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96화
파이토스 사제 한 명이 탐색 마법을 편지에 사용했다.
“음……. 신성함과 사악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뭐야. 지금 나 못 믿고 편지 확인한 거냐?”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혹시 몰라서…….”
파이토스 사제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덕분에 왜 편지에서 사악함이 느껴지는지는 물어볼 수도 없었다.
“자! 빨리 들어가서 죽……. 아니,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방금 ‘죽’이라고 하셨…….”
* * *
태현과 일행들이 중앙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이세연도 그녀의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앙 대륙의 남쪽에 있는 프리카 대륙!
중앙 대륙보다 비교적 밝혀진 게 적고, 아직 탐험할 게 무궁무진한 곳이었다.
판온의 랭커들을 크게 나누면 길드 동맹처럼 중앙 대륙에서 세력 다툼을 하거나, 중앙 대륙이 아닌 다른 곳에서 퀘스트를 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이세연은 전형적인 후자!
중앙 대륙의 왕국 안에서 움직이는 게 아닌, 밖에서 미지의 퀘스트를 찾아내고 보상을 받는 게 훨씬 더 재미있고 보람 있었던 것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소수 정예 길드에 소속된 랭커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움직였다.
“캬아아악! 죽어라, 침입자!”
-주인님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어두컴컴한 숲.
나무 사이에서 뱀파이어 전사들이 튀어나와 이세연의 언데드 군대들을 공격했다.
숫자는 적었지만 이세연이 불러낸 언데드들은 정예 중의 정예.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스켈레톤 전사나 궁수, 구울 전사나 궁수를 몰고 다닐 때 이세연은 데스 나이트는 기본이고 온갖 강화 골렘까지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적은 숫자만 보고 덤벼든 뱀파이어 전사들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콰직, 콰직!
-고대 피의 저주, 혼란의 눈!
불러낸 언데드 부하들이 싸우는 사이 뒤에서 저주를 날리는 이세연.
전술 자체는 평범한 네크로맨서의 정석이었다.
그렇지만 평범한 전술도 이세연 같은 최상위권 랭커가 펼치면 결과가 달라졌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 가장 강력하다!
별다른 꼼수도 쓰지 않고, 이세연은 <저주받은 피의 숲>에 있던 뱀파이어 전사들을 모두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언니, 대단해요!”
“뒤, 현아야, 뒤!”
“보고 있어요!”
김현아는 재빨리 돌아서서 뱀파이어 암살자를 후려갈겼다.
은신 상태에서 뒤를 노리던 뱀파이어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방심 안 했어요.”
“그래. 잘했어.”
이세연은 숲 가운데에 있는, 칙칙한 붉은색의 제단을 쳐다보았다.
제단 위에 꽂혀 있는 불길한 모양새의 검!
이 검이 이번 퀘스트의 최종 목표였다.
<저주받은 네크로맨서의 영혼이 담긴 검을 찾아라-네크로맨서 퀘스트>
저주받은 피의 숲에는 불길한 검에 대한 소문이 떠돈다.
그 검을 가질 수 있다면 강력한 원혼들을 부릴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 검을 욕심 내는 건 당신 혼자뿐만이 아니겠지만…….
보상: ?, ???, ????
이 검이 있는 숲을 찾기 위해 몇 단계의 퀘스트를 거쳤는지 몰랐다.
게다가 도중부터는 이상한 뱀파이어 교단까지 나타나, 이세연도 길드원들을 불러야 할 정도였다.
“좋아. 뽑는다?”
끄덕-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만 뽑으면 퀘스트의 끝!
[<저주받은 네크로맨서의 영혼이 담긴 검>을 뽑았습니다.]
[타락한 흡혈귀들의 교단, 살라비안 교단이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도망치십시오!]
메시지창을 본 이세연은 다급하게 물었다.
“살라비안 교단이 뭐 하는 교단이지?!”
“어……. 거기…….”
길드원 중 판온 역사와 지식에 대해 빠삭한 길드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해 내려고 노력했다.
“거기 사라진 교단 중 하나인데?! 흡혈귀들 위주에, 악신 교단이고. 중앙 대륙에서 쫓겨난…….”
-캬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분노한 뱀파이어의 포효를 들었습니다!]
[상태 이상…….]
-진정한 어둠의 가호!
[<진정한 어둠의 가호>로 모든 상태 이상에서 풀려납니다.]
이세연은 재빨리 저주를 카운터치고 길드원들을 모았다.
“빠져나가자!”
-감히 우리의 물건을 건드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오로지 죽어서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콰콰콰쾅!
숲의 한쪽이 폭발하더니, 순간이동 포탈이 생겨났다.
그리고 거기서 우르르 튀어나오는 뱀파이어 전사들!
이제까지 나온 적들과는 숫자가 차원이 달랐다.
-불타오르는 해골의 저주!
[살라비안의 축복을 받은 뱀파이어 전사가 화염을 견뎌냅니다.]
[살라비안의 축복을 받은 뱀파이어 암살자들이 순간이동을 시도합니다!]
“이런……. 튀어!”
이세연은 재빨리 언데드 군대들을 앞으로 보내서 벽을 만든 다음, 길드원들을 데리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메시지창이 ‘도망쳐라!’라고 말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여기는 못 지나간다!
-비켜라, 이 시체들아!
콰콰쾅!
숲 한가운데에서 언데드 군대들과 뱀파이어 전사들이 격돌!
데스 나이트들을 위주로 한 언데드 군대들이 각종 버프 스킬을 받고 뱀파이어 전사들을 찢어발겼지만, 뱀파이어 전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살라비안 신의 축복을 받고 오히려 데스 나이트들을 숫자로 몰아붙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언데드라 뱀파이어의 흡혈 저주가 잘 안 통한다는 것!
콰직, 콰직!
데스 나이트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도 데스 나이트는 멀쩡히 움직였다.
-이 썩어 빠진 시체들이 감히!
-살라비안의 저주를 받아라!
“으, 검은 챙겼는데 뭔가 잘못 건드린 기분이…….”
뒤에서 살벌하게 외쳐 오는 목소리에 이세연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종류의 적은 한번 잘못 건드리면 계속해서 성가시게 굴었다.
어디를 갈 때 암살자를 보낸다던가, 아예 대놓고 습격을 한다던가…….
퍼퍼퍽!
그러는 사이 언데드 군대의 가운데가 뚫리고, 뱀파이어 전사들이 그 사이로 나와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절대 도망치지 못…….
-언데드 폭발, 골렘 폭발!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과 함께 숲의 절반이 날아갔다. 이세연은 한숨을 쉬며 탈것을 불러내 길드원들과 함께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저 골렘 다시 만들려면 귀찮겠는데…….’
안 그래도 태현이 부숴 먹은 다음에 기껏 다시 재료를 구해서 만들었는데, 또 부숴 먹다니.
-모험가! 중앙 대륙으로 도망쳐도 찾아낼 것이다. 어차피 중앙 대륙은 곧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올 테니까!
“쟤가 뭔가 악당 같은 대사를 하는데?”
“걱정 마세요. 길마님. 제가 찾아본 결과 모든 악신 교단들은 다 저런 대사를 합니다. 실제로 저런 교단 중에서 중앙 대륙에서 뭘 하는 데 성공한 교단은 별로 없습니다.”
“별로 위로는 안 된다…….”
* * *
“히익! 물고기다!”
“……모험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물고기에 놀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파이토스 성기사가 플레이어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나가는 물고기를 보고 기겁을 하다니!
그렇지만 플레이어들의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태현이 우리를 여기에 왜 보낸 거지?’
‘우리를 죽이려고 보낸 게 분명해! 흑흑!’
사실 태현이 이 플레이어들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해적선 한 척 뺏어서 튀려는 것 정도는 태현에게는 장난 수준!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서 이렇게 겸사겸사 같이 처리하는 것이었지만…….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면 다시 공격하는 거 아냐?”
“아, 아닐 걸. 김태현이 그런 사람은…….”
말하던 플레이어는 멈칫했다.
게시판에 돌아다니던 김태현에 관한 소문들이 떠오른 것이다.
-만약 네가 10골드가 있고 김태현도 10골드가 있으면, 이제 김태현은 20골드를 가지고 있다.
-김태현은 골드 드래곤의 브레스를 담배에 불 붙이는 용도로 쓴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의 이름이 그렇게 붙은 이유는 김태현이 거기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보통은 ‘너희 김태현한테 당한 놈들이지?’ 하고 무시당하게 마련이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내가……. 떠나라고 했을 텐데…….
쾅!
말과 함께 선빵부터 때리고 보는 오케노아스!
드래곤 입장에서는 앞발을 한 번 휘두른 것이겠지만, 플레이어는 그걸로 바로 로그아웃을 당해야 했다.
“드…… 드래곤이잖아!”
“고룡의 던전이라고 해서 설마 했는데 진짜 드래곤이 있는 곳에 우리를 보낸 거야?!”
“미친 거 아냐!”
패닉에 빠진 플레이어들과 달리, 파이토스 교단의 성기사들은 정신줄을 꽉 붙잡고 외쳤다.
“편지를 갖고 왔습니다!”
-……뭐라고?
“여기, 편, 편지입니다! 위대한 대륙의 영웅이신……. 김태현 백작님이…….”
목숨의 위기에 빠진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칭찬까지 해서 편지를 내밀었다.
-나는 놈이……. 누군지 모른다…….
“그,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신…….”
-아키서스……. 아…… 그……. 사기꾼……. 내가 제안을 받지 않아서 골드 드래곤한테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 맞습니다! 아키서스! 그 사기꾼!”
-한낱 인간이 감히 신을 모욕하는 거냐…….
“죄송합니다!”
괜히 맞장구쳤다가 죽을 뻔한 파이토스 교단 NPC들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좋다……. 그…… 교황을 들어오라고 해라. 아키서스의 전인이라면 만나보고 싶군…….
“……!”
옆에서 벌벌 떨며 듣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더 깜짝 놀랐다.
드래곤이 들어오라고 허락해 주다니!
대체 김태현은 뭔 편지를 썼길래?
오케노아스는 편지를 받더니 뜯고 읽기 시작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장한 채로 침을 삼켰다.
-흠…….
“어, 어떠십니까?”
-너무 못 써서 못 알아보겠군…….
“…….”
* * *
[드래곤을 만나고서도 살아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그의 심부름까지 받고서!]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드래곤과 만나 살아 돌아온 자를 얻습니다.]
[…….]
몬스터는 잡지도 않고, 단순히 살아 돌아오기만 했는데도 어중간한 던전 깬 것만큼 보상이 쏟아졌다.
“저, 저희 살아 돌아왔습니다!”
“오해해서 죄송했습니다, 태현 님! 저희를 죽이려고 밀어 넣은 줄 알았는데…….”
“……?”
“???”
케인과 최상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이려고 밀어 넣은 거 맞을 텐데?
“저희한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신 거군요! 흑흑!”
“너희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편지는 주고 왔냐?”
“네! 드래곤이 태현 님을 직접 뵙고 싶다고…….”
“…….”
“……??”
태현이 조용해지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거짓말 아니야?”
“?!”
태현은 불신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와 사제들이 나서서 해명했다.
“아닙니다! 김태현 백작님. 정말로 드래곤이 백작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음……. 이것들이 서로 짜고서 날 엿 먹이는 걸지도…….”
“…….”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저희가 왜 그러겠습니까!”
“죽이려고 보냈는데 당연히…….”
“어? 죽이려고 보낸 거라고요?”
플레이어들과의 대화를 듣던 파이토스 교단 사제가 답답하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백작님! 믿어주십시오. 파이토스 님의 이름을 걸 수도 있습니다!”
“……그거 솔직히 그냥 걸어도 되는 거라 믿기 좀…….”
“?!?!”
교단의 교황으로서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발언!
30분 정도 떠들고 나서야 태현은 일단 그들의 말을 믿어주기로 했다.
“상윤아. 여기 있다가 나 안 나오면 얘네 다 바닷속으로 밀어버려.”
“…….”
“다, 다 들리는데요.”
“들리라고 한 소리야.”
그 말과 함께 태현은 던전에 입장했다.