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08화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떨어지는 후고 사제를 쳐다보았다.
지금 모두 정신도 없겠다, 은근슬쩍 보내버린 다음 나중에 들키면 ‘아니~ 촉수 노려서 구해주려고 한 건데 빗나간 거야~’라고 변명하려고 했는데….
설마 그 변명대로 구해주게 될 줄이야!
첨벙!
후고 사제는 바다에 떨어졌지만 무사해 보였다. 태현은 아쉬웠지만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후고 사제가 아니라 크라켄이었으니까!
비틀거리는 크라켄을 향해, 태현은 최후의 공격을 퍼부었다.
-치명타 폭발! 칼날 폭발!
카카카카카캉!
이제까지 쌓아놓았던 스택이 터지면서 크라켄이 거대한 비명을 질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태현의 대만불강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데미지를 집어넣었다.
[<해적왕의 영원한 유배지>의 수호자, <저주받은 거대한 크라켄>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해적왕의 영원한 유배지>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 저주에서 풀려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이름이 대륙에 널리 퍼집니다.]
[앞으로는 직접 신전을 짓지 않아도 대륙에 아키서스 교단의 신전이 생길 수 있습니다.]
“……!”
태현은 반색했다.
온갖 퀘스트를 깨며 교단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알린 결과, 드디어 일정 수치를 넘긴 것이다.
다른 유명한 교단들처럼 이제 아키서스 교단도 알아서 신전이 생겨날 수 있는 것!
[아탈리 왕국 내 평판이 오릅니다. 아탈리 왕국 내 공적치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아탈리 국왕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한 번에 레벨 3업!
레벨 100을 찍고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 성장이면 괜찮은 편이었다.
“어. 레벨 1 올랐네.”
“저런 보스 몬스터 잡고 1 오르다니. 아쉬워라….”
“한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무엇보다 기쁜 건, 이번에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별로 레벨 업을 하지 못했다는 것!
크라켄을 상대로 대부분의 딜을 넣은 건 태현과 교단 NPC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전술 스킬이 드디어 9인가….’
고급 전술 스킬 레벨 9.
이제 곧 최고급 전술 스킬을 앞두고 있는 스킬 레벨이었다.
화술 스킬만큼은 아니었지만 전술 스킬도 익히고 있는 사람이 많은 스킬은 아니었다.
애초에 전술 스킬은 많은 사람을 데리고 싸워야 효과를 보기 좋은 스킬.
키우기도 애매하고 쓰기도 애매한 그런 스킬이었다.
대형 길드의 길마나, 많은 부하들을 부리고 다녀야 하는 직업들 정도나 키우는 스킬!
그런 면에서 태현처럼 부하 없고 길드원 없는 사람이 전술 스킬을 이렇게 키운 건 특이한 경우였다.
매번 남의 병력을 빌려서 싸웠던 것!
‘검술이나 이렇게 오르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검술 특화 직업에 비하면 태현의 검술 스킬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랭커들 중 몇몇은 벌써 최고급 검술을 직전에 두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최고급 검술 스킬을 찍은 랭커가 있어도 놀랍지 않은 상황.
‘에이. 아이템이나 확인하자.’
크라켄을 잡고 나온 아이템들은 여러 가지였다.
일단 크라켄의 부위 아이템들부터 시작해서….
크라켄의 잘려나간 촉수:
크라켄의 끝에서 잘려나간 거대한 촉수입니다. 이걸 먹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크라켄의 거대한 눈:
크라켄의 몸통에 자리 잡고 있던 거대한 눈입니다.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끔찍합니다.
촉수, 눈, 몸통 덩어리 등등 각종 부위 아이템들이 나왔다.
원래라면 ‘요리해서 싫은 놈이나 줘야지’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몬스터 정수의 귀중한 재료!
태현은 소중하게 아이템들을 챙겨 넣었다. 옆에서 케인이 기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저러는 거야?’
해적왕의 낡고 녹슨 검:
내구력 10/10, 물리 공격력 5
<저주받은 거대한 크라켄>을 쓰러뜨린 사람만이 착용 가능.
스킬 ‘저주받은 유령 함대 소환’ 사용 가능.
낡고 녹슬었지만 한때 바다를 휩쓸었던 해적왕의 힘이 남아 있는 검이다.
해적왕의 부하를 소환할 수 있겠지만, 소환할 경우 검이 부서질 수도 있다.
“……!”
태현은 반색했다.
검 자체의 성능은 별로였지만, 안에 달려 있는 스킬이 상당히 강력해 보였던 것이다.
유령 함대 소환이라니!
퀘스트 깰 때도 좋았고, 싫어하는 놈 영지 가서 깽판 칠 때도 좋아 보이는 스킬!
‘<망령의 정수>나 <잊혀진 망자의 왕관>하고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망령의 정수>는 고대 신의 망령에게서 나온 아이템으로, 사용하면 <고대 신의 망령>으로 변신해서 사령술을 쓸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잊혀진 망자의 왕관>은 이세연과 스미스를 제치고 뺏은 아이템으로, 이것도 비슷해 보였다.
착용하면 저주가 걸린다는 점이 무서워서 착용해 보지는 못했지만!
역시 사용한다면 <망령의 정수>가 더 무난해 보이긴 했다. 일회용인 게 아쉬웠지만….
유령 함대를 이끄는 데에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게 분명!
촤아악-
“백작님! 올라오십시오! 거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
태현이 바다 위에서 아이템을 확인하고 있는 동안, 데메르 교단이 급하게 배를 몰고 왔다.
파이토스 교단의 함선은 박살 났지만 다행히 다른 교단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주변 바다에 빠져 있던 플레이어들과 파이토스 교단 NPC들이 허겁지겁 배 위로 올라갔다.
“헉, 헉헉.”
“바다 밑이 은근히 차갑잖아?!”
“나 회복 좀 시켜주세요, 사제님! HP가 지금 4%에요!”
“아. 네.”
친절한 데메르 교단 사제들은 솔선수범해서 플레이어들을 회복시켜주었다.
그러는 와중 후고 사제는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아까 잡히셨는데 많이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어… 어… 괜찮네.”
파이토스 성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걱정해 줬지만, 후고 사제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제 와서 죽일 수는 없으니, 태현은 아쉬울 뿐이었다.
‘생색이나 내야지.’
태현이 다가오자 파이토스 교단 NPC들이 기겁하며 앞을 막아섰다.
“김태현 백작님,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후고 사제님께서는 지금 많이 다치신 상태입니다!”
“차라리 저희한테 뭐라고 하십쇼!”
“…….”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벙찐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대체 뭘 했길래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지?
그러나 후고 사제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비켜서라.”
“사제님!”
“안 됩니다! 김태현 백작이 사제님을 죽일지도 몰라요!”
‘헉. 어떻게 알았지?’
태현은 살짝 찔렸다. 그러나 후고 사제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무례한 말을 하는 거냐. 아까 내 목숨을 구해준 걸 보지 못했느냐!”
“말도 안 되는….”
“김태현 백작이 그랬다고요?”
“야. 나 뒤에 있다.”
“힉!”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은 질색하며 물러섰다. 후고 사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소. 김태현 백작.”
“님.”
“…김태현 백작님.”
“그래. 호칭은 중요하지.”
“…이번에 목숨을 구해준 것, 감사합니다. 제가 그런 모욕을 했는데….”
“암. 감사해야지. 사람이란 무릇 은혜를 잊지 않아야지. 안 그러면 그게 짐승 아니겠어?”
“…그런데 그 망치는 어떻게 쓴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태현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파이토스 교단 앞에서 파이토스 스킬을 쓰는 건 좀….
어차피 죽을 놈이라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뭐 상관없지.’
태현의 화술 스킬은 이제 범죄를 저지르고 현장에서 체포당하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 수준이었다.
“봤으면 알 텐데? 위대한 파이토스 님께서 날 인정하시고 힘을 내려주신 거지.”
“말, 말도 안 되는! 어찌 파이토스 님이 다른 신을 믿는 사람한테….”
“직접 두 눈으로 보고서도 못 믿는다니. 저런.”
“……!”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
[후고 사제가 완전히 속아 넘어갑니다.]
털썩-
후고 사제는 좌절한 자세로 엎어졌다.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스킬 좀 더 써도 뭐라고는 안 하겠군.’
사디크 화염 쓴 것도 숨기고, 파이토스 스킬 쓴 것도 잘 이유를 붙이고, 완벽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군. 김태현 백작.”
“님.”
방심하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오는 후고 사제의 말투!
“…백작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만….”
“……?”
* * *
후고 사제는 매우 진지하고 엄중한 얼굴로 사실을 말했다.
안토니오에게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다미아노 2세를 노리고 있다고!
“안토니오가 누구더라?”
“그, 태현 님이 잡은 사디크 고위 NPC 있잖아요.”
“아. 그런 놈이 있었지. 아탈리 국왕의 삼촌이었나 뭐였나… 사디크 교단이 망해서 잊고 있었네.”
-주인님….
흑흑이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성기사단장 빼고 전부 다 박살 난 교단인데 그쯤이면 망한 거 맞지!
“걔가 왕을 노리고 있다고? 사디크 교단은 박살 나서 도와줄 놈들이 없을 텐데.”
“아마 다른 교단의 힘을 빌렸을 것 같습니다.”
“아마 사이비 교단이겠지. 부자가 둘 다 사이비 교단이나 믿고 잘하는 짓….”
말하던 태현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카르바노그가 사악한 신의 음모를 경고합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게 그거였나?
[카르바노그가 우쭐해합니다.]
‘맞았군! 그래서 그게 누구지?’
이건 딱히 대답이 없었다.
‘별로 도움이 안 되는군.’
[카르바노그가 화를 냅니다.]
태현은 무시하고 후고 사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걸 왜 국왕한테 말 안 하고 나한테?”
“그건… 교단의 다른 분들이….”
“국왕한테 원한 맺힌 게 많아서 말 안 한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러면 완전 반역자 놈들이잖아!”
“…김태현 백작님. 제가 이걸 말씀드리는 건 비밀입니다.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비밀이지~”
태현의 태도에 후고 사제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비밀을 지켜주는 게 맞겠지?
태현한테 진 빚도 있고, 안토니오의 아들도 솔직히 영 못 미더운 인물이라서 이 사실을 미리 경고해 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드는 불안감!
“뭐 더 아는 거 없나? 위치라든가 데리고 있는 병력이라든가.”
“안토니오의 아들, 도미닉은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백작님. 저희도 위치는 모르고요.”
“그런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게… 사람을 보내서 교단들에게 접촉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편을 들어준다면 왕위에 오를 경우 막대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난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
후고 사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농담하는 거겠지?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난 왜 그런 제안 못 받았는지 궁금해하면 안 되나?”
“아니… 백작님께서 안토니오를 죽이셨잖습니까….”
아버지를 죽였는데 절대 태현의 아키서스 교단과 손을 잡을 리는 없는 것!
“그거 때문에 제안을 안 하다니. 속 좁은 놈이군.”
“…….”
말하는 걸 들어보니 좋은 제안만 했다면 진지하게 반역도 고민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불안해진 후고 사제는 몇 번이고 다짐을 받으려고 들었다.
“저, 백작님. 비밀을 지켜주시고… 파이토스 교단에게는 피해 안 가게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후고 사제. 왜 날 못 믿나? 아까 자네를 포함해서 파이토스 교단 원정대가 다 내 명령을 거절하긴 했지만 난 그쪽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야.”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니. 내가 꼭 사과 받으려고 이러는 건 아닌데. 사과 받으니 기분은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