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14화
남은 팀원들은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얼굴이었다.
“말… 말도 안 돼….”
케인이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도동수 저놈이 한 짓이 안 믿어지겠지만, 나중 가면 알게 될 거다. 저게 가장 똑똑한 짓이라는 걸.”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 억!”
“공격 시작!”
태현의 말에 일행은 공격을 개시했다. 남은 팀원들은 허겁지겁 반격하려고 움직였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게다가 상대는 태현, 케인, 최상윤 등 랭커 중에서도 PVP라면 이골이 난 사람들!
5분도 지나지 않아 싸움은 결판이 났다. 원래라면 더 치열했어야 했지만, 기가 꺾인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해서 더 빠르게 끝났다.
“이제 얘도 잡을까?”
최상윤은 구석에 몰려서 노려보고 있는 창을 칼로 겨누며 물었다.
태현은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냐. 좀 써먹어 보자.”
[창을 포로로 잡는 데 성공합니다.]
“놔라!”
“그러면 그냥 죽일까?”
“…….”
“얘 은근히 솔직한데?”
태현은 감탄하며 창을 앞으로 떠밀었다. 보통 여기서 ‘죽여라!’라고 했을 것 같은데….
* * *
-도동수, 이 치사한 새끼야!
-도동수. 실망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태현 네가 불렀냐??
팀원들에게 귓속말이 날아왔지만 도동수는 무시했다.
그들은 서로 프로.
우정이고 뭐고 그런 끈끈한 감정으로 엮인 사이가 아니었다.
죽으면 자기만 손해인 것!
도동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력을 다해 1층 던전 입구로 향해 달렸다. 만반의 준비를 한 김태현과 싸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니. 잠깐만. 그래도 여기는 내가 훨씬 더 익숙한데 숨어서 좀 괴롭혀주다 갈까….’
도적 계열 직업인 도동수였기에, 이런 던전에서 숨어서 치고 빠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여기는 익숙한 던전!
물론 태현과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태현 일행한테 공격 몇 번 넣은 다음 물러서고 ‘팽팽하게 싸웠다!’고 할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 아닐까?
틱-
“?”
[즉발 폭탄 함정을 건드렸습니다. 곧 폭발합니다.]
“???!”
도동수는 깜짝 놀랐다. 도적 직업인 그가 함정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대체 어떻게?!
콰아아앙!
“크윽!”
[치명타를 받았습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실명 상태에 빠집니다.]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
[장비 내구도가 크게 하락합니다.]
‘…튀자!’
폭탄 함정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도동수는 재빨리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도망쳤다.
그가 도적 계열 직업이라면, 김태현은 판온 1 때부터 대장장이로 유명한 놈이었다.
게다가 남들은 PVP에서 잘 쓰지도 못하는 함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성공시키는 것으로 더 유명했다.
머리, 배짱, 운 등 하나라도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
* * *
“이 치사하고 비겁한 놈들. 내 장비를 돌려주고 당당하게 붙자!”
“장쓰안도 그런 소리는 안 하던데. 넌 어디서 왔는데 이렇게 순진한 소리를 하는 거냐?”
케인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얘는 진심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2층 싸움을 끝내고 1층으로 올라가 이곳저곳에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다.
“흠. 여기가 좋아 보이는군.”
“여기도 좋아 보이고.”
“여기에도 하나 둘까? 뭐 폭탄은 많고 하나 더 써서 안 좋을 건 없으니까.”
“음? 여기에 아까 하나 두고 갔었는데 언제 터졌지?”
그러면서 동시에 창에게서 뺏은 장비를 확인했다.
다섯 보석이 박힌 카람브릴 갑옷:
내구력 550/550, 물리 방어력 285. 마법 방어력 150.
스킬 ‘붉은 보석’ 사용 가능, 스킬 ‘파란 보석’ 사용 가능, 스킬 ‘녹색 보석’ 사용 가능, 스킬 ‘흰 보석’ 사용 가능, 스킬 ‘검은 보석’ 사용 가능.
레벨 제한 175.
다섯 보석을 추가한 카람브릴 갑옷의 완성형이다. 이 다섯 보석이 박혀 있는 갑옷을 입은 전사는 싸움 도중에 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별로잖아?”
자기 장비를 보고 저러자 창은 화를 내며 외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냥 녹여서 재료 추출해야겠다. 여기 보석들은 좀 좋아 보이는데.”
“김태현! 늦지 않았다! 당장 멈춰라! 명예를 안다면!”
“케인. 쟤 좀 입 다물게 해줄래?”
“케인! 너도 속으로는 명예롭게 싸우고 싶을 텐데?! 김태현 저놈의 명령에 따르고 싶지 않은 거 안다!”
‘헉. 이 자식 예리한데?’
케인은 감탄했다. 어떻게 그의 속마음을?
물론 명예롭게 싸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그냥 태현의 명령을 가끔 듣고 싶지 않다는 것 정도!
“시끄러. 인마.”
“읍읍읍!”
조용해진 창을 무시하고 태현은 다른 장비들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태현의 장비들의 하위호환이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태현의 장비 세트는 최상위권 랭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기존에 쓰던 무기들도 대단한 무기였는데, 그걸 뛰어넘은 대만불강검만 해도….
게다가 <오스턴 왕가의 비전 갑옷> 같은 건 원래라면 현재 플레이어들이 입을 기회가 없는 장비였다.
‘녹이고 해체해야겠군. 재료는 잘 나오겠는데.’
보석부터 시작해서 금, 은, 최상급 강철, 순은, 아다만티움까지 조금 나올 것 같은 구성!
재료로는 최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갈르두 장비도 입을 수 있겠군.’
저주가 풀리고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정작 장비를 확인하는 건 잊고 있었다.
영원한 불사의 목걸이:
내구력 999/999, 물리 방어력 300. HP 회복 속도 500% 상승.
레벨 제한 300.
아무런 스킬도 없지만,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사용자에게 어마어마한 불사의 힘을 가져다주는 목걸이입니다.
거인의 심장으로 만든 목걸이라 거인족을 만날 경우 특별한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와, 뭐 이런 무식한 장비가 있냐?’
드물게 보는, 깡스탯만으로 압도하는 장비!
무슨 목걸이 하나가 랭커 갑옷 방어력을 갖고 있었다. 장신구 아이템이 마법 방어력이 아닌 물리 방어력만 갖고 있는 게 특이하기는 했지만….
‘이러니까 더럽게 안 죽었지.’
갈르두의 끈질긴 생명력은 악몽 중의 악몽이었다. 데미지도 적게 들어가는 데다가 그게 계속 회복을 하니….
‘그렇지만 나한테는 효과가 별로겠는데.’
물리 방어력은 태현한테는 거의 의미가 없었고, HP 회복 속도도 최대 HP량 자체가 적은 태현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태현의 전투 스타일은 안 맞는 걸 전제로 하는 스타일!
이 장비는 차라리 케인에게 맞는 장비였다.
그렇지만….
“케인.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레벨 제한 있는 장비 착용할 방법 없지?”
“응? 나 있는데.”
“뭐? 넌 뭘로 입는데?”
태현이야 대장장이 기술 스킬로 쌓은 강제 착용 스킬이 있다지만 케인은 그런 것도 없었다.
태현은 살짝 놀랐다.
“…노, 노예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뭐?”
“노예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노예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레벨 업 하면서 얻은 아키서스의 노예 패시브 스킬 중 하나였다.
이름은 그래도 효과는 강력했다. 레벨이나 스탯, 종족 제한을 감수하고 장비를 착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케인은 현재 악마들이 입는 커다란 갑옷을 입고 있었다. 페널티가 좀 있지만 그만큼 튼튼하고 좋았다.
“풉!”
“이 자식이….”
“내가 웃은 거 아니야.”
“어?”
창이 웃음을 터뜨렸던 거였다. 케인은 눈에 불을 켜고 창을 앞뒤로 흔들었다.
“이 자식! 감히 너 같은 놈이 날 비웃다니!”
“야. 야. 그만해. 그만하고 이거나 받아.”
“!”
케인은 목걸이를 금방 알아보았다. 이건… 갈르두가 끼고 있던 그 사기 아이템!
“아이템 보니까 너한테 맞겠더라. 이걸 입고 좀비처럼 버티는 탱커가 되라.”
“말은 좀 이상하지만… 정말 잘 쓸게!”
케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목걸이를 착용했다.
‘나는 갑옷을 받았지만 케인 씨는 목걸이를 받았… 아니.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이다비는 그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읍읍읍. 읍읍읍읍…(그렇군. 김태현 저 악독한 놈이 어떻게 인기를 끌었나 했더니 저런 식으로 아이템을 뿌렸던 거였어! 비열하다!)”
“저거 진짜 말 많네.”
태현은 갈르두의 나머지 장비도 확인했다. 나머지 방어구는 별로였고….
잔혹한 영웅의 커틀라스:
내구력 200/200, 물리 공격력 275, 마법 공격력 275. 공격 속도 50% 증가. 공격 성공 시 일정 확률로 HP 흡수.
레벨 제한 200.
스킬 ‘상처 만들기’ 사용 가능, 스킬 ‘피 빨아들이기’ 사용 가능.
한때 바다를 휩쓸었던 잔혹한 영웅이 차고 있던 커틀라스다.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희생자의 피를 빨아들이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대만불강검보다 별로군.’
어지간한 랭커들이라면 잘 썼겠지만, 대만불강검의 극단적인 성능에 취한 태현에게는 아쉽게 느껴졌다.
스킬 세트도 태현의 <치명타 폭발>이나 <행운의 일격>에 비해 약했다.
“뭔데 그렇게 보냐? 안 쓸 거면 내가 써도 돼?”
“이걸 쓰게? 별로잖아.”
“…네 기준에서 별로지 세상 기준에서는 충분히 좋은 무기거든?”
최상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태현이 엄청난 대장장이라는 건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걸 볼 때마다 기준이 참 뒤틀리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상윤은 태현이 커틀라스를 녹여 먹기라도 할까 봐 허겁지겁 받아 챙겼다. 다시 확인해 봐도 역시 좋은 무기 맞았다.
“갈르두는 생각보다 별게 없네. 오히려 크라켄이 더 나은 거 같아.”
“크라켄이 뭐 줬는데?”
“재료 아이템을 대량으로 줬지.”
“……?”
태현은 벌써 크라켄의 부위로 몬스터 정수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나중에 케인이 그걸 쓸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었다.
오싹!
‘저놈 왜 날 쳐다보지?’
케인은 불안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그들이 전리품을 정리하고 1층에서 적들을 막을 준비를 하는 동안, 밖에서는 다른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김태현!! 너는 지금 <베이징 파이터즈>의 던전에 무단으로 들어왔다. 지금 당장 나오지 않는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읍읍읍…(지금 무릎을 꿇고 비는 게 좋을 거다. 우리 팀원들이 소속된 길드들이 다 도우러 올 테니까!)”
“아. 시꺼.”
태현은 창을 엎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최상윤과 케인은 시시덕거렸다.
“어떻게 대사까지 1이랑 똑같냐?”
“그보다 욕을 안 한다는 게 신기한데.”
“그야 지금 생방송 돌아가고 있을 테니까 욕하기가 좀 그렇겠지.”
개나 소나 다 인터넷 방송으로 판온을 중계하는 바람에 이름 좀 알려진 판온 플레이어들은 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이미지 관리도 했다.
태현처럼 아무 신경도 안 쓰는데 이미지 관리가 되는 게 특이한 경우!
던전 입구에 발만 들이밀고 계속 확성 마법으로 크게 떠들어대자 짜증이 난 태현은 역으로 외쳤다.
“지금 당장 닥치고 안 꺼지면 창의 목숨은 없다!”
“읍읍?!”
“창이 자기가 죽으면 다 너희 탓이라고 한다!”
“읍!! 읍읍!”
“창이 너희가 정말 밉댄다! 자기를 두고 혼자 튀다니! 도동수 두고 보자는데?”
“읍읍….”
잠시 입구가 조용해졌다. 태현은 귀를 기울였다. 설마 이런 협박이 통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니었다.
“공격해!”
던전 입구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시작해 온 것이다.
“저런. 창이 생각보다 인기가 없나 봐.”
태현의 말에 창은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방금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읍읍읍…(지금 상황에서는 공격이 당연한 거잖아! 내 인기하고는 상관이 없다!)”
“널 케인처럼 쓰려고 데리고 있는데 슬슬 후회되기 시작한다.”
“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