장간에서 일하는 줄 알겠다!’
판온 1에서부터의 경험치는 어딜 가는 게 아니었다.
함정들이 만들어지는 대로 바로바로 설치를 끝낸 태현은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완벽한 균형을 가진 거대한 강철 창>을 만듭니다.]
“이거 어디다 쓰게?”
“너무 커서 쓰지도 못할 거 같은데….”
“들고 쓰려는 게 아니라 몬스터한테 발사하려고 쓰는 거야.”
던전을 그냥 도는 거라면 상관이 없지만, 최대한 빠르게 돌려면 몇 가지 요령이 필요했다.
지금 만들려는 아이템도 그중 하나!
[<간이 창 발사대>를 만듭니다.]
[설계도가 없는 아이템입니다. 새로 만들 경우 실패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 성능이 원하던 것과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거대한 석궁처럼 생긴 창 발사대가 만들어졌다.
간이 창 발사대:
내구력 100/100. 물리 공격력 150.
크기가 맞는 창을 집어넣고 폭탄을 터뜨리면 창이 발사됩니다. 폭탄의 위력에 따라 발사의 위력도 달라집니다.
(발사 시 폭탄 필요)
“…왜 폭탄으로 발사하는 거지?”
옆에서 보고 있던 최상윤이 아이템 설명을 보고 의아해했다. 원래 이런 건 시위를 당기거나 하지 않나?
“뭐 일단 발사만 되면 되니까….”
“너무 커다랗지 않아?”
이번에는 케인이 질문을 던졌다.
사람 하나 정도의 크기인 창 발사대!
[너무 커다랗습니다. 가방에 넣을 수 없습니다.]
“들고 다녀야지.”
“누가?”
“네가.”
“…….”
케인은 물어본 걸 후회하며 창 발사대를 등에 짊어졌다.
[무게 때문에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최상윤은 확신을 못 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걸로 속도가 올라갈까? 괜히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싸웠다가….”
“걱정 마.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던 거니까.”
빠른 던전 공략을 위해서는 기발한 방법이 있어야 했다.
폭탄도 그중 하나였다.
모자란 딜을 확실하게 메꿔주는 수단!
문제는 이 폭탄 아이템이라는 게 워낙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폭탄을 무차별로 던지는 방식은 태현 혼자 있을 때면 모를까, 파티를 이끌고 던전을 돌아야 할 때는 쓰기 힘들었다.
대신할 방법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