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00화
‘에이. 아쉬워라.’
태현은 던전 앞을 기웃거렸지만 그런다고 굳게 닫힌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앗! 백작님! 돌아오셨군요!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데메르 교단 사제가 돌아온 태현을 보고 달려왔다.
“유배지를 찾으신 겁니까?”
“아니.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은데? 후고 사제를 부르도록.”
* * *
“파이토스 교단의 고위 사제라는 사람이! 어떻게! 위치를 잘못 찾을 수가 있나!”
“…….”
후고 사제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태현은 다른 교단의 사제들도 들으라는 듯이 외쳤다.
“거기 안에 있는 드래곤에게 물어봤더니 유배지는 여기가 아니라더군. 거기 드래곤이 성격이 좋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기 원정대는 다 죽었을 수도 있었어.”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이 주변도 더 확인해 봐야…….”
후고 사제가 항의했지만 다른 교단 사제들은 슬슬 발을 뺐다.
그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저희는 아닙니다.”
“저희는 백작님의 지휘에 따르겠습니다.”
“?!?!”
재빠른 발 빼기!
후고 사제가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그들은 시선을 피했다.
‘자기가 실수를 해놓고 저러면 안 되지.’
‘김태현 백작의 지휘권을 뺏으려고 해도 저러면 뺏을 수가 없잖아.’
솔직히 지도를 잘못 찾아서 왔다는 것 자체가 뭐라고 할 말 없는 실수였다.
그들은 태현이 후고 사제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물어뜯겠지!
그렇지만 아니었다.
“음……. 그러면 어쩔 수 없지.”
“???”
“후고 사제가 그렇다니까 좀 더 확인해 보자고. 각 교단에서 성기사들 좀 내놔봐. 이 주변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다 들어가서 확인할 테니까.”
“……아, 아니. 그렇게까지…….”
후고 사제는 당황해서 말리려고 들었다. 더 찾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만큼 곤란해지는 것이다.
“왜. 자신 없나?”
* * *
“에이! 이래서는 끝이 안 나겠다! 주사위 굴려서 결정하자. 모두 주사위 굴려!”
“파티장님. 믿습니다!”
“걱정 마! 내가 행운이 무려 50을 넘는다고.”
“헉. 쟤 행운이 50 넘는다는데?”
“속지 마. 50이나 10이나 그게 그거야. 의지로 굴려!”
느레가 이끄는 파티는 아직도 왕궁 앞에서 떠들고 있었다.
원래라면 왕국 곳곳에 있는 전사들이 몰려오기 전에 재빨리 치고 빠져야 했지만, 그것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유 회장이 독하게 마음먹고 명령만 내렸다면 그들도 포위당해서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저것들 뭐 하냐?”
덕분에 성기사들을 우르르 끌고 온 태현은 느레 일행을 보고 황당해했다.
태현이 생각한 건 왕궁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격을 퍼붓는 플레이어들이었는데…….
지금 보이는 건 왕궁 앞에서 웬 주사위 시합이나 벌이는 모자라 보이는 놈들!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공격!”
[원정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원정 목적에 맞지 않는 일에 명령을 내릴 경우 신뢰도와 평판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락할 경우 지휘권을 잃을 수 있습니다.]
상관없는 짓에 원정대를 쓰지 말라는 경고!
물론 태현에게는 무의미한 경고였다.
“저 사악한 놈들을 보니 저주받은 유배지에 대해 뭔가 아는 게 분명하다. 전부 공격!”
[최고급 화술을…….]
[페널티가 사라집니다.]
태현이 말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무기를 뽑는 성기사들!
“뭐야?!”
“공격이다!”
그제야 뒤에서 성기사단이 나타난 걸 깨달은 플레이어들!
“쫄지 마! 어차피 이런 곳에 나타나는 성기사는 레벨이…….”
“레벨이?”
“어…….”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달려오는 성기사에게 레벨 측정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말문이 막혔다.
‘레벨이 250이면……. 하급 성기사는 절대 아닌데?!’
교단에서도 보기 드문 고위 NPC!
“몇인……. 컥!”
쾅!
그러는 사이 성기사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돌격을 성공시켰다.
묵직한 돌격에 경로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튕겨 나갔다.
[<자비심 없는 돌격>에 당했습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신앙의 징표 디버프에…….]
“크억!”
“잠. 잠깐! 나도 파이토스 교단 믿는데!”
플레이어 중 같은 교단을 믿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속지 마라! 저놈 사디크 교단이다!”
“???”
“나는 야타 교단이라고!”
“저놈은……. 그래. 저놈은 아키서스 교단이라고 하자. 저놈은 아키서스 교단에 있다가 나온 배신자다!”
촤촤촥!
같은 교단이라고 봐주는 건 없었다. 순식간에 성기사들은 파도 가르듯 플레이어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태현 님 만세! 흑흑!”
왕궁 안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느레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이런 치사한 아저씨 같으니, 이걸 노리고 있었나!”
유 회장은 자기를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느레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냥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가고 멍청하게 굴다가 날려 버린 놈이 뭐라는 거야?
“야, 이놈아. 내가 와서 가져가라고 했잖아!”
“이……. 이……. 아직도 날 조롱해? 이 원한은 절대 잊지 않겠다!”
느레는 그렇게 말하고 도망치려고 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두들겨 맞는 사이 도망치면 그만…….
“응?”
“안녕?”
“어……. 누구?”
“누구겠냐.”
태현은 대만불강검을 들어서 느레를 겨누며 말했다.
느레는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김태현?”
“잘 맞췄네.”
느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옆에 있던 동생 느페가 속삭였다.
“형, 어쩌죠? 김태현이면…….”
“조용히 하고 있어. 이 형이 하는 걸 잘 봐라.”
느레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탕탕 쳤다.
“오냐, 김태현. 너하고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네가 그렇게 유명한데 그게 진짜 실력인지 아닌지 알아보겠다!”
느레는 그렇게 말하며 넓적한 대형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금 방송하냐?”
“…….”
“헉. 어떻게 아셨…….”
“그걸 왜 대답해 줘 멍청한 새끼야!”
느레는 느페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폼 좀 잡으려는데 그걸 깨는 태현이나, 받아주는 동생이나…….
느레는 힐끗 개인 방송 창을 훑어보았다.
실제로 태현이 나오자마자 뜨거운 반응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무단: 와! 김태현이다!
-공사: 느레 님 큰일 난 거 아님?
-님아닝쑤: 김태현 죽여! 동귀어진이라도 해! 이 자식아!
이제 여기서 멋진 모습 좀 보여주고 도망치기만 하면 한 달 정도는 판온 게시판에서 화제가 될 수 있을 텐데…….
“태현 님! 그 자식 방송 화면에 잡혀주지 마요!”
“그 새끼 화면에 나오지 말아주세요!”
뒤에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질투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태현이 한 번 화면에 나오기만 하면 방송 시청자 숫자가 두 배로 뛴다는 소문이 있었다.
약간 과장된 게 있겠지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그게 소문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안 나오고 어떻게 싸우라고?”
“그, 그러게요.”
“야! 느레! 치사하게 생방송 하지 마라! 우리는 다 기다렸다가 방송하는데! 넌 상도덕도 없냐 이 도둑놈아!”
“쟤 직업 산적이잖아. 도둑이라고 해봤자…….”
“…….”
느레는 귀를 씻고 싶었다. 그가 직업인 산적이지만 나름 폼을 잡고 다니는 랭커였다.
파워 워리어 길드 같은 이상한 놈들에게 저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다!
“김태현, 정정당……. 컥!”
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너무 큰 데미지를 입어서 잠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급소에 찔렸습니다. 출혈 상태에 걸립니다.]
느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잠깐 고개를 뒤로 돌린 사이 태현이 번개처럼 다가와 공격을 찔러 넣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현의 입에서 스킬 이름이 하나 더 튀어나왔다.
-칼날 폭파!
“잠…….”
카드득!
몸통에 박힌 태현의 대만불강검이 쪼개지더니, 눈 부신 빛과 함께 폭발했다.
“크아아아아악!”
하나하나가 강렬한 데미지를 입히며 들어가는 검의 파편!
느레의 개인 방송에서는 다들 탄식했다.
-님아닝쑤: 아니, 이 멍청한 놈아! 김태현 상대하면서 뒤돌아보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러나 느레는 그런 반응을 볼 여유도 없었다.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던 것이다.
퍽, 퍽, 퍼퍽-
“잠, 김, 잠, 김…….”
“뭐라는 거야 저거?”
“잠깐, ‘김태현’이라고 하려는 거 아닐까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기 시작했다.
태현한테 두들겨 맞는 랭커들은 언제나 봐도 보기 좋았던 것!
“안, 안 돼……!”
설마 여기서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느레!
산적 같은 PVP 성향 직업들은 죽었을 때도 페널티가 심했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후. 질기군.”
태현은 깔끔하게 느레를 털어버린 후 아이템을 챙겼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와, 이 자식 뭐 이렇게 많이 뿌리지?”
태현은 놀라서 느레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PVP를 얼마나 하고 다닌 거야?
물론 단순히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한 페널티도 있긴 했지만, 태현의 어마어마한 행운도 있었다.
거의 느레를 다 털어먹은 수준!
호다닥-
“음?”
저 멀리서 도망치는 플레이어 몇몇이 보였다.
느레의 동생 느페도 거기 끼어서 도망치고 있었다.
태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동생이 더 똑똑한 것 같은데.”
* * *
“어르신! 제가 구하러 왔습니다!”
“구하러 올 필요 없는데.”
“하하. 쑥스러우셔서 그러는 거군요?”
“저리 가라. 이놈아.”
유 회장은 태현을 밀어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흐뭇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쑥스러우셔서 저러는 거구나!
하하하!
“나는……. 여기서 갇혀 있는 동안 너희들은 재밌게 놀겠지…….”
“어르신. 좋게 생각합시다. 어차피 어르신은 낚시를 가장 많이 하시는데 바다에서만 있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낚시 좋아해도 육지 못 올라가는 게 말이 되냐! 땅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뭐가 있죠?”
“상점도 있고, NPC들도 있고……. 플레이어들도 거기 있고…….”
“어차피 어르신도 왕국 생기셨는데 거기다가 짓고 부르면 되잖습니까?”
“어…….”
유 회장은 말문이 막혔다. 태현은 은근한 말투로 속삭였다.
“기왕 왕국 얻으셨는데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리시기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잘 활용하셔야죠.”
“으음…….”
유 회장은 생각에 잠겼다.
만약 왕국을 꾸민다면 어떻게 꾸며야 하는가?
아란티스 왕국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대륙의 다른 왕국에 비하면, 그냥 좀 커다란 영지 수준!
그렇지만 대륙의 다른 곳에 비하면 압도적인 장점이 있었다.
바닷속에 있다는 것!
‘낚시꾼들의 왕국이 좋겠군.’
낚시 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다 여기 와서 낚시를 하게 되는, 낚시꾼들의 천국!
‘낚시꾼 관련 건물들만 다 지어버린 다음에…….’
유 회장이 이런 살벌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예상 못 한 채, 태현은 계속해서 유 회장을 꼬드겼다.
“그렇습니다. 어르신. 어르신의 막강한 재력이라면 여기에 강력한 왕국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흐으음……. 확실히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미 세금을 100%로 했는데.”
“……그, 그런 짓을 하셨다고요?”
태현도 살짝 당황했다. 아니, 태현의 영지는 세금을 거의 없다시피 운영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배짱?
“내리시면 되죠.”
“음.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내리면 좀 창피하군.”
“……조금 있다가 내리시면 되죠. 다른 방법으로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면 됩니다.”
“예를 들면?”
“오스턴 왕국의 길드들 영지 보면 쉬우실 겁니다. 새로 시작하는 플레이어들한테 골드를 지원한다거나, 아이템을 지원해 준다거나, 좋은 건물을 건설하고 고렙 NPC들을 모셔온다거나…….”
“낚시꾼으로 전직하면 전액 지원 같은 걸 말하는 거군.”
“……그,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