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03화
그리고 김태산의 <최강지존무쌍> 길드가 영지를 해체하고 있다는 소식은 곧 길드 동맹의 귀에도 들어갔다.
판온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자기들 손으로 직접 영지를 해체하는 장면!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우리한테 밀리고 있으니까 뺏기기 전에 먼저 부수고 튀려는 거 아닌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자기 영지를 다 부수고 튄다고?”
길드 동맹의 간부들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하는 게 맞기는 했다.
언젠가 함락될 영지라면 괜히 버티다가 길드원도 죽고 시설도 뺏길 바에는 그냥 지금 다 해체하고 빠져나가는 게 더 나았다.
그렇지만 사람은 원래 그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김태산과 그 길드가 영지에 쏟아부은 돈이 대충 현실 금액으로 몇십억이 넘어가는 수준인데…….
그걸 그냥 포기하고 튀다니!
쑤닝은 오랜만에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태현을 상대할 때 느끼는 공포와 비슷했다.
‘젠장, 아들놈이나 아버지나 다 미쳐 가지고…….’
“쑤닝 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 아. 음.”
쑤닝은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이제 쑤닝의 심복이나 마찬가지인 다른 간부들이 그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간에 잘된 일이다. 놈들과 공성전을 벌여야 했다면 우리 피해도 만만치 않았겠지. 그럴 힘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게 됐다. 길드 공식 동영상에 이번 일을 잘 홍보해라. 다른 놈들도 겁을 먹고 항복하게 만들어야지.”
오스턴 왕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반 길드 동맹 세력인 김태산의 길드가 겁을 먹고 도망쳤다!
이 사실만으로도 다른 길드들은 망설이게 될 것이다.
계속 싸워야 하나? 아니, 김태산의 길드도 도망쳤는데 우리도 그냥 빨리 포기하고 항복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식으로 망설이게 되면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일이 몇 배로 편해졌다.
목표는 일 년 안에 오스턴 왕국의 통일!
“쑤닝 님. 한 가지 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오. 뭐지?”
“성에 틀어박혀 있던 리치 체세도 놈이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움직이려고 한답니다.”
“……!”
현재 길드 동맹의 눈엣가시 중 하나, 리치 체세도!
태현이 폭풍처럼 쳐들어와서 한바탕 영지를 휩쓸고 당당히 떠난 그 굴욕을 길드 동맹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떠난 것도 그냥 떠난 게 아니었다.
어디서 보기 힘든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성에 드랍하고 간 것이다.
길드원 몇 명이 공격대를 모아 공략을 시도해 봤지만 깔끔하게 전멸!
체세도를 잡으려면 길드 동맹도 나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만 드러난 셈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오스턴 왕국에는 김태산 같은 길드들을 포함해서 오스턴 왕가까지 상대해야 할 적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서쪽으로 가면 에랑스 왕국.
북쪽으로 가면 잘츠 왕국.
남쪽으로 가면 아탈리 왕국.
동쪽으로 가면 우르크…….
‘개인적으로 남쪽으로 가줬으면 좋겠는데.’
가는 길에 김태현 영지와 만나서 파괴와 약탈이나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체세도는 쑤닝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동쪽으로…….”
“동쪽? 우르크 지역인가. 뭐, 떠나주는 게 낫겠지.”
“그런데 놈이 가면서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습니다.”
“…….”
체세도는 그동안 안에서 버티면서 언데드 군대를 소환하고 강화시키고 있었다.
그 언데드 군대가 필드를 지나가면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얼마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놈이 성이나 도시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만 아니면 내버려 둬! 중요한 건 영지니까. 다른 피해는 감수할 수 있다.”
“예!”
쑤닝은 명령을 내린 후 다시 외쳤다.
이제는 길드 동맹의 표어처럼 되어버린 말!
“오스턴 왕국의 통일을 위해!”
“오스턴 왕국의 통일을 위해!”
“큰, 큰일 났습니다!”
“뭐냐?! 체세도가 설마 영지라도 공격하기 시작했냐?”
체세도가 만약 영지를 공격했다면 쑤닝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성 안에 있을 때나 무서웠지, 성 밖에서 포위된 체세도는 한계가 있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반드시 포위해서 섬멸해주마!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김태산과 그 오크 놈들이…….”
“???”
길드원은 설명 대신 동영상을 켰다.
그러자 쑤닝과 간부진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콜록, 콜록, 콜록…….”
[<붉은 역병 저주 폭탄>을 터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주변의 땅은 이제 화염 속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자연적으로 발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악명이 미친듯이 크게 오릅니다!]
[<녹색 역병 저주 폭탄>을 터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주변의 공기는 이제 독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주변을 지나갈 경우 중독될 수 있습니다.]
[악명이 미친듯이 크게 오릅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콜록, 콜록!”
“야. 방독면 써!”
<기계공학으로 만든 조잡한 고블린 방독면>.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모두 방독면 하나씩 쓰고서 주변에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보람찬 미소가 가득했다.
물론 뒤에는 폐허만 가득했지만.
“……진짜 미친놈들인가…….”
“형님. 태현이가 저런 놈들이랑 놀아도 됩니까?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태현이가 저런 놈들의 시초긴 하지……. 쟤네들 롤모델이 태현이라며…….”
“쉿. 그렇게 말하면 형님 기분이 어떻겠어.”
“…….”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기름진 영지가 역병 지대로 바뀌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많은 역병 폭탄이 터졌습니다. 역병들이 뒤섞여 랜덤 효과가 발생합니다.]
[알 수 없는 역병이 이 주변을 휩씁니다.]
“다 끝났습니다.”
“그, 그래.”
김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의 행복한 표정이 솔직히 좀 많이 무서웠다.
“더 터뜨릴까요?”
“아니. 우리는 곧바로 우르크 지역으로 출발해야 해서…….”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주십쇼! 어디든지 가서 터뜨리겠습니다!”
“그…… 그래. 알겠네.”
* * *
아란티스 왕국에 새로운 낚시꾼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오스턴 왕국에는 역병 지대가 생기는 동안, 태현은 원정대를 이끌고 항해하고 있었다.
파이토스 교단을 괴롭히면서.
“아니. 후고 사제는 이런 일 하나 제대로 못 하나? 응?”
3초마다 한 번씩 파이토스 교단을 갈구는 태현!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과의 친밀도가 더 이상 하락할 수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는 친밀도까지 모조리 깎아 먹어서 화술 스킬로 바꾸는 태현!
근처에 있던 태현 일행이 ‘좀 심하지 않냐?’ 싶을 정도!
결국 파이토스 교단 사제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소심하게 반항했다.
“김태현…… 백작님의 지도가 맞는 건지는 아직 확인된 게 아니잖습니까…….”
“지금 내 의견을 무시하는 건가? 응? 원정대를 이끄는 대장이자 아란티스 왕국에 평화를 이끌고 온…….”
“…….”
“아. 다 왔군.”
태현은 진짜 지도를 들고 다시 한 번 위치를 확인했다.
아란티스 왕국에서 한참 더 남쪽으로 항해를 하고 나서야 도착한 위치!
“…….”
“…….”
파이토스 교단을 포함해 다른 교단 NPC들과, 태현 일행이 전부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하는 눈빛!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안 쓰여 있잖아?’
수면을 보니 평화롭고 잔잔했다.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태현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을 하나 갖고 있었다.
-신의 예지!
파앗!
신의 예지는 지금 가장 좋은 곳과 가장 위험한 곳들을 보여주었다.
“……?”
좋은 곳은 배에서 모든 방향으로 뻗어져 나가 있었고.
나쁜 곳은 바로…….
배 위였다.
“애들아!”
“??”
“뛰어!”
태현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명령했다. 최상윤, 이다비, 정수혁은 재빨리 태현의 말에 따라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어? 어?”
케인은 뭔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다가 허둥지둥 뒤따라 뛰려고 했다.
그러나 반응이 늦었다.
[<해적왕의 영원한 유배지>의 수호자, <저주받은 거대한 크라켄>이 나타났습니다!]
[바다의 신화적인 거대한 괴수를 보았습니다. 항해 스킬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저주받은 거대한 크라켄>을 저 자리에서 치우지 않는 한 <해적왕의 영원한 유배지>로 들어갈 수 없을 겁니다!]
와지끈!
크라켄의 몸통은 교단 함선 몇 척을 합친 것만큼이나 컸다.
거기서 뻗어져 나온 촉수들은 그대로 파이토스 교단이 타고 있는 함선을 관통했다.
기습적인 일격에 교단의 함선 가운데가 그대로 쪼개져 나갔다.
[<파이토스 교단의 탐험선>이 반파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수리하지 않으면 부서집니다!]
‘늦었어. 내 배 아니라서 다행이다.’
태현은 재빨리 배 상태를 확인했다. 거대한 바다 괴수가 덤비는 상황에서 저 정도 타격이라니.
지금 수리할 수는 없었으니 침몰이 확실했다.
물론 파이토스 교단 입장에서는 욕이 나올 생각이었다.
“으아악!”
“으아아아앗!”
비명과 함께 파이토스 교단 NPC들이 와르르 바다에 떨어졌다.
다행히 다른 교단의 함선은 급히 방향을 틀어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언령 스킬을 연습해둬서 다행이야. <공중 부양>, <공중 부양>, <공중 부양>, <공중 부양>!”
태현은 재빨리 일행을 공중에 띄운 다음 남아 있는 함선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파이토스의 물 위 걷기!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재빨리 수상 보행 주문을 걸고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저런 괴수와 헤엄치면서 싸울 수는 없는 법.
“봤냐, 파이토스 교단! 내가 제대로 된 곳에 왔지!”
“지,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닙니다, 백작님! 저놈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파이토스 교단. 나를 믿나?”
“아니오!”
“그래. 나를 믿고……. 응?”
“당신은 도저히 믿을 수 없소! 우리끼리 알아서 싸우겠소!”
[파이토스 교단의 친밀도가 최대로 하락한 상태입니다.]
[파이토스 교단이 당신의 지휘를 거부합니다.]
평소라면 다른 교단들을 선동해서 파이토스 교단을 짓밟았을 테지만…….
지금은 크라켄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
“후고 사제. 뒷감당할 자신은 있나?”
“어떻게 되든 간에 저놈만 잡으면 되는 거 아니오! 모두들 모여라!”
후고 사제는 괜히 고위 사제가 아니었다. 재빨리 버프를 걸더니 그를 중심으로 공격대 구성을 짜기 시작했다.
방패 든 성기사들이 앞으로, 사제들이 뒤로.
-신성한 망치의 일격!
콰앙!
-꿰에에에엑!
한 대 얻어맞은 크라켄이 분노한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태현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미끼 역할 하라고 하려 했는데 알아서 잘 해주잖아?’
굳이 명령을 안 내려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하는 파이토스 교단!
“김태현! 김태현!”
갑자기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
“……?”
“내려줘!”
“……넌 왜 거기 있냐?”
케인이 크라켄의 촉수에 묶여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상윤아. 좀 구해줘라.”
“오케이.”
탓!
최상윤은 재빨리 드러낸 크라켄의 몸통 위로 달려들었다.
-경쾌한 발걸음, 연속 이동, 출혈의 일격!
촤아아아악!
[크라켄의 촉수 끝을 잘라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검이 점액질로 물듭니다. 한동안 베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
최상윤은 당황해서 외쳤다. 이런 식의 디버프라니. 검사 직업에게 이건 치명적이었다.
“태현아, 무기 버프……. 너 뭐 하냐?”
빠르게 달려가서 바다에 떨어지는 촉수 끝을 재빨리 챙기는 태현!
몬스터 정수를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이거 귀한 재료라서.”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