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12화
“얼마나 걸렸지?”
“19분 23초.”
“좋아. 18분대로 끊어보자고.”
“예!”
코치의 말에 따라, 플레이어들은 다시 한번 던전 1구역을 돌기 시작했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훈련 방식!
지금 하는 훈련은 같은 던전 구역을 돌면서 팀워크를 최대로 올리는 방식의 훈련이었다.
전직 프로게이머 출신 코치가 짠 메뉴얼에 따라 <베이징 파이터즈>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던전을 공략했다.
“1군 선수라고 안심하지 마라. 언제든지 2군 선수들이 나갈 수 있으니까.”
대형 게임단은 대회에 나갈 1군 선수들만 갖고 있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가 터졌을 때 대신 나갈 예비 선수들이나, 경쟁시켜서 성장시킬 목적으로 데리고 있는 2군 선수들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의 경쟁은 집중력을 올려주고 성적을 높일 수 있었다.
“동수! 앞!”
“알고 있어, 처리했다! 들어가!”
“옆에서 나온다! 몬스터가 바닥에 저주 깐다! 장판 조심해!”
콰콰쾅! 쾅!
여러 스킬들이 몇 초도 안 되는 순간에 빠르게 조합되어 시전되었다.
사방에서 튀어나왔던 몬스터들은 그 스킬 콤보들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던전 공략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건 각 구역의 보스 몬스터들.
역으로 생각하면, 나머지 구간에서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총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이런 통로 구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잡는 시간은 한계까지 줄여야 했다.
“동수, 실력 좋은데?”
“헤헤….”
“덕분에 스킬 아끼고 들어갈 수 있었어. 역시 동수야.”
도동수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는 동료 플레이어!
<베이징 파이터즈>라고 해서 중국인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요즘은 오히려 그렇게 자기 나라 사람들로만 구성된 팀이 더 드물었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도동수 혼자였다.
“당연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떠들어. 그럴 시간에 칼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라고.”
물론 모두가 도동수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팀원들이 여럿인 만큼 각자 성격이 달랐다.
도동수에게 칭찬을 하는 동료가 있다면, 까칠하게 구는 동료들도 있었다.
“왜 그래. 창. 칭찬할 수도 있지.”
“칭찬은 무슨. 난 애초에 외국인들이 팀 들어오는 게 별로였어. 우리들로도 충분하다고.”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거냐?”
“진정해. 둘 다. 창, 여기 동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존도 있는데 그러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
창은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본 도동수는 울컥했다.
‘아, 나 정말 성격 많이 죽었다!’
투기장 대회에서 사고를 친 이후 도동수는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간신히 중국 쪽 게임단에 입단을 했지만, 아무래도 친 사고가 있다 보니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게임단에 입단할 때도 게임단 측은 단단히 경고했다.
저번 대회처럼 사고치는 일은 없게 하라고!
“애초에 김태현 그 놈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에이. 대단하지.”
“대단한 건….”
“대단하지 않나?”
곧바로 튀어나오는 반응들. 그 반응이 창을 더 기분 나쁘게 한 것 같았다.
“이렇게 띄워주니까 그 자식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나대잖아! 저번에 투기장 대회 때도 그랬어. 비겁한 짓으로 이겨놓고 올라갔지.”
대회에는 참가 안 했지만 경기는 다 챙겨 본 창이었다.
비겁한 방법에 당한 장쓰안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원래 실력대로였다면 장쓰안이 이겼을 것!
“그리고 그때 저놈도 있었잖아!”
“아니, 그건 그 자식이 하자고 한 건데….”
“흥. 그걸 어떻게 믿어? 여기 김태현 없다고 그놈 책임으로 돌리는 거 아냐?”
“진짜라고 이 자식아!”
참던 도동수도 결국 폭발해서 따지고 들었다.
“네가 그 자식을 안 만나봐서 그렇지. 만나보면 알게 될 거다!”
“만나보면 뭘 알게 되는데? 흥. 만나면 당장 박살 내주지.”
‘아, 이 자식 던전 대회라고 배짱 부리네….’
도동수는 속으로 창을 욕했다.
던전 대회는 서로 PVP할 일이 없으니까 저렇게 배짱을 부려도 들킬 일이 없었다.
판온 내에서는 만날 수 있겠지만 태현 욕하는 놈이 한둘이 아닌데 자기 욕한다고 여기 찾아오겠는가?
그리고 창이 욕한다는 걸 태현이 알 방법도 없는데….
“내 생각에 김태현은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있어. 그리고 그런 거품이 끼게 만든 건 너희 같은 놈들 때문이야. 괜히 겁먹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추하게 지는 놈들.”
“김태현하고 싸우고서나 그런 소리 해봐라. 자식아.”
태현에게 쌓인 원한이 하늘을 찌르는 도동수였지만, 실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태현을 마주하는 건 다른 플레이어를 마주하는 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전신에서 압박감이 느껴지고 피부가 긴장으로 따끔따끔해지는 느낌.
그런 느낌은 아무나 줄 수가 없었다. 정말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다.
“말했을 텐데. 난 너 같은 패배자랑 달라서 김태현과 만나면….”
* * *
“좀 미안하지 않냐?”
“뭐가? 걔네가 나한테? 내 이름 빌려서 어그로 끌었으면 나도 걔네 던전 쓸 수 있지.”
<베이징 파이터즈>가 언론에 발표하면서 태현을 저격한 것!
태현은 아직 그걸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태현은 오랜만에 잘츠 왕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태현이 시작한 타이럼 시가 위치한 잘츠 왕국!
여기로 온 건 타이럼 시에 들리려고… 는 물론 아니었다.
<베이징 파이터즈>의 훈련 던전이 잘츠 왕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 파이터즈>의 던전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색하니까 바로 나오는데요?
-얘네는 겁이 없나?
태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짓!
물론 <베이징 파이터즈>가 대놓고 ‘우리 여기서 훈련합니다!’라고 하는 건 아니었지만, 쫓아다니는 팬들로 인해 위치는 거의 공개나 다름없었다.
산악 지대가 많은 잘츠 왕국, 그 중 <여섯 봉우리 산맥의 잊혀진 지하 요새> 던전이 <베이징 파이터즈>가 갖고 있는 던전이었다.
사실, 태현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베이징 파이터즈>도 나름 밖에서의 공격이나 습격에 대비하고는 있었다.
판온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베이징 파이터즈>가 던전 위치를 필사적으로 숨기지 않는 건 자신감 때문이었다.
1군 선수, 2군 선수 대부분 랭커나 고렙 플레이어였다. 거기 플레이어들이 가입한 길드들은 또 따로 있었고.
그런 플레이어들이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던전을 공격하는 놈들이 있다?
그런 미친놈들이 있을 리 없었다. 가끔 관심을 받고 싶어서 자살 비슷하게 덤벼오는 플레이어들은 던전 입구도 못 들어오고 로그아웃 당했던 것이다.
덕분에 태현의 일은 몇 배로 편해졌다.
“여기군.”
웅성웅성-
그렇지만 던전 입구가 있는 산 앞에는 플레이어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케인은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어? 왜 플레이어들이 있는 거지?”
“팬들 같은데요?”
“아. 들킨 줄 알았네.”
“쉿.”
이다비의 말대로, 던전 입구 앞에 모여 있는 건 별로 레벨이 높지 않은 플레이어들이었다.
대부분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팬들!
물론 던전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여기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훈훈하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케인과 최상윤은 그렇게 떠들었다. 그렇지만 이다비는 다르게 생각했다.
장사의 냄새가 난다!
“이다비.”
“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시키면 여기서 뭐 좀 팔 수 있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었다. 줄을 서 있던 팬들은 뒤에서 태현이 밀치고 다가오자 화를 냈다.
“저기요! 줄 서세요!”
“여기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현이 계속 다가오자, 앞에 서 있던 게임단 직원들이 나섰다.
“여기 오시면 안 됩니다.”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 연습중이에요.”
“알아. 비켜.”
“안 된다니까요.”
“자꾸 이러시면 공격하겠습니다.”
게임단 직원들은 이미 몇 번 팬들을 쫓아낸 경험이 있는지, 주변이 붉은색이었다.
PVP를 많이 해서 죽을 경우 페널티를 더 받는 상태!
“공격은 하고서 말하는 거야.”
“?”
푹찍푹찍!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크아악?!”
“…?!?!?!”
몰래 들어가려는 팬은 있어도, 이렇게 구단 직원을 다짜고짜 공격하는 팬은 처음이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일격에 직원이 로그아웃 당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공… 공격이다!”
“던전 입구에 소란 발생. 던전 입구에 소란 발생. 와서 좀 도와주세요!”
태현은 검을 휘둘러서 직원 한 명을 골로 보내버린 다음 외쳤다.
“우리도 구경할 권리가 있다! 팬들에게 던전을 열어줘라!”
“??!?”
“와아아아아!”
뒤에서 ‘무슨 일이야?’ 하고 기다리던 팬들은 태현의 말에 환호했다.
그들의 눈에 태현은 그들을 위해 들고 일어선 팬이었다.
“여러분! 갑시다! 여러분들도 구경할 수 있어요!”
슬금슬금-
태현의 말이 끝나자, 뒤에서 줄 서고 있던 팬들 중 한두 명씩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모두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이런… 막아! 결계 치고 마법 써! 전부 다 쓰러뜨려!”
“팬들인데요?”
“아무리 팬이라도 연습 중에 던전 들어오면 안 되지!”
코치는 급하게 직원들을 모아 입구에 진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태현은 이미 그들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습니까! 지금 당장 멈추십시오!”
“팬들의 분노를 받아라!”
“이게 정말!”
코치는 분노해서 도끼를 꺼내 휘둘렀다.
전직 프로게이머였지만, 판온의 코치를 맡은 이상 판온에서도 고렙 플레이어인 그였다.
어중간한 팬 몇 명 정도는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
캉!
[<피에 젖은 드워프 강철 도끼>가 파괴되었습니다!]
“?!?!?!”
태현이 망치로 상대의 무기를 부수는 걸 본 이다비가 애절하게 외쳤다.
“태현 님! 그걸 부수면!”
“아차. 미안.”
태현은 재빨리 무기를 바꿔 끼고 코치를 후려 갈겼다. 코치는 막으려고 했지만 태현 상대로는 너무 늦은 반응이었다.
퍼퍽!
검에 몇 대 맞은 순간 앞이 어두워지며 메시지 창이 떴다.
[일시적으로 HP가 50% 이상 깎였습니다.]
[커다란 충격에 잠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무슨 데미지가?!’
탱커 계열 직업인 코치의 HP를 순식간에 깎아버리는 무시무시한 딜량!
이건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최소 랭커!
‘대체… 태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
코치는 그렇게 생각하며 로그아웃당했다.
리더 격인 코치가 로그아웃당하자 그 뒤는 쉬웠다. 태현은 맹수처럼 날뛰며 직원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핫하 죽어라!”
최상윤이 질린 듯이 말했다.
“저거 판온 1때 모습 나온다.”
“판온 1때는 뭐 달랐어?”
“음, 직업도 다르고 이것저것 다 다르긴 했는데… 판온 2때보다 훨씬 더 거칠었지.”
“…진, 진짜?”
케인은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보다 더 거칠게 굴었다면 대체 뭐 얼마나 개X끼였다는 거지?
전부 쓸어버린 태현은 기세 좋게 외쳤다.
“여러분! 들어갑시다! 우리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어요!”
“와아아아아!”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지?”
“몰라. 알 게 뭐야! 일단 들어가고 보자!”
“잠. 잠깐. 그래도 팬인데 들어가면 선수들한테 방해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성적인 팬이 한 명은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그건 게임단 쪽이 댄 핑계에요! 선수들은 그런 거 전혀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합니다!”
“그… 그래?”
“진짜?”
“그럼요! 팬들이 직접 들어와서 응원해 주는데! 여러분들이 들어와서 응원해 주면 감사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수가 아니죠! 어쩌면 같이 던전을 돌지도!”
“오오!”
“오오오오!”
“자! 들어갑시다! 여러분!”
“와아아아아!”
즉석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플레이어들을 어느새 완벽하게 이끌고 들어가는 태현!
다른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