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07화
“공격하라니까? 내 말 안 들리냐?”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들어주지! 네가 마법사 아니라서 그러나본데 나 정도 되면 MP 관리 엄청 빡세게 한다고. 효과 없는 다른 스킬 쓰면 스킬 콤보가 꼬여!”
크로포드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크로포드가 지금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전체 MP 양을 체크하고, 다음 스킬 때 소모되는 MP 양을 확인하고, 쿨타임이 다 차는 스킬들 중 뭐를 써야 좋을지….
마법사 같은 직업은 이런 계산이 특히 어려운 편이었다.
근접전 직업보다 훨씬 더 머리를 필요로 하는 직업!
옆에서 정수혁이 감탄했다.
“와. 대단하십니다. 전 그냥 닥치는 대로 난사하는데.”
“하하. 겸손도.”
크로포드도 정수혁의 플레이 영상을 한 번 본 적 있었다.
대회 예선에서 무시무시한 컨트롤을 가진 마법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보러 간 것이다.
그때 보여준 정수혁의 센스는 정말 대단했다.
특히 상대방의 마법을 먼저 예측하고 카운터치는 반사 신경이 일품!
그런 마법사가 아무 생각도 없이 마법을 난사할 리가 없지 않은가?
“?”
“?”
“??”
“???”
“둘이 서로 눈 마주 보면서 뭐하냐? 어쨌든 크로포드. 화염 써라.”
“방금 말했잖아!”
“하하. 괜찮아.”
“왜?!”
“내가 널 구해준 거지 네가 날 구해준 게 아니니까. 싫으면 배에서 내려라.”
“…….”
이런 치사한 새끼!
크로포드는 속으로 욕을 했다. 그러나 상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교황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아키서스의 저주가 내립니다.]
“?!?!?!”
‘아니 뭔 자기보다 높은 위치의 플레이어 말 거역했다고 페널티 주는 교단이 어딨어!?’
태현이 교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플레이어 아닌가.
플레이어 말 안 들었다고 교단 페널티가 내려오다니!
[현재 걸려 있는 버프 중 하나가 사라집니다.]
[<현자의 마력 흡수> 버프가 사라집니다.]
[계속해서 거역할 경우 추가로 저주가 내려올 수 있습니다.]
<현자의 마력 흡수>는 그냥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매번 사용할 때마다 비싼 <상급 루비 가루>와 <남쪽 요정의 날개가루>를 써야 하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대신 그만한 값을 했다.
먼저 풀기 전에는 풀리지 않고, 소모되는 MP도 엄청나게 적은 편이었다.
각종 MP 회복 아이템을 덕지덕지 끼고 있는 크로포드에게는 우스울 정도.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버프를 날려 버리다니!
“아니 진짜 뭐 이런 교단이 있어?!”
크로포드는 말과 함께 움직였다. 더 이상 저주를 받을 수는 없었다.
“난 책임 못 진다!”
화르륵!
말과 함께 크로포드의 앞에 거대한 화염의 덩어리가 생겨났다.
-연속 화염 난사!
그 화염의 덩어리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다. 거기서 튀어나오는 각종 공격 화염 마법들!
‘이야. 부럽군.’
태현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마법사 플레이어의 저런 위력 넘치는 스킬들은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직접 가서 안 때리고 이렇게 폭격하듯이 퍼붓는 스킬들이라니.
완전 날로 먹….
“김, 김태현!”
“?”
“안… 먹히잖아!”
화염 공격을 연신 두들겨 맞은 크라켄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크로포드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크으윽!’
크로포드는 굴욕감을 느꼈다. 몬스터한테 이런 굴욕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뭐야, 크로포드 지금 화염 마법 쓴 거야? 자기가 아무리 화염 마법 전문이라도 그렇지….”
“저 몬스터한테 화염 마법 쓰는 놈이 어디 있어?”
“아까 앨콧도 그렇고 둘이 약간 좀 모자란 것 같다.”
웅성거리는 다른 플레이어들.
크로포드의 얼굴이 입고 있는 옷 색깔만큼이나 붉어졌다.
“야!!”
“아. 거 되게 땍땍대네. 알겠어. 해결해 주면 될 거 아냐.”
태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도망치려는 흑흑이의 발목을 붙잡았다.
-하… 하하. 주인님. 그게 제가….
-너 이 자식. 화염이 약점이라며?
-그게… 제가 썼을 때는 잘 먹혔는데….
“!”
태현은 뭐가 문제인지 깨달았다.
크로포드와 흑흑이의 차이점이라면 화염의 속성밖에 없다!
-젠장. 말을 제대로 해줬어야지. 사디크의 화염이라서 통하는 거였군.
-앗! 그런 것 같습니다!
-고맙다. 빨리 말해줘서. 가서 저놈이 불 끄기 전에 사디크의 화염으로 바꿔버려. 할 수 있지?
랭커인 크로포드가 전력을 다해 쏘아낸 화염 마법 콤보는 약하지 않았다.
크라켄의 몸에 붙은 화염은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
-할 수는 있는데… 그런데 날아갈 수가 없잖습니까. 가까이 붙어야….
-하하.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내가 해결해 줄게.
태현의 말에 흑흑이는 갑자기 불안해지는 걸 느꼈다.
* * *
-크아아아아아아!
사디크의 마수이자 블랙 드래곤의 포효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크라켄의 움직임이 잠시 멈춥니다.]
[상태 이상이 해제됩니다.]
[일시적으로 공포 상태에 면역됩니다.]
“김태현 데리고 있는 펫이지?”
“와, 좋은 펫 데리고 있네.”
어떤 펫이냐에 따라 쓸 수 있는 스킬들이 달라졌다.
그런 면에서 태현의 펫들은 겉으로 봐도 매우 희귀하고 강력해 보이는 펫들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이건 아닙니다!
태현은 흑흑이를 옆구리에 끼고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날지 못하는 흑흑이를 크라켄에게 갖다 붙이려면 이 방법이 제일!
흑흑이는 애처롭게 비명을 질러댔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공짜 버프를 얻었다.
“자, 가라!”
-퀘에에엑!
태현이 가까이 다가오자, 크라켄은 태현을 알아보고 분노한 기색을 눈빛에 띄웠다.
즉시 함선을 때리던 공격을 멈추고 태현을 노리는 크라켄!
그러나 태현이 한발 앞섰다. 흑흑이가 재빨리 크라켄에게 붙어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화염이여, 바뀌어라! 사디크의 화염으로!
화르륵!
크라켄의 몸에 붙어 있던 화염의 색이 검게 변하더니, 크라켄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케에에에에에엑!
[크라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넣었습니다!]
[놈이 발광합니다. 주의하십시오!]
“모두 공격 대비!”
플레이어들은 보스 몬스터가 뿌려대는 공격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태현의 외침에 그들은 곧바로 대비했다.
-어떤 공격이든 간에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대응할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크라켄을 노려보았다. 자, 어떻게 할 거지?
-퀙! 퀘에엑! 퀘에에에엑!
“어?”
발광하는 크라켄은 더 이상 태현만을 노리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 중 커다란 것들을 연속적으로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크라켄은 빠르게 다가와 촉수로 함선을 통째로 묶어버렸다.
“미… 미친.”
“뭐해! 공격해! 놈이 약해졌잖아!”
“알, 알겠어!”
파이토스 교단, 야타 교단 NPC들과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크라켄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퍼퍼퍽! 퍼퍼퍼퍼퍽!
[크라켄이 괴력으로 배를 부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막으십시오!]
“결계가 10%도 남지 않았습니다! 곧 깨집니다!”
“이 자식 뭐 잘못 먹었나 왜 이래!”
발광하는 크라켄은 공격을 막아내거나 피하지도 않았다.
플레이어들의 공격을 깡체력으로 받아내며 배를 부수려는 집념!
수비를 포기한 보스 몬스터의 공격에 플레이어들은 기겁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결계가 깨질 것 같았다.
“와. 효과 좋군.”
그러는 사이, 배에서 멀어져 있던 태현은 휘파람을 불며 크라켄의 뒤로 접근했다.
아까부터 계속 크라켄이 태현만 노려봐서 뭘 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기회가 온 것이다.
“가자!”
탓, 탓, 타앗!
곡예라도 하는 것처럼 태현은 크라켄의 촉수를 타고 달려가 스킬을 사용해 도약했다.
발광하는 크라켄의 몸은 미친 듯이 요동쳤지만 태현은 신경을 집중해 곡예를 성공했다.
[믿을 수 없는 난이도의 곡예를 성공했습니다. 민첩이 오릅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크라켄의 머리 위에 오른 태현은 신나게 딜을 넣기 시작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이 미친 듯이 휘둘러졌다.
[아키서스 검법으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데 성공합니다. 추가로 저주가 발동됩니다.]
아키서스 검법의 힘은 대단했다.
계속 바뀌는 약점을 노리는 게 성가시긴 했지만 성공시킬 때마다 치명타를 포함해 강력한 저주가 들어갔다.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행운 스탯을 소모해 강력한 연속 공격을 퍼붓습니다. 스킬 레벨이 높아질수록 연속 공격의 시간이 길어집니다.]
방해받지 않고 딜을 넣는 태현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함선이 부서질까 봐 이리 뛰고 저리 뛰던 플레이어들도 넋을 잃고 쳐다볼 정도로.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다!’
‘대회 우승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긴 하구나.’
‘그런데 저 자식 우리는 안 도와주나?’
“김태현! 이 촉수 좀 어떻게 해줘!”
-주인님. 도와달라는데요? 가서 잘라낼까요?
흑흑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금 크라켄은 고통 때문에 함선을 박살 내는 것만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가서 사디크의 화염으로 크라켄의 촉수를 끊는 걸 도와줄 수 있었다.
“아니. 그냥 데미지나 넣자. 저거 어차피 촉수 잘라봤자 데미지도 별로 안 들어가잖아. 거기에 불 지를 거면 몸에 질러야지.”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질렀다.
“김태현! 도와줘!”
“으아아! 배가 부서진다!”
첨벙, 첨벙!
몇 명은 재빨리 배를 버리고 탈출했다. 여기 계속 있어 봤자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진짜 안 도와줘도 돼?!”
“이걸 잡는 게 도와주는 거지.”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어차피 저기 있는 놈들은 죽어도 별 상관없는 놈들!
파이토스 교단, 야타 교단, 거기에 오늘 처음 본 플레이어들….
와드드득!
비명과 같은 소리가 배에서 터져 나오고, 크라켄이 기어코 함선을 찢어발겼다.
[크라켄이 파이토스 교단의 함선을 찢어발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크아악! 파이토스 님!”
“용기를 주소서!”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 세 명이 죽었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파이토스 교단 사제 두 명이 죽었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배가 박살 나자 끝까지 버티고 있던 사람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크라켄은 닥치는 대로 촉수를 휘둘렀다.
플레이어들의 공격을 몸으로 그냥 받아낸 데다가, 태현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한 크라켄의 상태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크라켄의 HP가 10% 밑으로 떨어집니다.]
[<괴수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괴수 몬스터답게 크라켄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멀쩡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무서운 발광 공격!
“으아아앗!”
“!”
비명이 튀어나오고, 크라켄이 배의 잔해에서 촉수로 한 명을 붙잡았다.
파이토스 교단의 후고 사제였다.
“이… 이놈! 놓아라!”
후고 사제는 방어막을 몸에 치고 버티고 있었지만, 크라켄의 힘을 상대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바로 짜부라질 것 같은 기세!
순간 후고 사제와 태현의 눈이 마주쳤다.
“…….”
“…….”
휙!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태현! 딜 넣기도 바쁜데 후고 사제 구해줄 시간은 없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후고 사제는 울컥했다.
“저런 저주 받을… 네놈의 아키서스는 오래 가지 못할 거다! 아키서스를 믿는 놈들은 모조리 욕망에 눈이 멀어서 파멸할 것이고….”
묘하게 현실적인 저주!
이상하게 그럴 것 같아서 태현의 기분이 나빠졌다.
“거 알아서 죽을 거 같아서 내버려 뒀는데 매를 버네.”
-망치 던지기!
태현은 파이토스 교단 훈련장에서 얻은 스킬을 사용해 후고 사제에게 집어 던졌다.
안 그래도 미운 놈, 보낼 때 확실하게 보내려는 생각이었다.
퍽!
[<망치 던지기> 스킬로 크라켄의 촉수를 정확하게 잘라내는 데 성공합니다!]
[파이토스 교단의 후고 사제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파이토스 교단과의 관계가 아주 조금 회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