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09화
기분 좋게 대화를 끝낸 태현은 뒤로 돌아서서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자, 이제 돌아가자!”
“와아아아아!”
뛸 듯이 기뻐하는 플레이어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유배지에 갇혀 오랫동안 시간을 날린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돌아갈 수 있게 되니, 보통 기쁜 게 아니었다.
태현 영지에서 레이드하다가 여기 왔고 강제로 교단에 가입하고서 나갈 수 있었던 건 기억에서 지워질 정도의 기쁨!
-주인이여. 주인이여.
-?
-아키서스의 성물을 찾으러 온 거 아니었나?
-!
그러고 보니 여기 온 이유 중 하나가, 데메르 교단이 ‘여기 아키서스 성물이 있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습니다’라고 해서였다.
태현은 크라켄을 잡고 나온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이것저것 잡다한 아이템들은 많이 있었지만 딱히 성물 같아 보이는 건 없었다.
결론은 하나!
“데메르 교단 이놈들이 사람을 속이다니!”
“?!”
“수법은 칭찬해 주지.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말을 하다니. 아주 뛰어난 수법이야.”
“무, 무슨 소리십니까?”
“성물 있다면서. 없잖아!”
“어… 유배지를 다 확인하신 건 맞습니까?”
“…찾으러 갔다 오도록 하지.”
“…….”
데메르 사제들이 왠지 모르게 뒤에서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태현은 다시 플레이어들을 불렀다.
“애들아.”
“……?”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간다!”
플레이어들은 시무룩해졌다.
* * *
태현은 데메르 교단 사제들과 앨콧, 크로포드를 데리고 다시 유배지로 들어갔다.
저주가 풀린 유배지는 모든 NPC들이 사라져 있었다.
“근데 우리는 왜?”
“여기 계속 갇혀 있으니까 뭐가 있는지는 잘 알 거 아냐.”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맞아. 계속 있으면 사람 미치게 만드는 곳이라고.”
“아냐. 데메르 교단이 설마 나한테 거짓말을 했겠어? 있다고 했다니까.”
움찔!
태현의 말에 데메르 사제들은 필사적으로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제는 맨손으로 땅바닥을 파기 시작할 정도!
[가혹한 채찍질 스킬이 오릅니다.]
[가혹한 채찍질 스킬이 영혼 착취 스킬로 변합니다.]
가혹한 채찍질은 HP와 MP를 깎아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향상시키는 버프 스킬이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찍은 태현이 계속해서 스킬 레벨을 올린 결과 상위 스킬로 올라간 것이다.
<영혼 착취>
영혼까지 쥐어짜 내서 모든 능력치들을 급격히 상승시킵니다. 스킬시간이 끝나면 사기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추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쥐어짜 내는 스킬!
‘그나저나 여기서 찾으려면 힘들긴 하겠는데.’
[카르바노그가 동의합니다.]
‘뭐 다 방법이 있지.’
-신의 예지!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카르바노그도 이런 스킬이 있으면 좋을 텐데.’
[카르바노그가 화를 냅니다.]
신의 예지는 주변에 위험한 게 없다는 것과, 그리고 태현이 찾는 게….
“……?”
앨콧에게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앨콧!
“왜, 왜 그렇게 쳐다봐?”
태현이 빤히 쳐다보자 앨콧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태현이 저렇게 쳐다보는 건 보통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너 뭐 여기서 주웠냐?”
“어?”
유배지에서 남는 건 시간밖에 없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탈출로를 찾거나, 스킬 연습을 하거나, 처음 보는 잡템들을 줍거나….
“이것저것 줍긴 했는데.”
“내놔봐.”
“내가 주운 건데 왜? 앗. 잠깐… 너 여기서 원하는 게 있군.”
앨콧은 깨달았다는 듯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태현이 저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앨콧은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원하는 걸 줄 테니까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줘.”
“그래. 죽어라.”
“내가 원하는 건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가는… 어? 잠깐. 방금 ‘그래’ 다음에 뭐라고 말했지?”
이미 태현은 무기를 뽑아 들고 있었다. 앨콧은 기겁해서 뒷걸음질 쳤다.
“야, 야! 왜 그래! 살벌하게!”
“싸우자고 한 거 아니었어?”
“거래하자고 한 거지!”
“난 또, 죽여 달라고 하는 게 쑥스러워서 돌려 말한 줄 알았지.”
“하하. 오해가 풀….”
“그래. 죽어라.”
죽이고 뺏으면 되지 뭐하러 대화와 설득을 하나!
태현이 100%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앨콧은 재빨리 대응했다.
털썩!
“그냥 줄게!”
“진작 그럴 것이지.”
‘저런 한심한 새끼….’
옆에 있던 크로포드는 한심한 눈으로 앨콧을 쳐다보았다. 그의 안에서 앨콧의 평가가 바닥을 뚫다 못해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앨콧이 내놓은 건 잡템들밖에 없었다. 태현은 하나하나 확인하며 넘겼다.
[사디크의 성물을 확인했습니다.]
[<사디크의 낡은 촛대>를 얻었습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사디크의 낡은 촛대>에 담긴 권능 스킬을 얻었습니다. 스킬 <사디크의 화염 룬>을 얻었습니다.]
<사디크의 화염 룬>
사디크의 힘이 담긴 화염 룬 글자를 새깁니다. 글자가 사라지기 전까지 룬 글자에서는 계속해서 사디크의 화염이 분출됩니다.
‘어…?’
태현은 당황했다.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을 얻을 줄 알았는데 왜 사디크의 권능 스킬이 나온단 말인가.
“백작님! 찾으셨습니까?!”
“다른 신의 권능인데?”
“?”
“어….”
“그게… 다른 신이었나?”
데메르 사제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웅성거렸다. 태현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뭔 소리야? 아키서스를 말한 게 아니었어?”
“그게….”
데메르 교단 고위 사제 중 한 명이 쓸 수 있는 권능 스킬 중에서는 <데메르 여신의 신탁> 스킬이 있었다.
신탁을 받아 앞날을 예언하는 강력한 스킬!
그 신탁에는 분명히 이 유배지에 태현이 찾는 권능도 있다고 나왔는데….
사실 사디크의 권능도 일단 태현이 챙기고 있는 권능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었습니까?”
데메르 사제들은 태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느 신의 권능이길래….”
“저희가 일부러 거짓말한 거 아닙니다, 백작님.”
“분노하신 건… 아니죠?”
태현은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사디크의 권능을 얻었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데메르 교단이라면 적당히 핑계를 대면 믿어줄 것 같긴 했지만….
‘괜히 말하고 다녀서 좋을 게 없지.’
“됐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역시 백작님! 관대하십니다!”
“역시 영웅이셔!”
“시끄러.”
* * *
태현 일행은 함대를 이끌고 빠르게 중앙 대륙으로 향했다.
챙길 것도 다 챙겼으니 여기서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교단 함선인 만큼 항해 속도는 빨랐다. 플레이어들은 벅찬 얼굴로 바다를 구경했다.
“대륙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한동안 바다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거야.”
“퀘스트에 해적의 ‘해’ 자만 들어가도 거른다!”
촤아악-
“응?”
빠르게 나아가는 일행 앞에 나타난 함선들!
함선 종류도 다양하고, 이것저것 깃발도 다 다른 걸 보니 플레이어들의 함선 같았다.
“저건 뭐냐?”
“우리 쪽으로 오는데?”
느레의 동생, 느페는 함선 위에서 남은 플레이어들을 이끌며 말했다.
“잘 들어! 아란티스 왕국 안에서는 우리가 불리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란티스 왕국에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다 PVP와는 거리가 먼 놈들! 계속 왕국 안에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니 언젠가는 밖으로 나와 돌아다닐 거다. 그때 공격하면 돼! 이렇게 치고 빠지면 저놈들로는 어쩔 수 없을 거다!”
“와아아아!”
산적으로 날렸던 게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도망친 느페는 박살 난 플레이어들을 다시 모아서 전략을 꾸몄다.
확실히 이 주변 바다를 돌아다니며 치고 빠지면, 레벨이 낮은 아란티스 왕국의 새 플레이어들에게는 치명적일 게 분명!
왕국의 평판도 깎아 먹고 복수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앗. 저기 새로 배가 오는데요?”
“아란티스 왕국에 들어오려는 놈들이 분명해! 가서 잡자! 그리고 알려주자. 여기 오는 놈들에게는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근데 저기는 대륙이랑 반대 방향이지 않나?”
* * *
“흠. 형보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느페를 포함한 남은 플레이어들은 모두 붙잡혀 머리를 갑판에 박고 있었다.
싸움은 매우 빠르고 간단하게 끝났던 것이다.
-공격! 공격! 헉!
-너희 미쳤니?
-항복! 항복!
그들은 모두 속으로 느페를 욕하고 있었다.
‘저 새끼 산적 랭커 맞아?’
‘눈깔을 달고 있으면 누구인지는 보고 덤벼야 할 거 아냐.’
태현을 포함한 랭커, 고렙 플레이어들도 강력한 전력인 데다가 각 교단 NPC들까지 끼어 있었다.
재수 없으면 교단 현상금까지 걸려서 암살자 찾아올 수도 있었던 상황!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미쳤나 봅니다!”
느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없는 남자, 그게 바로 느페였다.
지금 그의 형 느레는 괜히 태현에게 덤볐다가 장비를 모두 잃어버리고 수습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절대 그런 꼴은 될 수 없다!
아무리 김태현이 개자식이더라도!
“야. 너 지금 말하고 있어.”
“네?”
“네가 방금 생각한 거 입 밖으로 내뱉었다고.”
“…제, 제가 그랬나요? 하하.”
옆에 있던 케인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쯧쯧 찼다.
“요즘 PVP 플레이어들은 아주 질이 떨어졌어. 나 때는 안 그랬는데.”
“…?”
“…???”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아냐. 아무것도.”
태현은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뭐, 항복했으니까 선처를 해주지.”
“정말이십니까?!”
“그래. 나는 관대하거든. 가입만 해라.”
“어디에요? 헉! 설마 파워 워리어 길드에?! 그건…!”
길드 동맹을 탈퇴하고 파워 워리어 길드에 가입하라니. 그건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다비가 옆에서 시무룩해졌다.
“아니야. 그리고 파워 워리어 길드도 애들 많이 가려 받거든? 너 같은 놈은 안 받아준다고.”
“휴, 다행….”
그러나 느페는 아직 몰랐다.
아키서스 교단보다는 차라리 파워 워리어 길드가 나았다는 것을!
그걸 보던 앨콧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길드 동맹 안에서 아키서스 교단 가입한 게 알려지면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앨콧은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입 닥치고 있어야지!
* * *
아탈리 왕국 항구에 도착한 플레이어들은 눈물을 흘리며 땅을 밟았다.
그중 몇몇 용감한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탈것을 타고 도망치며 외쳤다.
“김태현!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 치사하고 더러운 자식아! 너 때문에 갔는데 그걸 그렇게 뜯어 먹냐!”
“맞아, 이 치사한 놈아!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너 방송 나오면 리플에 악플 달 거다!”
“이세연이랑 사귄다고 아주 둘이 똑같이 노는구나!”
판온 1에서부터 많이 봤던 모습!
태현은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지도 않았지만!
특히 이세연을 언급한 건 용서할 수 없었다. 태현의 기준에서 태현 본인은 이세연에 비해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저놈들이 백작을 모욕했다! 잡아라!”
“아니! 저 건방진 놈들이!”
[귀족의 이름으로 경비병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타다다닥-
“으아아악 미친!”
설마 태현이 치사하게 경비병을 동원할 줄은 몰랐던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도시 내에서 평판이 하락합니다.]
[한동안 경비병을 만날 경우 체포될 수 있습니다.]
“우… 우리는 조용히 가자.”
“그, 그래.”
이제 ‘안 태워다준다!’ 같은 협박도 안 통할 테니 김태현한테 몇 마디 하려던 플레이어들은 방금 일어난 일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실력도 실력인 놈이 권력까지 갖고 있으니 공포 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